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400067
한자 禮山里
영어공식명칭 Yesan-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 예산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재범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 3월연표보기 - 경상북도 성주군 성주면 예산동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79년연표보기 - 경상북도 성주군 성주면 예산동에서 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 예산동으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88년 5월연표보기 - 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 예산동에서 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 예산리로 개편
성격 법정리
면적 1.75㎢
가구수 1,033가구
인구[남/여] 2,106명[남 1,072명/여 1,034명]

[정의]

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지명 유래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예산3리의 옛 사례동(沙禮洞)에서 변화한 예동(禮洞)의 ‘예(禮)’ 자와 북산(北山)의 ‘산(山)’ 자를 합쳐 ‘예산(禮山)’으로 부르게 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예산1리의 자연 마을로 세록골[새록골·세례골·관하리(官下里)]과 새마[새마을]가 있고, 예산2리의 자연 마을로 교촌(校村)과 탑거리(塔路), 풍리[신풍리(新豊里·新風里)], 예산3리의 자연 마을로 예동(禮洞), 예산4리의 자연 마을로 물개[물능개·수능포(水能浦)·무리포(蕪理浦)·무류포(舞柳浦)·약부동(若夫洞)]가 있다.

세록골은 옛 경산부(京山府) 시절에 마을 뒤 일대가 읍기(邑基)여서 관가 아래에 생긴 마을이라 관하리라고 불렀다. 또 예동 앞에 새로 만들어진 마을이라 ‘새로 생긴 고을’이라 부르다가 음(音)이 변화하여 ‘세록골’로 부르게 되었다고 하며,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을 보관하던 성주사고(星州史庫)가 있어 ‘새록골’ 또는 ‘세례골’로 불렀다는 설도 있다. 교촌은 조선 시대 지방 교육 기관이던 향교가 이 마을에 있어 생긴 이름이다. 예동은 경산부 때 읍기여서 사례동으로 불리다가 예동으로 변하였다고 한다. 물개는 어진 선비가 살던 곳이라고 하여 ‘약부동’으로도 불렀으며, 100여 년 전 이곳을 개간하면서 물이 풍족하다 하여 물능개[수능포]로 부르다가 언젠가부터 물개로 바뀌었다고 한다.

[형성 및 변천]

1895년(고종 32) 5월 관제 개혁 때 현재의 성주읍 지역은 용산면(龍山面), 남산면(南山面), 본아면(本牙面), 북산면(北山面)의 4개 면으로 구성되었다. 당시 새록골, 교촌, 신풍리, 예동은 북산면에 속하였고, 물개는 용산면에 속하였다. 1914년 3월 행정 구역 개편 때 새록골, 교촌, 신풍리, 예동, 물개를 합하여 예산동으로 하고 4개 면[용산면, 남산면, 본아면, 북산면]을 통합한 성주면의 10개 법정동 중 하나로 편제하였다. 1979년 성주면성주읍으로 승격하면서 성주읍 예산동이 되었다. 1988년 5월 조례 제1076호에 따라 각 동(洞)을 리(里)로 개정하여 성주읍 예산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예산1리 세록골예산3리 예동의 뒤쪽은 인현산(印懸山)에서 뻗어 내린 지맥이 구릉지를 형성하고 있고, 예산2리 교촌 앞에는 인현산과 수수골[洙泗谷]에서 발원한 예산천(禮山川)이 흘러 이천(伊川)으로 유입된다. 대체로 경지가 넓게 분포하는 평지에 자리하였으며 동쪽으로 낙동강이 흐른다.

[현황]

예산리성주읍 소재지와 북동쪽으로 연접하며 동서남북이 성주읍삼산리경산리, 백전리, 금산리, 학산리와 접한다. 2021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1.75㎢이며, 예산1리와 예산2리, 예산3리, 예산4리 4개 행정리에 1,033가구, 2,106명[남 1,072명, 여 1,034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예산리 북쪽에 성주 일반 산업 단지가 있고 서쪽에서 남북으로 지방도 제905호선이 지나간다. 1959년 성주중학교가 성주농업중학교[6년제]에서 분리되어 예산리로 옮겨 왔으며, 성주중학교 인근에 성주 도서관이 있고, kt 성주지사와 한국농어촌공사 성주지사가 자리한다. 2020년 성주읍성과 쌍도정 등을 복원한 성주 역사 테마 공원예산리에 있다. 일제 강점기부터 광복 후 혼란기에 「번지 없는 주막」, 「나그네 설움」 등을 불러 서민들의 애환을 노래했던 가수 백년설예산리 출신이다.

문화 유적으로 성주향교 대성전 및 명륜당[보물]과 동방사지 칠층석탑(東方寺址七層石塔)[경상북도 유형 문화재], 만산댁(晩山宅), 배리댁(裵里宅)이 있다. 석빙고(石氷庫) 터, 관옥(官獄) 터, 배씨정(裵氏井)과 현충 시설인 충혼탑(忠魂塔)이 있다. 충혼탑 아래에는 조선 영조(英祖) 때 일어난 이인좌(李麟佐)의 난을 평정하여 세운 ‘성산 기공비(星山紀功碑)’와 목민관 선정비(善政碑) 17기를 비롯하여 고종(高宗) 때 사헌부 감찰에 제수된 만산 도갑모(都甲模)가 가난하고 어려운 백성의 구휼에 힘쓰자 군민들이 세워 준 ‘도갑모 시혜불망비’가 있었는데 모두 성주 역사 테마 공원으로 옮겨 놓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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