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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400978
한자 林淨寺
영어공식명칭 Imjeongsa Temple
이칭/별칭 성주 임정사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기관 단체/사찰,유적/건물
지역 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 성주읍5길 24-35[경산리 105]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권기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890년연표보기 - 포교당 창건
개칭 시기/일시 1936년연표보기 - 포교당에서 임정사로 개칭
중수|중창 시기/일시 1990년 - 임정사 삼성각 중창
중수|중창 시기/일시 1990년 - 임정사 종각 중창
관련 사항 시기/일시 2009년 - 임정사 지장 대불 봉안
최초 건립지 포교당 - 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 성주읍5길 24-35[경산리 105]
현 소재지 임정사 - 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 성주읍5길 24-35[경산리 105]지도보기
성격 사찰
창건자 승려 상진
전화 054-933-2475

[정의]

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 경산리에 있는 한국불교태고종 소속 사찰.

[건립 경위 및 변천]

임정사(林淨寺)성주군 성주읍 경산리 봉두산에 있는 사찰로, 1890년(고종 27)에 감응사(感應寺) 주지를 지낸 우산당 상진이 포교당으로 창건하였다. 한국의 근대화가 시작된 개항 이후 사회적 분위기와 일본 불교의 영향에 따라 별도의 사명을 붙이지 않고 그냥 포교당이라는 명칭으로 불렸다. 이 시기의 포교당이라는 명칭은 전국적으로 사용되었으며, 당연히 불교 포교당을 의미하였다. 1936년에 조선 중기 의성군의 대곡사(大谷寺)에 봉안된 53 아미타불 중 한 불상을 주불로 모시고 현재의 극락전(極樂殿)을 건립하였으며, 임정사라는 이름으로 사명을 등록하면서 단순한 포교당에서 전통적인 사명을 사용하게 되었다. 극락전은 1970년에 경우당(鏡牛堂) 영근(榮根)이 중수하였다. 1990년에는 3대 주지인 견성당(見性堂) 대암(大岩)이 삼성각(三聖閣)과 종각(鐘閣), 요사채를 중창하였다. 이후 담장을 쌓고 그 안에 정원을 조성해 석조 지장보살 입상과 산신상, 포대화상을 두는 등 사찰을 정비하였다. 2009년에는 4대 주지 성우당(惺牛堂) 법일(法日)이 지장 대불을 봉안하였으며, 지역의 개발과 발전에 따라 완전히 현대적 도심 사찰로 변모하였다.

[활동 사항]

임정사는 사회 활동으로 외롭고 소외된 조손 가정을 돌보고, 지역 내 마을 회관 등을 찾아 어려운 이웃들을 돕고 있다.

[현황(조직,시설 현황 포함)]

임정사는 성주군 성주읍 성주읍5길 24-35[경산리 105번지], 동두산 자락에 자리한다. 여느 산중 사찰과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일반 주택이 밀집한 주택가의 골목에 자리하며, 입구는 일반 여염집 대문 모습을 하고 있어 ‘임정사’ 편액이 아니면 사찰로 구분하기 어렵다. 따라서 창건 당시의 의도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처럼 지역의 도심 포교당과 같은 분위기이다. 임정사는 포교 활동에 유리한 자리에 위치하는데, 임정사를 중심으로 오른쪽에 성주군청이 자리하고, 바로 아래에는 성주초등학교가 있으며, 왼쪽으로는 성주경찰서성주 일반 산업 단지가 위치하고 있어 도심 전체를 품을 수 있는 좋은 입지 조건을 갖추고 있다.

가람 배치는 2층 누각 형식의 종각 정면에 삼성각을 끼고 위로 솟은 기단 위에 주불전인 극락전이 자리한다. 그 앞엔 좌우로 명부전(冥府殿)과 요사채로 구성된 2층 건물과 단층 요사채가 배치되어 있다. 삼성각 앞에는 ‘봉성산 임정사 극락보전 창건 동참비’가 세워 있는데, 근대 임정사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임정사의 극락전은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집으로 단아한 모습을 보인다. 전각 내부에는 금동 아미타여래 좌상과 후불탱, 그리고 지장보살 좌상과 지장 탱화가 봉안되어 있다. 아미타여래 좌상은 의성군 대곡사에 봉안된 53 아미타불 중 한 불상으로 통견에 선정인(禪定印)의 수인(手印)을 하고 있으며, 상호가 근엄하고 단정하여 조선 전기의 양식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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