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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900716
한자 梁三乭
영어공식명칭 Yang Samdol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기도 남양주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강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31일 - 양삼돌 ‘진접읍 만세 운동’ 참여
활동 시기/일시 1919년 5월 2일 - 양삼돌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 선고
추모 시기/일시 1999년 - 양삼돌 진접3·1운동기념비 건립
출생지 부평리 -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부평리 지도보기
활동지 부평리 -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부평리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남성
대표 경력 3·1운동

[정의]

경기도 남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양삼돌(梁三乭)[?~?]은 지금의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부평리에 해당하는 경기도 양주군 진접면 부평리에서 태어났다.

[활동 사항]

1919년 3월 민족 대표들의 3·1 독립 선언 소식을 접한 봉선사의 승려 이순재(李淳載)·김성암(金星岩)·강완주(姜完珠)와 서울에서 약종상을 하고 있던 김석로(金錫魯) 등은 ‘조선 독립단 임시 사무소’ 명의의 문건을 작성하여 부평리와 인근 지역 주민들에게 배포하였다. 배포된 문건은 파리강화회의에서 12개국을 독립국으로 만들기로 결정한 듯하므로 이러한 기회에 독립 만세 운동을 전개하여 독립을 달성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문건에 영향을 받아 1919년 3월 29일 밤 이재일(李載日)의 집에 부평리 마을 주민들이 모여 광릉천 모래밭에서 독립 만세를 부르기로 계획하고 주민들이 함께 통문을 돌려 읽었다. 1919년 3월 31일 광릉천 모래밭에서 약 100여 명의 조선인이 모여 조선 독립 만세를 외쳤는데, 이 시위를 ‘진접읍 만세 운동’이라고 부른다.

양삼돌은 시위에 참여하였다가 박석몽(朴石夢)·최대봉(崔大奉)·최대복(崔大福)·유희상(柳熙庠)·이흥록(李興錄)·최영갑(崔永甲)과 함께 체포되었다. 양삼돌은 1919년 5월 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재판을 받았고, 박석몽·최대봉·최대복·유희상·이흥록 등과 함께 징역 6개월을 선고받았다.

[상훈과 추모]

경기도 남양주시는 1999년 3·1운동 80주년을 맞아 양삼돌이 참여한 진접읍 만세 운동을 비롯하여 평내리[현 경기도 남양주시 평내동] 만세 운동·와부면[현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만세 운동 등을 기념하기 위하여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장현리 20진접3·1운동기념비를 건립하였다. 진접3·1운동기념비는 2019년 11월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하여 진접중학교[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장현리 15-1] 정문 안으로 이전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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