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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400354
한자 鄭錫堅神道碑
영어공식명칭 Memorial Stone of Jeon Ryong, Seongju
이칭/별칭 한벽재 정석견 신도비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비
지역 경상북도 성주군 선남면 용신2길 36-54[용신리 437]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소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937년 4월연표보기 - 정석견 신도비 건립
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1500년연표보기 - 정석견 사망
현 소재지 경상북도 성주군 선남면 용신2길 36-54[용신리 437]지도보기
원소재지 경상북도 성주군 선남면 용신2길 36-54[용신리 437]
성격 신도비
양식 입비
관련 인물 정석견|남규희|송홍래|이순하
크기(높이, 너비, 두께) 높이[133㎝]|너비[52㎝]|두께[27㎝]

[정의]

경상북도 성주군 선남면 용신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정석견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1937년에 세운 비.

[개설]

정석견(鄭錫堅)[?~1500]은 본관이 해주(海州), 자가 자건(子健), 호가 한벽재(寒碧齋)이다. 사림파 학자 신당(新堂) 정붕(鄭鵬)[1467~1512]의 작은아버지이다.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1454~1504]·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1431~1492]·탁영(濯纓) 김일손(金馹孫)[1464~1498] 등과 교유했다. 1474년 문과에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지냈다.

[건립 경위]

정석견의 14세손 정의영(鄭儀泳)이 선대의 사적을 널리 알리기 위해 낙동강 서쪽 띠밭 마을[茅田]의 남쪽에 한벽재를 짓고, 그 옆에 신도비를 세우고자 남규희(南奎熙)[1859~1937]에게 명(銘)을 청하여 1937년 4월에 정석견 신도비(鄭錫堅神道碑)를 건립했다.

[위치]

경상북도 성주군 선남면 용신1리 띠밭 마을 남서쪽 웃골에 위치한 경한재(景寒齋) 서쪽 담 밖에 있다. 띠밭 마을 유료 낚시터 위쪽에 위치한 산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성주군청에서 서쪽으로 약 15㎞ 떨어진 곳에 있다.

[형태]

정석견 신도비는 좌대(座臺), 비신(碑身), 비개석(碑蓋石)으로 된 입비의 형태이다. 좌대는 귀부(龜趺), 비개석은 이수(螭首)이다. 귀부는 방형(方形)에 가깝고 거북 머리를 붙였으며, 양옆으로 국화 무늬를 새겼다. 이수는 얕고 간략한 쌍룡문(雙龍紋)을 새겼다. 높이 133㎝, 두께 52㎝, 너비 27㎝이다.

[금석문]

비신에는 사면에 서문(序文)과 명(銘)이 있는데, 앞면에 세로 한 줄로 ‘자헌대부 이조판서 한벽재 정 선생 신도비명 병서(資憲大夫吏曹判書寒碧齋鄭先生神道碑銘幷序)’라 새겨져 있다. 비신의 사면 상부의 전서(篆書)는 ‘한벽재 정 선생 신도비명(寒碧齋鄭先生神道碑銘)’이다. 비문은 남규희가 짓고, 송홍래(宋鴻來)[1866~1953]가 글씨를 썼으며, 이순하(李舜夏)가 전서했다.

[현황]

흙과 돌로 되어 있던 정석견 신도비의 담을 근년에 시멘트 블록으로 새로 단장했다.

[의의와 평가]

성주 지역의 인물인 정석견의 행적을 알려주는 문화 유적으로, 정석견에 대한 성주 지역 유림들의 숭조 의식을 잘 보여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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