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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400078
한자 仙源里
영어공식명칭 Seonwon-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성주군 선남면 선원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정윤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 3월연표보기 - 경상북도 성주군 선남면 선원동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88년 5월연표보기 - 경상북도 성주군 선남면 선원동에서 경상북도 성주군 선남면 선원리로 개편
성격 법정리
면적 3.447㎢
가구수 258가구
인구[남/여] 466명[남 270명/여 196명]

[정의]

경상북도 성주군 선남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1418년쯤 차(車) 씨 성을 가진 상인이 마을에 입향하여 ‘무릉(武陵)’이라 불렀다고 한다. 그 후 1930년께 김종운(金鍾運)이 마을의 지세(地勢)가 도연명(陶淵明)의 『도화원기(桃花園記)』에 나오는 무릉도원(武陵桃源), 즉 신선이 사는 곳과 닮았다 하여 ‘선원(仙源)’으로 개칭하였다고 전한다.

선원1리의 자연 마을로는 무릉리(武陵理)가 있고, 선원2리 자연 마을로는 도원[도원계(桃園溪)·동안(東安)·동운(東雲)], 파동(巴洞), 새창[신창(新艙)] 마을이 있다. 도원은 이웃 마을인 무릉리와 같이 ‘무릉도원’에서 나온 이름이다. 파동은 파밭골, 파발동(擺撥洞)으로도 불리며, 대구광역시에서 성주 대교를 지나 국도 제30호선에서 선원리 방향으로 들어오는 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무릉과 도원 마을에 맞추어 파동이라 부른다. 원래 이곳은 동안진(東安津)에 따른 조창(漕倉)과 역참(驛站)의 공문을 수발하던 파발을 맡았던 관서가 있던 곳이라 파동이라 하였는데, 훗날 음(音)이 변하여 파밭골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새창은 낙동강 변 동안진의 나루터 마을이다. 고려 시대부터 조창[동안창(東安倉)]이 있던 자리로, 약 300년 전부터 낙동강을 통과하는 상인들의 물품을 보관하는 곳이었기 때문에 ‘신창’이라 불렸다고 한다.

[형성 및 변천]

조선 시대에는 화곡방(禾谷坊)에 속하였다. 1895년(고종 32) 5월 관제 개혁 때 현재의 군 명칭인 성주군(星州郡)으로 확정하고 방(坊)을 면(面)으로 개편하였다. 일제 강점기인 1906년 산남면과 오도면을 오산면으로 통합하고, 도남면과 화곡면을 남곡면으로 통합하였다. 1914년 3월 행정 구역 개편 때 동안동, 복산동, 무릉동 각 일부를 합하여 선원동으로 하고 남곡면과 오산면을 병합한 선남면의 법정동으로 편제하였다. 1988년 5월 조례 제1076호에 따라 동(洞)을 리(里)로 개정하여 선남면 선원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선원리의 중심부에 독산(獨山)[81.4m]이 있고, 서쪽 경계에는 100m 정도의 낮은 구릉이 분포한다. 대부분 지역이 구릉지에 해당하며, 구릉지의 북쪽 끝과 남쪽 끝에 평야가 발달하였다. 선원리에 있는 구릉지는 중생대 백악기와 쥐라기 시기에 형성된 퇴적암인 이암, 셰일, 사암, 역암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화성암이나 변성암에 비해 풍화와 침식에 약한 것이 특징이라 해발 고도가 낮은 구릉성 산지 경관을 보인다. 백천(白川)을 따라 남쪽에 이천(利川)낙동강이 만나는 일부 평야가 선원리에 포함된다. 낙동강 변과 백천에는 대규모 하천 습지가 발달하였으며, 낙동강백천, 이천이 만나는 지점에는 넓은 평야가 만들어져 있다. 이 평야는 이성들이라 불리며, 토양은 사양 질토로 모래의 함량이 매우 높아 배수가 잘된다.

[현황]

선원리는 동쪽은 낙동강이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봉촌리와 경계를 이루며, 남쪽과 서쪽은 백천용암면 동락리, 문명리와 경계를 이룬다. 성주 대교국도 제30호선이 북쪽 경계를 이룬다. 2021년 12월 1일 기준 면적은 3.447㎢이며, 선원1리와 선원2리 2개 행정리에 258가구, 466명[남 270명, 여 196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선남 농공 단지의 동쪽에 있는 선원리는 구릉지에 공장이 많이 들어서 있다. 공단이 밀집된 곳을 제외하고 대부분 평야는 참외 농사를 짓고 있고, 벼농사를 위한 논의 비중이 매우 낮다. 선원1리 무릉리백천이 남동쪽으로 흘러 낙동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합류 지점에 자리한 마을이다. 6.25 전쟁 참전 용사의 호국 영령을 모시기 위하여 1975년 창건한 대흥사(大興寺)가 있고, 1990년대 후반부터 공장들이 들어서기 시작하여 지금은 마을 전체가 공장 지대로 바뀌었다.

선원2리 도원 마을은 동쪽의 독산이 낙동강을 막아 주고 서쪽은 높이 100m 정도의 구릉지가 백천을 가로막아 하천의 홍수로부터 안전한 지대이다. 1970년대 후반 양계, 양돈 농가들이 이곳에 터를 잡았으나 환경 문제로 주민들과 갈등을 빚다가 1990년께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였고, 지금은 마을 전체가 공장 지대로 변모하였다. 파동은 6.25 전쟁 때 국군과 유엔군의 방어선으로서 북한군과의 격전장이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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