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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700329
한자 新興寺內浮屠-浮屠碑群
영어공식명칭 Stupas and Stone Stupas of Sinheungsa Temple
분야 종교/불교
유형 유적/탑과 부도
지역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동막리 1322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도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현 소재지 신흥사 내 부도와 부도비군 -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동막리 1322 지도보기
성격 부도|부도비

[정의]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신흥사에 있는 부도와 부도비군.

[개설]

영담대사 부도비, 가선대부 등계대사 석원답비, 화운당 현진대사 부도비와 부도, 주운당대사(珠雲堂大師) 부도, 주정당대사(珠正堂大師) 부도(浮屠), 송파당대사(松坡堂大師) 부도신흥사에 주석하면서 공덕을 쌓았거나 입적한 승려들의 부도와 부도비, 공덕비이다.

신흥사에 주석한 영담대사는 1781년(정조 5) 신축년에 태어나서 1860년(철종 11) 경신년에 입적하였다. 영담대사는 본찰(本刹)에 화재가 나서 주요 건물이 훼손되자 중건을 주도하여 사찰의 면모를 일신하였다. 영담대사는 또 사찰 기강을 확립하였으며, 흉년이 들어 중생들이 굶주릴 때 이들을 구휼하여 그 공덕이 내외에 널리 알려졌다. 영담대사 부도비는 1860년(철종 11) 홍면섭이 글을 쓰고 홍남은의 글씨를 새긴 비석이다.

가선대부 등계대사 석원답비는 1788년(정조 12)에 세운 비석이다.

화운당 현진대사 부도비의 후면에 ‘건륭 26년 신묘(乾隆二十六年辛卯)’라 표기되어 있지만 신묘년(辛卯年)은 ‘건륭 36년(乾隆三十六年)’이기 때문에 ‘건륭 26년(乾隆二十六年)’은 오기(誤記)로 볼 수 있다. 이에 따라서 비석을 세운 시기는 건륭 36년(乾隆三十六年)인 1771년(영조 47)이 된다.

[건립 경위]

조선 후기인 영조·정조·철종대에 당시 운흥사(현재 신흥사)에 주석하고 있던 스님들이 입적하자 이들 스님을 기리기 위하여 세웠다.

[위치]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동막리 1322 신흥사 경내에 있다.

[형태]

1. 영담대사 부도비(影潭大師 浮屠碑)

비석 크기는 168(132)×50×13.5㎝이다. 뚜껑돌[개석(蓋石)]은 지붕 형태인 팔작옥개석(八作屋蓋石)이고, 비좌는 거북 모양[귀형(龜形)]으로 조각한 귀부(龜趺) 위에 비석을 세웠다.

2. 가선대부 등계대사 석원답비(嘉善大夫 登階大師 釋願畓碑)

비석 크기는 91× 33~30×13~12.5㎝이다. 뚜껑돌 없이 비신과 비좌만으로 만들었다. 비의 윗부분은 둥글게 처리한 원수형(圓首形)이고, 자연석을 이용하여 비신 받침을 만들어서 비를 세웠다.

3. 화운당 현진대사 부도비(花雲堂 玄辰大師 浮堵碑)와 부도

비석 크기는 67×32.2~31×11㎝이다. 비의 외형은 뚜껑돌 없이 비신만 있는 형태이다. 비의 윗부분은 둥글게 처리한 원수형(圓首形)으로 하였으며, 연화문이 새겨진 사각형[방형(方形)]의 비신 받침에 비를 세웠다. 비석의 후면에 새겨진 글자는 풍화작용에 의한 백화 현상과 빗물에 의한 용해 작용으로 말미암아 글자 대부분의 판독이 불가능하다.

비석 옆에는 화운당 현진대사 부도가 있다. 석종형이다. 높이 162㎝, 거북 모양의 대좌를 갖추고 있다.

[금석문]

1. 영담대사 부도비(影潭大師 浮屠碑)

영담대사비명(影潭大師碑銘)

유명조선국삼척신흥사영담대사비명병서(有明朝鮮國三陟新興寺影潭大師碑銘幷序)

여시아문태백지동유소위신흥사개자숙묘기사초창이후모모명승이비어오족조휘사석씨지술이지약영담당근세선남자야생어정묘신축구월십오일종어금상경신삼월이십일오호팔십년지간유가지가전지적왈하야자위근리숭신불교사사여부모기천성야급기입실취도설법사미자각오기계행야본찰□화중건일신각사난보혁폐영뢰기사업야범어불사포시주선미불용극기성신야규정사풍산문숙연기기강야림사결책막불편의기기량야중생기근청진보제기공덕야내호외호지로불해기근간야유시자비성문용동원이예관천이위표충사총섭약원장지주찬지이지하지촌로제존지이사문종사사판이배식어은중각영정이합향어서산당오호기덕지감인고여시재사법명선준회암당칠세손야몽은영우침파계윤경□민흥기법사야옹사야은사야속성□선전씨전리판서훤학생유천자헌후발가선순삼경주김성진기비증조대부선고급외조야유법윤이인치환야부찬야찬독유후왈도유유유기문생일홍등구기유사지인몰장욕각석수전이징언어여왈자지족조지수필상재폐사자기무일언어차비야희여여사소선이황선의존언고불가이불문경사자술행적지만일자기미억년불후야기명왈(如是我聞太白之東有所謂新興寺盖自肅廟己巳初創以後某某名僧已備於吾族祖諱師錫氏之述而至若影潭堂近世善男子也生於正廟辛丑九月十五日終於今上庚申三月二十日嗚乎八十年之間有可知可傳之迹曰何也自爲斤梨崇信佛敎事師如父母其天性也及其入室聚徒說法使迷者覺悟其戒行也本刹□火重建一新各寺難保革弊永賴其事業也凡於佛事布施周旋靡不用極其誠信也糾正寺風山門肅然其紀綱也臨事決策莫不便宜其器量也衆生飢饉請賑普濟其功德也內護外護至老不懈其勤幹也由是慈悲聲聞聳動遠邇禮官薦以爲表忠祠摠攝若院長地主贊之以支厦之村盧弟尊之以沙門宗師祠版而配食於恩重閣影幀而合享於西山堂嗚乎其德之感人固如是哉師法名璇俊晦庵堂七世孫也夢隱永友枕波戒允敬□旻興其法師也翁師也恩師也俗姓□善全氏典理判書暄學生有天資憲厚發嘉善淳三慶州金成振其鼻曾祖大父先考及外祖也有法胤二人致還也富贊也贊獨有後曰道裕裕裕曁門生日弘等懼其遺事之湮沒將欲刻石壽傳而徵言於余曰子之族祖之手筆尙在弊寺子豈無一言於此碑耶噫余與師素善而況先誼存焉固不可以不文硬辭玆述行迹之萬一資其彌億年不朽也其銘曰)

두타남반 태백동두 서산정달 회암원류 유사공덕 산흘수유 일편정민 인거명류(頭陀南畔 太白東頭 西山正疸 晦菴源流 維師功德 山屹水悠 一片貞珉 人去名留)

수법제자 경희 □념 익원 해봉 철명 익수 영첨 철점(受法弟子 慶喜 □念 益元 海奉 喆明 益守 榮添 喆占)

법손 윤혜 참회제자원식(法孫 允惠 懺悔弟子元式)

수계상좌 부인 필웅 필부 부일 일주 필숙(受戒上佐 富仁 弼雄 弼尃 富日 一柱 弼肅)

장질치성 당질치룡 수승장엽(長姪致成 堂姪致龍 首僧藏燁)

삼강승통 성화(三綱僧統 性華)

서기 세원(書記 世元)

간옹거사 홍면섭 찬(艮翁居士 洪勉燮 撰)

호중사인 홍□남은 서병전(湖中士人 洪□南隱 書幷篆)

숭정기원후사경신십일월 일 주손도유일홍등립(崇禎紀元後四庚申十一月 日 主孫道裕日弘等立)

2. 가선대부 등계대사 석원답비(嘉善大夫 登階大師 釋願畓碑)

〈전 면〉

운흥사원답위은사대택원수자백육십백팔십백육십구답삼작합구복오속구두락지(雲興寺願畓爲恩師大澤員數字百六十百八十百六十九畓三作合九卜五束九斗落只)

위부모대택원수자백칠십육백십팔이백삼답삼작합육복칠속구두락지(爲父母大澤員數字百七十六百十八二百三畓三作合六卜七束九斗落只)

위기신맹방망자오십일오십이오십팔오십구답사작합사복구속칠두락지(爲己身孟芳亡字五十一五十二五十八五十九畓四作合四卜九束七斗落只)

반야암원답맹방망자이백이십답일복육속이두락지(般若庵願畓孟芳忘字二百二十畓一卜六束二斗落只)

위서제자보월당경봉교곡개자구십일답사복칠속삼두락지(爲逝弟子寶月堂慶鳳橋谷改字九十一畓四卜七束三斗落只)

령은사원답위기신성황동옥자오십오답오복오속육두락지양사답가삼백팔십오량(靈隱寺願畓爲己身城皇洞玉字五十五畓五卜五束六斗落只兩寺畓價三百八十五兩)

위서제자보월당상궁촌병저봉자이백오십이백오십일답이작합육복오두락지(爲逝弟子寶月堂上宮村屛底鳳字二百五十二百五十一畓二作合六卜五斗落只)

장상좌가선최순차상좌통정채운말상좌봉근(長上佐嘉善最順次上佐通政彩雲末上佐奉近)

명적사원답언장동주자삼백오십일이복팔속삼백팔십답이복삼속가문삼십량우문십량유촉대일쌍(明寂寺願畓彦長洞宙字三百五十一二卜八束三百八十畓二卜三束價文三十兩又文十兩鍮燭臺一雙)

〈좌측면〉

훼자사십팔답사복칠속오두락지자기계위조부자북북본□병□허□우광당(毁字四十八畓四卜七束五斗落只自己癸位條釜子北北本□並□許□于光堂)

벽허□인침파당계□□(碧虛□人枕波堂戒□□)

산인 봉민□영은사승통통정경응(山人 奉旻□靈隱寺僧統通政經應)

개자구십답삼복사속삼두락지고내우청연암(改字九十畓三卜四束三斗落只庫內于靑蓮庵)

〈후 면〉

가선대부등계대사석원답비명 병서(嘉善大夫登階大師釋願畓碑銘 幷序)

수갈세법야탁출세법자표이수기갈언표분기은신야분기은칙출세법부족이□야이고의진□□□유본사왈운흥준세법이표기신야사강릉김씨명두간부원백취삼척김씨주사어옹정기지야유유자감운륜투신어숙납□발이초장휴수순성우□세업척무극의□□□□저서율고청도□가선등계이첩재정남북양사고총수연활발세연이각용은신위사위기천□제자운령□□헌답미신어제수구무불포은기불위남재쟁나황경희연각□계두지□종세유루약신후영확자일일불존일소향답삼복고명수갈이수풍권후야불가이축□지고리비륜지기제달식감생비감여여휴단창□문자래청□휘지유□□주선적의난일례하각수명기사왈□유육도일칙곡단□제빈지유축무척사위정리식계수인유제요구연재보□독신공축훈재쌍림은장조첩표랑지심각행시래서□편완신후구허생별성환불규□□□수차준(樹碣世法也托出世法者表以樹其碣焉票賁其恩信也賁其恩則出世法不足以□也而固宜眞□□□有本寺曰雲興遵世法而表其信也師江陵金氏名杜侃父元伯娶三陟金氏主師於雍正己支也有幼自甘雲倫投身於叔衲□髮而稍長休手馴性偶□世業倜毋劇矣□□□□這舒聿故靑道□嘉善登階二帖再程南北兩史庫摠綬然闊發世緣而却用恩信爲師爲己薦□弟子雲靈□□獻畓彌信於諸售求無不布恩豈不偉男哉爭奈晃境噫然却□季痘之□終世有漏若身后永確者一日不存一所享畓三卜庫名樹碣而樹風勸后也不可以蓄□之枯裡比倫之幾諸達識鑑生悲感歟余携短昌□文字來請□麾之唯□□主旋跡義難一例下却遂銘其詞曰□有六度一則谷檀□諸貧之有蓄無擲斯爲正理植戒修因有諸要構捐財補□篤信供祝勳在雙琳恩奬稠疊表朗之深却行示來胥□鞭完身后驅虛生瞥省還不揆□□□手借儁)

〈우측면〉

건륭오십삼년무신이월일 립석(乾隆五十三年戊申二月日 立石)

도림통정처관(都臨通政處寬)

별좌중군청안(別座中軍淸眼)

승통태성(僧統泰性)

손제 봉수봉선굉설봉준(孫弟 奉守奉先宏設奉俊)

증손 지훈 지지행(曾孫 智訓 智智行)

3. 화운당 현진대사 부도비(花雲堂 玄辰大師 浮堵碑)

〈전 면〉

화운당현진대사부도비명(花雲堂玄辰大師浮堵碑銘)

〈후 면〉

대사밀양박씨광룡대기 □□□ 야 □□□ 가선대부강릉김원박(大師密陽朴氏光龍岱基 □□□ 也 □□□ 嘉善大夫江陵金元泊)[이하는 판독이 불가능함]

건륭이십육년신묘팔월십육일 립(乾隆二十六年辛卯八月十六日 立)

[현황]

신흥사 학소루 앞산 아래에 조성되었다가 현재는 일주문 앞 양지바른 산 아래로 옮겨서 보호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

부도비에 기록된 내용을 통하여 조선 후기 신흥사에 주석한 스님들의 현황과 사찰 연혁 일부를 파악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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