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상갑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900785
한자 南相甲
영어공식명칭 Nam Sanggap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기도 남양주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헌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학 시기/일시 1941년 - 남상갑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 진학
활동 시기/일시 1941년 - 남상갑 흑백당 결성
활동 시기/일시 1944년 12월 - 남상갑 징역 5년 선고
활동 시기/일시 1945년 8월 15일 - 남상갑 출옥
추모 시기/일시 1990년연표보기 - 남상갑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몰년 시기/일시 2000년 10월 26일연표보기 - 남상갑 사망
출생지 별내면 -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면 지도보기
학교|수학지 중앙중학교 - 서울특별시 종로구 계동
학교|수학지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연세로 50[신촌동 134]
활동지 경성 - 서울특별시
성격 항일운동가
성별 남성
대표 경력 흑백당 당원

[정의]

경기도 남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남상갑(南相甲)[?~?]은 지금의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면·별내동에 해당하는 경기도 양주군 별내면에서 태어났다. 항일학생결사 단체 흑백당(黑白黨) 당원으로 활동하였다.

일제는 1931년 만주사변, 1937년 중일전쟁을 일으키면서 ‘제국 일본’ 전체를 전시 체제로 개편시켰는데, 식민지 조선도 여기서 예외가 아니었다. 일제는 전쟁 수행을 위하여 강제 동원 정책을 추진하였으며, 이를 위하여 조선인의 일본인화를 강제하였다. 이에 따라 교육 분야에서도 1937년 10월 ‘황국신민의 서사(誓詞)’를 제정하고 1938년 3월에는 제3차 「조선교육령」을 반포하여 조선인의 황국신민화를 교육의 목표로 삼았다. 1938년 7월 ‘국민정신총동원운동(國民精神總動員運動)’을 전개하였고 그 성과로 9월에 ‘국민정신총동원 조선연맹(國民精神總動員 朝鮮聯盟)’이 발족되면서 동원 체제의 형식적 틀을 갖추어 나갔으며, 1940년 10월에는 ‘국민총력 조선연맹(國民總力 朝鮮聯盟)’으로 발전하였다.

[활동 사항]

1939년 경복중학교(景福中學校) 4학년에 재학 중이던 이현상(李賢相)을 비롯한 학생 12명은 친일파 암살과 일본인 고관 살해 등을 목표로 하는 항일학생결사였던 흑백당의 기초 조직에 착수하였다.

중앙중학교에 재학 중이던 남상갑은 흑백당 결성 논의가 나오기 전부터 이현상 등과 교류를 하고 있었다. 이후 1941년 남상갑이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현 연세대학교]에 진학하고, 흑백당 조직을 결의한 김성근(金盛槿)·이경춘(李慶春) 등도 전문학교에 진학한 상황이 되자 본격적으로 결성이 추진되었다. 1941년 가을 경성부 봉래정[현 서울특별시 중구 만리동]에 있는 주낙원(朱樂元)의 집에서 흑백당이 결성되었다.

흑백당은 조국 독립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고, 조직의 정보에 대한 비밀을 지키며, 책임을 완수할 것을 강령으로 삼았다. ‘흑백당’이라는 명칭은 조직원인 성익환(成益煥)이 제안한 것인데 암흑적 노예 상태[흑]를 벗어나 자유[백]를 찾기 위하여 투쟁하는 단체를 뜻하였다. 흑백당 조직원들은 한용운(韓龍蕓)과 안재홍(安在鴻)·여운형(呂運亨) 등 대표적인 민족지도자들의 감화를 받은 인물들로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조선의 독립을 쟁취하기 위하여 헌신하기로 결의하였다.

흑백당은 본격적인 실천 활동을 위하여 친일파 처단 명부를 작성하고 일본인 밀집 지대를 방화하여 일본인을 전멸한다는 계획을 세웠으며, 아울러 일본 제국주의의 패망과 조선 광복을 알리는 격문을 뿌리기도 하였다. 흑백당 내에서 남상갑이 맡고 있던 임무는 자금 조달이었다. 이현상과 홍건표(洪建杓)가 경복중학교 무기고에서 소총 두 자루와 실탄을 확보하여, 경복중학교의 교련 교관이었던 가오모토 중좌가 견책을 당하면서 흑백당 활동이 주목받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처음에는 사건의 주범이 알려지지 않았다가, 흑백당의 동조자인 보성전문학교의 김창흠이 열차에서 조선어로 일본을 욕하다가 체포되어 가택 수색을 받는 과정에서 관련 문서가 발견되면서 흑백당 조직의 실체가 드러났다.

흑백당 조직이 일제에게 발각되자 당원들은 대책을 모의하였고, 결국 중국으로 건너가서 광복군에 투신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당원 김성근의 매형이 거주하고 있는 만주 지역에 모인다는 결정이 내려졌고 이에 따라 당원들은 개별적으로 만주로 떠났는데, 남상갑은 경성에 머무르면서 배후 지원 활동을 지속하고 있었다. 그러나 총독부 경찰에게 소식이 발각됨에 따라 결국 1944년 1월경에 만주 지역에 있던 당원들이 체포되었고, 남상갑도 경성에서 붙잡혔다. 이후 남상갑은 1944년 12월 징역 5년을 선고받고 투옥하였다가 1945년 8월 15일 해방과 함께 출옥하였다. 남상갑은 2000년 10월 26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남상갑에게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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