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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601508
한자 萬恒
영어음역 Manhyang
분야 종교/불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종교인
지역 전라북도 남원시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강정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승려
성별
생년 1259년연표보기
몰년 1319년연표보기
본관 웅진

[정의]

고려 후기 전라북도 남원에서 활동한 승려.

[가계]

본관은 웅진. 속성은 박씨(朴氏)이다. 진사 박경승(朴景升)의 아들로 유가의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승려가 되어 승과에 장원 급제했다.

[활동사항]

만항은 금강산, 지리산 등의 명산에서 수행을 하였고 낭월사(朗月寺), 운흥사(雲興寺), 선원사(禪源寺) 등의 주지를 지냈다. 그는 1313년(충숙왕 1)에 만행산보현사를 창건했고, 충렬왕의 부름을 받아 삼장사에 있었다.

그는 불학에 대한 풍부한 지식과 덕망으로 퇴위한 충선왕의 초청을 받아 영안궁(永安宮)에서 선을 강론하기도 했다. 충숙왕으로부터 ‘별전종수종속조등묘명존자’라는 법호를 하사받기도 했다.

전라남도 조계산 송광사에서 입적하기 전에 남원 보현사에 있었다. 이제현이 찬술한 그의 비명에는 ‘조계수선사의 제10세조’라고 쓰여 있다. 제자만 700여 명에 이르며 이중엔 사대부들도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고 한다. 후에 혜감국사(慧鑑國師)로 추존되었고, 탑호는 광조(廣照)이다.

[학문과 사상]

만항은 원나라의 몽산 선풍을 받아들여 침체된 고려 후기 불교를 혁신했는데, 훗날 한국 불교계의 주도적 흐름인 임제 간화 선풍(看話禪風)은 만항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다.

그는 지눌이 수용한 간화선 선풍을 계승하면서 그 위에 승려 몽산덕이(蒙山德異)의 새 선풍을 수용하였다. 몽산덕이는 ‘무자(無字)’ 화두 위주의 간화선 수행법과 깨달은 후에 명안종사(明眼宗師)를 찾아 인가받는 전통을 강조했다. 바로 이것이 우리나라 조계 선풍의 큰 골격을 이루고 있는 몽산 선풍의 특징 가운데 하나이다.

만항은 몽산 선풍을 받아들이고자 몽산덕이와 서신 교류를 통해 간화선 수행법을 배웠고, 또 그를 통해 얻은 『육조대사법보단경(六祖大師法寶壇經)』을 간행했다. 이 책이 고려 후기에서 조선조에 이르기까지 한국 불교에 임제의 선풍을 일으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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