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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400174
한자 甫岩里
영어공식명칭 Boam-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보암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홍기옥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 3월연표보기 -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보암동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88년 5월연표보기 -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보암동에서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보암리로 개편
성격 법정리
면적 2.511㎢
가구수 133가구
인구[남/여] 243명[남 129명/여 114명]

[정의]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보동(甫洞)[보골]과 저암(楮岩)[닥나무골]에서 한 글자씩 따와 ‘보암(甫岩)’이라고 이름하였다. 보암1리의 자연 마을로 닥나무골[저암(楮岩)·샛들·샛덤·새뜰]이 있고, 보암2리의 자연 마을로 보골[보동(甫洞)]이 있다.

닥나무골은 본래 지금의 서쪽 부분만 마을로 형성되었는데, 600여 년 전 김녕 김씨(金寧金氏)가 월항면 용각리 먹뫼[묵산(墨山)]에서 이주한 후 마을이 동쪽으로 넓어지면서 샛들[새뜸]로 불렀다. 조성 당시 마을 주위에 닥나무[저(楮)]와 바위[암(岩)]가 많아 저암(楮岩)이라고도 불렀는데, 닥나무는 문방사우의 하나인 한지의 재료여서 인근 마을과 지(紙), 필(筆), 연(硯), 묵(墨)의 조화를 이루기 위하여 저암이라 불렀다는 설도 있다. 보골[보동]은 상서로운 풀[보(莆)]이란 의미로 처음에는 보동(莆洞)으로 한자를 썼으나 후에 큰 선비가 많이 나오라는 뜻으로 ‘클 보(甫)’ 자를 써서 보동(甫洞)으로 바꾸었다고 전한다.

[형성 및 변천]

1914년 3월 행정 구역 개편 때 당소면의 저암동, 박동, 묵산동, 용문동, 답계동과 망성면의 철산동, 보동 등을 합하여 보암동으로 하고 유동면, 당소면과 망성면의 일부를 합한 월항면의 법정동으로 편제하였다. 1988년 5월 조례 1076호에 따라 동(洞)을 리(里)로 개정하여 월항면 보암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북동쪽으로 백천이 흐르고, 백천 변의 아득한 평야를 사이로 대야티 고개 동편의 보동과 북쪽 멀리 산 아래의 닥나무골로 구분된다. 보암 2리에는 보동산(葆洞山)[162.6m]이 보동 뒤 서쪽에서 성주읍 학산1리 댁기 마을, 성주군 초전면 칠선리와 면계(面界)를 이룬다. 성황당 고개가 있으며, 마을 주변에 용각들, 보암들, 새뱅이들이 있다.

[현황]

보암리월항면의 서남부에 자리하여 북부와 동부는 월항면장산리용각리, 남부는 성주읍, 서부는 성주군 초전면과 접한다. 2021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2.511㎢이며, 보암1리와 보암2리 2개 행정리에 133가구, 243명[남 129명, 여 114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월항면 행정복지센터에서 월항로와 보암2길을 따라 약 3㎞ 떨어진 곳에 있다. 보암1길과 보암2길, 보암들1길, 보암들2길, 보암들3길, 용각1길, 보암백천길, 보암공단길, 월항로 등이 지나가고 보암교가 있다. 보암1리는 김녕 김씨가 마을을 일군 후 조선 영조(英祖) 때 남원 양씨(南原梁氏) 도은(道隱) 양시만(梁時晩)이 들어왔고, 그 후손이 집성촌을 이루며 살고 있다. 고려 후기인 1374년(공민왕 23) 서해도부사(西海道府使)를 지낸 한방도(韓方道)가 세거한 곳이기도 하다. 보암2리는 조선 세조(世祖) 때 성산 배씨(星山裵氏)가 전라도 순천에서 들어와서 마을을 조성하였다. 문화 유적으로 도은정(道隱亭)과 효경당(孝敬堂), 경귀재(景歸齎), 원모재(遠慕齋) 등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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