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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401158
한자 星州-
영어공식명칭 Seongju Hangae Village
분야 생활·민속/생활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 67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곽명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2007년 12월 31일연표보기 - 성주 한개 마을 중요 민속 문화재 지정
현 소재지 성주 한개 마을 -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 67 지도보기
성격 집성촌|민속 마을

[정의]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에 있는 성산 이씨 집성촌이자 국가 민속 문화유산.

[개설]

성주 한개 마을은 뒤로 영취산(靈鷲山)[331.7m]이 있고 앞으로 백천(白川)이 흐르는 전형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에 자리한 성산 이씨(星山李氏) 집성촌이다. 성산 이씨가 600년을 세거하면서 집성촌만의 고유한 풍속과 양반가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특히 주로 조선 후기에 건축된 전통 한옥과 신라 애장왕(哀莊王) 때 창건된 것으로 전해지는 감응사(感應寺)의 사하촌(寺下村)으로서의 모습이 잘 어우러지는 풍경을 지녔다.

[명칭 유래]

‘한개’는 큰 하천[白川] 가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한’은 크다는 뜻이고 ‘개’는 개울을 의미한다. 곧 ‘큰 개울’을 뜻하는 순우리말에서 온 이름이다. 이를 한역(漢譯)하여 대포(大浦)라고 쓰기도 한다. 법정동인 ‘대산리(大山里)’의 ‘대(大)’ 자도 ‘대포(大浦)’에서 딴 글자이다.

[형성 및 변천]

성주 한개 마을은 뒷산인 영취산에 신라 때 세워진 감응사가 있어 마을의 형성도 그 시기 전후로 추정해 볼 수 있으나 그에 관한 기록이 없어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다. 다만 성산 이씨 종중에서 전해 내려오는 자료에는 조선 세종(世宗) 때에 진주목사를 지낸 이우(李友)가 처음 입향하여 개척한 마을이라고 한다. 성주 한개 마을은 광해군(光海君) 때 월봉(月峰) 이정현(李廷賢)[1587~1612]이 대과에 급제한 이후 많은 과거 합격자를 배출하면서 번성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성주 한개 마을은 크게 다섯 구역으로 나뉘는데 웃마·아랫마·동녁·서녁·남계[남개]이다. 2007년 12월 31일 중요 민속 문화재[현 국가 민속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자연환경]

성주 한개 마을의 지형은 뒷산인 영취산 줄기가 마을을 감싸듯 좌청룡·우백호로 뻗어 내리고, 마을 앞에는 백천이 흘러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길지(吉地)에 들어맞는다. 동네와 백천 사이는 과거에는 모래밭이었으나 광복 후 제방을 쌓아 지금은 농경지로 활용하고 있다. 마을 뒤 구릉지는 1920년 경신(庚申) 대홍수 때 쓸려 내려온 돌들이 많은데 동네에서는 ‘돌마리[돌만리·돌마지기]’라고 부른다.

[현황]

성주 한개 마을은 2007년 중요 민속 문화재[현 국가 민속 문화재]로 지정된 이후 새마을 운동 등의 영향으로 변형된 가옥들을 옛 모습으로 되돌리는 사업을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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