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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 용기사지 석조 유물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400410
한자 星州用起寺址石造遺物
영어공식명칭 Stone artifacts on the Remains of Yonggi Temple
이칭/별칭 용기사 석조,용기사 석조와 맷돌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물/유물(일반)
지역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백운리 산56-2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권기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2006년 6월 29일연표보기 - 성주 용기사지 석조 유물 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지정
현 소장처 성주 용기사지 -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백운리 산56-2 지도보기
원소재지 성주 용기사지 -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백운리 산56-2
출토|발견지 성주 용기사지 -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백운리 산56-2
성격 석조 유물
재질 석조
크기(높이,길이,너비) 160㎝[석조 가로]|120㎝[석조 세로]|73㎝[석조 높이]|52㎝[석조 깊이]|120㎝[맷돌 1 지름]|80㎝[맷돌 2 지름]|70㎝[맷돌 3 지름]
소유자 성주군
관리자 성주군
문화재 지정 번호 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정의]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백운리 용기사지에 있는 조선 전기 석조 유물.

[개설]

성주 용기사지 석조 유물(星州用起寺址石造遺物)용기사지(用起寺址)에 남아 있는 돌로 만든 석조(石槽) 1점과 맷돌 3점으로, 당시 용기사(用起寺)에서 생활하던 승려들이 음식을 만들 때 사용하였던 것으로 추정한다. 유물이 발굴된 용기사의 창건 연대에 관해서는 정확한 기록이 없다. 조선 시대에 성주목사(星州牧使)를 지낸 황준량의 시를 통해 볼 때, 16세기 조선 전기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한다. 『선조실록(宣祖實錄)』과 『성산지(星山誌)』에는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경상우도 총섭승(摠攝僧) 신열이 승군을 동원하여 화살을 만들었으며, 용기산성(用起山城)을 축수하고 남문을 건립하였다는 기록이 전한다. 따라서 용기사는 임진왜란 시 승려 신열이 본영을 두고, 수많은 승군들이 주둔해 생활하며 일본군과의 전쟁에 대비한 장소로 추정된다. 

[형태]

석조의 크기는 가로 160㎝, 세로 120㎝, 높이 73㎝, 깊이 52㎝이다. 요즘도 사찰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직사각형 형태로 완전한 모습으로 남아 있다. 속이 깊고 안쪽 바닥 한쪽 구석에 구멍을 뚫어 배수를 하도록 되어 있다. 구멍의 안쪽은 매끈하게 다듬어 물이 잘 빠지도록 한 반면, 바깥쪽은 특별한 기능이 필요하지 않기에 대충 다듬어져 있다. 전체적으로 둔중한 편이나 자연스럽고 소박한 멋이 있다. 맷돌은 모두 3점으로 각각 지름이 120㎝, 80㎝, 70㎝ 정도이다. 2점은 석조 옆에 있는데 윗돌은 없고 아랫돌은 완전하다. 1점은 동남쪽으로 10m가량 떨어진 곳에 있으며, 일부 파손되었으나 전체적인 원형 모습이 확인된다.

[특징]

성주 용기사지 석조 유물은 임진왜란 시 사용한 석조와 맷돌이라는 특징을 보인다.

[의의와 평가]

현재 남아 있는 석조와 맷돌은 임진왜란 당시 일본의 침략에 분연히 궐기한 승군들이 음식을 만들 때 사용한 것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남다르다. 석조 1점과 맷돌 3점은 성주 용기사지 석조 유물이란 명칭으로 2006년 6월 29일에 경상북도 문화재 자료로 지정하여 보존·관리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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