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 후기 전라북도 남원시의 모습을 그린 지도. 「남원관부도(南原官府圖)」는 1699년(숙종 25)에 간행된 『용성지(龍城誌)』의 범례 뒤에 실려 있는 지도이다. 초간본 『용성지』는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을 기초로 만들어져 너무 간략하여, 내용을 보완한 다음 1752년(영조 28)에 다시 간행되었다. 현재 남원향교에 전해지고 있는 『용성지』는 초간본이 아니...
-
조선 후기 이도(李燾)와 최여천(崔與天)이 편찬한 전라도 남원읍지(邑誌)의 증보판. 1699년에 이도와 최여천이 편찬한 『용성지』에 보유(補遺)편을 추가하여 1725년 이후에 다시 편찬한 것이다. 방두천(房斗天)이 발문을 지었으나, 보유편을 누가 짓고, 언제 누가 편찬하였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용성지』는 남원부사로 부임한 이구징(李耈徵)이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에 속하는 법정리. 가산이란 아름다운 산이라는 이름이며, 방현은 방을 붙인 고개라는 이름에서 유래하였다. 옛날부터 운봉 관아가 있는 운봉읍과 권농병마사가 있던 아영 지역의 중간 통로였기 때문에 이 고개에 운봉현 유생들이 과거시험 결과를 알리는 방이 붙었는데, 이곳에 합격여부를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방을 기다렸다는 데서 유래한다. 1479년(성종 1...
-
전라북도 남원시 아영면에 속하는 법정리. 천년 묵은 칡덩굴이 우거지고 마을 앞으로 냇물이 흐르고 있어 갈계(葛溪)라 하였다. 조선 초기 함양박씨(咸陽朴氏)가 들어와 번창하였으며 박씨들의 집성촌이 되어 지서, 학교, 보건소 등을 유치하는 데 힘써 큰 마을을 형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본래 운봉의 북상면(北上面)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갈계리라 하여 남원군...
-
전라북도 남원시 도통동에 속하는 법정동. 칡이 많이 나는 언덕이라 하여 칡고개라 하였다. 또한 갈치재 밑이 되므로 갈치라 하였다. 1597년 정유재란으로 피난을 온 함양오씨(咸陽吳氏)가 처음 정착하였으나, 그 뒤 천안전씨(天安全氏)가 들어와 마을이 형성되었다. 본래 남원군 갈치면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갈치리라 하여 왕치면에 편입되었다가 1956년 7...
-
전라북도 남원시 이백면에 속하는 법정리. 강기리는 내기마을과 강촌마을이 동에서 서로 길게 뻗어 있는 지리적 특징을 보인다. 중산간부의 약간 경사진 마을로 쌀과 보리 위주의 농업이 주종을 이룬다. 내기리와 강촌리의 이름을 따서 강기리라 하였다. 내기리는 시루봉과 방학산 같은 산악이 병풍처럼 둘러싸인 곳의 안쪽에 위치하여 안터 또는 내기라 불린다. 강촌...
-
전라북도 남원시 대강면에 속하는 법정리. 900년경 어느 용한 스님이 마을이 번성하려면 강석골로 불러야 한다고 하여 강석골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1590년경 임진왜란 때에 난을 피하기 위해 고창군 흥덕면에서 흥덕장씨가 이주하여 왔고, 1594년경에는 양천허씨와 경주김씨, 광산김씨가 이주하여 마을을 이루었다. 마을은 초목이 무성하고 방(房)처럼 온화한 지형으로 조선시대...
-
전라북도 남원시 인월면에 속하는 법정리. 서리산의 지맥이 서쪽으로 완만히 흘러내려 형성된 마을 터는 말이 누워 있는 와우형에 비유해 마을의 중앙이 배꼽에 해당된다고 한다. 또 제비집 형국인 연소형(燕巢形)이라고도 하는데 마을을 감싸고 있는 작은 언덕은 제비집이고 동쪽은 상산으로 그 끝자락에 있으며 제비집 두 개의 형상은 여원치(女院峙) 너머 최고의 명당 터로...
-
전라북도 남원시 금동에 있는 도로. 전라북도 남원시 금동의 옛 지명이기도 하며, 금동 281-6번지에서 금동 174-1번지[검멀길 17-41]까지의 작은 도로를 말한다. 검멀은 큰 마을이라는 뜻을 가졌으며, 금말·금마을, 혹은 검머리로 불렸다. 검멀길은 금동의 옛 마을 이름이다. 금동은 고려시대 남원부의 남쪽 2리에 위치한 남안향(南安鄕)...
-
전라북도 남원시 사매면 계수리에 속하는 행정리. 계동리는 수동리와 함께 법정리인 계수리에 속해 있다. 마을 앞에 소하천이 흐르는 낮은 산악 지대로 형성되어 있으며, 전답이 즐비하여 오곡이 풍부하고, 울창한 소나무림으로 이루어진 마을이다. 계동리는 본래 남원군 사동면 계동 지역으로, 계수나무가 있고, 계화낙지 명당이 있어 계수동 혹은 계동이라 하였다....
-
전라북도 남원시 사매면에 속하는 법정리. 계수리는 계동리(마을)와 수동리(마을)의 2개 행정리로 나뉘어 있다. 마을 앞에 소하천이 흐르는 낮은 산악 지대로 형성되어 있으며, 전답이 즐비하여 오곡이 풍부하고, 울창한 소나무림으로 이루어진 마을이다. 본래 남원군 사동면(巳洞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수동(壽洞)마을과 계동(桂洞)마을이 통합되어...
-
전라북도 남원시 인월면에 속하는 행정리. 처음에는 마을 이름을 계암(鷄岩)이라 하였는데 계암마을은 무슨 연유인지 마을 사람들이 30세를 넘기 전에 요절하여 마을이 몰락될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노인이 나타나 마을의 지세를 풍수로 풀어 주었다. 노인은 “뒷산 매봉이 매혈[鷹穴]이고 취암리 앞산이 수리[鷲]이니 이 두 형국 사이에 있는 닭바위[鷄岩]는 병...
-
전라북도 남원시 주천면에 속하는 법정리. 고촌리와 내기리를 병합하여 고촌과 내기의 이름을 따서 고기리라 하였다. 고촌리는 마을이 산중 높은 곳에 위치하는데서 유래된 것이며, 내기리는 깊은 산중의 안쪽에 있는 안터마을에서 유래된 한자 표기이다. 내기마을은 임진왜란 당시 정씨와 이씨가 피난와서 정착하여 형성되었고, 고촌마을은 경주이씨, 밀양박씨 등이 이...
-
전라북도 남원시 금동에 있는 도로. 남원시 금동에 위치한 골목길의 옛 이름으로 작은 도로를 일컫는다. 금동 49-4번지[광한북로 25]에서 금동 197-8번지 사이에 있는 작은 도로이다. 고샘은 남박고샘이라고 하는데, 들떡거리 서쪽 옛터에 있는 우물이다. 이 우물이 있는 길을 말하는데서 유래되었다. 남원의 고샘은 하정동과 검멀 고샘의 두 곳이 있었다...
-
전라북도 남원시 대강면 사석리에 있는 마을 공원. 전라북도 남원시 지역에는 60여 기 정도의 고인돌이 있는데, 대부분 개간과 경지 정리로 훼손되었다. 그중 대강면에 있는 고인돌은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 사석리에 고인돌 11기가 있다. 2002년 남원문화원에서는 고인돌 유적을 보존하고 널리 알리기 위해 공원을 조성하였다. 고인돌 조형물 쌈지공원은 남원문화원이 남...
-
전라북도 남원시 아영면 청계리에 속하는 행정리. 고인리는 광평리·청계리·의지리와 함께 법정리인 청계리에 속해 있다. 아영면 소재지(광평)에서 서북쪽으로 약 400m 지점에 위치하며, 마을 바로 뒤로 광주 대구 고속 도로가 지나고 있다. 마을 입구에는 3기의 지석묘(支石墓)가 있는데 유구(遺構)에 의하면 갈계리·봉대리와 같은 시기인 청동기시대 이전의 것으로, 그...
-
전라북도 남원시 덕과면에 속하는 법정리. 고정리에 속한 월평마을은 마을의 생김새가 반달처럼 생겼다하여 달 월(月)자를 따고, 넓은 들 평(坪)자를 써서 월평으로 부르게 되었다 한다. 신정마을은 산세가 평탄하고 토질이 비옥하여 살기가 좋은 곳으로 소문이 나 신정이라 하였다. 뒤에 고정이라 고치게 되었는데 그 까닭은 전하지 않는다. 마을에는 원고정덕고방(源高亭德古...
-
전라북도 남원시 고죽동 황죽마을에서 고산마을을 잇는 소로. 소로란 주 간선 도로와 보조 간선 도로 이외의 도로로서 접근 기능을 수행하는 도로를 가리킨다. 고죽동(高竹洞)은 고산(高山)마을과 황죽(黃竹)마을이 합쳐진 이름이다. 고산마을은 역사적으로 남원에 전란이 있을 때마다 피난처로서의 역할을 하였다. 1597년 정유재란으로 남원성(南原城)이 함락될 때에도 많은...
-
전라북도 남원시 도통동에 속하는 법정동. 고산마을은 지형이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굴속같이 아늑하다고 하여 고산골이라 하였다. 황죽마을은 자연생 대나무가 울창하게 우거져 있었는데, 무령군 유자광(柳子洸)이 태어나자 대나무가 누렇게 말라 죽었다고 한다. 이것은 유자광이 태어나면서 마을 정기를 다 뽑아 대나무가 누렇게 죽은 것이라고 하는데, 이후로 마을 이름을 유자...
-
전라북도 남원시 수지면에 속하는 법정리. 본래 고정촌이라 했는데, 이곳에 정착한 정씨(丁氏) 일족이 역적의 무리를 제거하고 이 마을을 없애 버린 후 지금의 고정마을로 이주하여 마을이 형성되었다. 이 때 정씨가 터를 잡고 정자나무를 심은 후 큰 서당을 설립하여 그 뜻을 오래 기억하자는 뜻에서 고정이라 하여 지금까지 그대로 부르고 있다. 본래 남원군 수지면 지역으로 고정촌이...
-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공안리는 해발 1,200m 이상에 위치한 수철(水鐵)·공안(孔顔), 해발 540m 이상에 위치한 유평(柳坪)·용은(龍隱)의 4개 행정리로 이루어져 있다. 동쪽으로는 바래봉, 남쪽에 세걸산, 서쪽에 수정산을 두고 있는 와우형국(臥牛形局)이다. 수철리는 삼한시대부터 쇠를 녹여 솥을 만들던 곳이라 하여...
-
전라북도 남원시에서 자연 경관 보존과 시민의 다양한 야외 활동을 목적으로 조성한 공공 녹지. 남원 지역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국립공원인 지리산국립공원이 있으며, 시민들의 다양한 휴식 활동을 위해서 도심 지역에 15개의 도시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더불어 자투리땅을 이용한 쌈지공원, 혼불문학공원, 흥부소공원 등의 테마공원도 있다. 소설 『혼불』의 배경지인 남원시 사...
-
전라북도 남원시 이백면에 속하는 법정리. 과립리는 이백면의 중심부에 있으며, 면사무소를 비롯한 공공기관이 모여 있다. 과리마을과 입촌마을로 구성되어 있고 산줄기가 마을을 감싸며, 백암천의 근원천이 흐르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자연마을로는 과리, 갓바래, 암내, 까막재 등이 있고 메복지, 성떼미, 제비당, 갓바래재, 당굴고개, 여시고개가 있다. 과...
-
전라북도 남원시에서 풍속(風俗)·풍광(風光)·사적(史蹟) 등을 유람하는 일. 남원은 면적 752.12㎢, 인구 10만 3572명(2001)이다. 동경 127°21′~ 127°26′, 북위 35°22′~35°28′에 위치한다. 동쪽으로 경상남도 함양군·하동군, 서쪽으로 임실군·순창군, 북쪽으로 장수군, 남쪽으로 전라남도 구례군·곡성군에 접한다. 북동부·동부·남동...
-
전라북도 남원시 어현동에 있는 관덕정(觀德亭)으로 가는 골목길. 관덕정이 정확히 언제 건립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조선시대 정유재란이 발생한 즈음인 1590년대 말로 추측된다. 정유재란이 끝나고 남원에는 무술 연마와 향사례(鄕射禮)의 도장으로 활터가 여러 곳에 설립되었는데 남원부의 남쪽에는 분위정과 한남정이 세워졌으며, 동쪽에는 관덕정이 세워졌으나 퇴락하였다....
-
전라북도 남원시 사매면에 속하는 법정리. 관촌리와 풍촌리에서 각 한자씩 따서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 본래 남원군 매내면 풍촌리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관촌리·세동리·풍촌리·상신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관풍리라 하여 사매면에 편입시켰다. 1995년 1월 1일 남원시와 남원군이 통폐합함에 따라 남원시 사매면 관풍리가 되었다. 계룡산...
-
전라북도 남원시 향교동이 관할하는 법정동인 광치동에 속하는 자연 마을. 1930년대 남원군에서 제일가는 산림 모범 마을이었다. 마을 앞에 넓고 큰 돌이 있어 마을 이름을 ‘넓은 돌’ 또는 ‘너븐 들’, ‘나븐 들’ 등으로 불렀는데, 마을 이름을 한자어로 표기하면서 광석이 되었다. 광석마을은 고려 충정왕 때인 1350년경 대산면(大山面)으로부터 흥성장씨(興城張氏...
-
전라북도 남원시 대강면 입암리와 아영면 의지리 사이에 있는 도로. 고속국도는 한국도로공사에서 건설, 유지, 관리하고 있다. 전라남도 무안군 망운면~대구광역시 달성군 논공읍을 경유지로 하는 노선번호 제12호선인 광주대구고속도로는 길이가 181.9㎞로 고서 JC~옥포 JC를 구간으로 한다. 영·호남을 직통으로 연결하여 국민 화합과 번영을 상징하는 뜻에서 88올림픽고속국도로...
-
전라북도 남원시 향교동에 속하는 법정동. 넓은 돌의 한자어 광(廣)과 마을 뒷산의 고개이름을 딴 율치마을의 치(峙)에서 따온 것이다. 본래 남원군의 왕지전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율치리·광석리·호치리를 병합, 광치리라 하여 왕치면에 편입되었다. 1956년 7월 8일 왕치면이 폐지되면서 남원읍에 편입되었고 1981년 7월 1일 남원읍이 시로 승격되...
-
전라북도 남원시 천거동 광한루원(廣寒樓苑) 서문 북단에서 구 남원역까지 연결된 보조 간선 도로. 도시 내 주간선 도로와 소로의 중간에서 도시 교통의 집산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광한루는 전라북도 남원시 천거동에 있는 조선 중기의 목조 누각이며 보물 제281호로 지정되어 있다. 광한북길은 광한루의 북쪽에 있는 도로로 1996년 7월 국가경쟁력강화 기획단에서 사업...
-
전라북도 남원시 보절면에 속하는 법정리. 괴양리는 면소재지로부터 남쪽으로 3.5㎞ 떨어져 있고 보절면의 계룡산 줄기를 타고 내려온 산 아래에 위치하며 개신마을, 양촌마을, 음촌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개양마을과 신촌마을을 합하여 개신마을이라 하며, 마을의 양지 쪽에 위치한다 하여 양촌마을, 마을의 음지쪽에 위치한다 하여 음촌마을이라 불린다. 본래 남원...
-
전라북도 남원시 신정동 삼거리에서 시청로 사이에 있는 도로. 전라북도 남원시 교룡산성을 우회하여 개설된 신설 도로이며, 시청 소재지로부터 북서쪽으로 3㎞ 정도의 근거리이며, 임진왜란이나 정유재란 당시의 유적이 많이 남아 있는 도로이다. 교룡로는 남원의 서남쪽에 있는 교룡산[520m]이 우뚝 솟아 있는데, 이곳을 발원지로 하여 도로의 명칭도 교룡로라...
-
지역을 연결하여 인간과 물자의 이동을 가능하게 하는 것. 남원시는 섬진강의 중류에 위치하는 섬진강권의 핵심 도시로서 전라북도와 전라남도 동부 지역 및 경상남도를 연결하는 교통의 중심지에 위치해 있다. 1. 삼국시대 남원은 삼한시대 때 마한과 변한의 접경 지역이었으며, 삼국시대 때는 백제와 신라의 접경 지역이었다. 따라서 정치적·군사적 요충지로서 주변 지역 교통...
-
전라북도 남원시 동충동에 있는 도로. 구 역전 사거리는 동충동 구 역전 광장 앞 사거리를 말한다. 남원시내 교통의 중심지이었으나 2005년 8월 남원역이 중부 신정동으로 옮긴 결과, 지역 상권도 점차 쇠락하고 있다. 구 남원역 앞을 지나는 왕복 4차선 도로인 충정로는 서문 사거리에서 누른대 삼거리까지의 보조 간선으로, 구 남원역에서 서남 방향은 순창군과 전라남...
-
전라북도 남원시 아영면에 속하는 행정리. 마을이 형성될 당시만 해도 사람이 드물고 천연의 밀림이 우거진 깊은 골짜기여서 호랑이가 자주 출몰하여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니 마을 사람들은 자연히 산신을 섬기게 되었다. 집집마다 정성을 드리고 매년 마을 공동으로 산신제를 모셔 개를 잡아 호랑이에게 바쳤다 하여 마을 이름을 구식(拘食)이라 하였다. 또 일설에는 호랑이가 먹이로 개를...
-
전라북도 남원시 향교동에 속하는 자연 마을. 구암마을은 구등마을이라고도 하는데, 조선시대 남원도호부 내의 행정구역인 48방 중 서봉방(捿鳳坊) 지역(지금의 향교동 일대)을 근거지로 한다. ‘구암’은 마을 앞쪽으로 흐르는 축천(丑川)과 어울리는 거북 등처럼 생긴 큰 바위가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바위는 일명 ‘구등바위’라고도 하였다. 1700년경에 김...
-
전라남도 완도에서 충청남도 금산까지 이어지는 일반국도. 전체 연장은 317.026㎞이며 전체 구간 중 익산지방국토관리청 소속 남원국도유지건설사무소에서 113.8㎞를 관리하고 남원국도유지건설사무소 소속 무주출장소에서 33.8㎞를 관리한다. 남원 관내 전체 구간은 13㎞로 도계에서 대강면 사석리까지 3.7㎞, 풍산리까지 9.3㎞이며 국도 24호선과 중복된다. 관내...
-
전라북도 남원시 지역을 지나는 금지면 귀석리와 덕과면 고정리 사이에 있는 도로. 국도 17호선은 전체 구간 중 익산지방국토관리청 남원국도유지건설사무소에서 45.3㎞를 관리한다. 2006년 건설교통부의 『도로현황조서』에 따르면, 남원시 관내구간은 33.269㎞로 전라남도 도계에서 남원까지 14.619㎞, 남원에서 임실군 군계까지 18.85㎞이다. 현재는 사매면...
-
전라북도 남원시 지역을 지나는 주천면 배덕리와 산동면 월석리 사이에 있는 도로. 국도 19호선은 전체 구간 중 익산지방국토관리청 남원국도유지건설사무소에서 48.8㎞를 관리하고 있으며, 남원국도유지건설사무소 무주출장소에서 43.5㎞를 관리하고 있다. 광치동에 있는 서남대학교 앞의 밤치육교에서 전리남도 순천까지 남원~순천 간 산업도로의 일부가 중복된다. 남원시의...
-
전라북도 남원시 지역을 지나는 대강면 풍산리와 인월면 성산리 사이에 있는 도로. 국도 24호선은 전체 구간 중 익산지방국토관리청 남원국도유지건설사무소에서 52.4㎞를 관리한다. 대강면 풍산리에서 국도 13호선, 시장 사거리에서 고죽교차로까지는 국도 17호선, 고죽교차로에서 요천삼거리까지는 국도 19호선과 중복된다. 남원시의 중앙을 서쪽에서 동쪽으로 관통하는 도...
-
...
-
권수복 할아버지는 1945년 3월 29일생으로 2006년 현재 62세이다. 출생지는 경상도 함양군 수석면이다. 3살 때인 1948년에 비전마을로 이사를 왔다. 운봉국민학교를 졸업하고 논농사를 지으면서 집에서 주경야독으로 독학을 했다. 혼자서 공부를 하고 어떤 증명서도 없지만 신문도 읽고 이장으로서 행정일을 볼 정도의 실력은 갖추었다. 형제는 3남 3녀로 6남매...
-
1996년부터 현재 10년째 운봉읍 비전마을 이장일을 하고 있다. 다른 공식조직은 없다. 생활이 힘든 노인 가구나 희망이 필요한 가구를 위해 생활보호대상자로 국가의 지원을 받게 하는 것이 본인이 마을 사람들을 돕는 큰 일 중의 하나다. 국가의 지원은 물질적인 것으로 끝나지 않고 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심리적인 안정을 준다. 친구는 농사지으면서 알게 된 마을 사람들이 전부이...
-
특별한 종교생활은 하지 않는다. 부모님께서 생활하신 대로 유교적 생활에 충실하다. 아버지와 할아버지, 할머니의 제사만 집에서 지낸다. 설날과 추석 명절에는 돌아가신 조상을 합동으로 제사지낸다. 상할아버지부터는 시제에서 모신다. 시제는 1년에 한 번 지낸다. 제삿날 상차림을 위해서 20만원 정도를 쓴다. 제사 음식은 부모님 때 그대로이다. 농사일만 할 뿐, 특별한 세시풍속은 없다....
-
국민학교 졸업 후부터 집에서 농사일을 했다. 지금까지 농사일 외에 해 본 일이 없다. 논농사만 200마지기를 지었는데, 지금은 힘이 부쳐 60마지기 정도만 짓는다. 밭농사는 주로 아내가 짓는다. 소와 돼지도 조금 키웠었는데, 지금은 가축을 키우지 않는다. 가축을 키우지 않는 이유는 냄새가 나고 수질이 나빠져서 이웃 주민에게 폐가 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비전마을은 ‘국악의 성지’가...
-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에 속한 법정리이자 행정리.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소재지로부터 국도 24호선에서 군도 8호선 2㎞ 지점 고남산 기슭에 위치하고, 산동면 부절리와 인접한 마을이다. 법정리로서의 권포리는 행정리인 권포리와 가동리로 나뉘어 있다. 가동리라 하여 ‘더할 가(加)’ 자를 쓰게 된 것은 권포리와 장교리(연동) 두 마을 사이에 새로 생긴 마을이라는 데...
-
전라북도 남원시 금지면에 속하는 법정리. 남원시 금지면 하귀리와 석전리에서 각 한자씩 따서 지금의 이름으로 되었다. 임진왜란 후 지금으로부터 약 380여 년 전 이천서씨, 남원윤씨, 고흥유씨가 전라남도 해안 지방에서 왜군의 침입을 피하여 북상하다가 맑고 기름진 옥토를 보고 생활의 터전을 잡기 위해 이곳에 정착하여 마을을 형성하였다. 본래 남원군 금안면 하귀리...
-
전라북도 남원시 보절면 금다리에 속하는 행정리. 금계리는 보절면 소재지 상신마을에서 남쪽방향 3㎞ 지점에 위치한 농촌마을로 벼농사를 주로 한다. 옥녀봉 밑에 자리한 금계마을은 옥녀가 베를 짜는 옥녀직금(玉女織錦) 형상으로, 마을에 베를 짜는 데 필요한 바디(베틀·가마니틀·방직기 따위에 딸린 기구의 하나)가 있어 바디절이라 불리기도 하였다. 지명을 한...
-
전라북도 남원시 보절면에 속하는 법정리. 천황봉 산하에 차나무가 마을 앞에 우거졌다 하여 다뫼라 하였고, 만행산 호랑이가 먹이를 찾아 엎드린 형국이어서 호복동이라 했으며, 2개 마을을 합하여 다산이라 하였다. 1600년 경 조선조 중엽 선조 때 나주임씨, 진주소씨가 난을 피하여 방황하다가 천황봉 아래 터가 넓고 땅이 기름진 다산마을에 정착하였다. 그 후 전주이...
-
전라북도 남원시에 속하는 법정동이자 행정동. 행정동으로서의 금동은 법정동인 조산동(造山洞)·천거동(川渠洞)·금동을 포괄하고 있다. 금동은 전라북도 남원시의 경제와 유통의 중심지인 상업 지역이다. 금동은 예부터 ‘검멀’이라 했는데, 금마을·금말·검머리라고도 했다. ‘말’은 ‘마을’이라는 뜻으로, ‘멀’이라고도 했다. 검멀은 큰 마을이라는 뜻이다. 고어에서 ‘검’...
-
전라북도 남원시 대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금강리와 감성리에서 각 한 글자를 따서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 본래 남원군 서봉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금강리와 감성리를 병합하여 금성리라 하여 남원읍에 편입 되었다가 그 뒤 1956년 7월 8일 대산면에 편입되었다. 1995년 1월 1일 남원시와 남원군이 통폐합함에 따라 남원시 대산면 금성리가...
-
전라북도 남원시 남서부에 있는 법정면. 1897년(고종 34)에 8도를 13개 도로 개편하면서 방(坊)이 면(面)으로 바뀌었는데, 금지면은 기지방(機池坊)과 금안방(金岸坊) 등 2개 방이 있었던 지역으로, 금안방의 금과 기지방의 지에서 유래하였다. 1897년(고종 34)에 8도를 13개 도로 개편하면서 방이 면으로 바뀌었고, 금안방이 금지면의 중심이 되었다....
-
전라북도 남원시 금지면 택내리에 있는 철도역. 1933년 10월 15일에 역원 배치 간이역인 주생역 관리로 출발하였다. 1980년 10월 2일 보통역으로 승격하였고, 1998년 1월 21일 전라선 개량사업의 일환으로 기존의 부지에 새로운 역사를 준공하고, 금지역으로 부르고 있다. 전라선에 속하며, 현재 운전취급 상황은 여객열차 26회, 화물열차 36회로 운행되...
-
전라북도 남원시 대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법정리인 길곡리는 왈길리와 심곡리의 2개 행정리로 나뉘어 있다. 남원시 대산면 소재지로부터 북쪽으로 1㎞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농촌 마을이다. ‘칡이 많다’ 하여 ‘갈거리’로 불리다가 한자 표기로 ‘왈길’이 되었고, ‘깊은 골짜기가 많다’ 하여 ‘지프실’·‘싶으실’로 불리던 마을이 한자 표기로 ‘심곡’이 되었다. 1914년 행정구...
-
...
-
김동호 아저씨의 연세는 49세로, 태어나실 때 특별한 태몽은 없었다고 한다. 본관은 김해 김씨이다. 본래 고향은 전남 구례군 영암인데 할아버지 때 남원 송동면에서 한때 거주하다 노봉마을로 이주하여 정착하게 되었다. 김동호 아저씨는 노봉마을에서 출생하였다. “원래 저희 집은 전남 구례 영암이예요. 구례 영암은 곡성 지나서라고 하던데 가보지는 않았어요. 구례에서 살다가 송동...
-
노봉마을에 젊은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 지금은 마을의 이장으로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으시다. “노봉에서 이장을 하고 있는데 옛날에 한 10년 전에 일 년간 이장을 하다가 그만두고, 다시 하기 시작한 지가 올해가 4년째 되었어요. 요즘은 이장도 선거를 하고 치열한데, 우리 마을은 이장을 서로 하려고 해요. 이장은 임기가 2년이거든요. 예전에는 1년씩이었는디 단년으로 선거...
-
가정 신앙은 특별한 것이 없고 자녀들만 마을의 교회를 다니고 있다. “우리 집은 특별한 종교는 없어요. 어머니와 우리들은 종교가 없는데 아이들은 교회를 다녀요. 우리 마을에 있는 새사도교회를 다니는데 어려서부터 다녔어요. 어려서부터 행사 있고 그럴 때 오라고 해싸니까 다니게 되었겠죠.” “집안에 모시는 신이나 신주는 특별한 것은 없어요. 할머니 때는 하셨는데 어머니 때는 신식이 됐...
-
김동호 아저씨는 지금까지 노봉마을에서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노봉에서 농사를 짓고 있죠. 현재 짓고 있는 논농사는 70마지기, 밭은 2,000평 정도 돼요. 밭 중에 복숭아 과수원이 1,500평이죠. 아까 밤 7시부터 8시까지 어둡도록 약을 했죠. 우리 논은 한 20마지기 되고 나머지는 남의 논이죠. 우리 일은 틈나는 대로 하고 남의 일을 많이 하죠. 내 것만 하면 한...
-
...
-
1949년 달궁마을에서 태어났다. 달궁마을에는 현재 9대째 살고 있고 가장 오랫 동안 살아온 집안이다. 9대조 이후 계속 외동 아들로만 내려오다가 본인대에서 3남 3녀가 되었다. 그 중 본인은 막내이다. 어린 시절에는 부모를 도와 농사일을 하였다. 달궁도 과거에는 농촌이었다. 논도 아주 많았다. 계곡을 따라 곳곳에 논이 있었으며 가을에는 계곡이 누렇게 벼가 익었다. 그리...
-
달궁에는 두 가지 공식 조직이 있다. 하나는 마을 총회이며 다른 하나는 달궁 상가 번영회이다. 마을은 이장을 중심으로 한 조직이다. 이장은 마을 토박이들이 맡는 경향이 강하며 이주한 지 10년 정도 지나면 이장을 할 수 있게 된다. 마을 총회를 하면 놀기도 하고 여행을 가기도 한다. 마을에 상포계도 있다. 마을에서 상이 나면 밤을 새는 일이나 장지에 가서 일을 하는 것이...
-
불교 신자라고 해야 하지만 특별히 절에 다니거나 하지는 않는다. 명절에는 차례를 지내며 기일에는 기제사를 지낸다. 아직까지 합제사를 하지는 않는다. 기제사는 고조까지 모시며, 시제는 10월에 날을 정해서 모신다. 이제 산에 나무가 많아지면서 산소 위치를 잊어버리는 경우도 있다. 자식 세대에는 더 심할 것이다. 그래서 살아 있는 동안에는 시제를 모실 때 자식들을 데리고 다닌다. 산소...
-
어려서부터 부모님을 도와 농사일을 하였다. 1979년 구례에서 산내로 이어지는 도로가 개통되고 나서부터 마을에 관광객이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관광지가 되면서 상점과 식당 그리고 민박을 겸해서 하고 있다. 여름 휴가철과 가을 단풍철에 관광객이 가장 많이 오며, 봄에 고로쇠 수액이 날 때도 관광객이 많이 온다. 관광객이 많아지면서 외지인들도 많이 들어오고 있다. 현재 마을에는 본토 출...
-
- 제보자: 김영만(61세) 남원시 산내면 중황리 1558번지 거주 조사자 - 여기가 목기도 있었고, 한지 문종이도 많이 만들었죠? - 문종이 보러 이거 원산지는 뭐, 타지방은 말헐 것도 없고, 요 산내로 가서는 이 중황, 상황, 하황, 이 우개 삼개 부락이 있잖아요. 젤로 우개가 상황, 중황, 하황인디, 그 다음에 백일리, 그 세 부락, 네 부락 다 만들어요. 그러고 인제 저 원...
-
김을생 할아버지는 백일리의 유래와 역사에 대해 이렇게 설명해 주었다. “백일리의 유래는 실상사 창건과 불과분의 관계가 있어. 원래 이곳은 전인미답의 산중이었는데, 통일신라 말기 대가람 실상사가 우리 마을 앞에 창건될 때, 스님을 따라 들어온 속세의 사람들이 최초로 우리 마을에 정착했다는 전설이 있어. 실상사의 번창과 쇠락이 마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해.” 참고로...
-
"특별한 태몽은 없지만 본시 우리 집안은 대대로 불교를 신봉했던 지라 어머니가 나를 낳기 전에 매동 뒤의 서진암에서 부처님에게 자주 기도를 드리며 아들을 점지해 주기를 소망했으니, 내가 세상에 나온 뒤 어머니는 ‘너는 부처님의 원력으로 낳은 아이다’라는 말씀을 하셨나이다. 내가 성장하여 스님들이 쓰시는 발우(鉢盂)의 제작을 평생의 업(業)으로 삼은 것도 어머님의 말씀과 무관하다고...
-
김을생 할아버지는 고희가 훨씬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금호공예’를 운영하며 지금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현재 그의 공식 직함은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13호이자 ‘금호공예’ 사장이다. 그는 주로 자신이 경영하는 공방(工房)을 통해 사회 활동을 하고 있다. 또 실상사는 물론이고 전국의 명산대찰의 스님들과도 수시로 교류를 하고 있다. 마을의 대소사도 소홀히 하지 않는단다....
-
...
-
김 할아버지는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살아 온 삶이 부처님의 원력으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할 정도로 불교에 심취한 분이다. 하시는 일이 주로 불교 용품을 제작하는 일이고, 하루 일과도 참선과 수양을 통해 시작하고 끝낼 정도로 전형적인 불제자의 생활을 하고 있다. 그가 실상사 앞마을에서 태어나고 한 평생 발우를 제작하게 것이 모두 부처님과의 인연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
김을생 할아버지는 1957년 간부 후보생이 되어 1년 동안 고된 훈련과 엄격한 교육을 마치고 난 뒤, 1958년에 육군 소위로 임관하여 1969년 대위로 예편할 때까지 12년 동안 전후방의 여러 지역에서 군대 생활을 했다. 군문에서 장군이 되는 꿈을 꾸기도 했지만 비육사 출신으로서의 한계를 절감하고 예편했다. "막상 예편하고 보니까 육군 대위 출신을 특별히 반겨주는 곳이 없었어....
-
...
-
1955년 5월 8일 생으로 만 52세이다. 태어날 때 어머니가 꾸신 특별한 태몽은 없었다고 한다. 다만 내가 우리 아들들을 낳을 때 모두 냇가에서 대사리(다슬기) 잡는 꿈을 꾸었다. 친정 아버지는 광산 김씨로 장수 태생이시며, 어머니는 고씨로 원래 남원 태생이시다. 부모님은 3남 2녀를 두셨는데 위로 남자 셋이 모두 오빠고 나는 여자 중에서 장녀이다. 모두 결혼해서 주...
-
식당을 운영하고 있고 남편과 아이들의 식사 준비도 해야 하기 때문에 여가생활을 위해 특별히 시간을 내지는 못한다. 장수국민학교를 졸업하였는데, 그 때 생각나는 선생님으로는 체육 선생님이신 문홍기 선생님과 이정덕 선생님이 있다. 두 분은 초등학교 고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셨다. 내가 장수초등학교 10회 졸업생인데, 그 때 우리 학년의 학급은 2학급이었고 학생 수는 한 학급당...
-
종교는 없다. 옛날에는 부엌(부뚜막)에 조그마한 종지 그릇에 깨끗한 물울 떠 놓고 매일 아침마다 새로 바꿔주곤 하는 것을 본 적이 있으나, 우리 시대에는 그런 것 없다. 시아버지의 제사상을 차릴 때 준비하는 음식으로는 조기, 꼬막, 탕(홍합, 명태, 새우 등), 부침개, 떡(시루떡), 과일(사과, 배, 계절에 따른 과일 등), 곶감, 알밤, 대추, 나물(콩나물, 시금치, 도라지,...
-
가족의 수입은 내가 식당을 운영하면서 연간 약 1,000만원을 벌고 있다. 남편은 소를 키워 연간 약 10마리 정도를 내다 팔고 있는데 소 값이 변동이 심해 정확한 소득을 말하기가 곤란하지만, 육소 600㎏당 400-500만원을 받는다고 하면 연간 약 4,000만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셈이다. 가족의 지출규모는 월 약 150만 원 선이다. 옷은 주로 양품점에서 구매하며 구입비용은...
-
...
-
1963년 남원에서 태어났다. 현재 44세이다. 5남 1녀 중 넷째 아들이다. 맨 위로 누님이 한 분 계신다. 비전마을에서 운봉초등학교를 졸업했다. 당시는 각 학년별로 6반 정도였고 한 반의 학생 수가 48-50명 정도 되었다. 곧바로 운봉 중학교를 졸업했다. 중학교를 졸업한 후로는 농사일을 했다. 본인은 지게 대학에 다녔다고 말하고 싶다. 20대에는 충남 보...
-
아무런 사회활동을 하지 않는다. 공식조직으로는 ‘황산계’ 계원일 뿐이다. 황산계는 매년 설날과 추석, 즉 1년에 2번 만나 회비를 내고 그 돈으로 집집마다 어려운 사람들 도와준다. 특별히 출산을 했거나 애경사가 있을 때 마을 사람들끼리 서로 돕는 의미로 공동 부조를 한다. 친구는 주로 농사친구이다. 그들이 모두 동네의 어렸을 때 친구이기도 하다. 농사에 대해서 물어보고 서로 도와주...
-
특별히 믿는 종교는 없다. 그저 상황에 따라 예수님도 믿어보고, 부처님도 믿어보고 무당도 믿어 본다. 넷째 아들이라 제사를 지내지 않아야 하지만, 어머니가 아이들을 키워주러 와 계시기 때문에, 본인 집에서 제사를 모신다. 아버지와 할아버지, 할머니 제사를 각각의 기일에 맞추어 따로따로 지내고 있다. 제사 음식은 그저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하다. 특별한 세시풍속이 없다. 그저 농사만...
-
중학교를 졸업하고는 농사일을 했고 20대에는 탄광일을 했다. 이제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농사일을 한다. 1999년에 농협 융자를 받아 대지 80평에 건평 30평짜리 붉은 벽돌집을 지었다. 집 옥상에 비닐 하우스를 설치하고 태양초 고추를 말린다. 주로 논농사를 짓는다. 채소 중심으로 밭농사도 약간 짓는다. 가축은 키우지 않는다....
-
...
-
옛날에 여름에는 삼베(삼), 겨울에는 명베(목화로 만든 무명)로 만든 옷을 주로 입었다. 이러한 옷은 자급자족하였다. 또한 어렸을 때는 옷을 제대로 입지도 못했다. 국민학교 다닐 때에는 고무신 신은 사람이 대부분이었고 아주 부자 몇몇만 운동화를 신었다. 책가방도 없고 책보라고 해서 어깨 뒤로 둘러서 묶고 다녔다. 일할 때는 특별히 근무복이 별도로 있었던 것은 아니고, 남자들은 단벌...
-
원래 향교리는 4개의 자연 부락으로 형성되었다. "내가 사는 마을인 구암마을을 비롯하여 우리 마을 위쪽 마을이 향교마을, 아래쪽 마을이 장승마을[장승백이], 그리고 그 아래 마을이 현재 사직단이 있는 곳인 용정마을이지요. 이것이 옛날로 말하면 소위 향교리, 지금의 향교동이에요. 다른 마을은 차치하고 내가 사는 마을인 구암마을이 왜 ‘구암’이냐 하면, 풍수지리학상 금구몰리 즉, 거북...
-
김종한 할아버지는 1924년 갑자년 9월생으로 만 82세이다. 어머니는 그를 낳을 때 특별한 태몽을 꾸지는 않았다고 하신다. 아버지는 김해 김씨인데, 성명은 김영곤이고, 어머니는 밀양 박씨로 성명은 김순자다. 그의 아내는 경주 김씨로 금지 출신이다. "나는, 지금으로 치면 초등학교인 남원 용성보통학교를 다녔는데, 그 땐 왜정 때라 한국 사람은 다섯 양반인가 밖에 없고 전...
-
김종한 할아버지는 농업기술자협회, 원지도자연합회, 시노인회, 향교 등등에 참여해서 대한민국 안 가본 데가 거의 없다. 또한 중국, 일본 등 해외에도 자주 다녀왔다. 또한 지금으로부터 약 15년 전에 동아일보에서 독립 유공자들을 초청하여 중국의 독립투사들의 투쟁 장소에 현지 답사를 다녀온 적이 있는데, 그의 고숙이 독립투사셨기에 여기에 참여한 적도 있다. "나는 우리 마을...
-
옛날에 김종한 할아버지의 할머니와 부모님은 불교를 믿으셨다. 그는 유교(향교)를 믿고 있으며 아내는 무교이고 자녀 중에는 큰 딸만 기독교인이며 나머지는 무교이다. 집안에 사당이 있거나 마을에 제를 모시는 것은 없다. "우리 집은 옛날에 제사로 12분을 모셨는데 지금은 동생들과 나누어 지내고, 일부는 4대 선조 이상은 산 현장에서 가을이나 봄에 제사를 지내는 시제로 지내고 4대 안에...
-
그는 남원농업학교를 졸업한 후 정읍(구 태인면 소재)에 있는 금융조합에 처음 취직하였다. 여기에서 약 2년간 근무하였다. 그리고 스무 살 때 결혼한 후 1년 남짓 더 근무하다가 8월, 군입대 4-5개월 전에 남원 집에 와서 숨어서 살았다. 이때부터는 아내와 남원 집에서 계속 같이 살았다. 그러다가 1945년 8월 해방 후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 남원에 농촌지도소가 처음으로 생겨...
-
전라북도 남원시 쌍교동의 승사교 사거리에서 금지면 금곡교 사이에 있는 도로. 4·19혁명의 도화선이 된 고 김주열 열사의 정신을 기리고자 2001년 4월 19일에 김주열로로 도로 이름을 정하게 되었다. 1960년 3·15 부정 선거를 규탄하다 희생된 고 김주열 열사의 기념 사업의 일환으로 4·19혁명 기념일을 맞은 2001년 4월 19일 김 열사의 고향인 남원시 금지면...
-
...
-
나는 1940년 8월 21일 생으로 만 66세이고 경주 김씨이다. 친정 아버지께서 임실군 삼계면 면장을 12년 동안 하시다가 전남 광주 구청으로 근무지가 옮겨짐에 따라, 광주에서 중앙국민학교를 다녔다. 중앙국민학교를 다니던 중, 2학년 때 6·25가 발발하여 급히 고향인 임실로 피하게 되는 바람에 중앙국민학교를 중퇴하게 되었다. 임실로 와서는 임실 삼계국민학교로 옮겨서 여기에서 3...
-
현재는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나는 꿈이 너무 많아 앞으로 좋은 대학에 진학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집안 정원이 넓어서 각종 채소 등을 키우면서 상추, 호박, 고구마, 머욱(머위), 부추, 오이, 가지, 들깨, 방울토마토 등 30여 가지가 넘게 기른다. 마치 농장처럼 관리하면서 지낸다. 상추가 좋으니까 상추쌈을 자주 먹으며, 자녀들이 집에 오면 상추와 함께 삼겹살 파티를...
-
종교는 기독교이다. 현재 동부교회에 다니고 있다. 큰딸, 둘째딸도 교회에 다니고 있다. 제사는 1년에 4번 지낸다. 제사상의 음식으로는 과일류, 채소류, 탕류, 육류 등을 준비하였다. 제사상의 맨 첫 번째 줄에는 과일류, 둘째 줄에 채소류, 셋째 줄에 탕류, 넷째 줄에 육·포·적류, 그리고 맨 안쪽에는 잔, 반, 갱을 진설하였다. 즉, 잔, 반, 갱을 비롯하여 수육, 육적, 어적,...
-
주택의 형태는 지붕에 기와를 올린 한옥으로 자가 소유이다. 옛날 부대장이 살던 집을 구매해서 주변 집들과는 달리 집이 넓은 편이다. 대지는 80평, 건평은 30평으로 본채와 행낭, 그리고 간이 창고가 ‘ㄷ’자 모양을 갖추고 있으며 그 중앙에는 정원이 있다. 본채에는 화장실, 주방, 그리고 몸채로 구성되어 있다. 난방은 석유 보일러를 사용하고 있다. 기름 값이 천정부지로 올라서 문제...
-
전라북도 남원시 주생면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낙동리는 주생면 소재지(서만마을)로부터 서쪽 방향 2.5㎞ 지점에 위치한 농촌 마을이다. 고려 말기에 해주오씨(海州吳氏)가 마을을 형성하여 거주하고 있는 중에, 문중에서 큰 부자가 생기자 이로 인해 마을 이름을 ‘명당촌’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조선 중엽에는 여러 성씨들이 모여들면서 ‘네 가지 즐거움이 있는 마...
-
전라북도 남원시 도통동에 있는 자연 마을. 낙현마을은 요천수와 산줄기로 막혀 있어 아늑한 지형을 이루고 있다. 처음에는 마을 이름을 누적촌(累績村)이라 불렀는데, 이것은 전주이씨 종친이 세조에게 쫓겨 이 곳까지 오는 동안 쌓이고 쌓인 원한을 표현한 것이다. 그 후 마을 주위를 살펴보니 동쪽은 요천강 줄기와 고개가 있어, 물과 고개로 막힌 셈이어서 개강이름 ‘락...
-
전라북도 남원시 이백면에 속하는 법정리. 남원과 이백을 경계로 하는 요천교를 지나 좌우측에 마을이 위치하고 있으며, 광주 대구 고속 도로가 마을 뒤를, 24번 국도가 마을 앞을 통과하고 있어 교통이 편리한 평야부의 마을이다. 2007년 2월에 요천 권역 농촌 마을 종합개발 사업이 확정되었다. 계산(鷄山)마을은 마을의 대나무 곁에 단풍나무들이 있어 풍...
-
전라북도 남원에서 전라남도 순천까지 연결되는 산업도로. 남해안의 임해공업지역인 광양, 여천에서 순천, 남원을 거쳐 전주 방향으로 이어지는 최단거리의 도로이며, 화물차량의 통행량이 많은 산업도로이다. 밤치육교에서 고죽교차로까지는 국도 17호선, 고죽교차로에서 전라남도 구례군 마산면 구례교차로까지는 국도 19호선, 구례교차로에서 순천까지는 국도 17호선...
-
전라북도 남원시에 있었던 행정구역. 전라북도의 남동부를 점유하고 동남으로 경상남도, 전라남도와 접경을 이루며 1895년부터 1994년까지 있었던 행정구역으로 1995년 남원시에 통합되었다. 삼국시대 이래 우리나라 남부 내륙지방의 군사·교통상의 요지였다. 지금의 남원시 운봉읍·주천면·수지면·송동면·주생면·금지면·대강면·대산면·사매면·덕과면·보절면·산동면·이백면·...
-
전라북도 남원시 내와 남원시 주천면 방면을 연결하는 다리. 요천(蓼川) 왼쪽 기슭의 남원관광단지 소리길은 교통로로서의 역할이 미흡하였으며 남원시가지와 주천면을 연결하는 유일한 다리인 동림교는 2차로로 협소하였다. 이후 남원시 도통동 일대의 시가지 개발과 남원시청 이전에 따라 6차로인 시청로가 개설되었다. 지리산 국립공원 입구인 주천면으로 가는 지방도...
-
전라북도의 남동부에 위치한 시. 동남쪽은 지리산을 경계로 경상남도 하동군, 동쪽은 경상남도 함양군, 서쪽은 전라북도 순창군, 남쪽은 전라남도 구례군과 곡성군, 북쪽은 전라북도 임실군과 장수군에 접한다. 인구는 2009년 말 현재 88,496명, 행정구역은 23개 읍·면·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1995년 1월 1일 남원군과 남원시가 통합되었다. 삼국시대 백제 때에는 고룡군...
-
전라북도 남원시 신정동에 있는 전라선 철도역. 전라북도 남원시 동충동에 있던 구 남원역사는 부지가 4만 여 평이었고, 보선소가 설치되어 있었다. 과거에는 철도역이 없는 순창, 장수 지역은 물론이고 경상도 함양이나 거창에서도 남원역을 이용했던 탓에 남원역은 남원 지역과 인근의 경제 발달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러나 도로 교통망이 발달하게 되고, 접근성이 떨어지는...
-
전라북도 남원시 대강면 옥택리와 주생면 내동리 사이에 있는 광주 대구 고속 도로의 터널. 남원시 서부 대강면과 주생면 경계는 남북으로 좁고 길게 띠 모양으로 대강엽리상화강암이 분포한다. 150m 내외의 평지 사이에 350m 내외의 문덕봉[599.4m] 산지가 남북으로 가로막고 있는데, 광주 대구 고속 도로는 동서로 달리기 때문에 해발 192m 지점에 터널을 건...
-
전라북도 남원시 수지면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남창리는 섬진강을 분기점으로 전라남도 고달면과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법정리로서의 남창리는 행정리인 용강리·신평리·남창리로 나뉘어 있다. 전라북도 남원시 수지면 남창리는 용강, 또는 남원부의 조세 보관창고인 남창이 있어 남창부라 했다. 남창마을은 1610년(광해군 2)경 해주오씨가 최초로...
-
전라북도 남원시 인월면 건지리에 속하는 행정리. 마을의 지형이 물이 풍부하지 못한 지형이라 마을 사람들이 물을 갈망하는 심정에서 건(乾)자를 따서 건지(乾芝)라 이름지었으며, 건지의 안쪽 마을이라는 뜻으로 내건(內乾)이라 부르게 되었다 1650년경 함안조씨(咸安趙氏)와 김해김씨가 정착하여 마을을 이룬 이후 여러 씨족들이 이주하면서 마을을 이루었다. 예부터 운봉 여원치 넘...
-
전라북도 남원시 이백면에 속하는 행정리. 안(安)씨가 사는 마을이라 하여 안골이라 하였는데, 뒤에 한자로 바뀌면서 뜻이 와전되어 안골이 내(內)동으로 바뀌었다고도 하고, 안골과의 경계로 가운데 숲(古松)을 두고 그 안쪽은 숲 안, 그 바깥쪽은 숲 밖이라 하였으나, 지명이 한자로 바뀌면서 숲 안이 내동으로, 숲 밖이 외동으로 되었다. 내동마을에는 약...
-
전라북도 남원시 주생면에 속하는 법정리. 내동마을은 한양조씨(漢陽趙氏) 조찬한(趙纘韓)이 정치에 뜻을 잃고 낙향(落鄕)하여 이 마을에 정착한 후 깊은 계곡 안에 있었다 하여 마을 이름을 안골이라 하였다. 그 후손들이 지금까지 마을을 형성하여 내동(內洞) 마을의 전통을 지켜오고 있다. 본래 남원군 남생면 지역으로 안골 또는 내동이라 했는데, 1914년 행정구역...
-
전라북도 남원시 향교동이 관할하는 법정동인 내척동(內尺洞)에 속하는 자연 마을. 고려 선종 때인 1200년경 권씨(權氏)가 들어와 마을을 형성하였으며, 행정동인 향교동 관할이다. 풍수설에 의하면 부근의 산세가 여인이 베틀에 앉아 베를 잣대로 재고 있는 형국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여자를 상징하는 ‘안 내(內)’를 써서 내동(內洞) 마을이라 하였다. 내척동은 내...
-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에 있는 법정리. 마을 입구 약 300m 지점에 산신바위라는 기암이 있는데, 산신령이 노니는 곳이라 하여 영대(靈臺)라 칭하고, 그 안쪽 마을을 안영대, 바깥 마을을 바깥영대라 하였다. 본래 운봉의 산내면 지역으로 안영대 또는 내령이라 했는데,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횡치리·외령리·팔랑리를 합하여 내령리라 하고 남원군 산내면에 편입되었다....
-
전라북도 남원시 아영면(阿英面) 인풍리(引風里)에 속하는 행정리. 내인리는 매산리·외인리와 함께 법정리인 인풍리에 속해 있다. 전라북도 남원시 아영면 소재지(광평)에서 서남쪽으로 5㎞ 지점에 위치하며, 아영면의 관문이다. 고려 1380년(우왕 6)에 이성계가 황산에서 왜적을 섬멸하기 위해 이 곳의 바람을 끌어와 그 바람을 이용하여 왜장 아키바쓰[阿只拔都]를 물...
-
전라북도 남원시에 속하는 법정동. 내동과 미척에 각 한자씩 따서 지금의 이름으로 되었다. 내동마을은 1200년경 권씨가 정착하여 생겨난 마을이며, 미동마을은 1540년경 오씨가 정착하여 생겨난 마을로 마을 뒤 산기슭에 미륵부처가 있다. 보성마을은 1962년 8월에 집단 이주된 마을이며, 재실마을은 1540년경 오씨가 정착하여 이룬 마을이다. 본래 남...
-
전라북도 남원시 쌍교동과 죽항동을 잇는 골목길. 골목길이란 차량 통행이 곤란한 지역으로 좁은 길, 또는 사람 통행 위주의 기능을 수행하는 도로를 가리킨다. 널벙바위에는 옛날 어떤 힘센 장수가 바위를 번쩍 짊어져 남원성(南原城) 동문 앞에 판 해자(垓字)에 돌다리로 놓았다는 전설이 전한다. 현재 널벙바위는 광한루원(廣寒樓苑)으로 옮겨져 있으며 널렁바우(넓은바위)라고도 한다...
-
...
-
노봉마을에는 고려 초에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이곳을 지나다가 터를 잡아 주었다는 호성암(虎成菴)이 있다. 이 암자는 남북의 분단 상황 속에 무장공비의 은신처가 된다 하여 철거되어, 지금은 석벽에 조각된 마애불상과 샘만 외롭게 남아 있고, 능선 넘어 둔터암이라는 암자터만이 남아 있다. 또한 사액서원인 노봉서원이 있는데 불행하게도 대원군의 서원 철거령에 의하여 훼철되고 지금...
-
노봉마을의 설날 풍습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것은 없다. 다만 달라진 것이라면 예전에는 동네 꼬마들이 마을의 어른들을 찾아뵙고 일일이 세배를 드렸지만 지금은 대충 일가들의 집만 다니면서 드리는 것이 달라진 점이다. 음식도 떡국 끓이고, 시루떡 하고, 엿 만들고 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 노봉마을은 설날 준비하는 음식 중 특별히 엿을 많이...
-
노봉마을의 총면적은 215.2㏊로써 사매면 전체면적의 6.4%을 차지하고, 가구는 47호로 사매면 전체의 5%이고 인구는 110명(남 55명, 여 55명)으로 사매면 전체의 6%이다. 노봉마을은 논농사가 주업이나 야산이 많아 구릉 지형이기 때문에 과수단지가 많은데, 과수(사과, 배, 포도, 복숭아 등), 시설 채소(상추, 딸기, 오이), 인삼, 엽연초, 화훼, 축산(한우...
-
사매면(巳梅面)은 사동방(巳洞坊)과 매내방(梅內坊) 또는 매안방(梅岸坊)이 있었던 지역으로, 1897년(고종 34)에 8도를 13개 도로 개편하면서 2개방(사동방, 매안방)이 면으로 바뀌어, 사매면이 되었다. 본래 남원군의 사동면과 매내면 또는 매안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매내(안)면의 상신(上新), 중신(中新), 하신(下新), 신촌(新村), 세촌(細村...
-
노봉 마을에서는 삭녕 최씨가 가장 유명한 집안이다. 처음 마을을 세운 최수웅은 세조 때 명신 최항의 손자다. 삭녕 최씨는 대를 이으며 문과에 급제, "6대 등과"로 이름을 떨쳤다. 이 가문은 10현 8한림 5대 진사를 배출했다. 특히 그의 5대손 최온이 폄재라는 호를 사용하여 그의 집안은 세칭 폄재 집안으로 불렸다. 폄재 최온(崔薀)[1583~1659]은 조선 중기의 문...
-
노봉마을에는 고려 초에 도선국사(道先國師)가 이곳을 지나다가 터를 잡아 주었다는 호성암(虎成菴)이 있다. 이 암자에는 아름다운 전설이 전해온다. 옛날 어느 도승이 이곳 골짜기에 이르게 되었다. 그 때 난데없이 호랑이가 나타나 도승 앞에 꿇어 엎드리는 것이었다. 도승은 깜짝 놀라며 호랑이에게 물었다. “너는 어이 나를 해치려 하는가?" 이 말을 들은 호랑이는 입을 크게 벌...
-
남원시 사매면은 남원 시내에서 춘향터널을 통과하여 12㎞ 북단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쪽으로는 계룡산을 경계로 보절면, 서쪽으로는 노적봉을 경계로 순창군 동계면, 임실군 삼계면과 오수면을 접하고, 남쪽으로는 춘향터널을 경계로 광치동, 대산면과 접하며, 북으로는 덕과면과 인접하고 있다. 국도 17호 4차선이 북에서 남으로 면 중심지를(6.3㎞) 통과하고 있으며, 전라선이 면...
-
전라북도 남원시에 속하는 법정동이자 행정동. 원래의 마을 이름은 술메(술뫼:戌山)다. 처음엔 노암동 뒷산이 개가 앉아 있는 형국이라 하여 개술(戌)자와 뫼산(山)을 썼으나 한자로 옮기면서 음이 같은 술산(戌山)으로 바뀐 것으로 추측된다. 그 뒤 고려 중기에 이 지방의 관리가 이곳을 지나다 지형이 기러기가 나는 형상이라 하여 해오라기노(鷺)자와 바위암(岩)자를 취해 노암이...
-
전라북도 남원시 노암동 쑥고개 삼거리에서 태동고개까지의 주간선도로. 현 지명인 노암(鷺岩)을 사용한 데서 유래한다. 원래는 술뫼라 했는데, 고려 중엽에 마을 주변의 지형이 기러기가 나는 형국이라 하여 노암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노암동에 위치한 주간선도로이며, 금암봉 삼거리에서 문치 삼거리로 이어진 그 사이에 쑥고개 삼거리로부터 태동고개까지 이어진 도로이다. 이...
-
전라북도 남원시 고죽동에 있는 소로. 누른대길은 누른대, 즉 황죽(黃竹)에서 유래한다. 처음에는 ‘대나무가 괴로워한다’는 뜻에서 고죽리(苦竹里)라 하였으나, 나중에 황죽 또는 누른대라는 말로 불렀다. 원래 이곳은 조선의 권신으로 연산군 때 무오사화를 일으킨 무령군 유자광이 태어난 곳이라고 한다. 유자광이 태어날 때 천마봉 아래의 지운(地運)을 흡수하여 대나무가...
-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덕동리에 속하는 행정리. 달궁리는 법정리인 덕동리가 행정편의를 위해 덕동리와 달궁리로 분리된 것이다. 지리산 달궁계곡이 있는 산악 지역이다. 달궁은 삼한시대 때 마한(馬韓)의 별궁(別宮)이 있었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는데, 거기에서 이름이 유래하고 있다. 기원전 84년(마한의 효왕 30)에 마한과 진한 간의 싸움이 있었다. 이...
-
전라북도 남원시 아영면 아곡리에 속하는 행정리. 법정리인 아곡리가 당동리와 아곡리의 2개 행정리로 분리되어 생겨났다. 아영면 소재지(광평)에서 서남 방향으로 농로를 따라 약 6.5㎞ 지점에 있다. 마을 이름을 땅골·당골·당동이라 부르는데, 원래는 복성동이라 했다고 한다. 이 마을의 개울 상류에는 새목이재·복성이재(일명 두고개)와 장삼이 등이 있는데, 당시는 통칭하여 복성...
-
전라북도 남원시 조산동에서 금동까지 이어지는 소로. 당산은 원래 지방의 토지나 마을에 수호신이 있다고 하여 신성시하는 마을 근처의 산이나 언덕을 말한다. 당산길은 조산동에 있으며, 조산동은 풍수지리에 의해 만든 수구막이의 산이 있어서 조산이라 하였다. 남원의 지세는 배가 떠나가는 행주형이어서 인물과 재물이 귀하다고 한다. 그래서 배가 떠나가지 않도록 인공적으로...
-
전라북도 남원시에 속하는 법정면. 전라북도 남원시에 속하는 읍·면·동의 하나로 전라남도와 도계(道界)를 이루는 지역이다. 섬진강의 좌안(左岸)으로 동·북·서부는 해발고도 350m 정도의 산지이고, 해발고도 100m 정도의 분지와 남부 섬진강 연안에는 넓은 평야로 이루어져 있다. 직할 하천인 섬진강이 인근 순창군 및 전라남도 곡성군 지역과 경계를 이루며 면 지역...
-
전라북도 남원시 대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대곡리란 마을 이름은 이곳이 원래 대나무가 많아 대실, 대곡이라 부른데서 유래되었다. 이 마을은 상대마을과 하대마을로 형성되어 있다. 하대마을은 지금으로부터 약 500 여 년 전에 장수황씨가 이주하고 정착하여 마을이 형성되었고, 상대마을은 함안조씨, 화순최씨, 나주진씨 등이 이주, 정착하여 마을이 형성되었다. 본래 남원...
-
전라북도 남원시 산동면에 속하는 법정리. 대촌리와 신기리에서 각 한자씩 따서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 조선 세조 때인 1460년경 능성구씨가 처음 정착하였다. 그 뒤 부안김씨, 서산유씨가 이주해와 마을이 형성되었다. 본래 남원군 산동면 지역으로 큰말 또는 대촌이라 했는데,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등구리·선촌리·신기리·대촌리·대치리의 각 일부...
-
전라북도 남원시 왕정동에 있는 대복사(大福寺)로 진입하는 소로. 대복사는 교룡산성(蛟龍山城) 남쪽으로 뻗은 산줄기 아래에 있으며 893년(진성여왕 7) 도선국사(道詵國師)가 남원 고을의 교룡산(蛟龍山)이 강세이므로 이를 누르기 위하여 대복사를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도선국사가 본 풍수 상으로 남원의 지세는 행주형(行舟形)이다. 교룡산이 객산이고 백공산...
-
전라북도 남원시에 속하는 법정면. 대곡면과 시라산면(정산면)이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통합되었는데, 이 때 대곡면과 시라산면의 두 지역 면의 이름을 따서 대산면이라 하였다. 본래 남원군 지역으로서 시라산이 있으므로 시라군방 또는 시산면이라 하여 노촌, 신계, 운교, 옥전, 율정, 심곡, 왈길 등 7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대...
-
전라북도 남원시 산동면에 속하는 법정리. 대상리는 산동면 소재지로부터 북동쪽으로 5.5㎞ 떨어진 곳에 위치하며 남쪽으로는 대성산, 서쪽으로는 천황봉에 둘러싸인 전형적인 산촌 마을이다. 최근 상신리에 만행산 천문체험관이 설립되었다. 대상리는 대치(大峙)와 상점(上占)의 이름에서 따왔으며, 상신리는 상점과 신기의 이름에서 따왔다. 대상리는 1...
-
전라북도 남원시 사매면에 속하는 법정리. 대신리는 2개의 행정리, 즉 대산리(大山里)·상신리(上新里)로 나뉘어 있다. 혼불의 고장인 사매면의 면소재지로부터 남동쪽 3㎞지점에 위치해 있으며, 보절면과 광치동의 경계이다. 대신리는 원매안(元梅岸)·여의(如意)터라고 부르기도 한다. 원매안은 당초 ‘구내방(丘內坊)’이었는데, 약 300년 전 공자(孔子)의...
-
전라북도 남원시 사매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이름을 대율리라고 부르게 된 것은 병풍처럼 둘러싸인 마을의 뒷산에 밤혈[栗穴] 명당이 있고, 마을 서편의 서촌마을 그 밑의 골짜기 마을을 모굴, 남원을 가는 길목에 있는 쌍거리(삼거리), 박석치 등을 통칭하여 한밤(큰밤)·한배미[栗峙] 등으로 불리어오다가 1860년경 큰대(大) 밤율(栗)을 따서 ‘대율’이라 고쳐 불렀다. 마...
-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법정리로서의 대정리에는 중기리(마을)·대정리(마을)·매동리(마을)의 3개 행정리가 있으며, 산내면 사무소가 위치하고 있다. 대정리가 처음으로 형성되었던 솔고개에 큰 샘이 있어 ‘큰 샘이 있는 마을’이라 하여 ‘큰샘몰’이라 하였다. 솔고개는 고개에 소나무가 많이 있어서 솔고개라고 하였다. 중기리는 사...
-
노봉마을은 최명희 작가가 1980년부터 17년 동안 혼신을 다해 쓴 대하 예술소설 『혼불』 배경이 되는 마을이다. 『혼불』은 1930년대 후반을 전후로 무너져 가는 종가를 지키려는 종부의 삶과 천민들의 생활상, 각종 민속놀이, 세시풍속, 관혼상제, 음식, 노래 및 이 지역의 역사, 설화, 무가, 두레 풍습은 물론 민간신앙을 자세히 묘사한 민속백과사전격인 작품이다. 문단에서 한국 최...
-
전라북도 남원시에 속하는 법정면. 1897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덕고방(德古坊)과 적과방(迪果坊) 2개의 방을 하나로 합쳐 덕과면으로 바꾸어 부른데서 유래한다. 덕과면은 덕고방(德古坊)과 적과방(迪果坊) 등 2개의 방이 있었던 지역이다. 1897년(고종 34)에 8도를 13개 도(道)로 개편하면서 방이 면으로 바뀌었고, 덕고면이 덕과면의 중심이 되었다. 본래 남...
-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덕동리는 지리산 서북부의 산악 지역이다. 법정동으로서의 덕동리는 덕동리(마을)와 달궁리(마을)의 2개 행정리로 나뉘어 있다. 예전에는 지리산의 오지마을이었으나 요즘은 지리산과 뱀사골 계곡·달궁계곡을 찾는 휴양촌으로 각광받고 있다. 덕동마을은 1800년경 동래정씨 일가가 속세를 떠나 산 좋고 물 맑은...
-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에 속하는 법정리. 덕산마을은 처음엔 삼면이 고산준령으로 둘러싸여 움막같은 집 한 두 채만 있어 너무 조용하고 한적한 곳이다 보니 외로울 독(獨)자의 독산(獨山)이라 하였다. 그 뒤 마을 선비 중에 덕이 많은 어른이 서당을 세우고 2세 아동들을 가르쳐 마을 계몽의 큰 뜻을 높이 기리기 위해 마을이름을 덕산(德山)이라 고쳐 부르게 되었다고...
-
전라북도 남원시 덕과면에 속하는 법정리. 남원시 덕과면에 속한 법정리로, 덕동리와 수촌리를 행정리로 포함하고 있다. 남으로는 사매면, 북으로는 보절면, 그리고 오수면·지사면과 인접해 있다. 인물로는 진주영장을 지낸 김종록이 있고, 신태의의 효자정려가 마을 앞에 세워져 있다. 덕촌리는 본래 남원군 덕고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덕동...
-
전라북도 남원시 주천면에 속하는 법정리. 회덕리와 노치리를 병합하고, 회덕과 노치 두 마을의 이름을 따서 덕치리가 되었다. 회덕마을의 이름은 마을 주변에 있는 덕두산과 덕음산의 덕을 한 곳에 모아 마을을 이루었다 해서 한자 표기로 회덕이라 하였다. 노치마을은 덕음산·지리산·만복대 등의 산줄기의 높은 곳에 갈대가 많아 갈재라고 하다가 ‘갈대 노’자를 사용하여 한...
-
전라북도 남원시에 있는 사람이나 차들이 다닐 수 있도록 만든 비교적 큰 길. 전라북도 남원 지역의 도로망 형태는 지형적인 요인으로 남북 축으로 이루어져 있어, 횡축 방향의 교통체계는 미흡한 편이다. 하지만 현재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된 광양만의 동북아 대형 중추항만 발전계획으로 중요성이 커지는 광양~남원~전주 간 고속국도가 건설 중에 있다. 또한 광주~남원~대구...
-
전라북도 남원시 보절면에 속하는 법정리. 도룡리는 보절면 소재지로부터 북쪽 방향으로 2.5㎞ 지점에 위치한 마을로 도촌마을, 용평마을, 안평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쌀과 보리 위주의 농사를 지으며, 일부는 축산과 양잠업에 종사한다. 도촌마을은 천황봉 계곡에서 흘러내린 맑은 하천이 오고가는 길손의 마음속까지 시원하게 해 준다 하여 똘촌이라 불리다가 도촌...
-
전라북도 남원시 주생면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마을 앞산 도산을 가운데 두고 상도리와 하도리로 구분되었으나, 병합하여 주생면 도산리가 되었다. 법정리로서의 도산리는 상도리와 도산리의 2개 행정리로 나뉘어 있다. 상도리와 하도리가 있어 상도리는 웃말이라 부르기도 했다. 하도리는 1994년 이전까지는 하도(下道)로 불렀다. 그런데 주생면과 인접한 금지면 하도...
-
전라북도 남원시 인월면에 속하는 행정리. 동복오씨 성을 가진 한 선비가 이곳에 터를 잡고 살았더니 마을이 안정되고 가족들이 날로 건강해지자, 정신 수양의 도장이라는 뜻으로 도장(道庄)이라 불렀다고 한다 1852년 동복오씨가 처음 정착하여 마을을 개척하였다. 그후 동복오씨가 다른 곳으로 거처를 옮긴 뒤에 김해김씨가 이주하여 마을을 이루었다. 본래 운봉군 동면 지...
-
전라북도 남원시에 속하는 법정동이자 행정동. 행정의 중심지(시청 소재)이며, 주택지가 많고 다가구 주택이 있어 인구 밀집도가 높다. 산림이 많고, 전답이 많아 3차 산업 위주이다. 통한면의 통기리·동도리 일부와 갈치면의 월천리 일부를 병합하여 동도와 통기의 이름을 따 도통리라 하였다. 일설에 따르면 한 도사가 도와 통을 합치면 인재가 많이 날 것이라 하여 도통...
-
전라북도 남원시 아영면 갈계리에 속하는 행정리. 천년 묵은 칡덩굴이 우거지고 마을 앞으로 냇물이 흐르고 있어 ‘칡 갈(葛)’자와 ‘시내 계(溪)’자를 써서 갈계(葛溪)라 하였다가 갈계의 동쪽에 위치한다 하여 동갈이 되었다. 1150년경 창원정씨(昌原丁氏) 일가가 처음 터를 잡아 마을을 형성하였으며 그 후 형씨(邢氏)가 들어왔고 조선 초기 함양박씨(咸陽朴氏)가 옮겨와 살면...
-
전라북도 남원시 죽항동과 신촌동을 연결하는 요천 위의 다리. 동림이란 지명에서 유래되었는데 전에 큰 숲이 있어 동림 또는 장림(長林), 숲정이라고 했다. 남원의 비보사찰인 선원사에서 괘불을 걸고 대법회를 열고 가뭄이 들었을 때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지금의 동림교에서 광한루원 앞 십수정까지는 숲이 있었으며 남원의 허한 기를 보충하기위해 인위적으로 방...
-
전라북도 남원시 죽항동에 있는 옛 남원성(南原城)의 동문(東門)이 있던 곳에 위치해 있는 교차로. 사거리란 도로와 도로가 서로 엇갈린 교차로 중에서 십자형으로 갈린 교차로 유형을 말한다. 남원성은 신라 신문왕(神文王)[?~692] 때에 처음 축조되었으며, 1597년 왜군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다시 크게 쌓고 수리하여 담을 높였다. 남원성 안에는 남북과 동서로...
-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에 속하는 법정리. 동천리는 동상리(東上浬), 동하리(東下浬)의 2개 행정리로 구분되어 있으며, 긴 하천이 마을의 동쪽을 감고 흐른다. 중국 송나라에 운봉이란 고을이 있었다. 그 곳에는 동천·서천·북천이 있었는데 조선의 운봉 지형이 중국의 그 곳과 꼭 닮았으므로, 운봉의 모든 지명과 하천의 이름까지 송나라를 그대로 따온 것이라...
-
전라북도 남원시에 속하는 법정동이자 행정동. 동충동은 본래 남원의 서봉면(棲鳳面)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동촌(東村)·창동(倉洞)·양동(楊洞)과 통한면의 충촌(忠村)을 병합하여 동촌과 충촌에서 첫 자를 따 동충리라 하였다. 1930년 남원읍에 편입되어 동부 동충리, 서부 동충리, 북부 동충리로 나누어져 있었으나 1981년 남원읍이 시로 승격...
-
전라북도 남원시 어현동 남원관광단지에 있는 거리. 남원은 동편제 판소리의 창시자인 송흥록과 아우 송광록, 손자 송만갑은 물론 김정문, 강도근과 여류 명창인 이화중선, 박초월, 안숙선, 강정숙 등이 태어나 소리를 익힌 곳이기도 하다. 이러한 예악을 바탕으로 국내 유일의 국립민속국악원을 비롯해 가왕 송흥록 선생 생가의 판소리 탯자리와 동편제거리가 있으며 동편제 판...
-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 동천리에 있는 행정 자치부 지정 정보화 마을. 정보화 마을 사업은 농어촌이나 산촌과 같이 정보화에 소외된 지역에 초고속 인터넷 이용 환경 조성과 전자 상거래와 정보 콘텐츠를 구축하여 지역 주민의 정보 생활화를 유도하고 실질적인 수익을 창출함으로써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을 주기 위해 시작한 사업이다. 2016년 7월 현재 행정 자치부 지정 정보화...
-
전라북도 남원시 아영면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두락리는 이동마을을 행정리로 포함하고 있다. 아영면 면소재지에서 동북쪽에 위치하며, 경상남도 함양군과 경계가 된다. 인월면 유곡리와의 경계 능선에 가야 고분군 30여 기가 분포되어 있다. 삼국시대 백제와 신라의 국경 마을이어서 남자들이 싸움터에 끌려가 여자들이 농사일을 하였는데, 흉년이 들어 고사를 지냈더니...
-
전라북도 남원시 송동면에 속하는 법정리. 두신리는 행정리인 신촌리와 두곡리의 2개 행정리로 나뉘어 있다. 남원시에서 10㎞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서쪽으로는 요천수를 경계로 금지면과 인접하고 있다. 본래 남원군 두동면 두곡리 지역으로 두실, 망골 또는 두곡이라 했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신촌리·두곡리를 병합하여 두곡과 신촌의 이름을 따서 두신리라...
-
전라북도 남원시 금동에 있는 도로. 들독놀이는 한국식 역도(力道)로서 농경 사회에서 행해졌던 중요한 민속놀이의 하나이다. 일정한 크기의 돌을 들어 올릴 수 있는지의 여부로 장정처럼 일을 잘 할 수 있는지를 평가하여 머슴의 품삯인 새경을 정하는 기준이 되었다. 오늘날은 들독놀이가 행해지지 않고 있으나 예전에는 음력 6월 15일 영천이씨 집과 진주강씨 집 머슴들의 새경을 결...
-
전라북도 남원시 덕과면에 속하는 법정리. 만도리는 만동리와 도촌리를 행정리로 포함하고 있다. 남원시 북서쪽에 위치하며, 남쪽으로는 사매면, 북쪽으로는 보절면과 인접해 있다. 만동리는 소석지(蘇錫智)가 처음 터를 잡을 때 마을이름을 ‘만적’이라 하였으나 1555년(명종 10) 홍주이씨 이성춘이 자포실에 살다가 이웃 산수동으로 이주한 후 만적과 산수동을...
-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에 속하는 행정리.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마을 앞 200m 지점에 고양이 모양의 바위가 있어 괭이골이라 하였고 한자로 ‘고양이 묘(猫)’자를 써서 묘동(猫洞)이라 하였다. 괭이는 고양이의 전라북도 방언이다. 또한 마을의 위치가 명당이라 하여 ‘무덤 묘(墓)’자를 사용하여 묘동(墓洞)이라고도 하였다. 매계리는 땅의 형세가 매화꽃 모양이라 하여 붙여진 이...
-
전라북도 남원시 아영면 인풍리에 속하는 행정리. 매산리는 아영면 소재지(광평)에서 서남쪽으로 4㎞ 지점에 위치하며, 아영면 입구에서 1.3㎞ 오다 보면 왼쪽 첫 마을이다. 시군도 제29호선과 접하고 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마을의 지형이 매화낙지(梅花落地) 형국이라 하여 매산이라 했다. 1530년경에 남양홍씨가 방죽 옆에 집을 짓고 살면서부터 이씨...
-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매요리는 운봉읍 소재지로부터 4㎞ 지점까지 군도 8호선이 마을 앞을 지나고 있으며, 마을 뒤로는 광주 대구 고속 도로가 통과한다. 고남산과 황산의 날줄기로 장수군 번암면의 경계선 상에 위치하고 있다. 지세가 말의 형국을 닮았다 하여 ‘말 마(馬)’자와 ‘허리 요(腰)’자를 합하여 마요리(馬腰里)라 칭하게 되었...
-
전라북도 남원시 산동면에 속하는 법정리. 본래 마을 주변에 나무가 무성하여 나무골로 부르다, 지명을 한자로 바꾸면서 목동으로 바뀌었다. 목동은 1570년(선조 3) 김일의 20세 손인 김익복이 부안군에서 출생하여 남원군 금지면 순흥안씨를 아내로 맞아 세 아들을 낳았다. 세 아들은 마을 뒤 풍곡사 주변의 운중발룡형(雲中發龍形)의 터에 선조를 모시면 자손들에게 큰...
-
전라북도 남원시 금동 공설시장 부근에 있는 골목길. 본래 남원의 5일장은 광한루원 정문 부근에 있었으나 1970년대 초에 일어난 화재로 인해 시장이 폐쇄되자 현재의 이곳으로 옮겼다. 공설시장이 생기기 전 미나리꽝이 있었던 길로 공설시장이 생기기 전에는 이 부근이 모두 미나리꽝이었다. 미나리꽝은 미나리를 심는 논을 지칭하는 말로 땅이 걸고 물이 많이 괴는 곳이 좋다. 골목...
-
...
-
본인의 친정은 덕동이다. 1936년에 6남매중 4째로 태어났으며 외동딸이었다. 현재 덕동에서 살고 있다. 시집은 덕동에서만 7대째 살고 있는 집안이다. 같은 마을에 살던 친정 숙모가 중매를 서서 15살에 결혼을 하게 되었다. 결혼하던 해는 여순반란사건으로 마을 사람들이 모두 소개를 당하던 해였다. 당시 친정 식구들은 산내로 소개를 갔다. 그러나 낮에는 마을에 와서 군인들이 지키는...
-
여가 같은 것은 없다. 아들 내외가 하는 일을 도와 아침부터 저녁까지 무슨 일이든 한다. 일이 없을 때에는 가만히 앉아 있는다. 식당에 온 사람들 보는 것도 재미있다. 옛날에는 친구들이 마을에 많이 있었다. 살림하는 것이나 시집살이 하는 것, 자녀 키우는 것 등으로 이야기도 많이 했다. 그러나 그 친구들이 죽기도 하고 마을을 떠나 다른 도시로 이사를 가기도 해서 지금은 친구라고 할...
-
종교는 절에 다니는 것이다. 지리산에는 절이 많이 있다. 특히 뱀사골에는 절이 많다. 본인은 산내면에 있는 실상사에 다닌다. 다리도 아프고 거리도 멀고 해서 자주 다니지는 못하지만 초파일에는 꼭 다닌다....
-
덕동에 시집 온 이후 현재 집은 세 번째 지은 집이다. 산내로 소개될 때 군인들이 동네에 들어와서 집을 모두 불질러 버렸다. 집을 그냥 두면 사람들이 소개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아예 집을 불질러 버린 것이다. 5년이나 산내에서 살다가 돌아와서 집을 지었다. 그 때 지은 집은 살림집이어서 그리 크지는 못하였다. 그저 농사짓고 살기에 적당한 집이었다. 그러다가 관광도로가...
-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부운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반선(半仙)은 본래 반산(半山)이었으며 일명 금포정(錦袍亭)이라고도 하였다. 옛날 반선 입구인 지금의 전적기념관 위치쯤에 송림사(松林寺)라는 절이 있었다. 송림사에는 매년 칠월 백중날 불심이 가장 두터운 스님 한 사람이 신선대에 올라 기도를 하면 실제로 신선이 된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었다. 어느 날 송림사...
-
전라북도 남원시 대강면에 속하는 법정리. 방골[芳洞]과 닥밭골[楮洞]을 함께 부르는 이름이다. 마을의 서쪽에 꽃을 상징하는 꽃봉[花峯]이 있고, 남쪽에는 매화꽃을 상징하는 매산등[梅山嶝]이 있으며, 마을 주변의 산세가 마치 피어나는 연꽃처럼 보인다 하여 꽃다운 마을이라는 뜻으로 ‘꽃다울 방(芳)’자와 ‘골을 동(洞)’자를 쓴 방동(방골)이라 한 것이다. 마을의...
-
전라북도 남원시 대강면에 속하는 법정리 당초 ‘방뫼(매)’로 불렀으며 이를 ‘꽃 방(芳)’자와 ‘뫼 산(山)’자를 써서 방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마을 터가 바구니(속칭 소쿠리)처럼 생겼다하여 바구니터로 전해진다. 1660년경 광산김씨가 처음으로 터를 잡았다고 하며, 1710년경 밀양박씨와 문화류씨(文化柳氏)가 이주하여 왔다고 한다. 본래 남원군 견소곡면 지역으로 방메...
-
전라북도 남원시 금지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뒤 산록의 꾸지뽕나무에 꽃이 다발지어 있는 것을 보고 ‘꽃다울 방(芳)’자와 ‘마을 촌(村)’자를 써서 방촌(芳村)이라 부르게 되었다. 1168년경 예조 판서의 관직을 그만두고 한양에서 내려온 나주박씨(羅州朴氏)가 산록의 꾸지뽕나무에 꽃이 피어 있는 것을 보고 터를 잡아 처음 정착하였다. 그 후 나주박씨는 떠나고 금성나씨·밀...
-
전라북도 남원시 주천면에 속하는 법정리. 큰 배촌리와 덕촌리에서 각 한자씩 따서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 1650년경에 남평문씨가 처음 이주, 정착하여 형성되었으며, 그 후에 이씨와 문씨 등이 이주해와 오늘의 마을이 형성되었다. 본래 남원군 주촌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덕촌리·배촌리·상주리·하주리 각 일부를 병합하여 배덕리라 하여 주천면에 편입되었다....
-
...
-
배종수 할아버지로부터 들은 마을의 유래와 역사는 다음과 같다. "실상사가 생기면서 마을도 생겼다고 해. 실상사는 참 사연이 많은 절이야. 왜정 때는 왜놈들 수비본부가 주둔했고, ‘여순반란’ 사건 때는 국군 본부, ‘6·25’ 때는 인민군 본부가 있었어. 지리산에 숨어 있는 반란군들을 토벌하려면 평지에 있는 실상사를 주둔군 본부로 활용하는 게 가장 유리했지 않았나 생각해....
-
감의 껍질을 벗겨 말린 감을 곶감이라 한다. 곶감은 장기간 저장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인데 건시라고도 한다. 곶감은 제사를 모실 때 바치던 계절식품이기도 하며 간식용으로도 애용되었다. 수정과를 만들 때 넣어서 단 맛이 우러나게 하는 용도로 활용되기도 했다. 곶감이 언제부터 사용되기 시작했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조선시대 때 중국에 보낸 예물 목록 중에 곶감이 들어 있는 것으로 보...
-
"올해로 일흔 일곱이므로 1930년 생이야. 본관은 김해 배씨(裵氏)이고 조상 대대로 경남 합천에서 살았어. 할아버지 때 백일리로 이주했다고 해. 할아버지께서 합천에 살 때 어떤 친척이 고조부 묘 옆에다 몰래 묘를 쓴 일이 있었대. 그 일로 고향에서 크게 싸우고 이곳으로 이사 왔다고 들었어. 나는 여기서 태어나서 지금까지 지내왔지. " "해방되기 바로 1년 전인가? 1944년에 산...
-
현재 배종수 할아버지는 '사단법인 6·25 참전 전우기념사업회 남원시 지회' 부회장과 '남향 쌈지돈 장학회' 부이사장의 직책을 맡고 있다. 주로 '남원 행정동우회' 사람들과 친분을 나누고 있다. 흥이 나면 ‘두만강’, ‘처녀 뱃사공’ 등의 예전 노래를 즐겨 부르고 요즘 노래는 잘 모른다....
-
"불교 신자야. 백일리 주민들은 실상사를 의지하여 생활하고 있으므로 대부분 불교 신자야. ‘6·25’ 때 공비 토벌을 목적으로 실상사를 불태우려고 했는데, 호국군 중위로 있었던 내 친형(배종석)이 극력 만류한 덕분에 화마를 면한 거야. 아마 우리 집안은 불교와 깊은 인연이 있나봐. 내가 김제의 불교 학교인 금산중학교에 진학한 것도 실상사에서 학비를 대주었던 덕분이야. " 해마다 명...
-
"1957년 경 지리산 빨갱이들이 완전히 토벌되자 마을에도 평화가 찾아왔어. 나는 산내면사무소에 취직해 총무과에서 일했어. 공무원 생활을 하다가 5.16 혁명을 만났는데, 군대 안 간 사람을 잡아들이더군. 나는 가슴과 팔에 입은 총상으로 군대에 안 갔어. 하지만 나도 병역 기피자로 몰리고 말았어. 그때 군대 안 간 사람들을 잡아들여 건설대를 조직했어. 내가 들어간 건설대가 지금의...
-
전라북도 남원시 도통동에 있는 사거리. 이전에는 고속버스터미널 주변에 있어 고속 사거리라 하였는데 백공산사거리로 바뀌었다. 백공산은 남원의 주산으로 풍수지리설에 따르면 그 힘이 객산인 교룡산보다 약하여 허약한 지세를 보완하기 위해 선원사를 세웠다고 한다. 이 고장에서는 예부터 백공산을 소중히 관리하였으며, 이 지명을 따서 백공산사거리라 부르게 되었다. 남원의...
-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예전에는 산내면의 소재지였으나 지금은 실상사 입구의 마을로 관광객의 탐방이 잦다.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과 경계를 이루는 지역으로 예전에는 통혼권, 경제권이 하나여서 전라도와 경상도의 지역감정이 없는 동서 문화의 대표적인 융합 지역이었다. 마을 뒤로는 백운산(白雲山)[902.7m]이 있고, 멀리는 지리산 천왕봉이 우뚝...
-
...
-
백일리는 남원과 지리산을 대표하는 사찰 가운데 하나인 천년 고찰 실상사 입구에 위치한 마을이다. 따라서 마을의 형성과 발전 및 산업은 실상사와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백일리에 목기 산업이 발달한 까닭도 실상사 스님들이 필요로 하는 발우, 목탁 등 불교 용구를 공급하기 위해서였기 때문이다. 신라 헌덕왕 때 출생한 홍척이 당나라에 유학하여 지장에게 선법을 배운 뒤 귀국하여...
-
해마다 그 계절, 그 달, 그 시(時)가 될 때 반복해서 행하는 관습을 세시풍속이라 한다. 우리 조상들은 세시에 맞추어 하는 풍속이기에 세시풍속이라 불렀다. 대표적인 세시 풍속으로는 ‘정월’, ‘입춘’, ‘대보름’ 등이 있다. 정월이 되면 설빔을 입고 윗어른들께 세배하고 성묘하여 사람된 도리를 다하였으며, 일가 친척을 찾아 혈연의 정을 두텁게 하였다. 또한 이웃과 교분을 깊게 해서...
-
백일마을 총 면적은 백운봉 쪽 임야를 포함한 183.4㏊로 산내면 전체 면적의 7.09%를 점하고, 전답별 비율은 전이 농경지의 40.4%, 답은 36.2㏊로 농경지의 40.4%, 답은 36.2㏊로 농경지의 59.6%이며, 임야는 123㏊로 총면적의 67.0%이다. 전체 인구는 2006년 7월 현재, 916세대 2,157명이다. 남녀 비율이 거의 같은데, 남자가 1,07...
-
본래 운봉의 산내면 지역으로 통내(通內) 또는 백일(白日)이라 했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동수리, 서수리, 저전리, 하황리 일부를 병합하여 백일리라고 했다. 마을 뒤에는 백운봉이 솟아 있고, 지리산 천왕봉이 우뚝 솟아 있어 아침이면 백운봉과 천왕봉에 솟아오르는 태양이 깨끗하고 맑게 비치는 마을이라 하여 백일(白日)이라 부르게 되었다. 그러나 한때는 동수, 서수, 백일,...
-
올해 84세인 서명문 할머니가 들려 준, 백일마을과 함양군 마천면의 경계에 있는 금대암에 얽힌 전설이다. "마천 가는 도중에 금대암이라는 암자가 있어. 그런데 부엌 앞에 큰 바위가 있어서 밥을 하러 갈려면 스님이고 공양주고 간에 애를 먹었대. 하루는 마천의 내마, 외마 사람들이 그 바위를 옮겨 통행에 지장이 없게 하려고 했어. 장정들이 모여 내일 아침에 옮기기로 약속하면서 이렇게...
-
먼저 산내면은 삼한 시대에는 마한에, 삼국 시대에는 신라 모산현(母山縣)[운봉현]에 속해 있었으며, 940년(고려 태조 23년)에는 운봉현 산내방으로 개칭되었다. 1413년(조선 태종 13년)에는 운봉현이 군으로 승격되고, 1897년에 방(坊)이 면(面)으로 개칭되면서 운봉군 산내면이 백일(白日), 대정(大井), 입석(立石) 등 29개 리(里)를 관할했다. 1914년(순종 8년)...
-
...
-
뱀사골마을에서 가장 대표적인 유적은 달궁터라고 할 수 있다. 달궁마을의 북쪽에 위치한 달궁터는 뱀사골 계곡에서는 예외적으로 넓게 형성된 자갈밭 지역이다. 달궁터에는 주춧돌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짐작되는 바위들이 많이 산재하고 있으며 지역 주민들은 이 곳에 달궁이 있었다고 믿고 있다. 달궁은 어느 시대의 궁궐인지는 알 수 없지만 통상 마한의 별궁이었다고 주민들은...
-
와운을 비롯하여 뱀사골 마을에서는 대부분 당산제를 지냈다. 그러나 현재는 당산제를 지내지 않는다. 와운의 경우 당산제는 천년송에서 지냈다. 정월 초삼일이 제를 지내는 날짜였다. 천년송은 할아버지 나무와 할머니 나무 중 할머니 나무를 이르는 말이다. 실제 당산제는 할아버지 나무에서 지냈으며 유교식으로 엄숙하게 지냈다고 한다. 천년송의 할아버지 나무는 웃당산이었으며 아랫당산...
-
와운마을은 고지대에 있는 마을로서 화전을 하였다. 화전이 한창이던 일제시대에는 60호 정도가 살았고 한국전쟁 전후에는 30호 정도가 살았다. 그러나 화전 금지 이후 주민이 줄어 현재는 10여 호가 거주하고 있다. 덕동 역시 인구와 가구가 많이 줄어 현재는 30호 정도로 구성되어 있다. 200년이 넘은 오래된 마을이지만 한국전쟁을 전후한 시기에 소개되면서 마을의 규모가 줄...
-
뱀사골이란 지명은 여러 가지로 설명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이 지경에 비암사라는 절이 있었고 그 절 이름이 배암사로 불리워져 뱀사골이 되었다는 설명이다. 두 번째 설명은 뱀사골 계곡에 무수한 물웅덩이(소)가 있는데 그 중 하나의 이름이 배암소라는 것이다. 이 설명과 관련하여 전설도 전해 온다. 뱀사골 입구에 송대사란 절이 있었다. 섣달 그믐이면 그 절의 스님...
-
뱀사골 이름의 유래에 관한 전설이다. 현재 전적기념관은 ‘송대사’라는 절터였다. 이 절에서는 섣달 그믐이면 노스님이 한 명씩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일이 일어났다. 이를 기이하게 여겨 원인을 밝히고자 밤나무로 스님의 형상을 만들고 그것에 승복을 입혔다, 그리고는 밤나무로 만든 스님 형상에 비상을 발라두고 옷고름에는 명주실을 매어 두었다. 그 해 섣달 그믐에도 예외없이 자정...
-
뱀사골마을은 국립공원 지리산 안에 위치한다. 뱀사골마을은 지리산의 북동부 계곡에 위치하고 있어서 지대가 상당히 높은 편이다. 그 중에서도 달궁과 덕동 그리고 와운은 지리산의 주 등산로인 뱀사골을 끼고 있다. 뱀사골 등반로를 오르면 전라남북도와 경삼남도가 만나는 것으로 유명한 삼도봉에 이르게 된다. 지리산은 남한에서 한라산 다음으로 높은 산이며 전라남북도와 경상...
-
전라북도 남원시 지리산 국립공원에 있는 숙박 시설. 지리산을 등반하는 등산객을 위한 숙박 시설과 대피소 기능을 하기 위해 1978년 10월 8일에 반야봉 산장이라는 이름으로 건립되었다. 초기에는 조립식 철제 건물로 지었으나 1985년에 보수, 개축하였다. 면적은 149㎡이며, 80여 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다. 이용료는 500원이며, 침낭과 모포를 대여해 주고...
-
전라북도 남원시 보절면 황벌리에 속하는 행정리. 벌촌리는 낮은 야산이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로, 보절면 소재지로부터 북쪽방향으로 1.5㎞ 지점에 위치해 있다. 조선 중엽 명감도사가 벌촌리를 지나다가 지형이 뗏목(배)처럼 생겼다 하여 뗏목마을, 뗏몰이, 뗏말로 불렀다고 한다. 차츰 시간이 흘러 뗏목 벌(筏)자를 써서 벌말, 벌촌으로 바뀌었다. 고려 말 최영 장...
-
전라북도 남원시 동충동에 있는 사거리. 동충동에 위치한 남원법원의 이름을 따서 법원사거리라고 부르게 되었다. 용성로와 향단로가 교차하는 사거리로 남원법원 정문 왼편에 위치한 십자형 교차로이다....
-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대정리 백장암계곡에 있는 공원. 백장골은 「변강쇠 타령」의 작품 속 배경이 되는 지역으로, 변강쇠가 옹녀를 만나 운우지정(雲雨之情)을 나누었던 전설이 전하는 곳이다. 좁고 기다란 백장골계곡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옹녀의 옥문을 연상하게 된다. 변강쇠 백장공원은 판소리 열두 마당 중의 한 편인 「변강쇠 타령」을 상징화한 공원이다....
-
전라북도 남원시에 속하는 법정면. 보절면에서도 특히 천황골은 친환경 농업 체험과 허브 웰빙 농산물을 생산하는 친환경 농업 지역이다. 또한 전통 농촌문화 체험 테마마을인 추어마을에서는 최상의 추어요리와 미꾸라지잡기, 밤따기, 고구마캐기, 황토길 걷기, 천황봉 등산 등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다. 남원군(南原郡) 보현면(寶玄面)과 고절면(高節面)에서 한...
-
전라북도 남원시 아영면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원래는 운봉의 북상면 지역으로 처음에는 ‘쑥대’, ‘쑥띄’로 불렸다. 이후 ‘쑥 봉(蓬)’자를 써서 봉대(蓬臺)라고 부르다가, 풍수지리상 새[鳥]의 형국이라 하여 봉대(鳳臺)라 하였고, 1941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쓰기에 편하도록 봉대(奉大)로 고쳤다. 백두대간의 시리봉 자락에 형성된 마을로, 북으로는 아막...
-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면 장교리에 속하는 신설 자연 마을.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면 장교리 장동마을 뒤편에 위치하며, 황토 건축물 등 주로 황토를 연구하는 산간 마을이다. 봉송황토마을의 최초 건립자인 신정희 부부의 조부 호가 ‘봉송’인데, 이 호를 따서 봉송황토마을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봉송황토마을은 황토 매장량이 많은 남원, 지리산 국립공원...
-
전라북도 남원시 아영면에 속하는 행정리. 봉화산에서 내려다보면 마을이 가마솥[釜]과 같이 생겼고, 윗다리[上橋]는 솥의 뒤 이마, 아래다리[下橋]는 솥의 앞이마처럼 보인다고 한다. 이 형국을 따서 가마마을이라 하였으며 줄여서 ‘가마말’이라고도 하였다.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가마말이 변하여 ‘가말’이 되었고 한자로 바꾸어 부동(釜洞)이라 하였다. 1460년경...
-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에 속하는 행정리. 산기슭에 집들이 띄엄띄엄 몇 호씩 있어 마치 뜬 구름같이 있다 하여 ‘뜰 부(浮)’자와 ‘구름 운(雲)’자를 써서 부운(浮雲)이라고도 하며, 첩첩산중에 항상 구름이 머물러 있어 구름 속에 떠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부운이라고도 한다. 1650년경 장수황씨가 속세를 떠나 부운에 처음 정착하였다고 하며 그 후 각처에서 여러 성씨가 들어와...
-
전라북도 남원시 산동면에 속하는 법정리. 부동마을의 본래 이름은 가말이다. 조선조 이서구 대감이 전라감사 시절에 이곳을 지나다가 마을을 가리키며 만 사람을 배불리 할 수 있을 곳이라는 만인호인지상(萬人好人地相)이라 감탄했다. 이에 따라 지세가 가마솥과 같다 하여 처음에는 가마말 또는 가말이라고 했다가 지명이 한자로 바뀌면서 부동으로 바뀌었다. 중절마을은 가운데...
-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본래 운봉군 군내면 지역으로, “북쪽 냇가 마을”이란 뜻으로 북천리로 불렸다. 1727년(영조 3) 송씨 일가가 이곳에 입주하였을 때, 북천 천변과 뒷산에 아름드리 소나무가 무성하다고 하여 한때 벽송동이라 불렀다. 1728년(영조 4년) 운봉현의 객사를 북천리에 세운 후 ‘객사마을’이라 속칭하였다. 객사란 조선시대 상부...
-
전라북도 남원시 노암동에 있는 골목길. 비안정(費眼亭)이 있었던 곳을 지나는 길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비안정은 지금의 노암동 승사교 서쪽 금암봉 아래 요천 변에 있었다. 금암봉 남서쪽 마을 이름이 비안정 또는 비오정인데 이 정자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마을 뒷산이 기러기가 내려앉은 형국이라 해서 비안정(飛雁亭)이라 하기도 한다. 비안정은 동애(...
-
비전마을에는 사적 104호인 황산대첩비지가 있다. 황산대첩비지에는 어휘각(御諱閣)이 있는데 태조의 어휘인 단(旦)자와 황산대첩에 참전한 8원수 4종사관 이름을 새겨 놓았다는 바위다. 그러나 1758년 발간된 운성지(雲城誌)의 ‘화수산서각’의 내용을 보면 ‘동고록정왜 경신이신(同苦錄征倭庚申李紳)’의 글자가 새겨져 있고 나머지는 판독할 수 없다고 했다. 일설에는 황산대첩에...
-
1997년 6월말 현재 비전 마을의 총면적은 132.5㏊로 운봉읍 전체면적의 20%를 차지하고 있다. 전답별 비율은 전(田)이 5.6㏊로 10%를 차지하고 있고, 답(畓)은 151.2㏊로 총면적의 74%를 차지하고 있으며, 기타는 41㏊로 31%를 차지한다. 2006년 8월 현재 비전마을의 인구는 총 101명이다. 그 중 남자는 44명, 여자는 57명이고 세대...
-
비전마을은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 화수리 209번지에 위치해 있다. 비전마을은 본래 운봉의 서면 전촌리(前村里)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전촌리(前村里), 옥계리(玉溪里), 소석리(小石里) 일부가 병합되어 화수리(花水里)에 편입되었다. 자연마을로는 군화동(軍花洞)이 있다. 비전마을은 마을 앞에 비각(碑刻), 즉 황산대첩비각(荒山大捷碑閣)이 있어...
-
비전마을은 이성계의 조선 개국을 도운 마을이지만, 내호곡은 이성계의 조선 개국에 반대하여 생겨난 마을이다. 여류명창 이화중선은 내호곡의 박씨 가문에 시집을 갔다가 '소리의 길'을 찾아 집을 뛰쳐나와 결국 비전마을에 옮겨오게 되었다고 한다. 이화중선의 시댁이 있는 내호곡에는 1700년대에 지은 몽심재(夢心齋)가 있다. 후손들이 이 집을 지으면서 박문수가 정몽주에게 보낸 시...
-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에 속하는 행정리. 비전(碑前)은 황산대첩비(荒山大捷碑) 앞에 있는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되었다. 1380년(우왕 6) 이성계 장군의 황산대첩을 기념하기 위해 1577년(선조 10) 황산대첩비가 건립된 이후 참봉과 몇 사람의 관원이 비각을 관리하게 되자 자연 그 가솔들이 모여 살게 되었다. 그 후 경주김씨들이 입주하고 뒤이어 박씨, 이씨들이...
-
...
-
남원에서 함양으로 가는 국도에 해발 477m의 여원치가 있다. 황산대첩 시 여원치에서 이성계 장군이 행군 도중 백발이 성성한 노파로부터 전승(戰勝)의 날짜와 전략을 계시 받았다고 한다. 그녀는 왜장 아지발도가 자신을 희롱하며 젖가슴에 손을 대자 칼로 가슴을 베어 자결한 원신(怨神)이었다. 후에 이성계는 이 노파를 산신령이라 여기고 이를 기리기 위해 벽에 여상(女像)을 새...
-
화수리에 있는 비전마을은 운봉을 지나 인월 방향으로 조금 가면 왼쪽에 위치해 있다. 운봉읍 소재지로부터 함양방면 4.5㎞ 지점에 있으며 국도 24호선이 마을 옆을 통과한다. 운봉읍내를 출발하여 함양으로 가는 도중에는 전촌 입구에서 북쪽으로 약 500m 거리에 반월형의 화수산 아래쪽으로 고송이 우거진 황산대첩비각(荒山大捷碑閣)가 있다. 그 동편에 비전 마을이 위...
-
전라북도 남원시에 속하는 법정면. 사매면은 법정리 9개, 행정리 19개를 관할하고 있다. 법정리로는 서도리, 계수리, 인화리, 화정리, 대율리, 월평리, 오신리, 관풍리, 대신리가 있다. 행정리로는 노봉리, 수촌리, 서촌리, 수동리, 계동리, 인화리, 화정리, 대율리, 수월리, 덕평리, 하신리, 중신리, 신촌리, 오현리, 풍촌리, 관촌리, 세동리, 상신리, 대...
-
전라북도 남원시 대강면에 속하는 법정리. 사촌(沙村)과 석촌(石村)에서 각 한자씩 따서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 사촌은 남원부의 서쪽에 있는 호수마을이라 하여 서사호(西沙湖)라 하였고, ‘사랑이’, ‘사랭이’로 불렸다. 3개방(초랑방, 견소곡방, 생조벌방)이 대강면으로 통합되면서 사석리 사촌마을로 불렸고, 옛 초랑방과 대강면의 소재지가 되었다. 석촌은...
-
전라북도 남원시 덕과면에 속하는 법정리. 사곡(沙谷)과 율천(栗川)에서 각 한자씩 따서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 사곡마을은 1580년 벽진이씨 중시조인 충숙공 이상길이 터를 잡고 거주하기 시작하였다. 본래 남원군 적과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상율리·하율리와 덕고면의 사곡리 일부를 병합하여 사율리라 하여 덕과면에 편입되었다. 19...
-
전라북도 남원시 인월면 서무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고려 후기인 1380년(우왕 6) 이성계 장군이 왜적인 아지발도를 토벌할 때 군량미창고를 두었다고 하여 ‘사창(社倉)’이라 불렸다. 단양우씨가 처음 정착한 후 고려 후기와 조선 전기까지는 군량미 창고가 있었고 관원이 주재하여 마을이 번성하였으나 임진왜란에 휘말리면서 마을이 몰락하였다. 난이 끝나자 김해김씨와 장...
-
전라북도 남원시 보절면에 속하는 법정리. 사촌리는 보절면 소재지로부터 북쪽방향 4㎞ 지점에 자리 잡고 있다. 사촌리는 보절면 전 지역에 능선을 이루는 천황봉을 기점으로 12평파가 동서로 뻗어 있는 첫 번째 능선인 제1용이 넓고 평평한 마을 터를 싸안고 있어 평사낙안형(平沙落雁形: 하늘을 높이 날던 기러기가 날개를 편 채 평평한 모래톱으로 내려앉은 모...
-
전라북도 남원시 송동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 후기인 1865년경 대홍수로 인하여 마을 앞에 큰 쏘[沼]가 생겼다. 그 쏘를 말청쏘라고 했는데 부근이 모래층으로 형성되어 있다 하여 ‘모래 사(沙)’자를 써서 사촌(沙村)이라 하였으며 윗마을을 내사촌, 아랫마을을 외사촌이라 불렀다. 1392년 경주최씨가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으며 1570년경 여양진씨가 마을 위쪽에...
-
전라북도 남원시에 속하는 법정동. 산곡동은 남원시 향교동에 속하는 법정동으로, 자연 마을인 응곡리와 일곱몰을 포함하고 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산성리와 응곡리의 산자와 곡자를 따서 산곡리라 하였으며, 1981년 남원읍이 남원시로 승격되면서 산곡동이 되었다. 산성리는 본래 교룡산성 안에 있던 마을로, 『여지도서(輿地圖書)』에는 교룡산성 안...
-
전라북도 남원시에 속하는 법정면. 산내면은 지리산의 안쪽에 위치한다 하여 산내(山內)라 하였다. 문헌상으로는 940년(태조 23) 운봉현 산내방(山內坊)으로 개칭되었다고 한다. ‘산내’라는 지명은 높은 산이 많은 우리나라에 널리 분포하는 지명이기도 하다. 350년 삼한시대 때는 마한에 속하였으며, 마한에서는 달궁에 별궁을 설치하였다. 940년(태조 23)에는...
-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산덕리는 행정리인 삼산리와 자연 마을인 삼산마을을 포함하고 있다. 지리산 바래봉과 세걸산 아래 구릉에 위치하고 있다. 동복오씨가 처음 터를 잡은 뒤, 산제당을 지어 산의 덕을 받아 마을의 무사태평을 기원한 데서 ‘산덕(山德)’이란 마을이름이 유래하였다. 고려 후기인 1380년(우왕 6)에 동복오씨가...
-
전라북도 남원시에 속하는 법정면. 북쪽에는 만행산 천황봉, 남쪽으로는 고남산 태조봉이 우뚝 솟아 있고, 면 중심부를 섬진강 상류인 맑은 요천이 비옥한 농경지를 적시며 흐르는 청정 고장이다. 천황산(만행산) 동쪽에 위치한 지리적 위치 때문에 산동면이라 했다. 산동면에는 산동방과 목동방 등 2개 방이 있었던 지역으로 1654년(효종 5) 산동방에서 번암...
-
전라북도 남원시 내척동에 있는 철도역. 역 주변에 백제가 신라를 대적하기 위해 축조하였으며, 임진왜란 당시 항쟁한 교룡산성이 있으며 교룡산 부근 촌락을 산성이라 칭하여 역명 또한 산성역이라 하였다. 1968년 1월 1일 을종 승차권 대매업소로 영업을 시작하였다. 1980년 1월 15일 보통역으로 승격하여 영업을 개시하여 산성역이라 불렀다. 창설 당시에는 석탄수송을 주 업...
-
전라북도 남원시 수지면에 속하는 법정리. 산정리는 등동리·가정리·마연리·산촌리를 행정리로 포함하고 있다. 수지면 면소재지에서 남쪽으로 약 3㎞ 떨어져 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마연리·산촌리·둔촌리·가정리·외호곡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고, 산촌과 가정의 이름을 따서 산정리라 하였다. 등동리는 약 3백 년 전부터 여양진씨, 경주김씨, 순흥안씨...
-
휴양림은 정상적인 산림 경영을 하면서 휴양 시설을 설치하여 주민의 보건 휴양 및 정서 함양을 위한 야외 휴양 공간을 제공하고, 동시에 자연 교육장으로서의 역할과 산림 소유자의 소득 향상에 이바지하기 위한 산림을 일컫는다. 남원시에는 이러한 역할을 하는 휴양림으로 남원자연휴양림, 지리산 용궁 가족휴양촌, 흥부골 자연휴양림 등이 있다. 국토 면적의 65%를 차지하고 있는 산림은 과거...
-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에 속하는 행정리. 말을 탄 선비가 마을을 지나가다 쉬어간 곳이라 하여 사마정(士馬亭)이라 불렀는데, 방언으로 ‘정’을 ‘쟁이’ 또는 ‘정이’라 하여 일명 사마쟁이 또는 사마정이라 하였다. 그런데 이름 모를 한 장군이 마을 뒷산에 ‘산고동’이 있다 하여 사람들이 산에 올라가 마을을 내려다보니 마을의 형세가 꽃과 같아 삼정산(三亭山)[1,182m]의...
-
전라북도 남원시 쌍교동에 있는 소로. 과거에는 요천의 물줄기가 지금의 쌍교동으로 흘렀는데 지금의 요천에 상삽리와 하삽리 마을이 있었다고 하며 이 마을을 건너는 나무다리 두 개가 있었다고 한다. 이 두 개의 나무다리 때문에 마을 이름을 삽다리라고 하였고 삽다리는 쌍교동이 되었다. 삽다리길은 이 쌍교동의 옛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도로번호는 3180이다....
-
전라북도 남원시 금지면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본래 금안부곡(金岸部曲)이 있어서 금안향[면]이라 하였다. 예전에는 금안(金岸)·지만·독배기·상귀(上貴)·금농동이라 하였다. 독배기는 귀석리에서 으뜸 되는 마을인데 큰 돌이 있어서 붙여진 지명이다. 상귀, 귀석리에 귀한 것이 많다 하여 윗마을을 귀석리라 하였다가 1919년 마을 명칭을 상귀리로 바꾸었다. 상귀...
-
전라북도 남원시 주생면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상동리는 행정리인 부동리를 포함하고 있다. 본래 남원군 이언면 지역으로 이언면의 위쪽이 된다 하여 웃몰, 또는 상동이라 했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부동리와 상동리 일부를 병합하여 상동리라 하였다. 상동리는 조선 전기인 성종 때 옥천조씨가 제일 먼저 정착하였으며, 백여 년 후 경주김씨,...
-
전라북도 남원시 금지면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최초 청풍김씨들이 이주해 와 윗마을로 이사하였다 하여 ‘위 상(上)’자와 ‘새로울 신(新)’자를 써서 상신리라 하였다. 마을의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용수막(현 금지면 용전리)이라는 큰 마을이 있었는데 1920년경 경신년의 대홍수로 마을이 유실되자 용수막에 거주하였던 일부 주민들이 이곳으로 옮겨와 형성된 마을이라고 한다....
-
전라북도 남원시 인월면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1820년(순조 20) 동복오씨(同福吳氏) 가문의 한 사람인 은암거사(隱庵居士)가 숨어 살았다 하여 은마을[隱里]로 불리었다. 그 후 풍수설에 따라 지형이 소가 누워 있는 와우형(臥牛型)이라 하여 와우가 되었으며, 상우(上牛)는 와우의 위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1820년 동복오씨가 들어와 살면서 마을...
-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에 속하는 행정리. 마을이 들어서기 전에는 뒷산 백운산 기슭에 황강사(黃岡寺)란 절이 있었고 북쪽으로 약 200m 위치에 꿩이 엎드려 있는 형국이라는 복치혈(伏雉穴) 굴이 있어 황강사의 ‘황(黃)’자와 복치혈의 ‘치(雉)’자를 따서 황치(黃雉)라 하였다. 마을 주변의 3개 자연 마을 중 위쪽에 있어 웃황치라 하다가 한자로 바꾸어 상황(上黃)이라 하였...
-
전라북도 남원시 대강면에 속하는 법정리. 매년 마을 앞 섬진강의 홍수로 넓은 백사장이 새로 생겨나곤 했기 때문에 ‘날 생(生)’자에 ‘사(沙)’자를 써 생사(生沙)’라 하였다. 직동은 남원윤씨 들이 후손들을 위해 사욕을 버리고 정직하게 모범적인 처세를 하며 살자는 뜻으로 정직(正直)의 직(直)자를 넣어 지은 것이라 한다. 광동은 마을 터가 양지바른 산 밑이긴...
-
전라북도 남원시 아영면 갈계리에 속하는 행정리. 천년 묵은 칡덩굴이 우거지고 마을 앞으로 냇물이 흐르고 있어 ‘칡 갈(葛)’자와 ‘시내 계(溪)’자를 써서 갈계(葛溪)라 하였다가 갈계의 서쪽에 위치한다 하여 서갈이 되었다. 1150년경 창원정씨(昌原丁氏) 일가가 처음 터를 잡아 마을을 형성하였으며 그 후 형씨(邢氏)가 들어왔고 조선 초기 함양박씨(咸陽朴氏)가 옮겨와 살면...
-
전라북도 남원시 이백면에 속하는 법정리. 서동마을은 글공부를 하는 방서당(房書堂)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채곡마을은 마을 앞뒤가 넓은 구릉지로 나무실이라는 풍성한 초원이 있어 ‘나물 채(菜)’자를 써서 1910년 채곡리로 불러오다가 그 후 다시 이백면 서곡리 채곡으로 칭하게 되었다. 서곡리는 서당마을과 채곡마을의 이름을 따서 붙여진 명칭이다....
-
전라북도 남원시 사매면에 속하는 법정리. 서도리는 노봉리와 수촌리·서촌리를 행정리로 포함하고 있다. 사매면의 서북쪽에 위치한다. 본래 남원군 사동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서원리와 도촌리를 병합하여 서도리라 하였다. 노봉리의 이름은 원래 이곳에 노봉서원이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서원리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언제부터인지는 알 수 없으...
-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 서천리에 있는 공원. 서림 공원은 1만㎡ 규모의 지역 주민이 휴식을 취하고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이 지역의 대표적인 시민 공원이다. 서림 공원의 건립 경위는 뚜렷하지 않다. 다만 오래전부터 시민 공원 구실을 해 오다, 1954년 이곳에 건립된 충혼탑을 2001년 대대적으로 보수하면서 서림 공원도 대대적인 정비 사업을 실시해서...
-
전라북도 남원시 금지면에 속하는 법정리. 서촌은 순창설씨(淳昌薛氏)가 처음 입주하여 서당을 열어 서촌이라 하였으며 매촌은 마을의 형국이 풍수지리상 매화낙지(梅花落地) 형국이라 하여 매촌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서촌과 매촌의 이름을 따서 서매리라 하였다. 서재리는 지금으로부터 약 400여 년 전인 조선 중기 순창설씨가 처음 들어와...
-
...
-
서명분 할머니에게 들은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마천 가는 도중에 금대암이라는 암자가 있어. 그런데 부엌 앞에 큰 바위가 있어서 밥을 하러 갈려면 스님이고 공양주고 간에 애를 먹었대. 하루는 마천의 내마, 외마 사람들이 그 바위를 옮겨 통행에 지장이 없게 하려고 했어. 장정들이 모여 내일 아침에 옮기기로 약속하면서 이렇게 중얼거렸대. ‘부처님의 신통력이 있으면 이런 정도...
-
올해 84세인 서명분 할머니는 아직도 기력이 정정하고 매일 마을 노인정에서 할머니들과 함께 정담을 나누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즐겁게 생활하고 계신다. 특히 할머니는 옛날 노래와 옛날 이야기를 많이 알고 계셨다. "마천 등구에서 태어났어. 아버지(서명수) 어머니(이수남) 사이에 아들 셋, 딸 셋을 두었는데 지금은 나만 남고 다 죽었어. 학교가면 시집 못 간다고 부모님이 공부를 안...
-
남원 아들집과 백일리 집을 오가며 소일하고 있다. 백일리 할머니들과 함께 정자에 모여 술 한 잔씩 하며 옛날이야기하고 노는 게 즐겁다. 남원 아들집은 아파트라 떠들며 놀 수 없다. 흘러간 옛날 노래를 참으로 좋아한다. 지금도 흥이 나면 몇 십 곡 부르는 것은 기본이다. 백일리와 남원 하이츠 아파트 노인들이 다 친한 친구들이다. 서명분 할머니에게 들은 노래는 다...
-
전라북도 남원시 인월면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고려 말 왜구가 인월(引月)에 본거지를 두고 약탈, 살인, 방화 등 무도한 만행을 저지르자 조정에서는 이성계(李成桂) 장군을 급파하였다. 이성계는 황산(黃山)에서 왜구의 두목 아지발도를 쏘아 죽이고 크게 승리를 거두었다. 왜구를 공격할 때 인월 서쪽에 군사를 숨겨 둘 만한 요지가 있어 그곳에 약간의 군사를 매복시켰다 하...
-
전라북도 남원시 하정동에 있는 사거리. 남원성은 사방에 문을 가진 평지의 읍성으로서 정유재란 때 파괴되었다. 사대문루는 남원성을 재축할 때 중건되었다. 그 뒤 동학농민전쟁 때 동문과 남문이 소실되고 일제가 시가지를 정리할 때 서문과 북문이 헐리었다. 현재는 북벽 일부만 남아 사적 제298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서문사거리는 옛 남원성의 서문이 있었던 곳에...
-
전라북도 남원시 조산동에서 광치동까지 연결되는 국도 17호선 대체 우회도로. 남원 시가지 서부를 통과하고 있으며, 앞으로 건설될 4차로의 남원~곡성간 국도 17호선 우회도로와 연결될 예정이다. 국도 17호선과 교차하는 조산동에서 남원~순천간 산업도로와 만나는 방자교차로까지의 왕복 4차선 자동차 전용도로이다. 총연장 6㎞ 중 2007년 5월 현재 5㎞...
-
전라북도 남원시 아영면에 속하는 행정리. 동편의 큰 마을 율동(栗洞)에서 바라볼 때 율동 서편의 정자나무가 서 있는 마을이라 하여 이름을 서정(西亭)이라 하였다. 일명 ‘서지이’라고도 부른다. 고려 초기 목종(穆宗)[980~1009] 때 김해김씨와 진양형씨가 처음으로 들어와 정착하였다. 최초 마을의 형성 위치는 옛날 옹기를 구웠던 독점골로 현재에도 10여 호가 살고 있으...
-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에 속하는 법정리. 서천리는 서상리와 서남리·서하리 등의 행정리를 포함하고 있다. 운봉읍이 군(郡)이었던 1913년까지만 해도 군청이 있던 군소재지였다. 본래 운봉의 군내면(郡內面) 지역으로, 마을 서쪽에 냇물이 흘러 서천(西川)이라 하였다. 일설에는 중국 송나라 때 운봉이란 고을이 있었는데, 남원의 운봉과 지형이 흡사하여 그 지명을 모방...
-
전라북도 남원시 보절면에 속하는 법정리. 서치리는 부흥리와 서당리를 행정리로 포함하고 있다. 보절면 면소재지에서 남쪽 방향으로 4㎞ 지점에 위치한 마을로, 동쪽은 산동면, 서쪽은 사매면, 남쪽은 남원시 갈치동, 북쪽은 괴양리와 인접하고 있다. 본래 남원군 고절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갈치리와 서당리를 병합하여 서당과 갈치의 이름을 따서 서치리...
-
전라북도 남원시 도통동 선원사 입구에 있는 사거리. 선원사는 신라시대에 도선국사가 창건한 절이라고 전한다. 도선국사가 이곳에 선원사를 창건하게 된 것은 남원시의 지세로 보아 교룡산은 객산이고 백공산은 주산인데 그 주산이 매우 약하고 객산의 산세가 강하므로 강한 것을 누르고 약한 것을 북돋아 줄 필요가 있다고 해서 선원사를 백공산 줄기의 끝에 세운 것이라 한다....
-
전라북도 남원시 인월면 유곡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성내마을은 신라와 백제의 국경 지대로 그중 신라의 영토에 속하였다. 마을의 서북쪽 3㎞ 지점 아영면 성리(城里)에 아막성이 있고, 동북쪽 1㎞ 지점에 토성(土城)이 있어 그 안에 마을이 있으므로 성안[城內]이라 불렀다고 한다. 한자로 성내(城內)라고도 하나 지금도 마을에서는 ‘성안’을 사용하고 있다. 삼국시대...
-
전라북도 남원시 아영면에 속하는 법정리. 아막성 아래 자리 잡은 마을이라 하여 성리(城里)라 하였으며, 성 가까이 있는 높은 곳에 위치한 마을을 상성(上城), 아래 위치한 마을을 하성(下城)이라 하였다. 상성은 흥부의 발복지 마을로 입증되어 ‘흥부마을’ 혹은 ‘흥부발복지마을’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본래 운봉군 북하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
전라북도 남원시 인월면 성산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신라와 백제의 국경 지대였던 성북골은 인근에 성산산성(城山山城)이 있어 마을이 성의 북쪽에 해당하므로 오랜 동안 성북동(城北洞)이라 불리었다. 1524년(중종 19) 달성서씨(達城徐氏)가 남원에서 옮겨와 터를 잡고 마을을 개척하였으며 그로부터 약 40년 후에 김해김씨와 경주최씨 등이 옮겨와 살면서 마을이 번성...
-
전라북도 남원시 인월면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신라와 백제의 국경 지역이었던 이곳에는 마을 남동쪽에 합미성(合米城)이 있어 마을이 성의 북서쪽에 해당하므로 오랜 동안 성북리 또는 성복골로 불리어 왔다. 성복골은 성 옆에 성인동과 복덕촌이 있었는데 두 마을의 첫글자를 합쳐 성복골로 불렀다고 한다. 1524년(중종 19)에 달성서씨(達城徐氏)가 남원으로부터...
-
전라북도 남원시 보절면에 속하는 법정리. 성시리는 성남리와 성북리·계월리 등의 행정리를 포함하고 있다. 남원시의 최북단 오지마을로 보절면의 면소재지인 상신리에서 북쪽으로 6㎞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마을을 조그마한 산들이 에워싸고 있어 외부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아 반월성을 연상케 한다. 본래 남원군 보현면 성리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성리와...
-
전라북도 남원시 송동면에 속하는 법정리. 세전리는 동양리와 중양리·신산리 등의 행정리를 포함하고 있다. 세전리는 선사유적지를 포함한 많은 유적과 유물이 있는 남원시의 대표적인 문화 유적 마을이다. 세전리의 원래 이름은 잠밭이다. 이밖에도 솥뫼에서 뻗어내린 낙맥의 형태가 마치 지네 같다고 하여 오공동이라 하였으며, 노거수인 비사리나무가 마을 한복판에...
-
전라북도 남원시 노암동 승사교 남단에서 신촌동 남원대교 남단까지 이어진 도로. 남원시 어현동 일대에 자리한 남원관광단지는 지리산과 광한루를 끼고 있는 관광지로 남원의 특색을 살리기 위해 한국관광공사가 조성한 것이다. 남원관광단지 입구 음악분수대 앞 도로구간에 마련된 동편제거리는 동편제 판소리의 발원지인 남원을 나타내는 장소로 남원만의 독특한 문화가...
-
전라북도 남원시 송동면에 속하는 법정리. 우동리와 부동리를 행정리로 포함하고 있다. 송동면의 면소재지이다. 소가 누워 있는 형국이라 하여 소터, 솔터, 또는 우동이라 불렸다.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지형이 소가 누워 있는 와우혈이라고 한다. 마을 건너편 안산은 쇠구시라 하여 구시골로 부르고 있어 송기마을이 와우혈이란 것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우동리는 소의 형국이...
-
전라북도 남원시 송동면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송내리는 지리산 줄기인 원통봉 자락에 자리 잡은 산간 마을이다. 본래 이름은 봉수리라 했는데, 그후 큰솔 안·작은 솔안으로 불리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신촌리와 대촌리 각 일부와 흑성면의 신기리 일부를 병합하여 송내리라고 하였다. 고려 전기인 980년(경종 5) 전주최씨와 오씨가 처음 터를 잡았으며...
-
전라북도 남원시 대강면에 속하는 법정리. 송내리와 대치리에서 각 한자씩 따서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 1380년경(고려 말)에는 지금의 송내에서 1.5㎞ 떨어진 방터[房基]에 마을이 있었다고 한다. 1750년경에 이곳이 폐허가 되자 장수황씨 8세대가 현 위치에 터를 잡은 후 방(房)씨, 소(蘇)씨 등이 이주하여 왔다. 본래 남원군 초랑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
전라북도 남원시에 속하는 법정면. 송동면은 법정리 13개, 행정리 26개를 관할하고 있다. 법정리로는 신평리, 송내리, 사촌리, 송상리, 장국리, 흑송리, 송기리, 장포리, 영동리, 연산리, 양평리, 두신리, 세전리 등이 있다. 행정리로는 신기리, 백평리, 송내리, 외산촌리, 내산촌리, 문치리, 오촌리, 생촌리, 원촌리, 부석리, 태동리, 동서내리, 안계리,...
-
전라북도 남원시 아영면에 속하는 행정리. 심산유곡에 위치하여 송림이 울창하니 마을 이름을 솔무데기 또는 송리(松里)라고 하였다. 일설에는 조선 중기 큰 흉년이 들어 굶어 죽는 사람이 잇따라 생기자 마을의 송씨(宋氏) 부자 일가가 자신의 창고 문을 열어 마을 주민들에게 곡식을 나누어 주어 사람들을 살렸다고 한다. 그 후 송씨의 덕행을 칭송하는 뜻으로 마을 이름을 송리(宋里...
-
전라북도 남원시 송동면에 속하는 법정리. 송상리는 문치리와 오촌리·원촌리·생촌리 등의 행정리를 포함하고 있다. 본래 남원군 송내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송내리의 위쪽에 있는 마을이라 해서 송상리라 하였다. 문치리는 마을의 지형이 물래 형국이라 하여 물래재로 불리던 곳으로, 마을에 사당이 생긴 뒤로 공부하는 학생들이 많아져서 ‘글월 문(文’...
-
전라북도 남원시 주천면에 속하는 법정리. 동송리·서송리 그리고 웅치리를 병합하여 동송과 웅치에서 각 한자씩 따서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 웅치마을과 중송마을은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전주이씨들이 피난을 와서 정착하여 형성되었으며, 그 후 전주최씨들이 들어오면서 마을이 커지기 시작했다. 하송마을은 1400년경에 중국에서 신안주씨가 처음 정착하여...
-
전라북도 남원시 대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노촌마을과 노산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노촌마을은 주변에 갈대가 많아 갈랭이, 걸어니, 가랑이 등으로 불리어 오다가 지명이 한자로 바뀌면서 ‘갈대 노(蘆)’자를 붙여 노촌이 되었다. 그리고 노산마을은 산세가 늙은 쥐의 형상을 하고 있어 늙을뫼·늘뫼·늘메라 불리어 오다 지명이 한자로 바뀌면서 ‘늙을 노’자를 따서 노산으로...
-
전라북도 남원시에 속하는 법정면. 수지면을 관통하여 흐르는 수지천이 예로부터 물이 깨끗하고 물맛이 유난히 좋아 ‘물 수(水)’자, ‘맛 진[旨]’자를 붙여 수지면이라 했다. 또 이러한 지리적 특성으로 물이 시작되는 곳이란 뜻으로 옛부터 물머리[首旨]라고 불렀다 수지방(水旨坊)과 초리방(草里坊) 등 2개 방(坊)이 있었던 지역으로 1897년(고종 34...
-
전라북도 남원시 대강면에 속하는 법정리. 수촌(水村)과 비홍치(飛鴻峙)에서 각각 한자씩 따서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 수촌은 마을앞 개울이 남에서 북으로 거슬러 내려간다 하여 ‘물거슬(실)’, ‘물것’이라고 불렸다. 도곡은 ‘고도곡(古道谷)’, ‘도곡(道谷)’으로도 불렸으며, ‘비홍치(비홍재)’와 한마을을 이룬다. 수촌에는 1420년경에 경...
-
전라북도 남원시 노암동과 금동을 연결하는 요천 위에 있는 다리. 옛날 구례 방면에서 남원으로 건너오는 나루터여서 나룻배를 타고 건너는 곳이라 하여 승사교라 했다고 전한다. 교량의 길이는 190m이고, 폭은 35m로 총 차선 수는 상행선과 하행선 각기 3차선이며 보도(4m)로 구성되어 있다. 교각은 철근 콘크리트구조이며 상판은 철근 구조물로 경간의 수는 네 개이다. 난간재...
-
전라북도 남원시 노암동과 광한루를 연결하는 요천을 가로지르는 무지개 다리. 팔월 한가위 보름달빛이 아름다운 밤이면 높은 누각에 드리운 황금 달빛 기둥을 타고 내려온 선녀들이 광한루원에서 새벽닭이 울 때까지 춤과 노래로 즐기다가 다시 하늘로 올라갔다는 전설이 있는 승월대 근처에 세운 다리라 하여 승월교라 부른다. 교량의 길이는 80m이고 폭은 4m이며 높이는 18m이다....
-
전라북도 남원시 산동면에 속하는 법정리. 부근에 승련사라는 큰 절이 있어서 본래 이 마을 이름은 승련이었다고 하며, 그 뒤 승련사의 연꽃을 갖다 심고 마을 이름을 식련이라 불렀다고 한다. 1490년경 김해김씨가 처음 터를 잡았는데 부근에 승련사라는 큰 절이 있었다고 한다. 동학란 때 동학군의 집결지였다고 한다. 본래 남원군 산동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
전라북도 남원시 도통동에 속하는 법정동. 식정동은 자연 마을인 요천마을을 포함하고 있다. 남원시 북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합천이씨들이 자리를 잡고 마을을 형성하면서 주변에 정자나무를 많이 심었는데, 새로 심은 나무들마다 뿌리를 잘 내려 ‘식정(植亭)’이라고 하였다. 자연마을인 요천의 본래 이름은 청룡이다. 1900년경 새로 생긴 마을로 요천강변 국도...
-
전라북도 남원시 대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누에가 섶에 올라 집을 짓는 노잠등신의 형국이라고 해서 섶갓 또는 신촌이라 하였다. 그리고 신계마을과 달과 계수나무가 있는 형국이라 월계리로 불리던 마을이 병합되어 신촌과 월계의 이름을 따서 신계리가 되었다. 본래 남원군 시라산면 신계리 지역으로 신촌이라고 했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신계리와 대곡면의 월계리·노산리의...
-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입향조인 장덕복이 새 삶을 시작하는 터전이란 뜻으로 ‘새터’, 곧 신기(新基)라 하였다. 조선 중기 임진왜란이 휴전 상태에 접어들어 왜적이 잠시 철수하고 영남이 아직은 안정을 찾지 못하고 혼란할 때인 1595년(선조 28), 비교적 전란의 피해가 적은 호남 지방을 유랑하며 정착지를 찾던 사람들 중 맨 처음 이곳 길지에...
-
전라북도 남원시 대강면에 속하는 법정리. 신기는 원래 섬진강 물이 흐르던 곳으로 큰 물이 지고 나면 새로운 자리에서 배를 띄우게 된다고 하여 ‘새로울 신(新)’자와 ‘배 선(船)’자를 쓴 신선리로 불렸다고 한다. 뒤에 새로운 터에 마을을 이루었다하여 ‘새로울 신(新)’자와 ‘터 기(基)’자를 쓴 ‘신기’가 되었다. 가덕은 원래 ‘더덕정(더덕쟁이)’이...
-
전라북도 남원시 향교동에 속하는 자연마을. 구룡마을 앞산인 왕제의 약수가 한센병에 효력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1959년경 구례군 산동면에 거주하던 김복순이 한센병을 치료하기 위하여 움막을 짓고 거주하면서부터 새로 생긴 마을이라 하여 신생마을이라 부르게 되었다. 새마을이라고도 하며 산성역이 인근에 자리하고 있어 산성마을이라고도 한다. 움막을 짓고 정착하여 병...
-
전라북도 남원시 덕과면에 속한 법정리. 신양리는 비촌리와 양선리·작소리를 행정리로 포함하고 있다. 남원의 적과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비내리·양선리·신촌리·오현리·작소리의 일부를 병합하고, 신촌과 양선의 이름을 따서 신양리라 하였다. 비촌리는 조선 말기에 정착한 광주이씨 후손들이 마을 변두리에 담을 치고 출입하는 사...
-
전라북도 남원시 금지면에 속하는 법정리. 황구리는 마을의 지형이 거북과 같다 하여 황구(黃龜)라는 지명이 생겼다. 장승리는 조선시대에 전라남도와 전라북도 경계의 거리 이정표인 장승이 세워져 있었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금평리는 마을 최초 정착자인 김팔개의 ‘김(金)’자와 평야의 ‘평(坪)’자를 따서 붙인 지명이다. 1920년 경신년의 큰 홍수로...
-
전라북도 남원시에 속하는 법정동.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신기(新基)와 정치(正峙)에서 한 자씩 따서 신정리(新正里)라 하였다. 신정동은 남부·중부·북부로 나누어져 있다. 남부 신정동은 넓은 가방들 일부를 중심으로 형성되었으며, 1300년경 김녕김씨(金寧金氏)가 새로 터를 잡았다 하여 ‘새터’ 또는 ‘신기(新基)’라 부른다. 중부 신정동은 교...
-
전라북도 남원시에 속하는 법정동. 1680년경 김해김씨(金海金氏)가 현재의 마을 앞 냇가 건너에 있는 일명 양지샘머리라는 곳에 터를 잡고 마을을 형성하였다 하여 마을 이름을 ‘새모실’ 또는 ‘새몰’로 부르다가 한자로 바꾸어 신촌(新村)이라 하였다. 본래 남원의 하원천면(下元川面)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신촌, 용담(龍潭)과 만덕면(萬德面)의 죽우리(竹...
-
전라북도 남원시 신촌동에 있는 남원대교 남단 삼거리. 신촌삼거리는 시청 방향에서 관광단지 방향으로 이동할 수 있는 첫 번째 다리인 남원대교의 남단 삼거리이다. 이 삼거리에서 서쪽 방향으로 우회전하여 왕복 2차선 도로인 요천 남변을 따라 동림교를 지나면 관광단지, 춘향문화예술회관, 국악원, 테마파크, 승월교 등에 이를 수 있고, 요천에서 뱃놀이를 즐길 수도 있다...
-
전라북도 남원시 보절면에 속하는 법정리. 신파리는 하신리와 상신리·파동리·중신리를 행정리로 포함하고 있다. 상신리는 보절면의 면소재지이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중현리·파동리·신동리·신흥리와 적과면 도촌리 각 일부를 병합하고, 신동과 파동의 이름을 따서 신파리라고 하였다. 하신리는 과거 신흥리로, 상신과 하신 두 마을이 있었는데 그 중 아랫부분이라 하...
-
전라북도 남원시 송동면에 속하는 법정리. 신평리는 신기리와 백평리를 행정리로 포함하고 있다. 본래 남원군 흑성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백평리와 신기리 일부와 송내면 대촌리 일부를 병합한 뒤 신기와 백평의 이름을 따서 신평리라고 하였다. 신기리는 조선 중기 청주한씨가 처음 정착하였고, 그후 옥천조씨와 김녕김씨, 동래정씨가 들어와...
-
전라북도 남원시 쌍교동에 있는 도로. 일명 오정자(五亭子) 또는 참나무정으로 불렸다. 나무가 열 그루가 있어 십수(十樹)라 하였으며, 십수정이라는 정자가 있었다는 데서 십수정이란 지명이 유래하였다. 십수정에서 남쪽으로 바라보면 요천 일대의 풍광이 매우 아름답다. 우측으로는 승사교, 좌측으로는 춘향교가 있으며, 두 다리의 중간에 승월교가 있다. 맞은편은 관광단지...
-
전라북도 남원시에 속하는 법정동. 마을에 요천(蓼川)을 건너는 윗삽다리와 아랫삽다리 두 개의 다리가 있어 삽다리 또는 삽리라 하였는데 지명을 한자로 바꾸면서 ‘두 개의 다리’를 뜻하는 쌍교(雙橋)라 부르게 되었다. 1300년경 영천이씨(寧川李氏)들이 지금의 쌍교동 사무소 부근의 정문동[정문거리]으로 불리는 곳에 정착하여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하며, 당시 오정자, 정문동,...
-
전라북도 남원시 노암동에 있는 골목길. 쑥고개길은 고유 지명 숙호(宿虎)에서 따왔으며, 노암동 484번지에서 노암동 396-1번지 사이에 있는 도로이다. 쑥고개길의 쑥고개는 숙호·숙호치(宿虎峙)·애현(艾峴)이라고도 하며, 양촌 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쑥고개 앞에 있는 금암봉은 호랑이 머리에 해당하고 뒤쪽의 범실마을은 호랑이의 자궁...
-
전라북도 남원시 아영면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아영면에서 제일 먼저 형성된 마을로 전해지는 아곡리는 위치가 신라와 백제의 국경 지대인 아막성(阿莫城)의 성역이라 하여 아실이라 했는데 한자로 옮기면서 아곡(阿谷)이 되었다. 통일신라 초기 달성서씨 일가가 터를 잡아 정착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그 후 서씨들이 타지방으로 이주하고 재령이씨, 함양오씨...
-
전라북도 남원시에 속하는 법정면. 아영면은 남원의 문헌 기록상 최초로 등장하는 지역이다. 아영은 삼국시대에 아막(阿莫), 아용(阿容), 아영(阿英)이라 하였고 지금도 옛 지명이 아막산성(阿莫山城) 등으로 남아 있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중 「백제본기」에서는 아막산성으로, 「신라본기」에서는 아막성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 그것이다. 아영면 두락리에는...
-
전라북도 남원시 이백면에 속하는 법정리. 양가리는 목가리와 양강리를 행정리로 포함하고 있다. 남원시에서 북동쪽으로 6㎞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군도 15호선이 마을 앞을 통과하고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자연 마을로는 갱거리, 나뭇거리, 양강, 구룡새터 등이 있다. 본래 남원군 백파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목가리와 기양리 일부를 병...
-
전라북도 남원시 어현동에 있는 도로. 양림길은 옛 지명 양림(楊林)에 개설된 도로로, 어현동 37-12번지에서 어현동 37-70번지 사이에 있는 작은 도로이다. 양림길은 양림마을의 지명을 따다 붙인 이름이다. 양림은 함파우 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양림에서 함파로 넘어가는 고개가 있는데, 양림고개 또는 함파고개라고 한다. 함파는 범을 잡으려고 함정을...
-
전라북도 남원시 송동면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1919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평촌리, 양촌리, 오산리, 치촌리, 세전리의 각 일부를 병합한 뒤 양촌과 평촌의 이름을 따서 양평리라고 하였다. 1630년경 진주강씨가 동성 마을을 이루다가 그뒤 문화유씨와 전주이씨·흥덕장씨 등이 양지촌에 정착하였다. 그 중 일부가 평촌에 정착하여 거주하다가 1920년 6월 경신년 대홍수로...
-
전라북도 남원시에 속하는 법정동. 어은골은 노암동에서 수지면으로 가는 삼거리 부근의 마을인데 어은동, 엉골이라 한다. 일반적으로 엉골은 옛날 벼슬을 하지 않은 선비들이 은둔했던 은사골로도 잘 알려져 있으며 숨은 잉어의 혈 같은 골짜기 형상을 이루고 있다고 하여 어은골, 어은동이라고도 불렀다. 세현은 셋고개[細峴]라고도 하는데 노암동 목공예단지 맞은편...
-
전라북도 남원시 송동면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연산리는 송동면 남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남원시와 세전리, 금지면과 수지면 사이 도로가 교차하는 교통의 요지이다. 본래 이곳에는 오산과 방죽안, 또는 연동이란 자연 마을이 있었는데, 두 마을을 합하여 연산이라고 불렀다. 1500년경인 연산조 때 김씨와 오씨, 변씨 등이 정착하여 마을을 이루었다고 전한다. 도호...
-
전라북도 남원시 인월면 자래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본래 아영면 당동에서 옮겨온 가마가 있어 점촌(店村)이라 하여 도자기를 굽던 곳이었으나 마을의 터가 예로부터 연화도수(蓮花到水)의 명당이라 하여 이름을 연실(蓮室)로 바꾸었다. 일제강점기 장수에 거주하던 김해김씨가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일설에 의하면 예전에는 자래리와 같은 마을이었으나 큰 홍수가 나서 자래리...
-
전라북도 남원시 송동면에 속하는 법정리. 영동리는 영촌리와 손동리를 행정리로 포함하고 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손동리와 영촌리, 오산리, 장포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영촌과 손동의 이름을 따서 영동리라 하였다.영촌리는 정착조인 김수은이 이곳에 정착하기까지 수많은 고개를 넘어왔다고 해서 잿말, 재마을로 부르다 영촌(嶺村)으로 바뀌었다. 손동리는 본래...
-
전라북도 남원시 주생면에 속하는 법정리. 영천리는 영촌리와 유매리를 행정리로 포함하고 있다. 본래 남원군 주포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영촌리, 유천리, 상내리 각 일부를 병합하여 영촌과 유천의 이름을 따 영천리라 하였다. 유매리는 남양방씨가 유촌(楡村)·매안(梅岸) 마을을 이루고 정착해 살면서 유촌과 매안의 첫자를 따 유매(楡梅...
-
전라북도 남원시 아영면에 속하는 행정리. 마을 옆 산의 형국이 자라와 같아 자래뫼(자라뫼)라 불렀다. 그 후 오산(鰲山)으로 표기하다가 한문으로 ‘자라 오(鰲)’자를 쓰기에 번잡하므로 발음이 같은 오산(五山) 또는 오산(吾山)으로 고쳐 썼다고 한다. 그 뒤 지금은 오산(五山)으로 표기하고 있다. 1930년 무렵 한때는 원월산(元月山)으로 부른 적도 있었다. 1500년경...
-
전라북도 남원시 사매면에 속하는 법정리. 오신리는 하신리와 중신리·신촌리·오현리 등의 행정리를 포함하고 있다. 사매면의 면소재지이기도 하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남원군 매내면 지역의 하신리·중신리·신촌리·세동리·풍촌리의 일부와 적과면의 오현리 일부를 묶어서 남원군 사매면에 편입하였는데, 이때 오현과 신촌의 이름을 따서 오신리라고 하였다....
-
전라북도 남원시 대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귀한 터라는 의미의 옥전마을과 밤나무가 많아 밤정이라는 한자 이름의 율정마을이 행정구역 통합 때 합해졌다. 이때 옥전과 율정에서 각 한자씩 따서 지금의 이름으로 되었다. 옥전마을은 400년 전에 밀양박씨가 정착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으며, 율정마을은 1440년경 양씨, 이씨, 서씨 등이 교룡산성의 성터와 인근 소재 절터의...
-
전라북도 남원시 대강면에 속하는 법정리. 옥전리와 택촌리에서 각 한자씩 따서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 옥전은 성주이씨(星州李氏) 문열공 이조년의 9세손인 이홍인이 1580년(성종 11) 경상북도 성주로부터 이주하여 이곳에 정착하였다. 택촌은 고려 개국공신인 평산신씨 신숭겸의 20대 후손인 신맹일이 1680년(숙종 6)에 임실군 삼계면 학정리에서 처음...
-
전라북도 남원시 금지면에 속하는 법정리. 원씨 일가가 많이 모여 사는 속칭 큰골목 부근에는 아무리 가물어도 맑고 시원한 물이 솟는 샘이 있다. 대부분 샘의 형태가 항아리 모양이지만 이 샘의 형태는 유달리 항아리 속에 또 항아리가 있는 것처럼 생겨 독우물 또는 독우멀이라 하였다. 지명을 한자로 바꾸면서 ‘항아리 옹(甕)’과 ‘우물 정(井)’을 써서 옹정(甕井)으...
-
전라북도 남원시 금지면 옹정리에 있는 철도역. 1959년 7월 11일 역원 무배치 간이역으로 시작했고, 1967년 9월 12일 을종대매소로 지정되었지만 다시 무배치 간이역으로 격하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전라선에 속하며 금지역의 관리에 따르고 있고, 2007년 현재 여객열차는 정차하지 않는다. 역 주변에는 국도 17호선이 있어 남원이나 곡성으로 이동하기 쉽다. 평야 지...
-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에 속하는 행정리. 해발 800m의 고산준령에 위치하여 구름도 누워 간다는 뜻으로 와운(臥雲)이라 하였으며 일명 눈골 또는 누운골이라고도 한다. 1595년경 영광정씨와 김녕김씨가 임진왜란을 피해 깊은 계곡을 찾아가다 공기가 맑고 산세가 좋아 이곳에 정착하였다고 한다. 본래 운봉군 산내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반산리, 미동, 와운...
-
전라북도 남원시에 속하는 법정동이자 행정동. 고려 말 이성계(李成桂) 장군이 운봉 황산에서 왜구를 격파하고 돌아가는 길에 남원성(南原城)에 들렀다가 잠시 마을 앞 축천(丑川) 강변에서 쉬어 간 일이 있었다. 훗날 이성계 장군이 조선왕조를 창건하여 왕위에 오르니, 사람들은 이 마을 이름을 왕묘(王廟)와 강정(江亭)에서 이름을 따 왕정(王亭)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1650년...
-
전라북도 남원시 인월면 건지리에 속하는 행정리. 외건리는 내건리·지산리와 함께 법정리인 건지리에 속해 있다. 외건리는 서리산에서 흘러내린 산줄기가 마을을 감싸는 언덕이 있어, 이 언덕 사이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앞쪽으로는 확 트인 농경지가 있다. 원래 이 마을은 물이 귀하다 하여 ‘마를 건(乾)’자를 써서 건지산(乾芝山)이라 하였는데, 외건은 바깥건지라 하...
-
전라북도 남원시 아영면에 속하는 행정리. 외지리에 대한 지명에는 몇 가지 유래가 전한다. 마을의 뒷산이 모산(母山)인데, 풍수지리설에 의한 명산으로 북쪽에 어린아이가 어머니를 받들어 모신다는 유아봉모(乳兒奉母)의 형국이라고 한다. 어머니를 모시는 여러 아이 중의 아기 자리가 이 마을에 해당된다고 하여 마을 이름을 ‘밖에 있는 아기’라는 뜻으로 밧진애기라 하였다...
-
전라북도 남원시 보절면에 속하는 행정리. 외황리은 면소재지에서 북쪽으로 2㎞ 떨어진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지방도와 하천을 끼고 있는 작은 마을이다.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마을 앞산에 거미가 먹이를 잡기 위해 거미줄을 치고 있는 모양이라 하여 ‘지주설망’이라 부르는 유명한 명당이 있다고 하는데, 여기에 연유하여 처음에는 ‘느린데’라고 부르던 것이 와전되어 ‘...
-
전라북도 남원시 향교동에 속하는 자연마을. 일설에 의하면 아득한 옛날 한 마리 용이 나타나 마을 앞에 흐르던 냇물을 마셔 버리자 이후부터 냇물이 말라 마을에 물이 적어져 마을 이름을 용갈(龍渴)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1880년경 고종 때 남원윤씨가 처음 정착하여 마을이 형성되었으며 이씨가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크게 번성하였다. 용정동은 구룡마을, 용갈마을, 신생마을...
-
전라북도 남원시 주천면에 속하는 법정리. 용궁리는 내용궁과 외용궁의 2개 행정리로 구분되며, 해발 300m의 산간 지대에 위치한 중산간 농촌 마을이다. 신라 진성여왕 때 이 마을 동쪽에 있는 해발 1,050m의 높은 산 영제봉에 부흥사라는 큰 절이 세워졌다. 고승과 선사들이 드나들며 휴양한 곳으로, 지상의 용궁이라 칭하여 용궁리가 되었다고 한다. 8...
-
전라북도 남원시 주천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이름은 마을에 용소가 있었으므로 용담이라 하였다. 신라 말에 김해김씨 몇 가구가 모여 살다가 영천이씨가 합세하여 집성촌을 이루면서 오늘날의 마을이 형성되었다. 본래 남원군 하원천면 용담리 지역으로 용담이라 했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용담리라 하여 주천면에 편입되었다. 1995년 남원시와 남원군이 통합되어 남원시...
-
전라북도 남원시 덕과면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용산리는 추산리와 배산리를 행정리로 포함하고 있다. 원래는 옥토끼가 달을 바라보고 일 년 운을 축원하며, 재미있게 소원성취를 축원하다가 헤어진 곳이라는 이야기가 전해 온 데서 분토동이라고 불렸다. 그뒤 물길을 막기 위해 인공으로 산을 만들었다고 하여 분토동을 분토(盆土)로 쓰기도 하였지만, 지명을 한자로 바꾸...
-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용산리는 운봉읍의 동쪽인 지리산 바래봉 아래에 위치해 있다. 아득한 옛날 덕두산 중턱에 있던 용마름산이 떠내려가듯 움직였는데, 한 도사가 칼로 산줄기를 자르고는 그곳에 석축을 쌓아 산이 움직이지 못하게 하였다. 이것은 산을 자른 것이지만 실지로는 용의 허리를 자른 것이 되어 용이 멈춰 산을 이룬지라 산이름을...
-
전라북도 남원시 덕과면 용산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옥토끼가 달을 바라보고 일 년 운을 축원하며, 재미있게 소원성취를 축원하다가 헤어진 곳이라는 이야기가 전해 온 데서 분토동이라고 불렸다. 그 뒤 물길을 막기 위해 인공으로 산을 만들었다고 하여 분토동을 분토(盆土)로 쓰기도 하였다. 이후 지명을 한자로 바꾸면서 용(龍)이 비를 토한다는 전설에 따라 용(龍)자와 지세가 좋은...
-
전라북도 남원시 도통동 용성초등학교 앞에 있는 사거리. 용성이란 고려와 조선시대에 불려진 남원의 이름으로 객사 용성관이 있었던 곳에 용성초등학교가 위치하고 있다. 용성초등학교 사거리라 하였다가 용성사거리가 되었다. 용성초등학교 정문 앞의 네거리로, 동쪽으로는 법원 네거리쪽의 길, 서쪽으로는 서문쪽, 이마트쪽의 길, 남쪽으로는 제일은행 네거리쪽의 길,...
-
전라북도 남원시 금지면 하도리에 있는 행정 자치부 지정 정보화 마을. 정보화 마을 사업은 농어촌이나 산촌과 같이 정보화에 소외된 지역에 초고속 인터넷 이용 환경 조성과 전자 상거래와 정보 콘텐츠를 구축하여 지역 주민의 정보 생활화를 유도하고 실질적인 수익을 창출함으로써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을 주기 위해 시작한 사업이다. 2016년 7월 현재 행정 자치부 지정 정보화...
-
전라북도 남원시에 속하는 법정동. 용정동의 유래는 마을 안에 용정(龍井)이라는 샘이 있는데, 이 샘에 용이 살았다고 하여 이름이 지어졌다. 용정은 여름철에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여 수질이 좋기로 유명하였다. 용정동은 1897년 행정구역 변경에 따라 전라북도 남원군 서봉면 옹정리로 재편되었으며, 일제강점기인 1914년의 행정구역 통폐합 때 남원군 통...
-
전라북도 남원시 인월면 성산리에 속하는 행정리. 1950년경 마을 앞에 있는 묘가 갈룡음수(渴龍飮水) 격이고, 또 무덤 앞에 구슬형의 산이 있어 ‘용 용(龍)’자와 ‘구슬 주(珠)’자를 따와 용주라고 하였다. 1883년(고종 20) 달성서씨가 이주하여 마을을 이루다가, 그 후 김해김씨, 청송심씨가 이주해 와 마을의 규모가 커지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원래 운봉의 동쪽 지역...
-
전라북도 남원시 대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교룡산에서 이 마을을 내려다 보면 구름이 동쪽의 교룡산과 서쪽의 풍악산을 연결하여 마치 구름 속에 다리를 놓은 것처럼 보인다. 천상의 오작교에 비유하여 구름다리라 했는데, 지명을 한자로 바꾸면서 운교가 된다. 고려 초기에 한양조씨가 처음 정착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으며, 그 뒤 면천북씨와 경주이씨가 정착하여 마을이 더 크...
-
전라북도 남원시에 속하는 읍. 운봉읍은 남원시에 소속된 행정단위로, 17개 리로 이루어져 있다. 동쪽으로 동면(東面)·산내면(山內面), 서쪽으로 산동면(山東面)·이백면(二白面), 남쪽으로 주천면(朱川面), 북쪽으로 아영면(阿英面)과 장수군 반암면(蟠岩面)과 각각 접해 있다. 삼한시대에는 진한의 영토였고, 삼국시대에는 모산현(母山縣)이라 칭하여 신라의 국경 요새...
-
전라북도 남원시 주천면 송치리에 속하는 행정리. 웅치리의 유래는 마을 앞의 동남쪽에 있는 산이 곰의 형상인데, 곰이 누워 새끼곰에게 젖을 먹이는 모습과 같다고 유래한 데서 ‘곰치, 곰재’로 부르다 한문으로 표기하여 웅치리라 부르게 되었다. 특히 웅치리를 지나 전라남도 구례군으로 가는 밤재가 나타나는데, 그 밤재 앞쪽에 있다 해서 보통 앞밤재마을로도 불린다....
-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장항리에 속하는 행정리. 온수동(溫水洞), 원수동(元水洞), 또는 원천이라 했다. 본래 만병이 치료된다는 약수가 나와 온수동이라 하였는데, 병을 치료하기 위해 나환자들이 많이 모여들자, 주민들은 이들을 막기 위해 우물을 메우고 원수동이라 바꿔 불렀다. 그 후 일목 장군 주서 박봉양의 제안으로 원천리라 부르게 되었다. 현재도 흔히 온수리,...
-
전라북도 남원시에 속하는 법정동. 월락동은 월미마을과 낙현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월미마을의 명칭은 처음엔 미륵생기라 불렀는데, 전설에 따르면 마을 앞산 모퉁이에 있던 사찰에 미륵불이 있었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또 샘을 팠더니 땅 속에서 미륵불이 나와 미륵이 저절로 생겼다는 데서 이렇게 불렀다고도 한다. 한편 낙현마을의 유래는 1455년(세조 1) 윤...
-
전라북도 남원시 월락동에 속하는 자연마을. 전설에 의하면, 마을 앞산 모퉁이에 위치한 사찰에 미륵불이 있었기 때문이라고도 하며, 또 샘을 팠더니 땅속에서 미륵이 나왔다 하여 처음에는 미륵생기라 불렀다고 한다. 후에 미륵생기와 월천을 합하여 월미라 하였으며 미동으로 부르기도 한다. 1780년경 이씨, 우씨, 김씨, 장씨, 주씨 등이 차례로 들어와 살면서 마을을 형성하였다....
-
전라북도 남원시 산동면 월석리에 속하는 행정리. 월산리는 본래 달뫼였다. 이 마을에는 대성산 자락에 자리한 큰 달뫼와 영월산 아래의 작은 달뫼가 있었다. 마을을 둘러싼 산이 반달형으로 생겨 마치 솟아오른 달을 맞이하는 형상이다. 일설에는 마을 터가 높아 달이 다른 마을에 비해 먼저 비친다고 해 월산이라고 했다고 한다. 1300년경 대성산 아래 삼봉(三峰)의 『...
-
전라북도 남원시 아영면에 속하는 법정리. ‘월산(月山)’이라는 이름은 ‘달바위 섬’에서 ‘월(月)’을 ‘오산(五山)’에서 ‘산(山)’을 딴 이름이다. 운봉의 북상면 지역의 구주리(舊主里), 신지리(新至里) 일부와 북하면의 성리(城里) 일부를 병합하여 남원군 아영면에 편입하였다가 1995년 남원시에 편입되었다. 백두대간 기슭의 450m 고지에 위치하며...
-
전라북도 남원시 산동면에 속하는 법정리. 월석리는 월산리와 석동리의 이름을 따서 월석리라 하였다. 월산리는 본래 달뫼였다. 이 마을에는 대성산 자락에 자리한 큰 달뫼와 영월산 아래의 작은 달뫼가 있었다. 마을을 둘러싼 산이 반달형으로 생겨 마치 솟아오른 달을 맞이하는 형상이다. 일설에는 마을 터가 높아 달이 다른 마을에 비해 먼저 비친다고 해 월산이라고 했다고...
-
전라북도 남원시 대강면에 속하는 법정리. 월산리와 금탄리에서 각 한자씩 따서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 월산은 1570년(선조 4)에 양천허씨(陽川許氏) 문중 사람이 살 곳을 찾아다니다 옥출산(생사 앞)을 넘어오니 한줄기 달빛이 무지개처럼 뻗어 유난히도 밝게 비치는 곳이 보였다고 한다. 금탄은 1580년경에 양천허씨가 먼저 터를 잡았다고 한다...
-
전라북도 남원시 인월면 인월리에 속하는 행정리. 마을 터가 동쪽을 향하고 있어 달이 뜨면 정면으로 달빛을 받는다 하여 ‘달이 뜨면 바로 보이는 언덕’이란 뜻으로 월평이라 했다고 한다. 마을 앞이 넓은 평지인 관당들이 있어 인월에서 제일 넓은 들이라 하여 월평이라고 불렀다는 설 등 유래가 분분하지만 내용은 비슷하다. 1800년경에 인월 부근에서 제일 부자인 박씨가 인월 남...
-
전라북도 남원시 신정동에 있는 도로. 법정동인 신정동은 행정동인 왕정동에 속하며, 남부, 중부, 북부 신정동으로 나누어진다. 윗정재길은 고유지명 윗정재를 따다 붙인 이름이며, 윗정재는 웃정재라고도 한다. 이와 대비하여 웃정재 아래 남쪽에 밀양 마을이 있고, 이 이름을 붙인 아랫정재길이 있다. 윗정재길은 고유지명 윗정재를 살린 길로, 신정동 30-8번...
-
전라북도 남원시 인월면에 속하는 법정리. 본래 이름은 닭실이다. 마을 뒷산 골짜기에 사찰이 있었고 연비산(鳶飛山)이 있는데 솔개(독수리)가 날아가는 형국이다. 독수리에게는 먹이가 있어야 하는데 마을의 형태가 닭장형이고 마을 앞 안산은 닭장 가리개 형상이라 독수리의 시선을 집중시켜 연비산의 정기를 집중토록 했다. 그래서 마을 이름을 ‘닭 유(酉)’자를 넣어 유곡리(酉谷里)...
-
전라북도 남원시 수지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유촌리와 포암리의 이름을 따서 유암리라 했다. 유촌리에는 1535년(중종 30) 봄에 죽성박씨 연주라는 사람이 처음 정착하였다. 이 사람은 풍수지리설에 조예가 깊어 견두산 정상에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보고, 춘삼월 버드나무에 꾀꼬리집이 있는 유지앵소(柳枝鶯巢)의 길지가 있음을 알았다. 그리하...
-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 공안리에 속하는 행정리. 운봉읍 소재지로부터 4.2㎞ 지점에 위치하며, 지방 도로 60호의 왼쪽에 위치한 마을로 공안리 들녘 가운데 위치하며 농업을 주업으로 하고 있다. 처음 마을 이름은 낙안리(洛雁里)였는데, 마을 사람들이 한번 객지로 나가면 고향을 잊고 돌아오지 않자 마을이 위축되고 가난해졌다. 그러자 마을 주민들이 뜻을 모아 마을...
-
...
-
윤재선 아주머니의 연세는 46세이고 친정은 남원 주생면 지당이다. “주생면 지당에서 살다가 결혼해서 노봉으로 시집을 왔죠. 노봉에서 결혼해서 22년을 살았어요. 남편은 김동섭(49세)이고, 1남 2녀를 뒀어요. 큰애가 딸인데 김미라(22세)이고, 둘째도 딸인데 영원(20살)이고 막내가 아들인데 영준(19살)이예요. 지금 남원고등학교 3학년인데 기숙사에서 다니고 있어요.”...
-
“1주일의 식단은 특별한 것이 없어요. 농촌에서 살고 있으니까 김치, 야채 종류를 많이 먹고 있죠. 식단 마련은 특별히 돈이 드는 것이 아니고 집에서 채소를 주로 해서 먹죠. 아이들은 된장찌개나 김치찌개를 주로 먹어요. 잘 먹어요. 여기가 농촌이니까 통닭이나 이런 것은 시켜먹고 하지는 않고 우리 아이들은 토종닭을 주로 먹어요.”...
-
전라북도 남원시 아영면 의지리에 속하는 행정리. 주변의 지세가 아담스러워 아늑하고 포근한 느낌이 드는 마을로서 피난처로 알맞아 초기에는 마을 이름이 야동(夜洞)이라 불리다가 경주김씨의 집성촌이라 하여 경주의 옛 이름을 따서 월성(月城)이라 하였다. 그 후 밤나무를 많이 심어 소득을 올리면서 유명해지자 1930년대에 이르러 사람들이 ‘밤골’이라 불렀다. 그 후 율동(栗洞)...
-
전라북도 남원시 광치동에 속하는 자연마을. 율치마을은 옛날 서울로 가는 길목이었다. 부근 산에 야생하는 밤나무가 많았기에 밤재라고 했다. 고개 이름을 마을 이름으로 사용하였으며 한자로 율치라 했다. 율치리는 지리적으로 마을 뒷산이 높아 고개를 넘어가야 했는데, 이곳에 나그네들이 쉬어가는 주막이 생기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성씨 분포 상황은 김...
-
전라북도 남원시 주천면에 속하는 법정리. 은행리와 내송리에서 각 한자씩 따서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 은행마을은 1480년 경에 전주에서 살던 완산박씨가 처음 정착하였다. 그 뒤에 김씨, 노씨 등이 들어와 마을이 형성되었다. 내송마을은 1390년 경 한양조씨 들이 자리 잡기 시작하여, 그 뒤 경주김씨, 서산유씨 들이 차례로 들어와 마을이 형성되었다....
-
전라북도 남원시 산곡동에 속하는 마을. 응곡(鷹谷)은 교룡산 자락에 위치한 마을로, 교룡산을 매[鷹]에 비유하고 마을의 위치가 교룡산 골짜기에 자리하게 되면서 응곡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또 다른 유래로는 교룡산에 ‘산의 혈자리’를 뜻하는 매혈[鷹穴]이 있어서 그렇게 부르게 되었다고도 한다. 응곡마을은 조선시대 남원도호부 왕지전방 관할의 행정리...
-
전라북도 남원시 아영면에 속하는 법정리. 최초로 마을에 정착한 옥천조씨(玉天趙氏)가 마을 터를 잡을 때 지형이 개미의 허리를 닮았다 하여 개미주라 하였다가 개암지 또는 개암주라고 하던 것을 한자로 바꾸어 의지(蟻池)가 되었다. 1494~1506년경 옥천조씨가 괴질을 피하여 들어와 정착하였으며, 그 후 김해김씨 등 타성이 옮겨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본래 운봉의 북하...
-
전라북도 남원시에 속하는 면. 이백면은 동쪽으로는 백두대간, 서쪽으로는 요천이 흐르는 남원시의 중앙에 위치한 도심 인접 지역으로, 쾌적한 주거 환경과 국도 24호선과 산업도로가 지나고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옛 지명 백암방(白巖坊)과 백파방(白波坊)에서 앞의 흰 백(白)자 두 개를 따서 이백면이라 했다. 백제의 고룡군에 속하였다가 신라 경덕왕 때에...
-
...
-
1960년에 경상남도 거창에서 출생했다. 3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오빠와 함께 남매가 계모를 맞이하게 되었다. 계모는 5남매를 출산했다. 아버지는 건축가였다. 함양 위성국민학교를 졸업했다. 계모가 어려서 남의집살이로 보냈다. 남의 집에서 식모노릇을 하다가 태창기업주식회사라는 청바지 회사에서 일했다. 살기가 너무 힘들어 결혼을 하고 싶었다. 지금 큰시숙이 되는 분의 중...
-
여가생활이라고는 없었다. 취미도 없다. 최근에는 수를 놓기도 하고 뜨개질을 하기도 한다. 이렇게 해서 집안을 예쁘게 꾸미려고 한다. 적은 돈을 들여도 생각만 잘 하면 집안을 예쁘게 꾸밀 수 있다. 1천원에 종이로 만든 꽃을 사서 거실을 꾸몄다. 현재는 벌통 공장에 다닌다. 빚을 갚기 위해 한 푼이라도 벌어야 하기 때문이다. 농사일하고 벌통 공장 다니기에도 바쁘다. 친구는 동네사람들...
-
원래는 종교가 없었다. 그런데 어느 설날 아들이 뜨거운 물에 데는 화상 사고를 입었다. 발 가장자리의 살을 도려냈다. 시어머니가 살림을 보아주지 않아서 혼자서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농사일하고 장사하면서 아이를 키우다가 벌어진 일이었다. 너무나 힘든 생활을 하고 있는 중에 이웃 집 아주머니가 강선암이라는 절에 가자고 했다. 그 때부터 그 절에 다닌다. 10년 넘게 불교를 믿고 있...
-
결혼할 당시는 스래트 집이었다. 일명 수해 주택 집이라고 한다. 지붕만 스래트로 올렸을 뿐, 벽은 진흙을 발라서 만든 옹색한 집이었다. 그 다음에는 기와를 올린 기와집에서 살았다. 그 때까지 불을 때서 밥을 해 먹었다. 임신을 해서도 쪼그리고 앉아 불을 때서 시어머니, 시동생, 시누이, 남편 식사 준비를 해야 했다. 조금 지나서는 연탄불을 쓸 수 있었다. 시어머니의 성화로 2000...
-
...
-
"나는 산내면 매동에서 태어났는데 18세 때 김갑용과 혼인했어. 얼굴도 제대로 못 보고 결혼했지. 그 때 신랑은 징용으로 끌려가서 소련에서 돌아 온 직후로 26세였어. 친정집 매동에서 구식 혼례를 올렸는데 시누 남편이 중매를 섰어. 내가 백일리에서 신접살림을 꾸리는 데 시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시어머니(박오분)가 과부로 있었어. 참 말도 마! 얼마나 시집살이가 심했는지 시어머니가 돌아...
-
"매일 마을 정자에 나와 마을 할머니들과 이런저런 얘기하며 노는 게 일이야. 피곤하면 그늘에서 잠자고, 배고프면 먹고 정말 신선이 부럽지 않아. 아이고! 도시에서는 살라고 해도 못 살아. 이곳의 공기가 얼마나 좋은데. 남원만 나가도 공기가 달라. 아픈 할머니 있으면 면에서 사람이 와서 돌봐주고 그래. 참 좋은 세상이야." "지금 여기 누워있는 할머니들이 다 내 친구들이야. 매일 한...
-
"어휴! 말도 마! 저기 내려다보이는 비탈길에 오두막집을 짓고 살았어. 새마을운동 땐가, 초가집 헐어버리고 기와집을 지었지. 좁은 집에서 8남매 키우느라 참 고생 많았어. " "웬만한 반찬은 다 텃밭에서 해결했어. 장에 나가려면 인월장에 가야 했는데 옛날에 어디 장 한 번 나가기가 쉬웠어야지. 문슨 명절 때나 큰마음 먹고 인월장에 가서 먹을 것을 사왔어. 산내는 산나물이 많이 나....
-
이정순 할머니는 남편이 일본군에 끌려갔다가 중국에서 해방을 맞이하여 소련군에 잡혀 소련 땅에서 6년간 노동을 하고 돌아 온 아픈 기억이 있다. 몇 년 전 정부에서 일제 때 징용에 끌려간 사람들을 파악하여 보상해 준다는 소문을 듣고, 할머니께서 산내면사무소에 찾아가 남편의 과거 억울한 행적을 신고하고 보상을 받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아무런 근거가 없다고 면박을 당했다고 한...
-
전라북도 남원시 지역에서 살고 있는 시민. 남원시의 인구는 88,496명(2009년 현재)이며, 인구 밀도는 117.6명이다. 행정구역은 1읍, 15면, 7동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면적은 전라북도의 9.3%인데 비해 인구는 전라북도의 4.7%를 차지하고 있어 인구 밀도가 낮은 지역이다. 2009년을 기준으로 할 때 출생 609명, 사망 757명으로 인구의 자연...
-
전라북도 남원시에서 지표상에 존재하는 인문적 사상(事象)들을 대상으로 하여 그것을 공간적 관점에서 연구하는 학문 분야. 남원시는 전라북도의 남동부에 있는 내륙 도시로, 동쪽은 경상남도 함양군, 서쪽은 전라북도 임실군·순창군, 남쪽은 전라남도 곡성군·구례군, 북쪽은 전라북도 장수군에 접해 있다. 남원시는 호남과 영남을 연결하는 위치에 있고, 섬진강의...
-
전라북도 남원시 인월면에 속하는 법정리. 전라북도 남원시 인월면의 법정리로 동쪽으로 풍천이 휘돌아 흐르고 남쪽으로는 남천이 흘러 합류하는 안쪽 모퉁이에 위치한다. 1380년(우왕 6)에 삼도도순찰사 이성계 장군이 이곳 인월에서 왜장 아지발도를 토벌하기 위해 황산에 진을 치고 대치하고 있었다. 계속되는 치열한 전투에서 승기를 잡아가던 중 해가 서산에 기울면서 왜...
-
전라북도 남원시에 속하는 법정면. 1380년(고려 우왕 6)에 삼도도순찰사 이성계 장군은 이곳 인월에서 왜장 아지발도를 토벌하기 위해 황산에 진을 치고 대치하고 있었다. 계속되는 치열한 전투에서 승기를 잡아가던 중 해가 서산에 기울면서 왜적의 행동을 탐지하기가 어려워졌다. 이때 이성계 장군은 하늘을 우러러 달뜨기를 기원하였다. 이윽고 동쪽 하늘에서 밝은 달이 떠올라 적의...
-
전라북도 남원시 아영면에 속하는 법정리. 이성계 장군이 1380년(우왕 6) 황산대첩 당시 이곳의 바람을 끌어 화공(火攻)으로 왜구를 물리쳤다고 하여 ‘바람시기(혹은 바람세기)’라 불렀던 것을 한자로 옮기면서 인풍리라 하였다. 한편 비단 자락이 바람에 나부끼는 형국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운봉의 북상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
전라북도 남원시 사매면에 속하는 법정리. 풍수지리적으로 네 마리의 뱀 머리 형국이 있는 곳 즉, 사사두(四巳頭)의 뱀머리의 형국인 사두혈(巳頭穴)이 있는 곳이라 하여 일찍이 비암골 또는 뱀골이라 불러 왔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지명을 한자로 옮겨 인화리로 바뀌었다. 일설에는 이 마을 뒷산인 무산(舞山)에 선인무수(仙人舞袖)의 명당이 있어 인화라 했다고 한다. 1...
-
전라북도 남원시 아영면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일대리는 마을이 길게 뻗어 있어 띠와 같다는 의미로 일대(一臺, 逸臺)라 하였다가 햇볕을 가장 많이 받는 마을이라 하여 ‘일대(日臺)’로 바뀌었다. 일대리에 속하는 부동리는 뒷산에서 내려다보면 마을이 가마솥[釜] 같다 하여 ‘가마말’ 이라고 했는데, 줄여서 ‘가말’이 되었고 한자로 바뀌면서 부동(釜洞)이 되었...
-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둘레 야산에 소나무 숲이 우거져 그 풍경이 일품이라 하여 ‘숲머리’, ‘숲멀’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한자를 차용하여 임리(林里)로 표기하였다. 또한 임리는 조선시대 현지 시찰을 위한 원님 행차 시 운봉 동헌을 출발하여 아곡(阿谷)으로 넘어갈 경우 마을 앞을 지날 때쯤이면 꼭 점심 때가 되어 마을 앞에서 솥...
-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마을 동쪽에 거대한 자연석 두 개가 유달리 우뚝 서 있으므로 돌이 서 있는 마을이라 하여 선독골, 선돌골이라 불렸고, 한자로 입석(立石)이라 하였다. 선독골은 ‘서다’와 ‘돌’, ‘골’로 분석이 된다. ‘독’은 ‘돌’의 전라북도 방언이다. 그런데 이 바위가 서 있으면 입석리는 흥하지만 건너다보이는 원천리는 망한다는 전설...
-
전라북도 남원시 금지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입구에 갓처럼 생긴 큰 바위가 있어 갓바위라 불렀는데, 이것을 한자로 바꾸면서 관암리(冠岩里)라 했다가, 1920년 2년간의 흉년을 만나자 마을 사람들이 관(冠)자와 뜻이 같은 삿갓 입(笠)자로 바꾸어 입암(笠岩)으로 개칭하였다. 현재의 마을 동쪽 두적(斗跡)이라는 삼밭 자리에 임진왜란 이후 문씨(文氏), 지씨(池氏), 황씨...
-
전라북도 남원시 대강면에 속하는 법정리. 입암이라 불리게 된 것은 마을에서 0.8㎞ 떨어진 광주 대구 고속 도로 아래의 야산에 옛날부터 커다란 자연석 바위가 서 있었기 때문이라 한다. 1590년경 함양오씨가 남원시 노암동에서 대강면으로 이주하여 강석·옥전마을로 전전하며 살 곳을 찾다가, 책여산 줄기인 이곳에 터를 잡았다. 1630년경 전주이씨 이명남(李命楠)이...
-
전라북도 남원시 인월면에 속하는 법정리. 삼국시대 신라의 영역으로서 임진왜란 이전에는 자연동(紫燃洞)이었다. 그러나 김잠(金潛)이라는 사람이 장수군 산서면 사상리로부터 왜란을 피해 스스로 찾아 들어 무사하였다 하여 마을 이름을 스스로 찾아든 마을이란 뜻으로 자래리로 부르게 되었다. 또한 지형이 자래(자라)처럼 생겨서 자래실 또는 자래라 하였다. 1582년(선조 15) 임...
-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장교리는 본래 운봉의 서면 지역으로 지형이 긴 다리와 같다고 하여 장다리 또는 장교리라 하였다. 무학대사가 지형을 살펴보니 고남산(古南山) 줄기가 마을까지 뻗어 내린 모양이 마치 긴 교량을 가설한 듯 하므로 마을 이름을 장다리라 하였고, 이 마을은 장차 이씨와 김씨의 터가 될 것이라는 예언했다고 한다....
-
전라북도 남원시 송동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태동리, 동내리, 서내리 일부를 병합하여 장국리라 하였다. 부석리의 명칭은 마을 앞산에 돌이 많아 생겼다. 태동리의 본래 이름은 이뜰이라고 하였다. 마을에 힘이 센 장사인 이뜰이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힘이 좋다는 소문이 남원에 퍼져 이뜰장사라 불렀다. 이것이 나중에 마을 이름이 되었다고 한...
-
전라북도 남원시 주천면에 속하는 법정리. 들이 넓고 물이 풍부하여 넉넉한 생활을 하는데 근심걱정이 없는 마을이라 하여 ‘무수동’이라 이름 붙은 무수마을과 땅이 건조하고 들의 대부분이 밭으로 구성되어 ‘밭들’이라고 불렀다. 외방의 ‘외’자와 밭들 즉 ‘전평’의 ‘평’자를 따서 외평이라 이름 붙은 외평마을을 합병하였는데, 그 위치가 장백산 안쪽에 있다하여 장안리라 칭하게 되...
-
...
-
장종구 아저씨는 마을의 역사에 사건에 대해 이런 이야기를 해 주었다. "청도 김씨(金氏)가 처음으로 들어와 마을을 개척했다고 들었어. 하지만 후손들이 번성하지 못해 집성촌을 이루지 못했어. 우리 마을은 특정 성씨의 집성촌이 아니고 김씨, 이씨, 박씨, 장씨 등 각성으로 구성되어 있어. 마을의 유래는실상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해. 우리 마을이 실상사와 구체적으로 어떤...
-
현재 마을 이장직을 맡고 있는 장종구 이장님은 올해 67세이므로 통념상 할아버지라고 불러야 하나, 마을에서는 70세 이상이 되어야 할아버지 소리를 듣고 또 중장년층에 속한 사람이 몇 명 안 되고 실제 마을일을 도맡아 하고 있으므로, 사실은 아저씨라는 호칭이 어울린다. "1939년 10월 2일 생이므로 올해 만 67세이고 부모로부터 태몽 이야기는 특별히 들은 적이 없어요. 다만 내가...
-
현재 마을의 이장직을 맡고 있는 게 공식 조직의 전부라고 한다. 배점대, 박귀태 등의 친구들이 있는데 모두 서울 등 타지에서 살고 있어서 만나기가 어렵다고 한다. 매동에 사는 곽종식과 장항리에 사는 정인철은 같은 산내면에 살고 있으므로 가끔 만난다. 예전에는 술도 많이 먹고 노래도 잘했으나 심장이 안 좋은 후부터는 술은 일체 금하고 있으며 노래도 안 부른다. 한가할 때...
-
독실한 불교 신자이다. 시간 날 때 마다 실상사뿐만 아니라 양수암, 죽림원, 약수암 등지의 암자도 자주 찾아가 불공을 드린다고 한다. 설날, 추석 등 명절이 되면 조상께 정성껏 제사를 지낸다. 한식에는 직접 선산에 가서 벌초한다. 지금은 명절에 자식들이 집에 오면 함께 식사하고 노는 게 주요 세시 풍속이다. 옛날에 놀았던 것들은 이미 다 사라지고 그저 기억만 날 뿐이다. 그래도 명...
-
"결혼 후 큰딸, 둘째딸을 연이어 낳자 농사만으로는 식구들을 부양하기 힘들더라고. 그래서 일자리를 수소문해 본 끝에 산내면에 소재한 ‘봉황석재’에 취직할 수 있었어. 나로서는 정규직의 일자리를 얻은 셈이지. 원체 박봉이었던지라 첫 월급을 얼마 받았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1천9백원을 받았던가? 직원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회사에서 ‘주동’을 많이 했어. 쟁의위원장을 맡아 사업주와...
-
전라북도 남원시 인월면 성산리에 속하는 행정리. 이곳에 마을이 형성되기 전 산과 들이 평탄하고 길다하여 속칭 ‘건평전’이라 불리던 곳인데, 1970년 독립가구 집단 이주로 새로운 마을이 형성되면서 장평이라 개칭되었다. 1969년 정부시책에 의하여 남원 주변 산간 지역에 산재한 독립가옥을 이곳에 이주시키기로 하였다. 약 40여 정보를 개척하여 1970년에 독립가옥 35세대...
-
전라북도 남원시 송동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이름은 긴 냇가가 되므로 장가실 또는 장로가 되었다. 1623년(인조 원년)에 처음으로 달성서씨와 진주하씨가 터를 잡아 정착했고, 그 뒤에는 진주강씨가 들어와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본래 남원군 두동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장포리라 하여 두동면에 편입되었다가 1956년 7월에 송동면에 편입되었다....
-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마을 뒤 덕두산 줄기의 자락에 마을이 위치하고 있는데, 산세가 노루목과 같은 형국이라 하여 ‘노루 장(獐)’자, ‘목 항(項)’자를 써서 장항리라 하였고, 지금도 사람들은 노루목이라 부른다. 본래 운봉군 산내면 지역으로 벗들[柳坪]과 한밭[大田], 묘동(猫洞)까지도 장항리에 속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이 지...
-
전라북도 남원시 갈치동에 있는 골목길. 재밭길은 옛 지명인 잿밭을 따서 붙인 이름으로, 갈치동 393번지에서 갈치동 산2-9까지에 이르는 길이다. 재밭길은 고갯길이 밭처럼 넓다는 의미의 옛 지명 잿밭에서 붙여진 것이다. 잿밭과 관련하여 잿배기라는 명칭이 있다. 언덕이나 낮은 고개를 넘어간다는 뜻으로 재를 넘는 고개 길가에 생긴 마을을 잿배기마을, 잿...
-
전라북도 남원시 내척동에 속하는 자연 마을. 풍수지리설에 의해 마을명이 정해졌다. 마을 산세가 자(尺, 자 척)혈인데다 마을이 골짜기에 있다 하여 마을 이름을 자실로 불렀는데, 지금은 재실로 부르고 있다. 자혈이 있다는 골짜기는 철도와 밭으로 변했다. 1540년경에 오씨가 이주 정착한 후 김씨, 장씨가 이주해와 마을이 형성되었다. 남쪽으로 교룡산[518m]이 있으며, 광...
-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백일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마을 뒤는 백운봉(白雲峰)이 솟아 있고, 지리산의 천왕봉(天王峰)이 우뚝 솟아 있어 아침이면 백운봉과 천왕봉에 솟아오르는 태양이 깨끗하고 맑게 비치는 마을이라 하여 ‘흰 백(白)’자, ‘날 일(日)’자를 써서 백일(白日)이라 불렀다. 한때는 동수(東水), 서수(西水), 백일, 저전(楮田) 등의 독립 마을이었으나 1914...
-
백일리가 속한 산내면은 우리나라에서 첩첩산중의 오지 가운데 오지라고 할 수 있지만, 백일리는 남쪽은 벼농사를 지을 수 있는 평지가 꽤 넓고 시야가 트여 있으며, 동쪽으로는 지리산 최고봉인 천왕봉이 한눈에 들어올 정도로 장쾌한 경관을 자랑한다. 또 백일리는 전라도와 경상도를 이어주는 길목에 있으므로 사통팔달의 천혜의 자연 환경을 가지고 있다. 백일리는 남원과 지리산을 대표...
-
전라북도 익산시에서 전주시·임실군·남원시, 전라남도 곡성군·구례군·순천시를 지나 여수시에 이르는 일반 철도. 총길이는 185.2㎞이며 전체 구간 중 동익산~신리(완주군 상관면), 동운(순천시 서면 동산리)~여수 구간은 단선이며, 신리~동운 구간은 복선(82.7㎞)이다. 죽림~관촌 사이에는 일반철도에서는 가장 긴 슬치터널6,128m]이 1999년 5월 18일 준공되었다....
-
향교동에 위치한 주요 문화재로는 만인의총(사적 272호)을 비롯하여 남원향교(지방유형문화재 49호), 남원향교 대성전(지방유형문화재 8호), 경주 김씨 보판각(지방유형문화재 161호), 교룡산성(지방기념물 9호) 그리고 남원 사직단(지방기념물 79호) 등이 있다. 교룡산성 안에는 685년에 창건한 선국사라는 절이 있는데, 이곳에는 대북(민속자료 5호), 대웅전(지방유형문...
-
...
-
지금 살고 있는 곳은 와운이며 태어난 곳도 와운리이다. 3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외지로 나가지 못하고 아직까지 고향을 지키고 있다. 어린 시절 아버지에 대한 기억보다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더 많다. 할아버지는 매우 엄하셔서 동네에서 호랑이 할아버지로 소문났으며 멀리서 거동하시는 것이 보이면 마을 젊은이들은 피해 다닐 정도였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농사일을 도우면서 농사를...
-
마을 총회가 있기는 하지만 별 관심은 없다. 마을에서 회의를 해야 할 안건도 많지 않을 뿐 아니라 주민의 수도 적어서 회의를 할 필요성을 별로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마을에서 여행을 갈 때에는 참가한다. 외지 출입의 기회가 많지 않아서 그런 기회에 마을 사람들과 같이 바깥 나들이를 하는 것이다. 동갑이 제일 친하다. 산내면을 단위로 동갑계가 조직되어 있다. 현재 회원은 25명이다....
-
본인이 믿고 있는 종교는 없다. 마을에는 목사도 한 명 있고 스님도 한 명 있다. 그러나 목사는 목회 활동을 하지 않는 것 같으며 마을 주민들 중에서 기독교 신자라고 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 스님은 암자처럼 집을 꾸며 두고 있으나 그 곳에 다니는 주민은 한 명 정도 있다. 대신 비손을 하는 사람은 있다. 몸이 좋지 못하거나 일이 잘 안될 때 그리고 출산을 앞두고 비손하는 사람을...
-
한평생 농사만 지었다. 마을 주변의 산을 개간한 밭에서 서숙, 고구마 등을 재배했다. 요즘은 고사리 농사를 많이 한다. 젊어서 자녀 교육 문제로 남원에 식구를 내보냈다. 남원에 집과 논을 사서 아내와 자녀들을 내보내고 본인은 혼자 와운에 남아 농사를 지었다. 요즘은 농사만으로는 살기 힘들기 때문에 와운에서는 한봉과 고로쇠 수액 채취를 많이 한다. 한봉은 일 년에 한번 꿀을 내리지만...
-
전라북도 남원시 주생면에 속하는 법정리. 정충리는 마을 뒤편에 모셔진 황진 장군의 사당 정충사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반송리는 원래 새술막이라 했다. 이곳은 과거 전주, 곡성, 순창, 남원으로 통하는 길목으로 수많은 여행자들이 쉬어가는 곳으로, 이들을 위한 새로 생긴 주막이 있어 새술막이라 불렀다. 그 뒤 마을 뒷산에 반송정이란 정자가 있어 마을 이름을 반송...
-
...
-
마을의 유래와 역사적 사건에 대해서 물으니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실상사와 관계가 있다고 하는데 구체적인 것은 잘 모르겠어. 처녀 때 닥종이 만드는 일이 너무 힘들어 남편을 따라 보성, 임실에서 한 3년 살았어. 그때는 이곳만 벗어나면 잘 살 줄 알았지. 어려서 배고팠던 기억이 많이 생각나요. 그때는 어찌도 그리 못 먹고 못 살았던지! 지금 생각하면 참 세상 많이 좋아졌어. 요...
-
정영희 아주머니를 통하여 남원시 산내면 백일리, 대정리 일대가 예전에 유명한 한지 생산 지역임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2000년까지만 해도 겨울철에는 한지를 생산하는 공장이 가동하였는데 지금은 한 두세 곳에서만 생산하고 있는 실정이다. 산내 한지 생산지 마을 주민들은 보통 15살 전후부터 가사인 종이뜨는 일을 돌보았기 때문에 대부분 종이를 뜰 줄 안다. 그래서...
-
"난리(한국전쟁)가 난 해의 이듬해(1951년)에 태어났으니 올해(2006년) 만으로 55세예요. 초등학교 다니는 손자, 손녀가 있으니 할머니 소리 들은 지도 오래 되었네. 내가 태어날 당시의 상황을 어찌 알겠냐만, 어린 시절에 참으로 배고프고 가난했던 기억밖에 없어요. 그 시절엔 왜 그리도 못 살았던지! 밥을 굶어 얼굴이 노랗게 뜬 사람이 부지기수였어요. 부모로부터 무슨 태몽 이...
-
옛날에는 술 한 잔씩했으나 지금은 신경성 두통이 있어서 마시지 못 한다. 최근 머리가 아프고 토하고 해서 남원삼성병원에서 2주간 입원했다. 서울에 사는 친구 박점순하고는 사돈을 맺었다. 특별히 노는 일은 없고 다만 ‘사랑은 아무나 하나’, ‘미스고’, ‘있을 때 잘해’ 등의 노래를 즐겨 부른다....
-
독실한 불교 신자다. 실상사에 가서 불공을 드린다. 남편이 지금도 병석이 누워있으므로 제사는 잘 안 지내는 편이다. 특별한 게 없다. 명절 때도 자식들이 다 모이기가 쉽지 않다....
-
현재 집은 없고 지금 개업한 식당 건물은 1년에 2백만원에 세를 얻어 살고 있다. 원래 1년 세가 150만원이었는데 올해 주인이 50만원을 인상하여 타격이 크다고 한다. 그래도 음식 솜씨가 좋다고 해서 멀리서 찾아오는 단골 덕택에 유지된다고 한다. "김치, 산나물, 멸치볶음, 추어탕, 된장찌개, 김치찌개 등이야. 식당을 운영하므로 아무래도 반찬 종류가 많아요. 손님들 입맛에 맞추기...
-
전라북도 남원시 주생면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제천리는 옛날부터 여러 갈래 냇물이 마을 앞으로 흘러 요천으로 모두 합류하는 곳이어서 모든 냇물이란 뜻으로 제천이라 불렀다. 냇물이 모이는 곳이란 의미와는 달리 마을 뒷동산이 거북이 모양과 흡사하여 모든 물이 거북 바위에 모인다는 의미로 제구천이라고 칭하기도 하고, 제구내라고도 했다는 설도 있다. 그러다 19...
-
전라북도 남원시에 속하는 법정동. 남원시의 서남부에 위치한 도농 지역으로 최근에는 아파트를 건설하는 등 개발이 진행 중이다. 남원의 특산품인 목공예품 생산단지인 목공예단지가 있다. 풍수지리설에 의해 마을에 산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지명으로 산을 만든다는 조산(造山)을 사용하였다. 남원은 지세가 행주형(行舟形)이라 한다. 이것을 알게 된 도선(道詵)은 흘러가는...
-
전라북도 남원시에 속하는 면. 남원 시내에서 서남쪽 8㎞에 위치하며, 청정 섬진강 상류 지역으로 벼농사를 주업으로 하고, 포도, 복숭아, 배, 멜론, 딸기, 오이, 느타리버섯, 새송이버섯 등을 생산하고 있다. 주생면은 9개 법정리, 17개 행정리, 30개 자연 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상동리, 중동리, 지당리, 영천리, 정송리, 제천리, 낙동리, 내동...
-
전라북도 남원시 주생면 제천리에 있는 철도역. 1933년 10월 15일 역원배치 간이역으로 영업을 개시하여 여객 및 소화물 취급을 하였으나 1977년 5월 16일 이후 소화물 취급량 부족으로 중지하였다. 현재는 주로 운전취급을 담당하고 있으며, 전라선에 속한다. 역 주변에는 국도 17호선이 지나고 있어 남원이나 곡성으로 이동하기 쉬운 위치에 있다. 평야 지역에 위치해 있...
-
...
-
친정은 여수다. 6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 위로 오빠가 둘, 언니가 하나 있다. 결혼은 25살에 했다. 여수에서 알고 지내던 언니가 먼저 덕동으로 시집을 왔다. 그 언니가 덕동에 좋은 신랑감이 있다고 중매를 섰다. 그 사람은 언니 남편과 친구였다. 중매를 해서 선을 보는데 딱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결혼을 했다. 결혼해서 덕동에 오니 여수와는 사는 것이 너무 달랐다. 그래도 이렇...
-
시간이 나면 마을에 같이 살고 있는 동서네 집에 가서 동서와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여가 시간이 많지는 않다. 그리고 여가 시간이라고 하더라도 나물을 다듬는다든지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식당을 하니까 늘 바쁘다. 혼자만 바쁜 것이 아니라 마을 사람 모두 바쁘다. 그러니 평소에는 모여 논다거나 할 수 없다. 남편은 동갑계를 한다. 이 모임은 두 달마다 모인다. 모일 때마다 회비를 2...
-
절에 다닌다. 그러나 자주 가는 편은 아니다. 꿈자리가 사납거나 몸이 좋지 않으면 스님들에게 물어본다. 그러나 미안해서 자주 물어볼 수는 없고 혼자서 방침을 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꿈자리가 사나울 때는 손에 소금을 잡은 뒤 머리 위에 세 번 돌리고 침을 세 번 뱉고 난 뒤 소금을 집어 던져버린다. 그러면 꿈자리 사나운 것이나 기분이 안 좋은 것은 해결된다. 차례는 지낸다. 사람이...
-
시집을 와서 지금까지 이 자리에서 살고 있다. 시아버지가 차남이어서 이미 분가해 있었지만 신랑은 장남이어서 시부모와 함께 산 것이다. 살아가면서 집을 고쳐 지었으며 현재의 집은 민박과 식당을 하기 위하여 새로 지었다. 식당을 하고 있어서 일상 음식이란 게 특별히 없다. 식당에서 만드는 음식이 일상적으로 먹는 음식이다. 덕동의 경우 산채와 토종닭이 가장 중요한 메뉴이다. 산채는 대부...
-
전라북도 남원시 주천면에 속하는 법정리. 옛날부터 이 마을 사람들은 집집마다 주역을 많이 읽어 이곳을 예의가 바른 터라 해서 주례기라 불렀는데, 그 뒤 학문과 선비의 격이 풍기는 주례기 마을 앞의 하천이 산 밑을 돌아 간다하여 주천리로 바뀌었다. 하주마을은 1650년 신안주씨가 처음 정착한 뒤 하씨, 유씨, 박씨 등이 차례로 들어와 마을이 형성되었으나 현재는...
-
전라북도 남원시에 속하는 법정면.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하원천면과 상원천면·주촌면 등 3개 면과 장흥면의 천거·상삽·애현·남북교리 일부와 만덕면의 죽우리 일부를 병합하여 주촌면의 ‘주’자와 원천면의 ‘천’자를 따서 주천면이 되었다. 하원천방, 상원천방 그리고 주촌방 등 3개의 방이 있었던 지역으로 1897년에 8도를 13개 도로 개편하면서 방이 면으로...
-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마을 지형이 바다에 떠 있는 배와 같이 생겼고 처음 정착한 주민의 주택이 배의 복판에 해당하여 항상 배의 뒤를 돌아보아 배의 안전을 살펴야 했다. 배의 꼬리 부분을 바라본다는 뜻으로 마을 이름을 망종리(望終里)라 부르기도 하였다. 일설에 의하면 석기시대, 운봉이 큰 호수로 있을 때 사람들이 고리봉에 배를 매고 고기잡이...
-
전라북도 남원시에 속하는 법정동이자 행정동. 죽항동 동부 지역을 관통하는 섬진강 요천수의 소금배 해상 교통로와 여름 홍수 등의 하천 범람에 따른 풍수지리의 숲정이와 대나무숲 조성의 결과로 만들어진 동림숲 내의 대나무골이라 불린 데서 포구(상항리)와 대나무 숲(죽우리)이라는 의미의 ‘죽항(竹巷)’이라는 명칭이 유래되었다. 1300년경 남원양씨(南原梁氏) 정착하여...
-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지세가 무난하여 천재지변이 없고 산수가 수려하며 유행병이나 괴질이 없었다. 인심이 순후하여 도적이나 짐승이 침범하지 않아 삼재가 없는 살기 좋은 고장이라 하여 향촌(香村)으로 불렀다. 그 후 서씨와 유씨 등이 정착하면서 준향, 또는 준행이라 부르게 되었다. 본래 운봉군 남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엄...
-
전라북도 남원시 인월면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임진왜란 당시 군사 요새지로서 전투군단의 편성에 있어서 전군(前軍)·중군(中軍)·후군(後軍)과 선봉부대가 있었는데, 이중 중군이 주둔한 연유로 인해 마을 이름을 중군이라 하였다. 1385년(고려 우왕 10)에 배씨(裵氏) 일가가 이주하면서 자손들이 터를 잡아 살아오다가 1590년경 배씨들이 몰락되었다. 이후 전주최씨(全...
-
전라북도 남원시 인월면 중군리에 있는 민속 관광단지. 1385년(고려 우왕 10) 배씨(裵氏) 일가가 이주하면서 자손들이 터를 잡고 살다가 1590년경 배씨족이 몰락한 후 전주최씨(全州崔氏), 김해김씨(金海金氏), 안동권씨(安東權氏), 남원양씨(南原梁氏) 등 4개 씨족이 정착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인월면 중군리는 임진왜란 당시 군사 요새지로서 전투 군단 편성 중 전군...
-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대정리에 속하는 행정리. 사방이 병풍을 둘러놓은 것처럼 높은 산으로 포위되어 있고, 그 가운데 마을 터가 있다 하여 ‘가운데 중(中)’자와 ‘터 기(基)’자를 써서 중기리라 하였다. 또 마을 터가 중앙의 길지라 해서 중기라 하였다고도 한다. 예로부터 중터라고 불렀다. 마을이 번창하여 세대수가 늘어나고 있으며, 또 위아래로 뜸이 생긴 후로는 상중기(...
-
전라북도 남원시 주생면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중동리는 원래 남원군 이언면 지역으로, 이언면의 중심이 된다 하여 가운데몰, 본동, 중동이라 했다. 중동을 일명 이언이라고도 하는데, 이에 대한 일화가 전해온다. 조선 예종 때 두사촌이란 중국인이 휴식 중 교룡산의 정기를 이어받은 중동리를 바라보다가 “이렇게 좋은 명당촌이 어디 있는가” 하고, 혼잣말로 ‘아!...
-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마을이 들어서기 전에 뒷산 백운산 기슭에 황강사(黃岡寺)란 절이 있었고, 북쪽으로 약 500m 위치에 꿩이 엎드려 있는 형국이라는 복치혈(伏雉穴)이 있어 황강사의 황(黃)자와 복치혈의 치(雉)자를 따서 황치(黃雉)라 했다. 한편 황치(黃雉)의 치(雉)를 고개 치(峙)로 써서 황치(黃峙)골이라 불리기도 한다. 마을 주변의...
-
전라북도 남원시 주생면에 속하는 법정리. 지당리는 마을 한복판에 연못이 있어 지당이라 불렀다고 한다. 오늘날 큰 연못이 있고 마을이 자리 잡은 주변도 넓어 지당리라 부르게 되었다.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지당은 마치 연꽃이 만발한 형국이므로 연못이 있어야 명당의 발복을 받을 수 있다 하여 이러한 지명을 갖게 되었다고도 한다. 대지는 큰마을(큰몰), 소지...
-
전라북도 남원시 주천면과 운봉읍, 산내면에 걸쳐 자리한 지리산 둘레로 조성된 숲길. 지리산 둘레길은 지리산 둘레를 환형으로 연결하는 장거리 도보 길로 3개 도[전라북도·전라남도·경상남도], 5개 시군[남원시·구례군·하동군·산청군·함양군], 20개 읍면, 120여 개 마을에 걸쳐 있는 장거리 도보 길을 말한다. 2007년 1월 설립된 ‘숲길’에서 조사와 정비를...
-
전라북도 남원시 주천면 육모정과 산내면 뱀사골 입구 그리고 전라남도 구례군 천은사 사이의 지리산을 횡단하는 도로. 남원시 산내면 뱀사골 입구~달궁~도계~심원~성삼재~시암재~전라남도 구례군 천은사 구간의 지방도 861호, 남원시 주천면 육모정~고기리 삼거리 구간의 국가지원 지방도 60호와 고기리 삼거리~정령치~달궁 삼거리 구간의 지방도 737호 등 2개 코스 4...
-
전라북도 남원시 지역에 있는 국립공원. 지리산국립공원은 1967년 우리나라 국립공원 제1호로 지정되었으며, 1915.4m의 천왕봉을 중심으로 한 주변 지역으로 국립공원 총 면적은 440.4㎢(1억 3000만 평)이다. 전라북도와 전라남도 그리고 경상남도의 3개 도 5개 시·군에 걸쳐 있으며, 이 중 남원시 관내는 107.86㎢로 시·군 중에서는 가장...
-
전라북도 남원시 남원대교 남단과 주천면 육모정 사이에 있는 도로. 지리산길은 원래 폭 5~6m의 2차선 도로였으나 2001년 11월 남원대교 남단에서 주천면 사거리까지 4차선 도로로 확장, 포장되었다. 지리산길은 지리산으로 가는 길이며, 남원 시내와 지리산을 연결하는 주간선 도로이다. 총 길이는 7.4㎞로, 남원대교 남단에서 주천면 사거리까지는 폭...
-
뱀사골마을은 국립공원 지리산 안에 위치한다. 뱀사골마을은 지리산의 북동부 계곡에 위치하고 있어서 지대가 상당히 높은 편이다. 그 중에서도 달궁과 덕동 그리고 와운은 지리산의 주 등산로인 뱀사골을 끼고 있다. 뱀사골 등반로를 오르면 전라남북도와 경삼남도가 만나는 것으로 유명한 삼도봉에 이르게 된다. 뱀사골이란 지명은 여러 가지로 설명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이...
-
전라북도 남원시 지역의 산, 강, 하천과 마을, 거리 등의 이름. 땅에 붙여진 지명은 인간생활에 도움을 주고 편리하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지명은 지역민들의 생활이 투영된 것이며 사상이 드러난 것이다. 지명은 인위적으로 만든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시대와 사회상이 반영된 주민 전체의 의견이 표현된 것이다. 그러므로 지명으로 당시의 사고, 의식 구조, 전통과 습관, 문화와...
-
전라북도 남원시 수지면과 산내면을 잇는 지방도. 지방도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행정상 중요하다고 인정하여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직접 관리하는 도로를 가리킨다. 지방도 60호선을 전체로 보면 전라남도 무안군 현경면에서 부산직할시 기장군 장안읍까지 연결하는 국가지원 지방도이다. 지나가는 도로의 대부분이 지방의 중심지와 주요 노선을 통과하고 있으며 국도와 접하여 지나기도 한다...
-
전라북도 남원시 보절면에 속하는 법정리. 진목리는 연대 미상의 고목이 마을 가운데 서 있고 당산에 참나무 정자가 있어서 참나무정, 또는 참남정이라 했는데, 지명을 한자로 바꾸면서 진목이라 했다. 내동리는 마을이 산 쪽으로 깊숙이 있다 하여 안골로 부르다 내동으로 바뀌었다. 신기리는 마을이 세워질 때 소득과 발전을 새로운 터전 위에서 닦는다 하여 새터라 불렀다....
-
전라북도 남원시 금지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창활과 호산의 이름을 따서 창산리라 하였다. 호산마을의 경우 1917년 발행된 지명 자료에는 여시메, 즉 호산(狐山)이라고 되어 있다. 일설에는 1920년 대홍수가 발생하여 호수가 메워지고 산이 생겨 호산(湖山)이라는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어느 것이 정확한 것인지는 확실치 않으나 정황으로 추정해...
-
전라북도 남원시 이백면에 속하는 법정리. 척동리는 마을에 잣나무가 많아 잣골이라 하였다. 그 후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뒷산에 옥녀가 베를 짜는 옥녀직금 형국이 있는데 그중 잣골은 옥녀가 비단을 재는 자에 해당된다고 하여 척동(尺洞)으로 고쳤다고 한다. 연산군 때 고죽동(高竹洞)에 거주하던 유자광(柳子光)이 마을 뒤로 흐르는 요천의 수위를 조절하기 위해...
-
전라북도 남원시에 속하는 법정동. 천거동은 본래 개천가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냇거말이라 했는데, 지명을 한자로 바꾸면서 천거(川渠)가 되었다. 일설에는 옛날 남원성(南原城) 내의 하수구가 요천 쪽으로 많았으며, 요천을 이용하여 조산 쪽 들로 향하는 농수로 등이 많이 설치되어 있어 내[川]의 도랑[渠]을 뜻해 천거(川渠)라 했다고도 한다. 본래 남원의 장흥면...
-
전라북도 남원시 월락동에 있는 작은 도로. 천사동길은 천사동(天使洞)마을 진입 도로로 월락동 481-3[월미길 25]에서 월락동 556번지까지의 작은 길이다. 정유재란 때 명나라 천사 송대빈이 마을 뒷산에 올라 적의 정세를 살폈다고 하여 천사봉으로 불렀고, 이에 따라 마을 이름을 천사동마을이라 부르게 되었다. 천사동길은 마을 이름에서 연유한 것이다....
-
전라북도 남원시 아영면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외지리는 뒷산이 풍수상 유아봉모(乳兒奉母)인데 아기들의 자리가 마을에 해당하며 밖에 있는 아기라는 뜻으로 ‘밧진애기’라 하였으며, 이를 한자로 옮기면서 외지(外至)가 되었다고 한다. 광평리는 주위가 넓은 평야여서 넓은 들이라는 뜻의 ‘너더리’였는데 한자로 옮기면서 광평(廣坪)이 되었다. 고인리는 마...
-
전라북도 남원시 수지면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초리는 문화유씨의 세가 큰 초리와 사방이 대밭으로 둘러싸여 은신처로 알려진 서당리로 이루어져 있다. 문화유씨 시조 유차달이 황해도 문화현 초리방에서 태어났는데 시조의 탄생지 이름을 따서 초리라고 명명했다는 설과 산이 적고 들이 넓어 풀이 많은 관계로 초리라 했다는 설이 있다. 초리는 17...
-
전라북도 남원시 이백면에 속하는 법정리. 본래 오촌리는 자래울 또는 오촌이라 하였다. 부친의 묘를 쓰기 위해 마을 앞 당산의 땅을 파던 연안이씨는 땅속에서 바위가 나오자 그 바위를 깨뜨렸다. 그러자 바위 속에서 자라 한 마리가 기어 나온 후 물이 솟았다고 한다. 연안이씨는 묘를 다른 자리로 옮기고 물이 솟은 자리에 우물을 만들었다. 이러한 연유로 자라가 나와...
-
...
-
최도범 할아버지의 연세는 74세로 계유생(1933년)이다. 태몽은 특별한 것이 없다. 다만 탯자리에서 전해오는 이야기는 태어날 때 목에 흰 줄(탯줄)을 감고 나오면 구육(狗肉, 구탕, 보신탕)을 안 먹으면 좋다는 말이 마을에 전해오고 있다. 최도범 할아버지 부친의 성명은 최성술(成述)[삭녕최씨]이고, 모친은 최수모(秀模)[경주최씨]이다. 부모가 같이 최씨이지만 본관이 서...
-
마을의 유래, 형성 과정에 대해 최도범 할아버지는 노봉마을 뒤에 있는 노적봉에서 촌명이 유래하였다고 말해 주셨다. 노봉마을이 언제 형성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가 없지만 노봉서원이 있었고, 그 이전에는 향교가 있었을 것이니까 고려 말이나 중엽에도 마을이 있었을 것이 아닌가라고 추측한다고 말했다. 또 노봉마을은 예로부터 물이 귀해서 메밀, 조, 서숙 등 밭작물을 많이 했었다고 한다....
-
집안에 모시는 신의 여부/신주(神主)의 위치는 어디냐는 물음에 믿음은 마음에 있는 것이다고 말씀하면서 미신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드러내신다. “하나님을 믿든 부처님을 믿든 집안에 모시는 신 그런 모든 것은 다 자기 마음속에 있다고 헙니다. 나는 미신적인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요. 미신이란 것은 미혹할 미(迷)로 아득하다는 것이요. 그러개 내가 뭣을 믿고자도 안보일 정도로 아득해서...
-
지금까지 노봉마을에서 줄곧 농업에 종사했는데 농사를 지어봐야 수입이 형편없단다. “농사를 지었어요. 논농사는 1,800평을 경작하고 있어요. 별 일 없으면 일년에 80㎏, 백미 30가마를 수확한다고 보면 돼죠. 3분의 1은 손자들까지 식량을 하라고 주고, 3분의 1은 농비로 쓰고, 3분의 1은 가용으로 쓰는데 오히려 당년 생산량으로는 많이 부족하죠. 그러면 나머지는 어떻게 보충을...
-
...
-
향교동 마을에서 유명한 곳으로는 무엇보다도 남원향교를 들 수 있다. 향교동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만 봐도 그렇다. 원래 향교가 있던 마을의 이름이 교동 등으로도 불리어지나 남원의 향교동은 직접 향교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조선 시대에 호남 지역에는 4대 향교가 있었는데 남원향교를 비롯하여 전주향교, 광주향교, 나주향교가 그것이다. 남원향교는 조선 시대 전체를 통해 12...
-
나는 1956년 4월 1일 생으로 나이는 만 50세이다. 전주 최씨이고, 남원시 주생면 영천리가 고향으로 1988년까지는 이곳에서 살다가 결혼 3년 후인 1988년에 남원시 쌍교동으로 분가한 후 1991년부터 이 곳 향교동에서 살고 있다. 최종 학력은 고등학교 졸업이다. 초등학교는 남원시 주생면에 있는 주생초등학교를 나왔으며 중학교는 남원 용성중학교를 다녔다. 중학교 다닐 때는 우...
-
마을 일에는 잘 관여하지 않고 있다. 직장 생활에 충실해야 하니까 다른 공식적인 일을 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 성격이 외향적이진 않아서 특별히 친구들을 많이 사귀지는 않다. 주변 동료들과 학교 동창 등을 가끔 만난다. 노래나 놀이 등은 별로 좋아하지 않고 노래방도 거의 가지 않는다. 역사에 관심이 많아 역사책을 보면 많이 재미를 느끼고, 드라마나 영화도 역사적인 내용을 다룬 것을...
-
가정 신앙은 없으며 신체도 모시지 않는다. 나뿐만 아니라 부모님이나 아내, 자녀들 모두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다. 나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모두 외아들이셨고 아버지는 아들만 다섯을 두셨는데, 내가 우리 5형제들 중 장남이다. 우리 집에서 제사는 3대까지 지내고 있다. 아버지와 내가 제사를 주도하고 있다. 그리고 선산은 남원시 송동면에 있으며 내가 직접 관리하고 있다. 제일(祭日)은...
-
군제대 후 1년 동안 운수업에 종사하다가 1982년에 지방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그 당시의 처음 받았던 월급은 군제대 가산 경력 3호봉 포함해서 본봉이 약 89,000원으로 기억난다. 그 외 여비, 수당 등을 포함하면 약 120,000원 정도 받았던 것 같다. 현재의 연봉은 약 4,500-4,600만 원 정도이다. 한편 과거 박정희 정권 때부터 전두환 정권...
-
...
-
최이순 할머니의 친정은 임실군 강진면 백련리인데 지금은 전주로 이사를 가서 전주에서 살고 있다. 최이순 할머니가 시집은 20살 때 왔는데 당시 신랑인 할아버지(이영무, 현재 73세)는 19살이었다. 당시 결혼을 주선한 중신어미는 시댁인 노봉마을의 아랫몰에 살던 윤놀이어매인데 지금은 작고했다. 윤놀이어매는 그 할머니의 아들 이름이 김윤놀이어서 그렇게 부른다. 윤놀어매는 평...
-
옛날에는 먹고 살기가 힘들어서 특별히 날 잡아서 놀거나 별식을 해서 먹고 하지를 못했다. “촌에서 그럴 새가 어디 있어요. 자석들허고 먹고 살기도 힘든디.”라고 말한다. 지금이야 쌀밥이 흔하니까 그렇지 전에는 식량이 귀해서 죽을 끓여서 먹었다. 일꾼들도 죽을 끓여서 좀 되죽한 것을 주고 나머지는 멀건 죽을 먹었다. 정지꾼들은 멀건 죽을 먹었다. 봄에는 쑥을 캐서 쑥죽을 끓이고 나물...
-
할머니는 남원에 있는 보문사에 다니면서 불교를 믿고 있다. 보문사는 남원의 시내버스 종점에서 보면 보인다고 한다. 절을 노상 다니면 돈이 드니까 정월에 신수 불공하러 가고, 동짓날 동지 불공 가고, 사월 초파일에 가고 하여, 일 년에 몇 번 간다. 그런데 가려면 시줏돈을 가지고 가야 하니까 생각처럼 많이 자주 다니지는 못한다. 시줏돈은 얼마씩 하느냐는 질문에 형편에 나름대로 돈 있...
-
결혼하고 나서 시집은 아랫몰에 있었고 할머니는 중뜸에서 따로 살았다. 결혼해서 처음에는 남의 아래채에서 셋방살이부터 시작해서 나중에 33살 먹을 때 집을 장만하게 되었다. 결혼한 지 13년 지나서 집을 장만한 것이고 그런 후에 지금부터 6년 전인 69살 먹었을 때 그 집을 밀어버리고 양옥집을 새로 지었다고 한다. 결혼 직후부터 분가해서 살았기 때문에 시부모님으로부터 살림을 물려받은...
-
...
-
1945년 남원 죽항동에서 태어났다. 위로 오빠 한 분이 있었고, 밑으로 남동생 하나와 여동생 하나가 있었다. 2남 2녀 중 큰 딸이다. 당시 명문이었고 지금도 명문인 남원여고를 졸업했다. 그 때까지만 해도 농사일이나 집안일을 해 보지 않았다. 친정에서는 비교적 유복하게 자란 편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로는 원불교 교당에서 잔심부름을 하다가 25세가 되어 집안 어른들의...
-
장구계를 들었다. 장구를 구입하고 장구를 배워서 치는 것이다. 1년에 한 번 씩 1년을 결산하는 ‘계갈이’를 하고 그 수입으로 먹고 놀러 간다. 평소에는 노인회관에서 그 곳에 모인 동네 사람들과 같이 화투를 즐긴다. 화투는 보통 10원이나 100원 정도를 걸고 친다. 동네 사람들이 모두 친구다. 특별히 장구계의 계원들과 같이 잘 지낸다. 그동안 새마을 동우회도 있었고, 새마을연합회...
-
친정 부모님께서 원불교에 다니셨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어렸을 때부터 원불교를 믿었다. 시부모님은 특별한 종교가 없었으나, 결혼 후에도 원불교를 계속 다녔다. 매달 1일과 15일에 기도를 드리고 보은미를 바친다. 남편과 시부모님, 시할아버지, 시할머니 제사를 지낸다. 남편이 큰 아들이었기 때문에 큰 며느리인 본인이 제사를 지내는 것이다. 상할아버지 제사부터는 박씨 종중 시제에서 모신다...
-
처음 결혼해서는 갈대로 만든 샛집에서 살았다. 그 당시에는 그래도 있는 집에서만 갈대를 지붕으로 올릴 수 있었다. 불을 때서 밥을 지었다. 새마을사업이 시작되었을 때는 함석집으로 고쳤다. 1999년에 아들이 보내 준 3천만원과 농협에서 받은 융자금 2천만원과 본인의 2천만원 돈을 합쳐서 7천만원으로 30평짜리 신식 벽돌집을 지었다. 집이 번듯하고 넓어서 좋다. 시장은 1일과 6일에...
-
전라북도 남원시 인월면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취암리는 인월면 소재지에서 군도 25호선인 유곡선을 따라 2㎞ 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1530년(중종 25) 양성지(梁誠之)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을 편찬하기 위해 전국의 산세 지형을 살피고 다닐 때 이곳 취암리에 당도하였을 때의 일이다. 마을을 둘러보니 둘레의 산세가 새집처럼 생겼는데...
-
전라북도 남원시 산동면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이곡리의 본래 이름은 배실이다. 마을의 모양이 배를 잡아 맨 것 같다 하여 처음에는 배실이라 불러오다 땅 모양이 배를 잡아 맨 것보다는 배꽃이 사방에 날려 있는 형태라 하여 배나무의 배실로 고쳤다고 한다. 하지만 마을의 지형이 배꽃이 떨어진 이화낙지형국(梨花落地形局)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배실로 불려진 것으로...
-
전라북도 남원시 금지면에 속하는 법정리. 해발 110m 미만의 비옥한 평야 지대로 마을 뒤로는 고리봉이 우뚝 솟아 있으며, 마을 앞에 금지역과 금지초등학교가 있으며 넓은 금지평야가 펼쳐져 있다. 마을 이름은 택내리와 내기리가 합하여 여기서 각 한자씩 따서 지금의 이름으로 되었다. 택촌마을은 고려말 청송심씨(靑松沈氏)가 거주하였고, 내기마을은 지금으로부터 약 4...
-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내령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전라북도 남원시 인월면과 경상남도 함양군의 경계 지점에는 팔량재라는 고개가 있는데, 팔랑재와 팔량재를 혼용하는 경우가 있으나 이는 다른 지명이므로 구분해야 한다. 진한의 왕은 달궁을 방어하기 위해 서쪽 10리 밖의 영에 정 장군(정령치, 정령재)을, 동쪽 20리 밖의 영마루에 황 장군(황령치, 황령...
-
전라북도 남원시 대강면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대강면 평촌리는 평촌과 새터로 나뉘어 있다. 옛날에 ‘견바실’로 부른 것은 견소곡(見所谷)의 새김말에서 유래했다. ‘점바실’로 부른 것은 덕동(새터)에 점(店)이 있다 하여 그렇게 불렸다고 한다. 후에 마을 앞뜰이 넓다고 하여 평촌이라 부르게 되었다. 새터 뒤에는 옛 도요지의 흔적이 남아 있다. 1506년(중...
-
전라북도 남원시 이백면에 속하는 법정리. 지형이 평지여서 평지말로 부르다 지명을 한자로 바꾸면서 평촌이라 하였다. 1780년경 순흥안씨가 지금의 양가저수지에 처음 정착하였다고 한다. 본래 여원치에 이르는 계곡에 있는 양가저수지를 만들기 전에 그곳에 소수의 농가가 거주하였으나 도적이 극심하여 주민들이 분산, 이주하여 지금의 마을에 터를 잡았다고 한다. 본래 남원군의 백파면...
-
전라북도 남원시 대강면에 속하는 법정리. 산촌과 곡촌, 양촌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산촌은 문덕봉과 책여산이 바라보이는 마을 주변 경치가 좋아 산수(山水)몰이라 부르다가 산촌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그리고 곡촌은 사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지역으로 ‘골짜기 곡(谷)’자를 쓴 곡촌이라 하였다. 양촌은 망태봉[해발 290m]을 뒤로하여 남쪽으로는 비홍치와 문덕봉을 바라보...
-
전라북도 남원시 대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풍촌리는 감동리와 독산리의 2개 행정리로 나뉘어 있다. 풍악산 줄기에 위치하며 경사가 완만하고 전답이 다단계로 이루어져 있는 중산간 농촌 마을이다. 풍악산과 광촌리 일부가 합병될 때 이들 이름에서 한 자씩 따서 풍촌리가 되었다. 본래 남원군 대곡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독산리와 성내면 감...
-
전라북도 남원시 금지면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용전리는 마을에 연못이 있어 그 연못에서 용이 승천했다는 전설에 따라 용소촌 또는 용연촌이라 하였다. 하도리는 폭우만 내리면 사면이 침수되어 마을이 섬처럼 우뚝 솟아 보이고 남원시의 제일 남단에 위치한 마을이라 하여, ‘아래 하(下)’자와 ‘섬 도(島)’자를 합하여 하도(下島)라 칭하게 되었다. 본래 남원군...
-
전라북도 남원시 인월면 상우리에 속하는 행정리. 하우리는 법정리 상우리가 2개 행정리, 즉 상우리와 하우리로 나뉘어 생기게 되었다. 인월면에서 지리산 방향으로 500m 가량 떨어져 있고, 마을 앞을 지나는 지방도 1084호선은 지리산 국립공원으로 이어지는 통로이다. 특히 특산물 전시판매장이 마을 앞에 있다. 마을에는 이러한 일화가 있다. 마을 입구에 거대한 정...
-
전라북도 남원시에 속하는 법정동. 남원시의 상가, 은행, 공공기관, 각종 단체 등이 밀집된 중심동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도통동 신흥 아파트 밀집지역으로 인구가 이동하여, 하정동은 구 도심 지역이 되어 공동화 현상이 일어나 야간에는 인구 이동이 급속히 감소하고 있다. 관청인 동헌의 샘 밑의 마을이라 하여 명칭이 생겨났다. 하정동은 남원성이 건재할 때까지 성안에...
-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에 속하는 행정리. 마을이 들어서기 전에는 뒷산 백운산(白雲山)[902.7m] 기슭에 황강사(黃岡寺)라는 절이 있었고, 북쪽으로 약 600m 위치에 꿩이 엎드려 있는 형국이라는 복치혈(伏雉穴)이 있어 황강사와 복치혈을 따서 황치(黃雉)라 하였다. 하황리는 황치의 제일 아래쪽에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상황리·중황리·하황리를 통틀어 황치골이라고 한다...
-
전라북도 남원시 화정동에 속하는 자연 마을. 김해김씨가 처음 이곳에 터를 잡을 때는 연화리라 했다고 한다. 그러다 마을에 가뭄에도 변함없이 솟아나는 샘이 있어 한우물이라 불렀으며, 한우물에서 교룡산(蛟龍山)의 정기가 뭉쳐 솟아난다고 하여 마을 이름도 한우물로 바꾸었다고 한다. 1625년경 김해김씨가 처음 들어와 터를 잡았으며 현재까지 김씨 집성촌으로 남아 있다...
-
전라북도 남원시 화정동에 있는 도로. 한우물길은 한우물이라는 마을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이 마을의 원래 이름은 연화리(蓮花里)라 했다. 마을에 가뭄에도 끊임없이 솟아나는 샘이 있었는데, 마을 앞 논을 관개할 만큼 수량이 풍부하여 큰 우물이란 뜻의 한우물로 불렀다고 한다. 뒤에 이 샘이 교룡산의 정기가 뭉쳐 솟아난다고 하여 마을 이름을 한우물로 바꿨다고 한다....
-
전라북도 남원시 어현동에 속하는 자연 마을. 명칭 유래에 대해 정확히 알려진 바는 없으나 함파우는 산 속에 위치한 마을인데 ‘물결을 머금고 있다’는 것으로 보아 풍수지리와 관련된 지명으로 추측된다. 본래 노암동 주촌면 함파마을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주천면 노암리에 편입되었다. 1956년 남원읍에 편입되었다가 1981년 남원읍이 시로 승격됨에 따라 남원시...
-
전라북도 남원시 어현동에 있는 도로. 함파우길은 어현동의 고유지명인 함파우를 살린 길로 어현동 422-1번지에서 어현동 산 43번지까지의 작은 길이다. 함파우길은 함파우라는 마을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함파우는 함파(含波)라고도 한다. 함파는 마을이 호리병 속에 갇힌 형국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함파우는 어현동의 으뜸되는 마을로 남원광관단...
-
전라북도 남원시 지역에서 영역을 국가 행정상의 목적에 따라 구획한 행정 단위. 남원군 지역은 백제시대에는 고룡군 또는 대방군으로 불리다가, 통일신라시대에 남원소경이 설치되었고, 고려시대에는 남원부로서 2군(순창군, 임실군), 7현(운봉현, 장수현, 장계현, 적성현, 거령현, 구고현, 구례현)을 관할 지역으로 했다. 조선시대에는 남원도호부로서 담양부와 순창군 그...
-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行政里). 행정리가 형성될 초기에 마을 일대에는 은행나무가 숲을 이루어 풍치가 아름다워 사람들은 이곳을 은행마을 또는 은행골이라 하였다. 그 후 은행골을 한자로 옮기면서 은행리가 되었는데, 이를 행정으로 줄여서 부르고 있다. 엄계리는 이 지역에 최초로 정착한 선비 엄씨가 낚시하던 시냇가라 하여, ‘엄할 엄(嚴)...
-
전라북도 남원시에 속하는 법정동이자 행정동. 남원향교(南原鄕校)가 위치한 데서 향교동(鄕校洞)이라는 이름이 유래하였다. 향교동 교촌은 1443년(세종 25) 남원향교가 덕음봉(관덕정 부근)에서 이곳으로 옮겨온 후에 향교에 관여하는 사람들이 모여 마을을 형성하였다고 한다. 향교가 있어 교촌이라 불렀다고 하는데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다. 용정마...
-
...
-
향교동에 위치한 주요 문화재로는 만인의총(사적 272호)을 비롯하여 남원향교(지방유형문화재 49호), 남원향교 대성전(지방유형문화재 8호), 경주 김씨 보판각(지방유형문화재 161호), 교룡산성(지방기념물 9호) 그리고 남원 사직단(지방기념물 79호) 등이 있다. 교룡산성 안에는 685년에 창건한 선국사라는 절이 있는데, 이곳에는 대북(민속자료 5호), 대웅전(지방유형문...
-
옛날에 시골에서는 정월부터 12월까지 행사가 있었다. 예를 들면 설날에는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세배하고, 보름날엔 달집을 만들어서 태우기도 하였다. 그리고 경사든 애사든 가까운 사람들은 각자 집에서 무엇을 가져와서 이틀, 사흘씩 서로 도와줬다. 그리고 옛날에 결혼과 관련된 풍속으로는 식육점 운영하는 사람(백정)과 무당(당골) 등과는 절대 결혼을 해서는 안 된다는 풍습이 있었다. 그...
-
향교동의 인구 구성은 2004년 12월 31일 현재, 3,761세대 10,090명이다. 주민 83.2%가 3차 산업에 종사하고 농업 위주 1차 산업 5.4%, 광공업 2차 산업 11.4%로 구성되어 있다. 광치 농공1,2단지에 28개 업체가 입주하여 가동중에 있으며 진상품인 산성 닭과 보성의 단감이 대표적 토산품이다. 향교동 구암마을에는 김해 김씨 집성촌이 있다. 김종한...
-
향교동은 원래 남원 서봉면(捿鳳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서봉면 구암(九岩), 교촌(校村), 장승(長承), 정치(正峙)와 통한면(通汗面) 용정(龍井), 왕지전면(王之田面)[왕치면] 응곡(鷹谷) 일부를 병합하여 이곳에 향교(鄕校)가 있기에 향교리라 하고 남원읍에 편입되었다가 1981년 남원읍이 시로 승격하여 리가 동으로 되었다. 용정(龍井)마...
-
전북 지방 유형문화재 제49호인 남원향교는 조선조 태조 이성계의 전국 향교 설치령에 따라 태종 10년(1410년)에 세워진 것으로 처음에는 남원부의 서쪽에 세워졌다. 그러나 매년 석전제를 드릴 때마다 호랑이의 훼방이 심해 세종 10년(1428년) 요천 위 현 덕음암(德蔭庵) 자리로 이전하였다고 한다. 그 뒤 남원향교가 지금의 위치로 옮겨진 것은 세종 25년(1443) 때...
-
향교동은 남원시의 서북부에 위치하고 88고속도로와 전주간 국도를 연결하는 남원시의 관문이며, 전라선 철도가 동서로 관통하고 있으며 산성역, 광치 농공단지, 서남대학교가 있다. 동으로 도통동, 서로 왕정동, 남으로 동충동, 북으로 사매면이 인접하는 도·농 복합형의 다분화된 지역으로 남원시에서 대동(大洞)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지방 도시의 전형적인 도심 형태와 아파트 밀...
-
전라북도 남원시 향교동에 있는 도로. 향교오거리는 남원시 향교동에 있는 보조 간선 거리 이름으로, 남원시 시내 교통의 중추 지역이다. 향교오거리는 충정로, 동림길, 동문길이 만나는 남원시의 교통 요지이다. 충정로는 순창, 곡성 방향과 시청, 장수 방향으로 나 있고, 동림길은 향교 방향과 요천 방향으로 나 있다. 동문길은 현대아파트, 신축...
-
전라북도 남원시 십수정 삼거리에서 구 남원역에 이르는 보조 간선 도로. 향단길은 춘향전의 등장 인물인 향단을 의미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남원시청을 지나 남원대교 앞에서 우회전하여 1㎞ 정도 가면 우측에 십수정 삼거리가 있다. 십수정 삼거리 우측은 광한루원이며, 요천변 십수정에 올라서면 좌측으로 춘향교, 우측으로 승월교와 승사교가 있고 요천 일대의 풍...
-
전라북도 남원시 주천면에 속하는 법정리. 지리산의 육모정과 구룡계곡의 산수가 수려하고 경치가 좋은 곳이라 하여 호정리의 ‘호수 호’와 ‘빛 경’자의 한자를 써서 마을 이름이 되었다. 원래 이름은 지리산 속에 있다하여 내촌으로 불리었다. 1680년(숙종 6)에 경주정씨가 정착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으며, 그 후에 연안김씨와 풍천노씨 그리고 밀양박씨 등이 들어와 마...
-
전라북도 남원시 수지면에 속하는 법정리. 호곡리는 외호곡리, 내호곡리, 신덕리로 이루어져 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외호곡리, 내호곡리, 양촌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호곡리라 하였다. 1995년 1월 1일 남원시·남원군이 통합됨에 따라 남원시 수지면 호곡리가 되었다. 호곡리의 처음 이름은 호음실이었다고 한다. 이 마을은 견두산 자락에 자리...
-
전라북도 남원시 주천면에 속하는 법정리. 호기리는 호곡리(마을)·안곡리(마을)·신기리(마을)의 3개 행정리로 나뉘어 있다. 남원시에서 지방도 730호선을 따라 4㎞ 지점 해발 200m의 중산간 지대의 구릉지에 위치한 농촌 마을이다. 마을 형상이 호랑이를 닮았다고 하여 범실 또는 호곡이라 불렸던 호곡리와, 생활하기 편한 곳을 의미하는 안의실 또는 안곡리, 그리고...
-
전라북도 남원시 광치동에 있는 도로. 호치길은 광치동 781-47번지에서 광치동 산 31-2번지까지의 작은 길이다. 호치길은 호치마을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호치는 여우(여시)고개라고 하는데, 여우가 나온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호치길은 춘향로로부터 광석길로 들어서 광치농공1단지와 2단지를 지나 1㎞ 지점에 이르면 우측으로 호치길이 나...
-
전라북도 남원시 화정동에 있는 도로. 화산당길은 화정동의 고유지명인 화산당(花山堂)을 살린 길로 화정동 815-2에서 화정동 90-1까지의 골목길이다. 화산당길은 화산당이라는 마을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화산당 마을은 나비와 벌이 꽃을 찾아드는 연화봉접(蓮花蜂蝶) 형국이다. 마을 앞산이 벌을 상징하는 벌봉이고, 마을 양쪽의 산이 나비봉이고, 마을이...
-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에 속하는 법정리. 소석리는 마을에 처음 터를 잡을 때 주위가 큰 소나무 숲에 둘러싸인 작은 마을이었으므로 소나무에 싸인 작은 마을이라 하여 소송리(小松里)라 하였다가, 후에 마을 뒷산에 잔돌이 많아 소석리(小石里)로 개칭하였다. 전촌리는 황산대첩비(荒山大捷碑)가 세워져 있는 앞 마을이라 하여 앞마을 또는 앞몰이라 하였다가 한자...
-
전라북도 남원시에 속하는 법정동. 동부 화정동은 1730년경 김녕김씨(金寧金氏)가 처음 터를 잡아 마을이 형성되었으며 본래 이름은 화산당(花山堂)이다. 화산당은 나비와 벌이 꽃을 찾아드는 연화봉접(蓮花蜂蝶) 형국으로 마을 앞산이 벌을 상징하는 벌봉이며 마을 양쪽의 산이 나비봉이고, 마을이 꽃에 해당되어 마을 이름을 화산당이라 했다고 한다. 서부 화정동은 처음에 연화리(蓮...
-
전라북도 남원시 사매면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마을의 지세가 꽃봉오리 속의 가장 큰 꽃술인 화심(花心)과 같은 화심명당이라 하여 화정리(花亭里)라는 마을 이름이 붙여졌다. 일설에는 옛날 유명한 대사가 따뜻한 봄날 노적봉을 산책하다가 멀리 한 정자가 보이는데 정자를 둘러싼 주변의 아름다운 정기가 꽃봉오리가 피어나는 것처럼 보이는지라 마을 이름을 ‘꽃정이’라 지었다고...
-
전라북도 남원시 보절면에 속하는 법정리. 은천리는 사방이 하천으로 둘러싸인 곳에 위치하여 시내 가운데 숨어 있는 형상이라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내황리는 풍수지리적으로 거미가 먹이를 잡기 위하여 거미줄을 치고 있는 형태인 지주설망이라는 명당이 있다고 한다. 여기에 연유하여 처음에 ‘느린데(거미가 느리다는 데에서 연유한 것일 가능성이 있음)’라 부르던 것이 와전...
-
비전마을은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 화수리 209번지에 위치해 있다. 비전마을은 본래 운봉의 서면 전촌리(前村里)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전촌리(前村里), 옥계리(玉溪里), 소석리(小石里) 일부가 병합되어 화수리(花水里)에 편입되었다. 자연마을로는 군화동(軍花洞)이 있다. 비전마을은 동편제 판소리의 탯자리이다. 동편제 판소리의 창시자인 가왕(歌...
-
전라북도 남원시 이백면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효촌리는 조정에서 최시옹(崔是翁)의 며느리에게 효부상을 내린 이후, 효부가 난 마을이라 하여 효촌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효촌과 신기의 이름을 따서 효기리라 하였다. 본래 남원군 백암면 지역으로 효기리는 신기리에, 효촌마을은 효촌리에 속했던 지역이다. 새터 또는 응령역이 있어...
-
전라북도 남원시에 있는 건강과 오락, 휴식을 위해 지정·조성된 산림. 깊은 산 속에 여러 동의 건물을 세워서 자연 속에서 쉬면서 휴식을 할 수 있다. 삼림욕을 하거나 오락, 휴식처로 이용하고 있다. 지리산을 끼고 있는 남원에 조성된 휴양림으로는 남원시에서 운영하는 흥부골자연휴양림과 개인이 운영하는 남원자연휴양림이 있다. 남원시 인월면 인월리 덕두봉[1,150m...
-
전라북도 남원시 송동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안동리와 척동리 일부를 병합하여 흑송리라 하였으며 1995년 남원시·남원군이 통합됨에 따라 남원시 송동면 흑송리가 되었다. 안계리는 본래 이름이 안가리였으나 마을의 지형이 요천 변에 위치해 있어 기러기가 날개를 접고 백사장에 내려앉은 형국이라 하여 이름을 안계로 바꾸었다. 약 500년 전...
-
전라북도 남원시 인월면 인월리에 있는 건강·오락·휴식을 위해 지정, 조성된 산림. 자연휴양림이란 자연 생태계를 유지, 보전하면서 임산물과 공익재의 생산 공간으로 질서 있게 개발하여 국민의 보건 휴양, 정서 함양, 산림 소유 지역의 소득 향상과 대국민 산림 교육장으로 활용할 목적으로 이용하는 산림을 말한다. 흥부골 자연휴양림은 기존의 임업 경영 활동과 결합되거나...
-
전라북도 남원시 인월면 성산리 성산마을에 있는 『흥부전』을 소재로 하여 만든 공원. 예로부터 남원 지역에서는 『흥부전』의 주인공인 흥부가 실존 인물이라고 전해져 옴에 따라 1992년 경희대학교 민속학연구소에 고증을 의뢰하였다. 그 결과 남원시 인월면 성산리 성산마을은 흥부가 출생한 곳이며, 아영면 성리마을은 흥부가 놀부에게 쫓겨나 유랑 끝에 정착하여 복을 누리고 살았던...
-
전라북도 남원시 용정동에 있는 도로. 히어실길은 용정동의 마을 진입로로 용정동 166-1번지에서 용정동 산 56번지까지의 작은 도로이다. 히어실길은 히어실마을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히어실은 희어실(希魚失)이 와전된 것이다. 마을의 산 능선이 고기와 같으나 고기는 없다는 의미이다. 히어실은 회어실, 정동(程洞)이라고도 하는데, 구룡다리 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