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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양 진씨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401425
한자 驪陽陳氏
영어공식명칭 Yeoyang Jin Clan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경상북도 성주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차인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본관 여양 - 충청남도 홍성군 장곡면
입향지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백운리
성씨 시조 진총후
입향 시조 진창우

[정의]

진총후(陳寵厚)를 시조로 하고, 진창우(陳昌佑)를 입향조로 하는 성주 지역의 세거 성씨.

[연원]

진씨(陳氏)는 원래 중국 성씨로서 송나라 휘종(徽宗) 때 복주인(福州人) 진수(陳琇)가 우윤(右尹) 벼슬을 지내다가, 요(遼)·금(金) 등 오랑캐의 침입을 피해 가족과 함께 고려로 건너왔다. 여양현(驪陽縣) 덕양산(德陽山) 아래에 정착하여 후손들이 세거하였다. 고려 예종 때 후손 진총후가 호분위대장군(虎賁衛大將軍)을 지냈고, 인종 4년(1126)에 이자겸(李資謙)의 난을 토벌한 공으로 신호위대장군(神虎衛大將軍)이 되어 여양군(驪陽君)에 봉해지면서 본관으로 삼았다. 이에 후손들이 진총후를 시조로 하고 본관을 여양(驪陽)으로 하였다. 이후 명문자로 이름을 떨친 진화(陳澕), 조선 명종 때의 진식(陳寔), 임진왜란·정묘호란 때 공을 세운 진무성(陳武晟) 등의 후손이 이름을 떨쳤다. 19세 진창우가 합천에서 성주로 입향한 후 그 후손들이 이 지역에 세거하였다.

[입향 경위]

1172년(명종 2) 진총후의 아들 준(俊)은 동북면병마사행영겸중군병마사(東北面兵馬使行營兼中軍兵馬使)에 올랐으며, 이후 좌군병마사(左軍兵馬使), 참지정사(參知政事), 판병부사(判兵部事) 등을 역임하였다. 이후 여양 진씨(驪陽陳氏)는 세거지명에 따라 나주(羅州), 강릉(江陵), 삼척(三陟), 흥덕(興德), 양주(楊州), 덕창(德昌) 등으로 분적되었지만, 이중 나주, 강릉, 삼척 등은 1967년에 여양(驪陽)으로 합보(合譜)되었다. 성주의 여양 진씨는 조선 현종 때 중추부사를 역임한 19세 진창우가 합천에서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백운리로 이거하였고, 두 아들 가운데 차남인 군자감첨정(軍資監僉正) 예발(禮發)이 1693년에 벽진면 점복으로 이거하였다.

[참고문헌]
  • 『성주군지』(성주군·성주문화원,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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