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400130
한자 厚平里
영어공식명칭 Hupyeong-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성주군 금수면 후평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규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 3월연표보기 - 경상북도 성주군 금수면 후평동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88년 5월연표보기 - 경상북도 성주군 금수면 후평동에서 경상북도 성주군 금수면 후평리로 개편
성격 법정리
면적 11.98㎢
가구수 105가구
인구[남/여] 166명[남 85명/여 81명]

[정의]

경상북도 성주군 금수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후평(厚平)’ 지명은 이 지역 사람들의 인심이 후하고 안빈낙도(安貧樂道)를 즐기며 살아가는 모습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측된다. 후평1리의 자연 마을로 황산(黃山)[중후(中厚)]과 아래후리실[하후(下厚)], 삼거리[토꾸재·토현(兎峴)], 송정(松亭), 이실뫼[이슬뫼·노산(露山)], 살티[살현(乷峴)·전현(箭峴)·시현(矢峴)·사현(沙峴)]가 있고, 후평2리의 자연 마을로 말미[두산(斗山)], 신성[신성리(新城里)]이 있다.

황산은 마을 주변의 흙이 황토(黃土)로 누런색을 띤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후리실 고개 서편 구릉지에 남향하여 자리한 마을이 아래후리실이다. 주민들이 모두 인심이 후하다고 후리실이라 이름하였으나 마을이 어은리후평리로 각각 나뉘며 웃후리실[어은리], 아래후리실로 구분하여 부르게 되었다. 토꾸재는 마을의 서쪽 도로 건너편 후평리에서 봉두리로 넘나드는 산고개에 토끼가 많이 다니므로 토꾸재라 부르게 되었다가 마을 이름도 이 고개 이름을 따랐다고 전한다. 또 마을이 국도 제30호선과 국도 제59호선이 만나는 삼거리 지점이라 삼거리라고 하였다. 송정은 마을 안에 정자(亭子) 역할을 하던 큰 소나무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실뫼는 정교악(鄭喬岳)[1714~?]이 이곳에 입향할 때 “거미줄에 이슬이 맺혀 있는 곳과 같다[蛛絲結露之地]”면서 ‘이실뫼[노산]’라고 이름하였다. 살티는 마을 위쪽에 자리한 살티 고개에서 따온 이름이다.

말미는 마을 뒷산이 말[斗]같이 생겨서 두산이라고도 부른다. 신성은 150여 년 전 말미 주민들이 이곳으로 옮겨 와 살면서 새로 형성된 마을이라 신성 또는 신성리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형성 및 변천]

1914년 3월 행정 구역 개편 때 후평동으로 하고 금수면의 법정동으로 편제하였다. 1988년 5월 조례 제1076호에 따라 동(洞)을 리(里)로 개정하면서 금수면 후평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북쪽에는 살티재[400m]가 있고 서북쪽으로 노산[810.6m]과 염속산[872.5m] 줄기가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동북쪽에는 염속봉산[679.3m]이 있다. 이들 산지 사이로 성주 저수지[성주호]로 유입되는 대가천의 지류가 흐르는데, 이 지류는 북쪽에서 남쪽으로 흐르는 하천과 동북쪽에서 서남쪽으로 흐르는 하천으로 구분되어 있다. 이들 하천변을 따라 농토와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현황]

후평리금수면의 북쪽 끝부분에 자리하여 동남부와 남부, 서부는 금수면어은리, 광산리, 봉두리, 북부와 북동부는 경상북도 김천시 조마면, 성주군 벽진면과 접한다. 2021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11.98㎢이며, 후평1리와 후평2리 2개 행정리에 105가구, 166명[남 85명, 여 81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후평리의 인구는 1974년 638명에서 1984년 346명, 1994년 171명으로 감소한 후 2001년 194명으로 증가하였으나 2018년 165명, 2021년 166명으로 다시 감소하였다. 가구 수는 1974년 139가구에서 1984년 92가구, 1994년 72가구로 감소하였다가 2010년 101가구, 2021년 105가구로 증가하였다.

동서로 국도 제30호선이 지나가고 남북으로 국도 제59호선이 지나간다. 남쪽에 성주 저수지[성주호]가 있다. 1990년대 중반까지 경주 정씨(慶州鄭氏) 10가구, 청주 이씨(淸州李氏) 5가구, 성산 여씨(星山呂氏) 5가구, 경주 최씨(慶州崔氏) 5가구, 그 밖의 성씨들이 42가구 살았다. 정고악이 개설한 이실뫼에는 1990년대 중반까지 경주 정씨가 주로 살았다.

신성리 앞에 성주댐 수몰 지구 기록비가 서 있다. 마을 앞 도로변에 있는 ‘성주호 수몰지구 기념공원’은 성주 저수지[성주호]가 건설되면서 수몰된 금수면 봉두리 이주민들이 자신들이 살던 고향을 그리워하여 1993년쯤 조성하였다. 봉두리 이주민들은 1992년 9월 ‘봉두국민학교 및 수몰민 위로 한마음 큰잔치’를 시작으로 ‘금수 면민 한마음 큰잔치’를 매년 개최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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