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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400430
한자 社倉書堂
영어공식명칭 Sachangseodang
이칭/별칭 성주 사창서당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오천길 85[오천리 324-1]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소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796년연표보기 - 사창서당 건립
문화재 지정 일시 1987년 12월 29일연표보기 - 사창서당 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지정
현 소재지 사창서당 -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오천길 85[오천리 324-1]지도보기
원소재지 사창서당 -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오천길 85[오천리 324-1]
성격 서당
양식 중당 협실형|맞배지붕
정면 칸수 5칸[강당]
측면 칸수 2칸[강당]
소유자 최종록
관리자 최종록
문화재 지정 번호 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정의]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오천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서당.

[개설]

‘사창(社倉)’이라는 명칭은 서당이 있는 마을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으로 짐작된다. 서당이 있던 자리는 조선 중기 성주 지역의 학자 한강(寒岡) 정구(鄭逑)가 49세 되던 해인 1591년(선조 24)에 서숙(書塾)을 지어 학문을 가르치던 곳이었다. 정구는 마을의 이름이 주자(朱子)가 경영하였던 숭안(崇安)의 사창과 동일함에 주목하여 서숙을 짓고, 「새로 지은 사창에 쓰다[題社倉新構]」라는 시를 지었다. 이후 서숙은 퇴락하여 한강대(寒岡臺)라는 이름으로 터만 남아 있었는데, 정구 제자의 후손들이 뜻을 모아 사창서당(社倉書堂)을 건립하였다.

[위치]

사창서당은 성주군 수륜면 오천길 85[오천리 324-1번지]에 있다. 오천(午川) 마을 안쪽 산기슭에서 대가천(大伽川)을 내려다보며 남향하고 있다. 회연서원(檜淵書院)에서 대가천 변을 끼고 남동쪽으로 약 8㎞ 가다가, 조평 교차로에서 사창교를 건너 오천길을 따라 약 858m 직진하면 나타난다. 성주군청에서 남서쪽 까치산 방향으로 약 22㎞ 떨어진 곳에 있다.

[변천]

사창서당은 1796년(정조 20)에 가곡(可谷) 장경목(張敬穆)과 돈와(遯窩) 이익세(李益世) 등 정구 제자의 후손들이 곡식을 모아 건립하였다. 정구 제자의 후손들은 사창서당을 건립하여 정구의 뜻을 기렸고, 봄가을에 사창서당에 모여서 학문을 논하고 강독하였다.

[형태]

강당과 관리사 2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강당은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로, 자연석을 2단으로 불규칙하게 쌓아 기단을 형성하고 기둥을 세웠다. 전면과 후면의 귀에는 원주(圓柱)를 사용하였으며, 기둥 밑에는 큰 막돌 주추를 놓았다. 강당의 평면은 중앙 대청을 3칸 통간으로 하여 우물마루를 깔았고, 가운데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을 배치하면서 앞쪽에 툇마루를 둔 중당 협실형 구조를 띤다. 강당의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 자형인 맞배지붕이다. 좌측 방은 ‘낙영재(樂英齋)’, 우측 방은 ‘경산헌(景山軒)’이라 편액되어 있다. 경산헌의 상부에는 대청 쪽으로 문을 달아 다락을 설치하여 서고로 이용하였다.

[현황]

사창서당은 1987년 12월 29일에 경상북도 문화재 자료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다. 현재 소유자 및 관리자는 최종록이다. 서당 앞쪽에는 대나무 숲이 우거져 있다. 사주문 입구 우측에는 1797년(정조 21)에 정구의 자취를 기리며 세운 ‘문목공 한강 정선생 유허비(文穆公寒岡鄭先生遺墟碑)’가 있다. 강당 중앙에는 ‘사창서당’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고, 이와 함께 ‘제사창신구(題社倉新構)’, ‘사창서당기(社倉書堂記)’ 현판이 걸려 있다. ‘사창서당기’ 현판의 기문은 묵헌(默軒) 이만운(李萬運)이 지었다.

[의의와 평가]

사창서당은 성주군의 성리학에 큰 영향을 끼친 정구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공간이면서, 후대에도 성주군 지역 문인들을 중심으로 정구에 대한 추모와 학문이 이어진 공간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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