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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701120
한자 德山-堂
영어공식명칭 Deoksan Bonghalmeonidang(Shrine of Deoksan)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유적/민간 신앙 유적
지역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덕산리
집필자 김도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현 소재지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덕산리 봉할머니당 -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덕산리 지도보기
성격 제의 공간

[정의]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덕산리에 있는 제의 공간.

[개설]

양야산 봉수(烽燧)가 있는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덕산리의 제의 공간은 성황당, 덕봉산에 있는 당지바위와 부소바위, 그리고 기우제를 지냈던 회선대, 양야산에 있는 봉할머니당 등이 있다. 마을 제의는 성황제, 3년에 한 번 실시한 풍어제, 어민들에 의해 행해진 동짓달 고사가 있다.

마을에서 봉화산이라고 부르는 산 정상에 양야산 봉수대가 있었는데, 지금은 연대가 대부분 무너진 채 원뿔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주로 어업에 종사하는 선주들이 개인적으로 무당을 데리고 치성을 드려 풍어를 기원하거나, 동짓달에 해상에서 사고로 죽은 이들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어촌계에서 자금을 마련하여 도가와 무당이 대표로 제(祭)를 올렸던 제의 공간이었다. 지금도 어업에 종사하는 사람들 중에는 개인적으로 봉할머니당에 가서 치성을 드리는 사례가 있다.

봉할머니당은 여성을 상징하고, 덕봉산 옆에 있는 당지 바위는 남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마을에서 인식하여, 어업에서의 풍요를 기원할 때 다른 해안 마을처럼 여성을 상징하는 봉할머니당에 가서 풍어를 기원하였다고 한다.

예전에 실시하였던 풍어제의 순서를 살펴보면 먼저 서낭신에게 고하고 남성을 상징하는 당지 바위와 여성을 상징하는 봉할머니당의 순서로 제를 올렸다고 한다. 이때 봉할머니당에서 제를 올리는 이유는 풍어와 안전을 기원하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위치]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덕산리 봉화산 정상에 있는 양야산 봉수지의 연대 동쪽 사면에 조성되어 있다.

[형태]

봉할머니당에 대한 조사 기록인 1967년 문화재관리국에서 실시한 마을제당 기초 조사 자료에 의하면 당시 당(堂) 이름은 ‘당재’였으며, 당의 형태는 돌과 바위로 높이 4m, 폭 10m라고 기록된 것으로 보아 양야산봉수를 신앙 처소로 하였음을 알 수 있다.

봉할머니당양야산봉수가 일부 파괴된 정상으로부터 1.7m 아래의 약간 평평한 곳에 돌을 이용한 감실 형태로 만들어져 있다. 감실의 기단부 가로 1.9m, 높이 40㎝이고, 감실 내부는 가로 56㎝, 세로 38㎝로서 2단으로 되어 있다. 약 45년 전에 감실을 구성하는 돌 사이를 시멘트로 마감하여 현재는 매우 견고하게 만들어 이용하고 있었는데, 초와 술병이 있는 것으로 보아 최근까지 이곳에 와서 제(祭)를 올리는 사람들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의례]

봉할머니당에서의 치제(致祭)는 크게 어민들에 의한 제사와 개인적인 치제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먼저 어민들에 의한 치제는 8월 풍어제와 동짓달 고사를 들 수 있고, 개인적인 치제는 물고기가 잘 안 잡힐 때 선주들에 의해 행해진 경우가 대부분이다.

8월 풍어제는 어민들이 풍어를 기원하고 해사업의 번창을 위해 지내는 것으로서 성황당과 당지 바위에서 먼저 제를 올린 후 봉할머니당에 가서 제를 올리며 풍어와 바다에서의 안전을 기원하였다고 한다.

동짓달 뱃고사는 바다에서 돌아가신 분들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지내는 것으로 배를 가진 선주들이 제비(祭費)를 내어 어민들만 모여 지내는 고사이다. 실시 시기는 동짓달에 좋은 날을 받은 후 도가집을 정하여 제수(祭需)를 마련하여 도가가 복재를 데리고 먼저 서낭당에 고하고, 당지 바위를 거쳐 봉할머니당에 가서 고사를 지낸다. 이 때 제주(祭酒)는 막걸리이며, 제수 중 어물은 어민들이 성의대로 가져와서 동지 고사를 올릴 수 있게 한다. 새벽 3시경에 시작하여 날이 샐 때까지 다니며 제를 올려 영혼을 위로하였는데, 제사가 끝난 후 도가집에 선주들이 모여 공동으로 음복을 하였다고 한다. 이와 같은 동짓달 뱃고사는 1970년 대 초 새마을 운동을 하면서 미신을 타파한다는 명분에 의해 없어졌다고 한다.

봉할머니당에서의 개인적인 치제와 관련한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개인적으로 제사 지내는 이유는 주로 고기가 잘 안 잡히거나. 우환이 있거나, 바다에서의 안전을 위해서이다. 당시 고기가 안 잡히면 거느린 10여 명의 어부들의 생계에 큰 위협이 되었으므로 선원들의 분위기를 위무하고, 고기를 많이 잡게 해달라는 기원을 하기 위해 제사를 성대하게 올렸다고 한다.

따라서 개인적으로 어업에 종사하는 사람들 중에서 특히 선주들이 주로 가서 제를 올렸는데, 옛날에는 선주 대부분이 제를 올렸으나, 정기적으로 제사를 지내는 시간을 정하지 않고, 해사업[어업]이 안되면 좋은 날을 받아서 지냈다고 한다. 이 때 선주가 제물을 준비하여 무당 등을 데리고 가서 제를 올렸다. 제물은 성황고사를 지내듯이 많이 준비하였는데, 봉할머니당에서의 치제(致祭)와 뱃고사를 위해 각각 제물을 준비하였다고 한다.

[현황]

여전히 봉할머니당에 가서 고사를 올리는 경우가 있는데, 이들 대부분은 복재를 데려가지는 않고. 부부가 함께 올라서 봉할머니께 고사를 지낸 후 뱃고사를 지내고 음복을 한다.

[의의와 평가]

봉할머니당이 있는 덕산마을에 있는 성황당 내에 용왕신위(龍王神位)가 있어 해사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안전과 풍요를 기원하는 역할을 기대하나, 실제로는 봉할머니당이 풍어를 주요 목적으로 이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양야산봉수가 그 기능을 폐한 후 이를 신성 공간으로 한 봉할머니당이 만들어졌다는 것이 덕산마을 나름의 어민들 신앙을 잘 보여주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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