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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깨 참깨 소리」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401271
이칭/별칭 「명잣기」,「베짜기」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문화유산/무형 유산
유형 작품/민요와 무가
지역 경상북도 성주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동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채록 시기/일시 1979년 5월 6일 - 「들깨 참깨 소리」 정재선에게 채록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80년 - 「들깨 참깨 소리」 『한국 구비 문학 대계』7-4에 수록
채록지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운정리 지도보기
가창권역 전국
성격 민요|노동요
기능 구분 길쌈 노동요
형식 구분 독창
가창자/시연자 정재선

[정의]

경상북도 성주 지역에서 여성들이 길쌈할 때 부르는 소리.

[채록/수집 상황]

「들깨 참깨 소리」는 1980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발행한 『한국 구비 문학 대계』7-4에 수록되어 있다. 1979년 5월 6일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운정2동[현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운정리]에서 구연자 정재선으로부터 조사 및 채록하였다.

[구성 및 형식]

길쌈은 단순 반복 작업의 연속으로 정제된 형태의 서사 민요가 발달하였으나 노동 형태와 노랫말의 연관성은 없다. 그리하여 서사 민요로서 시집살이의 애환 등 삶의 고달픈 형상을 드러내는 것이 많다.

[내용]

「들깨 참깨 소리」는 성주 지역의 여성들이 길쌈하며 불렀던 민요로, 「명잣기」, 「베짜기」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반복되는 단순 노동을 하며 부른 노래라서 노동의 형태와 노랫말이 긴밀하게 연관되지는 않는다. 그리고 길쌈은 농사일과 같이 강한 육체 활동이 수반되는 노동이 아니기 때문에, 주로 시집살이의 애환과 졸음을 쫓는 말 등을 노래함으로써 지루한 일의 작업 능률을 높인다. 또한, 긴 시간 동안 일하면서 부르기 때문에 비교적 장형의 노래로 발달하였다.

성주에서 채록된 「들깨 참깨 소리」의 노랫말을 살펴보면, 남편을 서울로 떠나보낸 여성이 농사를 짓고, 길쌈을 하기 위해 목화를 키운다. 그러면서도 밭의 한켠에서는 들깨와 참깨를 길러 기름을 짜서 남편과 친정 부모를 봉양하고자 한다. 남편과 떨어져 홀로 시댁에서 살림을 꾸려나가는 여성의 고달픈 일상과 남편과 친정 부모에 대한 그리움이 잘 드러난다.

알쏭달쏭//금송아지

곱기곱기//길러내어

은쟁기를//매었던가

놋쟁기를//매었던가

사래질고//광넓은밭에

내열가고//빙이가요

추진대는//용을갈고

마린델랑//목화를갈고

머리마중//들깨를숨가

아둑따둑//참깨갈아

석달열흘//다됭께로

참깨는//서른닷말

들깨는//사십댓말

기름을//짜여

서울갔던//서방님의

올디밥을//자지치고

열무김치//지리치고

호박나물//볶아치고

멀짚겉은//외장작에

은수저//드나가며

새빌겉은//동솥에

아각자각//찌지기서

서방님에//자붕하고

부모극에//효성하고

까막깐치//날라가며

털터리도//날라가는

훌훌이도//잡아다가

임의상에//놓고싶다

부모양친상에//놓고싶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길쌈은 사대부가 여성들에게 부덕(婦德)으로 권장되었던 양잠업이었다. 사대부의 의복 재료가 명주였으며, 양잠이 다른 직물보다 노동 과정 및 방적 과정이 상대적으로 수월했기 때문이다. 길쌈은 조선 후기에 이르면 사회경제적 변화와 장시의 활성화에 의해 치산(治産)의 수단이 되었다. 특히 여성의 생산 노동과 치산 능력이 중요해짐에 따라 단순한 부덕의 영역에서 벗어나 여성의 주요 경제 활동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의의와 평가]

조선 후기 여성의 생활상, 특히 시집살이와 관련한 내용을 잘 알 수 있다는 점에서 문화적·역사적 가치가 높다. 또한 경상북도 북부 지역의 여성 경제사적 맥락에서 조선 후기 여성의 경제 활동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도 가치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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