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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400758
한자 金龜鎭
영어공식명칭 Gim Gujin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성주군
시대 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권대웅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74년 3월 11일연표보기 - 김구진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4월 2일 - 김구진 성주읍 장날 독립 만세 운동 참여
활동 시기/일시 1919년 4월 25일 - 김구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 선고받음
몰년 시기/일시 1943년 5월 1일연표보기 - 김구진 사망
추모 시기/일시 2006년연표보기 - 김구진 대통령 표창 추서
출생지 김구진 출생지 -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 자양길 217-2[자양리 755]지도보기
거주|이주지 김구진 거주지 -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 자양길 217-2[자양리 755]
활동지 김구진 활동지 - 경상북도 성주군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1919년 4월 2일 성주읍 장날 독립 만세 운동 참여

[정의]

일제 강점기 성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김구진(金龜鎭)[1874~1943]은 1874년 3월 11일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 자양리 755번지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 운동경상북도 성주군 선남면 소학리이현기(李玄琪)가 주도한 3월 27일~3월 28일의 만세 시위 운동과 가천면 동원리이상해(李相海)가 주도한 만세 시위 운동에 자극받은 성주 지역의 유림 세력과 기독교 세력이 연합하여 4월 2일에 성주읍 장날 만세 시위 운동을 펼칠 계획을 세웠다. 이때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 자양리김구진성주읍 경산리의 배상윤(裵相潤)과 어물상 서병준(徐丙俊), 대가면 흥산리백성흠(白聖欽), 용암면 동락리노기학(魯基學), 대가면 칠봉리의 김원술(金元述), 벽진면 매수리박경하(朴京夏) 등과 함께 태극기를 제작하고 선언서를 준비하였다.

1919년 4월 2일, 성주읍 장날 오후 1시에 경산리 관제묘(關帝廟) 뒷산에서 기독교도들이 먼저 태극기를 들고 성주읍 시장을 향해 나아가면서 독립 만세를 고창하였다. 시장 중앙에 모였던 유림 측도 송우선(宋祐善)·송회근(宋晦根)의 주도하에 송수근(宋壽根)·송훈익(宋勳翼)·송문근(宋文根)·송규선(宋圭善)·이봉희(李鳳熙) 등이 함께 태극기를 손에 들고 만세를 부르며 호응하였다.

일본 경찰이 주도 인물들을 경찰서로 연행하자, 분노한 3,000여 명의 시위대가 경찰서로 몰려가 만세를 부르고 석방을 요구하며 투석전을 벌였다. 일경이 시위대를 향해 발포하여 시위에 참여했던 이태희(李兌熙) 외 2명이 순국하고, 이봉희 등 7명이 부상을 입었다. 시위대는 서북방 산상에 모여 불을 피워 놓고 계속 독립 만세를 고창하다가 오후 10시경에 해산하였다. 이때 김구진은 배상윤·서병준·노기학·김원술·박경하 등과 함께 체포되었고, 소위 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되었다. 이어 같은 달 25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6월을 선고받고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1943년 5월 1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2006년 대통령 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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