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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400593
한자 朴宗鉉
영어공식명칭 Bak Jonghyeon
이칭/별칭 여경(汝卿),만휴(晩休)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북도 성주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우인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23년연표보기 - 박종현 출생
활동 시기/일시 1876년 - 박종현 식년시 문과 급제
몰년 시기/일시 1900년연표보기 - 박종현 사망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32년 - 박종현 조카 박해룡이 성주군에서『만휴집(晩休集)』 간행
성격 문신
성별
본관 순천
대표 관직 형조참의

[정의]

성주군에서 간행한 유집 『만휴집(晩休集)』을 남긴 조선 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순천(順天). 자는 여경(汝卿), 호는 만휴(晩休). 박팽년(朴彭年)의 후손이다. 할아버지는 박광구(朴光搆)이고, 아버지는 박기건(朴基健)이며, 어머니는 김성오(金聲五)의 딸이다.

[활동 사항]

박종현(朴宗鉉)[1823~1900]은 1876년(고종 13) 54세 때 식년시 갑과 2위의 우수한 성적으로 문과에 급제하여 종친부 직장을 지냈고, 이후 사헌부 지평과 장령, 홍문관 수찬과 교리 등 청요직을 두루 거쳤다. 1882년(고종 19) 임오군란 때 마침 승정원에 숙직하고 있었는데 대궐 안에서 함성 소리가 하늘을 뒤흔들 정도로 크게 들리자 각 관청에서 숙직하던 신하들이 모두 피하여 달아났다. 그러나 박종현만이 홀로 번소(番所)를 지키며 반란군들을 꾸짖어 물리쳤다. 고종(高宗)이 듣고 가상히 여겨 부승지로 제수하였다. 왕이 하교하기를 “갑작스러운 변란이 일어남에 홀로 번소를 지켰으니 충의가 평소에 정해지지 않았다면 어찌 여기에 이를 수 있었겠는가.”라고 하였다. 그리고 조복(朝服)에 글씨를 쓰기를 “너의 조상을 생각해 보니 아직도 명철(明哲)함이 남아 있네[顧念爾祖, 尙有餘哲].”라고 하였다. 다시 “충성스럽고 바른 명손(名孫)이요 어지러운 시대에 성신(誠臣)이로다. 이런 까닭으로 여기에 써서 보이나니 너는 띠에 새길지어다.[忠正名孫 板蕩誠臣 故玆書示 爾其銘紳]”라는 열여섯 글자를 써서 승정원에 내려주고 서책과 음식을 하사하였다. 이어 병조참의와 형조참의를 거쳐 강원도관찰사에 제수되었으나 사양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일생을 마쳤다.

[학문과 저술]

시문집으로 1932년 조카 박해룡(朴海龍)이 성주군에서 편집·간행한 『만휴집(晩休集)』 4권 2책이 전한다. 박종현 사후 30년이 되던 해에 만휴당(晩休堂)을 짓고, 그다음 해에 유집 『만휴집』을 간행한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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