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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400405
한자 全龍神道碑
영어공식명칭 Memorial Stone of Jeon Ryong
이칭/별칭 석릉군 전룡 신도비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비
지역 경상북도 성주군 금수면 무학리 334-2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정은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936년연표보기 - 전룡 신도비 건립
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1559년연표보기 - 전룡 출생
현 소재지 경상북도 성주군 금수면 무학리 334-2 지도보기
성격 신도비
양식 입비
관련 인물 전룡|선조|이강|이명상|송홍래
재질 석재
크기(높이, 너비, 두께) 181㎝[높이]|67㎝[너비]|31㎝[두께]

[정의]

임진왜란 당시 선조를 호위한 문신 전룡을 기리기 위해 1936년 경상북도 성주군 금수면 무학리에 세운 비.

[개설]

조선 전기 문신인 전룡[1559~?]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1936년에 세운 신도비이다.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태어난 전룡의 본관은 정선(旌善), 자는 여견(汝見), 호는 석천(石泉)이다. 아버지는 호조판서 전응조(全應祖)이다. 천성적으로 성품이 올곧고 어릴 때부터 궁마와 기예를 익혀 무예에 능했다. 임진왜란 시 사복시 판관이었던 전룡은 선조를 의주로 호송하였고, 왕명을 받들어 정예 기병 3천을 거느리고 종묘의 신주를 모셔오는 등 공을 세워 호성삼등공신(扈聖三等功臣)에 책록되었다. 석릉군(石陵君)으로 봉해지고 형조판서로 증직되었다. 신도비가 위치하는 배바우 마을은 전룡의 세거지로, 마을에는 전룡을 배향하는 표충재(表忠齋)가 있다.

[건립 경위]

전룡 신도비는 임진왜란 당시 선조를 호위하여 의주로 호종하고 왼쪽 뺨과 귀가 떨어져 나가는 중상을 입고도 종묘의 위패를 안전하게 모셔온 전룡을 기리고자 후손들이 1936년에 건립하였다.

[위치]

전룡 신도비경상북도 성주군 금수면 무학리 334-2번지 배바우 마을 건너 국도 변에 위치한다.

[형태]

이수와 귀부를 갖춘 일반적인 형태의 신도비이다. 전체 높이는 306㎝, 비신의 크기는 높이 181㎝, 너비 67㎝, 두께 31㎝이다. 상단에 전서를 4면으로 돌리고, 아래에 비문을 새겼다.

[금석문]

의친왕(義親王) 이강(李堈)이 글을 짓고, 종정원경(宗正院卿) 이명상(李明翔)이 전서를, 송홍래(宋鴻來)가 글씨를 썼다. 비문에는 전룡의 가계와 타고난 성품 등을 기술하고 임진왜란 당시 혁혁한 공을 세워 호성공신 삼등에 책봉된 일대기가 잘 남아 있다.

[현황]

비 주변은 난간을 돌려 정비하였고 전룡 신도비 우측에는 효부 김해 김씨비(孝婦金海金氏碑)와 학업 정선 김공강학기비(鶴澲旌善金公講學基碑)가 함께 건립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임진왜란 당시 혁혁한 공을 세운 전룡의 공적과 그의 일대기가 기록된 신도비로 향토 역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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