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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400098
한자 泗谷里
영어공식명칭 Sagok-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성주군 용암면 사곡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경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 3월연표보기 - 경상북도 성주군 용두면 사곡동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34년 2월 1일연표보기 - 경상북도 성주군 용두면 사곡동에서 경상북도 성주군 용암면 사곡동으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88년 5월연표보기 - 경상북도 성주군 용암면 사곡동에서 경상북도 성주군 용암면 사곡리로 개편
성격 법정리
면적 5.52㎢
가구수 101가구
인구[남/여] 167명[남 97명/여 70명]

[정의]

경상북도 성주군 용암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사수곡(泗水谷)과 풍곡(楓谷)에서 한 자씩 따와 ‘사곡(泗谷)’이라 이름하였다. 사곡리의 자연 마을로 싯질[풍곡], 사싯골[사수곡], 적산(赤山), 대성리(大成里)[대곡(大谷)·한골] 등이 있다.

싯질은 사곡리에서 가장 큰 마을로, 용암면 소재지에서 동쪽으로 약 2.5㎞ 떨어져서 남쪽과 서쪽을 산으로 두르며 동쪽으로 앉은 마을이다. 마을 주위에 단풍나무가 많아서 싯질이라고 하였다. 사싯골은 싯질에서 남동쪽으로 1.2㎞ 정도의 거리에 세천을 끼고 동쪽으로 향한 마을이다. 사수곡은 옛날 공자(孔子)의 고향인 중국 노(魯)나라의 수도를 감싸고 도는 강 이름인 사수(泗水)에서 따온 이름이다. 적산은 사싯골에서 남쪽으로 약 700m 거리에서 세천의 상류 산골에 남향으로 터를 잡은 마을이다. 주위 산의 흙이 붉은색이 많아서 ‘적산’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설이 있으며, 한편으로는 중국 상고(上古) 시대 신선인 적송자(赤松子)와 곤륜산(崑崙山)에서 유래한 지명이라고도 한다. 대성리는 용암면 동락리 가죽정 마을 앞 삼거리에서 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 벌지(伐知)로 넘어가는 갈티 초입에 서향하여 자리한 마을이다. 지명 유래는 정확하지 않으나 이 마을 입구에서부터 다락이재까지 골이 깊고 넓어 큰 골짜기라는 뜻인 ‘한골’로 부르다가 나중에 마을 이름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대성리로 바꾼 것으로 추정된다.

[형성 및 변천]

통일 신라 이후 조선 시대까지 대동방(大同坊)에 속하였다. 1895년(고종 32) 5월 관제 개혁 때 현재의 군 명칭인 성주군(星州郡)으로 확정하고 방(坊)을 면(面)으로 개편하였다. 1914년 3월 행정 구역 개편 때 대동면의 가정(柯亭) 일부와 대성, 사수, 풍곡을 합하여 사곡동으로 하고 대동면과 두릉면을 합한 용두면의 법정동으로 편제하였다. 1934년 2월 1일 용두면과 성암면을 합쳐서 용암면으로 하였다. 1988년 5월 조례 제1076호에 따라 동(洞)을 리(里)로 개정하여 용암면 사곡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사곡리용암면 소재지에서 사곡길을 따라 정동(正東)으로 약 3㎞ 거리의 후포 평야(後浦平野) 남쪽 산기슭과 협곡에 분포한 마을이다. 북쪽은 낙동강의 지류 하천인 신천이 동쪽으로 흐르면서 넓게 충적 평야를 형성하였고, 남쪽은 갈티 고개를 중심으로 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과 접한다. 북쪽 산지에서 발원한 산지 소하천이 북쪽으로 흘러가면서 곡저 평야를 형성하였다.

[현황]

사곡리용암면의 남동쪽에 자리하여 동부는 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 남부와 서부, 북부는 용암면용계리, 선송리, 상언리, 기산리와 접한다. 2021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5.52㎢이며, 사곡리 1개 행정리에 101가구, 167명[남 97명, 여 70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중부 내륙 고속 도로 남성주 IC용암면 소재지를 끼고 있어 교통이 양호하다. 하천 변 들판에서는 논농사를 짓기도 하지만 대부분 비닐하우스를 이용하여 참외를 재배한다. 사곡리 일원에는 향후 성주 3차 일반 산업 단지가 조성될 예정이다. 또 고령군과도 바로 연결되어 고령 1차 일반 산업 단지, 동고령 산업 단지, 주물 산업 단지 등과의 연계도 용이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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