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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400744
한자 諸弘祿
영어공식명칭 Je Hongrok
이칭/별칭 경행(景行),고봉(高峰)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성주군
시대 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황명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558년연표보기 - 제홍록 출생
활동 시기/일시 1581년 - 제홍록 무과에 급제
활동 시기/일시 1592년 - 제홍록 숙부인 제말과 함께 의병을 일으킴
몰년 시기/일시 1597년연표보기 - 제홍록 사망
추모 시기/일시 1792년 - 제홍록 병조참판에 추증
추모 시기/일시 1792년 - 제홍록 추모 제씨 쌍충사적비 건립
추모 시기/일시 1856년 - 제홍록 운곡서원에 배향
출생지 제홍록 출생지 - 경상남도 고성군
거주|이주지 제홍록 거주지 - 경상남도 고성군
활동지 제홍록 활동지 - 서울특별시
활동지 제홍록 활동지 -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활동지 제홍록 활동지 - 경상남도 의령군 의령읍
활동지 제홍록 활동지 - 경상남도 진주시
묘소 제홍록 묘소 - 경상남도 고성군 대가면 척정리
성격 무신|의병장
성별
본관 칠원
대표 경력 수문장|훈련원 부정

[정의]

경상북도 성주군에 사적비가 있는 조선 후기 의병장.

[가계]

본관은 칠원(漆原), 자는 경행(景行), 호는 고봉(高峰). 증조할아버지는 봉사(奉事) 제철손(諸哲孫)이고, 할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조겸(諸祖謙)이다. 아버지는 참판(參判) 제호(諸灝)이며, 어머니는 진양 정씨(晉陽鄭氏) 정천령(鄭千齡)의 딸이다. 부인은 삭녕 최씨(朔寧崔氏)이다. 임진왜란 때 성주목사로 부임한 의병장 제말(諸沫)[1552~1593]은 그의 숙부이다.

[활동 사항]

제홍록(諸弘祿)[1558~1597]은 타고난 성품이 굳세었으며, 집안에서의 행실을 잘 갖추고 있었는데, 특히 홀어머니를 모시는 일에 더욱 부지런하였다. 그는 1581년(선조 14)에 무과에 급제하여 수문장(守門將)이 되었고, 임진왜란 때에는 숙부 제말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왜적에 맞서 싸웠다. 이때 제홍록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전대(纏帶) 안에 족보를 넣고서는 ‘한 번 죽음으로써 나라의 은혜에 보답할 것’을 맹세하였다. 그리고 사촌 동생인 제홍정(諸弘禎)에게 홀어머니를 맡긴 뒤 적을 토벌하는 거의(擧義)를 위해 집을 떠났으며, 웅천(熊川)[현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과 정암(鼎巖)[현 경상남도 의령군 의령읍] 등지에서 전공을 세웠다. 제홍록은 매번 전투에 나아갈 때마다 반드시 선두로 나섰고, 소수의 군사로 많은 적을 물리쳐 적들이 매우 두려워하였다.

전란 중 성주성을 지키던 숙부 제말이 전사하자 시신을 고향으로 옮겨 장사 지내냈으며, 홀로 살아남기를 도모하지 않고 다시 거의를 계획하였다. 당시 삼도 수군통제사(三道水軍統制使) 이순신(李舜臣)[1545~1598]이 제홍록의 지략과 용맹에 대해 듣고 편지를 보내 만날 것을 청하였으므로, 이순신의 막하에 들어가 전략을 세우는 데 도움을 주었다. 이후 정유재란(丁酉再亂) 때 진주성(晉州城)을 지키러 가다가, 성 아래서 갑자기 나타난 적을 만나 혈혈단신(孑孑單身)으로 맞서 싸우던 중 빗나간 탄환에 맞아 전사하였다.

[묘소]

묘소는 경상남도 고성군 대가면 척정리의 척곡산(尺谷山)에 있다.

[상훈과 추모]

1792년(정조 16)에 병조참판(兵曹參判)에 추증되었다. 당시 제홍록이 전사한 경상남도 진주와 제홍록의 숙부 제말(諸沫)이 전사한 경상북도 성주에 제씨 쌍충사적비가 각각 한 기씩 건립되었다. 비문의 글씨는 당대의 명필가였던 병조판서(兵曹判書) 이병모(李秉模)[1742~1806]가 담당하였다. 묘지명(墓誌銘)은 매산(梅山) 홍직필(洪直弼)[1776~1852]이 작성하였다. 또한 경상남도 고성군 대가면 척정리에 세워진 운곡서원(雲谷書院)에 증조할아버지인 제철손(諸哲孫)과 함께 배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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