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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400135
한자 漁隱里
영어공식명칭 Eoeun-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성주군 금수면 어은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규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 3월연표보기 - 경상북도 성주군 금수면 어은동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88년 5월연표보기 - 경상북도 성주군 금수면 어은동에서 경상북도 성주군 금수면 어은리로 개편
성격 법정리
면적 5.77㎢
가구수 114가구
인구[남/여] 181명[남 94명/여 87명]

[정의]

경상북도 성주군 금수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원래는 어천곡(漁川谷)으로 불렸는데, 300여 년 전 훈련원 부정(訓練院副正) 김중익(金重益)이 어천곡에 고기가 많이 숨어 산다고 ‘어은(漁隱)’이라 불렀다. 이후 어은천(漁隱川)으로 와전되어 ‘언내[은천(隱川)]’로도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형성 및 변천]

고려 시대부터 금물법(今勿法)[혹은 금물방]에 속하였다. 1845년(헌종 11) 성주목사 김횡(金鑅)[1784~1847]이 금물법을 금수방(金水坊)으로 개칭하였다. 1895년(고종 32) 5월 관제 개혁 때 현재의 군 명칭인 성주군(星州郡)으로 확정하고 방(坊)을 면(面)으로 개편하였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어은동으로 하고 금수면의 법정동으로 편제하였다. 1988년 5월 조례 제1076호에 따라 동(洞)을 리(里)로 개정하여 금수면 어은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어은리는 사방이 산지로 둘러싸여 있다. 산지 사이로 대가천의 지류들이 흐르고, 이들을 기반으로 농지와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현황]

어은리금수면의 동쪽에 자리하여 북부와 동부는 성주군 벽진면, 남부와 서부는 금수면명천리광산리, 후평리와 접한다. 2021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5.77㎢이며, 어은1리와 어은2리 2개 행정리에 114가구, 181명[남 94명, 여 87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어은리의 인구는 1974년 816명에서 1984년 464명, 1994년 230명, 2001년 190명, 2010년 193명, 2018년 175명으로 감소하였다가 2021년 181명으로 다소 늘어났다. 가구 수는 1974년 136가구에서 1984년 113가구, 1994년 95가구로 감소하였다가 2021년 114가구로 증가하였다.

국도 제30호선이 지나가며 마을 입구 적산지 앞에 수령이 300년은 넘은 것으로 추정되는 왕버들나무가 있다. 자연 마을들은 조선 시대에 여러 성씨가 거처하면서 만들어졌는데, 1990년대 중반에는 김녕 김씨(金寧金氏) 22가구, 의성 김씨(義城金氏) 9가구, 평산 신씨(平山申氏) 9가구, 경산 이씨(京山李氏) 6가구, 성주 이씨(星州李氏) 5가구, 고성 이씨(固城李氏) 5가구, 그 밖의 성씨 39가구가 있었다.

어은1리 적산(積山)벽진면 매수리에서 들어오는 입구에 자리한 마을이며, 1990년대 중반 마을 성씨는 조선 후기에 입향한 병암(屛巖) 이병황(李秉璜)[1828~1898]의 자손, 함평 노씨(咸平魯氏) 노증철의 자손, 의성 김씨와 고성 이씨 등이 함께 살고 있으며, 가구와 인구는 47가구에 81명이었다. 어은2리 언내는 적산과 접한 마을로 북쪽에 매적산[일명 마적산, 495.9m]이 있다. 300여 년 전 입향한 김석별의 후손들이 살고 있으며, 김석별을 추모하는 모암재가 마을 뒤편에 있다. 1990년대 중반에는 마을 주민들 가운데 김녕 김씨가 다수를 차지하고, 30가구에 52명이 거주하였다.

문화 유적으로 적산사 터로 추정되는 곳이 있다. 적산사는 조선 전기 고승(高僧) 학조(學祖)가 세운 절로, 임진왜란 때 불탄 것으로 전한다. 현재 이곳에는 기와 조각과 석축(石築) 일부가 남아 있다. 고루산(鼓樓山) 아래 고름재 일대에는 축조 시기를 알 수 없는 고분군(古墳群)이 산재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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