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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400790
한자 成大湜
영어공식명칭 Seong Daesik
이칭/별칭 성한구(成漢龜),낙현(洛見),오봉(五峯)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성주군
시대 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권영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69년 11월 2일연표보기 - 성대식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 성대식 파리 장서 운동 참여
활동 시기/일시 1919년 4월 2일 - 성대식 성주읍 3.1 만세 운동 주도
활동 시기/일시 1919년 5월 20일 - 성대식 대구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선고받음
활동 시기/일시 1919년 8월 21일 - 성대식 대구복심법원에서 무죄로 풀려남
몰년 시기/일시 1925년 3월 2일연표보기 - 성대식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95년연표보기 - 성대식 건국 포장 추서
출생지 성대식 출생지 -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 벽소로 868-14[월곡리 659]지도보기
거주|이주지 성대식 거주지 -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 벽소로 868-14[월곡리 659]
활동지 성대식 활동지 - 경상북도 성주군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일제 강점기 성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1919년 3월 파리 강화 회의에 제출할 파리 장서(巴里長書)[독립 청원서(獨立請願書)]에 한국 유림 대표의 한 사람으로 서명하고, 독립운동을 촉구하는 통문(通文)을 배포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가 일본 경찰에 잡혀 고초를 겪은 독립운동가이다.

[가계]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낙현(洛見), 호는 오봉(五峯). 초명은 성한구(成漢龜). 조선 숙종과 영조 때 홍문관 교리(弘文館校理)를 지낸 낙애(洛厓) 성기인(成起寅)의 6세손이며, 아버지는 성종호(成鍾浩)이다.

[활동 사항]

성대식(成大湜)[1869~1925]은 1869년 11월 2일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 벽소로 868-14[월곡리 659]에서 태어났다. 공산(恭山) 송준필(宋浚弼)의 문인이었고, 유교계의 독립 청원 운동인 1919년 3월의 파리 장서 운동(巴里長書運動)에 참여하였다. 1919년 3.1 운동의 전개 과정에서 「독립 선언문」이 발표되었으나, 유림 측은 민족 대표에 참여하지 못하였다.

이에 김창숙(金昌淑)을 중심으로 경상북도 성주 지역 유림 장석영(張錫英)·송준필(宋浚弼) 등이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 고산리성주 백세각(百世閣)[경상북도 유형 문화재]에 모여 프랑스에서 열리는 파리 강화 회의에 파리 장서를 제출하고, 4월 2일 성주읍 장날에 독립 만세 시위를 벌이기로 결의하였다. 파리 장서 운동은 일제의 한국 국권 침탈 과정과 식민 통치의 불법성을 폭로하면서 한국 독립의 정당성을 국제 사회에 호소한 유림의 항일 운동이었다.

성대식은 스승 송준필의 권유를 받고 파리 장서에 한국 유림 대표 137명 중 한 사람으로 서명하였다. 파리 장서는 김창숙이 극비리에 상하이[上海]로 가지고 나가 파리 강화 회의 의장에게 발송하였다. 성대식성주군 성주읍 내 유림들을 규합하고 태극기와 통문을 만들어 각 촌락에 배부하면서 성주읍 장날 만세 시위 운동을 준비하였다. 1919년 4월 2일 성주읍 장날 오후 1시에 성주 지역 유림 세력과 기독교 세력이 연합하여 독립 만세 운동을 펼쳤다.

일제 경찰은 만세 시위 운동을 탄압하면서 참가자들을 붙잡아 연행하였다. 그리고 붙잡힌 참가자들에 대한 조사 과정에서 파리 장서 운동의 기밀을 탐지하여 성대식을 비롯한 관련 유생들을 줄줄이 검거하였다. 성대식성주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대구 감옥으로 넘겨져 고초를 겪다가, 1919년 5월 20일 대구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결과에 불복하며 공소를 제기하여 1919년 8월 21일 대구복심법원에서 무죄로 풀려났다. 그러나 옥고의 후유증으로 1925년 3월 2일 57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5년 건국 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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