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렉토리분류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400145
한자 興山里
영어공식명칭 Heungsan-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성주군 대가면 흥산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경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 3월연표보기 - 경상북도 성주군 대가면 흥산동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88년 5월연표보기 - 경상북도 성주군 대가면 흥산동에서 경상북도 성주군 대가면 흥산리로 개편
성격 법정리
면적 2.51㎢
가구수 137가구
인구[남/여] 247명[남 124명/여 123명]

[정의]

경상북도 성주군 대가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신흥동(新興洞)의 흥(興) 자와 수산동(水山洞)의 산(山) 자를 따와 ‘흥산(興山)’이라 이름하였다. 흥산1리의 자연 마을로 탕실[탕곡(湯谷)·신흥(新興)]이 있고, 흥산2리의 자연 마을로 산막(山幕)[산양(山陽)]과 새산막[신양(新陽)·새마을·묵은탕실], 오두산막(午頭山幕·烏頭山幕)[오산(午山·烏山)]이 있다.

탕실대가면 행정복지센터에서 북쪽 벽진면 행정복지센터로 이어지는 지방도 제913호선을 따라 약 2㎞ 지점에 자리한다. 탕실은 본래 흥산2리 새산막에 있었는데 화적 떼가 자주 나타나 이곳으로 옮기면서 신흥(新興)으로 불렀다는 설과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활동한 여재(旅齋) 백응상(白應祥)이 1599년(선조 33) 이곳으로 이주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어 신흥이라 하였다는 설이 전한다. 이후 중국 고대 은(殷)나라 탕왕(湯王)이 백(白)을 숭상하여 백성에게 청백 정신(淸白精神)을 함양하였다는 고사를 따 탕실이라 고쳐 불렀다고 한다.

산막은 대가면 행정복지센터에서 지방도 제913호선을 따라 북쪽으로 1㎞ 정도 떨어진 지점에 있는데 새산막과 오두산막 사이에 자리한다. 산들이 마을의 삼면을 둘러싸 장막을 이루었다 하여 산막으로 불렀다는 이야기가 전하며, 처음 마을을 개척한 사람들이 산에 막을 치고 숯을 구워 살았다 하여 산막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설도 있다. 또한 마을 옆에 있는 산이 양지산이라서 산양(山陽)이라 불렀다고도 한다. 새산막은 예전에 화적 떼가 자주 나타나서 마을 사람들이 현재의 탕실로 이주한 후 묵은탕실로 불렀다. 1979년 정부가 취락 구조 개선 사업을 추진할 때 산막에서 12가구를 이곳 묵은탕실로 이주시켰는데, 당시 양옥집을 지어 주어 새산막 또는 신양(新陽)이라 불렀다고 한다. 오두산막은 대가면금수면의 경계를 이루는 오두산[172.2m] 자락 끝에 남향한 마을이다. 까마귀와 관련지어 오두산 아래 마을이라 오두산막(烏頭山幕)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하는데, 주변에 마산(馬山)들과 사장(射場) 터가 있는 것으로 보면 ‘말 마(馬)’ 자를 ‘까마귀 오(烏)’ 자로 잘못 표기한 것으로 추정된다.

[형성 및 변천]

통일 신라 이후 대부분 지역이 대가곡방(大家谷坊)에 속하였다. 1845년(헌종 11) 성주목사 김횡(金鑅)[1784~1847]이 대가곡방을 대가방(大家坊)으로 바꾸었다. 1895년(고종 32) 5월 관제 개혁 때 현재의 군 명칭인 성주군(星州郡)으로 확정하고 방(坊)을 면(面)으로 개편하였다. 1914년 3월 행정 구역 개편 때 오도동(吾道洞), 도주막동(都酒幕洞), 수산동, 신평동(新坪洞), 복천동(福川洞), 신흥동, 본리동(本里洞)[벽진 집실], 평촌동(平村洞), 산양동(山陽洞) 일부를 합하여 흥산동으로 하고 대가면과 사천면, 금파면을 합한 대가면의 법정동으로 편제하였다. 1988년 조례 제1076호에 따라 동(洞)을 리(里)로 개정하여 대가면 흥산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흥산리 남쪽과 중앙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며 분포하는 평야 지대를 제외하면 탕실 서쪽의 구봉산(九峰山)[279.6m]을 비롯하여 탕실 동쪽 두주산(斗珠山)[118.1m], 오두산막 북쪽의 오두산과 이 산의 지맥이 오두산막 옆으로 내려와 솟아오른 양지산(陽枝山) 등 100~200m 높이의 산지가 흥산리의 동쪽과 서쪽, 북쪽을 둘러싸고 있다. 흥산리의 주요 하천으로는 흥산1리 탕실못 상류에서 발원하여 남동쪽으로 흘러가는 길이 약 1.4㎞ 정도의 명간천(明澗川)[탕실 주민들은 탕실천이라고 부름]과 흥산리의 남쪽 경계를 따라 북동쪽으로 흘러가는 흥산천(興山川) 등이 있다. 이들 하천변을 따라 만들어진 충적 평야가 탕실 앞쪽 배실[이곡(梨谷)]들과 못밑들, 서산들 등과 새산막 마을 동편 앞들과 오두산막 마을 앞 이름실들 등이다.

[현황]

흥산리대가면 동북쪽에 자리하여 동부는 벽진면 봉계리대가면 용흥리, 남부는 대가면 옥련리, 서부는 금수면 명천리, 북쪽은 벽진면 매수리와 접한다. 2021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2.51㎢이며, 흥산1리와 흥산2리 2개 행정리에 137가구, 247명[남 124명, 여 123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대가면 행정복지센터에서 벽진면 행정복지센터까지 지방도 제913호선이 지나가고, 남쪽 경계를 이루는 흥산천을 따라 제방이 건설되어 있다. 문화 유적으로 백인웅(白仁雄)을 추모하기 위한 경천재(景川齋), 1919년 4월 2일 성주 장날 만세 운동을 하기 위해 태극기와 독립 선언서를 인쇄하여 군중에게 배포하였던 백성흠(白聖欽)을 기리는 백성흠 사적비(白聖欽事蹟碑), 조선 선조(宣祖) 때 성균 진사로 창원에서 산막 마을로 입향한 해려(海廬) 조석차(曺錫車)의 학덕을 추모하기 위한 산양재(山陽齋), 박도양(朴度陽)이 아버지 수재(守齋) 박제하(朴齊夏)의 덕업을 추모하기 위하여 건립한 추양재(追養齋)와 박도양 효행비(朴道陽孝行碑) 등이 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