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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400116
한자 甫月里
영어공식명칭 Bowol-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보월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규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 3월연표보기 - 경상북도 성주군 지사면 보월동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34년연표보기 - 경상북도 성주군 지사면 보월동에서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보월동으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88년 5월연표보기 -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보월동에서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보월리로 개편
성격 법정리
면적 5.83㎢
가구수 86가구
인구[남/여] 128명[남 67명/여 61명]

[정의]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보동(甫洞)과 월촌(月村)에서 한 자씩 따와 ‘보월(甫月)’이라 이름하였다. 보월1리의 자연 마을로 탑안(塔內)[탑동(塔洞)], 새뜸[신기(新基)], 월촌이 있고, 보월2리의 자연 마을로 귀만[귀암·보리골·보동], 웃맏질[상형곡(上兄谷)], 아래맏질[하형곡(下兄谷)]이 있다.

탑안은 마을 내에 통일 신라 때 세워진 높이 5.1m의 성주 보월동 삼층석탑[경상북도 유형 문화재]이 있어 조선 영조(英祖) 때 이광국이 탑이 마을 안에 있는 마을이라고 ‘탑안’으로 불렀다. 탑안 주민들 가운데 일부가 이주하여 만든 마을이 새뜸으로 ‘신기’라고도 불렀다. 월촌은 1875년(고종 12)께 성주 이씨(星州李氏)가 거주하면서 마을로 발전하였는데, 마을 뒷산이 떠오르는 달 모양을 닮았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귀만은 원래 보리골이라고 하였는데, 마을의 형태가 월촌 뒷산인 월산을 바라보고 있다고 하여 ‘보동’이라고도 하고, 또 뒷산 모양이 거북같이 생겼다고 ‘귀암’이라고도 불렀다.

[형성 및 변천]

통일 신라부터 조선 시대까지 성법산방(省法山坊)에 속하였다. 조선 후기 성법산방을 법산방으로 바꾸었다. 1895년(고종 32) 5월 관제 개혁 때 현재의 군 명칭인 성주군(星州郡)으로 확정하고 방(坊)을 면(面)으로 개편하였다. 1914년 3월 행정 구역 개편 때 보월동으로 하고 법산면과 지사면을 합한 지사면의 법정동으로 편제하였다. 1934년 지사면과 청파면을 수륜면으로 합면하였다. 1988년 5월 조례 제1076호에 따라 동(洞)을 리(里)로 개정하여 수륜면 보월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북쪽과 남쪽, 동쪽은 산지이며, 이들 사이로 대가천의 지류가 흐른다. 북쪽에서 남쪽으로 흐르는 대가천 지류를 따라 농토와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보월2리에 자리한 월산[236.6m]은 기만 마을 동쪽 산으로 경상북도 고령군 운수면 대평리와 맞닿아 있다.

[현황]

보월리수륜면의 동쪽에 자리하여 동부는 경상북도 고령군 운수면, 남부와 서부, 북부는 수륜면남은리오천리, 작은리, 성주군 용암면 상신리와 접한다. 2021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5.83㎢이며, 보월1리와 보월2리 2개 행정리에 86가구, 128명[남 67명, 여 61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보월리의 인구는 1974년 611명에서 1984년 267명, 1994년 195명, 2001년 161명, 2010년 134명으로 계속해서 감소하다 2018년 141명으로 증가하였으나 2021년 128명으로 다시 감소하였다. 가구 수는 1974년 113가구에서 1984년 77가구, 1994년 67가구로 감소한 후 2001년과 2010년 67가구로 변하지 않았다. 이후 약간 증가하여 2018년 82가구, 2021년 86가구가 되었다.

보월리는 산간 마을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교통이 발달하기 전에는 맏질 마을을 거쳐 칠령(七嶺)을 넘어 대구로 가는 길목이었다. 탑안 마을에 성주 이씨(星州李氏) 이숭인(李崇仁)의 후손들이 모여 살았는데, 1990년 후반 8가구가 농사를 짓고 있었다. 새뜸에는 1990년대 후반 10가구가 살았다. 문화 유적으로 보월1리에 성주 보월동 삼층석탑과 보본재(報本齋), 이성희 부부 효행비, 조어대(釣漁臺)가 있으며, 보월2리에 모명재(慕明齋)와 이중기 효행비(李重基孝行碑)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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