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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601061
한자 南原荒山大捷碑址
영어음역 Hwangsan Daecheop Biji
영어의미역 Hwangsan Battle Monument Site
이칭/별칭 황산대첩비지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터
지역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 화수리 344-2[가산화수길 84]지도보기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유종국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63년 1월 21일연표보기 - 남원 황산대첩비지 사적 제104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남원 황산대첩비지 사적 재지정
성격 전승비|전승비각
원건물 건립시기/일시 1577년연표보기
지정면적 9,900여㎡
소재지 주소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 화수리 344-2[가산화수길 84]
소유자 남원시
문화재 지정 번호 사적

[정의]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 화수리에 있는 이성계황산(荒山)에서 왜적을 무찌른 업적을 기념하여 세운 승전비(勝戰碑)가 있던 자리.

[개설]

고려 후기에는 왜구가 국경과 변방을 침범하여 노략질을 하는 일이 잦았다. 왜구가 지리산 방면을 집중적으로 공격해 들어오자 조정에서는 삼도통사 이성계를 보내어 왜구를 토벌케 하였다.

이성계는 의제(義弟) 이두란과 더불어 왜구와 싸워 승전고를 올렸다. 이성계는 1380년(우왕 6) 운봉읍 화수리황산 일대에서도 노략질을 일삼는 왜구들을 완전히 소탕하여 섬멸하였다. 이 싸움을 황산대첩이라고 한다.

1577년(선조 10)에 황산대첩을 기념하여 현재의 운봉읍 화수리에 황산대첩비를 세웠다. 이 비는 전라도관찰사 박계현이 태조가 승전보를 올렸던 황산이 지명이 바뀌어 잊혀져가니 비석을 세우는 것이 좋겠다는 건의를 하여 왕명에 의해 건립되었다.

비문 기록을 보면 아군보다 열 배가 넘는 왜적을 대파함으로써 만세에 평안함을 이루었으니 이 업적을 기려 비석을 세운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변천]

황산대첩비의 운명은 순탄하지 않았다. 일제강점기에 일제가 이 땅의 민족혼을 말살시키기 위해 조선총독부에서는 비밀문서를 보내 도 경찰부장에게 조일간(朝日間)의 전쟁이나 자신들의 침략과 관련이 있는 고적(古蹟)과 유물(遺物)을 없애라고 명령한다. 이리하여 400년 동안 보존되어 오던 황산대첩비가 폭파되었다.

1957년 파손된 귀부(龜趺)를 짜맞추어 비교적 온전한 모양의 이수는 옛 모습을 되찾았으나 이미 파손된 비석은 어찌할 수 없었다. 이에 검은 대리석으로 원형과 똑같은 비를 다시 만들어 대첩비각 안에 보존하였다. 폭파된 비석들은 한데 모아 비각을 세워놓았는데 그것이 파비각(破碑閣)이다.

어휘각은 운봉읍 화수리 석벽(石壁)에 도원수가 본인과 8원수 4종사의 명단을 새기게 하여 황산대첩이 자신만의 공로가 아니라 여러 충신들의 공로임을 알리는 내용의 어휘(御諱)를 새겨 만든 비전(碑殿)이다.

1945년 1월 17일 일제가 비전(碑殿)을 폭파하고 어휘(御諱) 새긴 내용을 철정(鐵釘)으로 쪼아버려 그 글씨를 알아볼 수 없게 만들었다. 1973년 다시 어휘각을 건립하여 비록 훼손되었지만 글씨가 새겨진 돌을 보존하고 있다. 어휘각은 정면 4칸, 측면 1칸 맛배지붕 형태에 두리기둥이다. 특이한 것은 절벽에 새긴 글씨를 보존해야 하였기 때문에 어휘각은 정면 앞 기둥 네 개는 길고 뒷면 기둥 네 개는 짧다.

사적비각(事蹟碑閣)은 1882년(고종 19) 운봉현감 이두현이 어휘각을 건립하고 세웠던 화수산비각비가 훼손을 입어 1958년 다시 세운 것이다. 어휘각 창건 내용과 황산 대첩의 역사를 담은 비석이 그 안에 보존되어 있다. 사적비각은 정면 3칸 측면 1칸에 맛배지붕으로 두리기둥을 썼다.

[현황]

드넓은 하천 옆에 자리 잡은 남원 황산대첩비지는 약 6,600㎡이 넘는 바깥 마당과 솟을삼문 안으로 들어서면 약 3,300㎡ 가량의 안마당이 있다. 오른쪽에 황산대첩비가 세워져 있고, 오른쪽 뒤편에 파비각(破碑閣)이 있다. 파비각 안에 일제가 저지른 만행의 흔적으로 파손된 대첩비가 있다.

왼쪽으로는 대첩비를 보호하는 일종의 보호각이 세워져 있다. 1973년에 세운 것으로 ‘대첩비각(大捷碑閣)’이라는 현액을 붙였다. 정면 4칸, 측면 4칸의 팔작지붕 형태로 두리기둥을 썼다.

지금의 비석은 1957년에 다시 만들어 세운 것이다. 1973년에 비석이 보관되어 있는 비전·홍살문·삼문·담장, 그리고 부속 건물들을 새롭게 단장하였다. 1963년 1월 21일 사적 제104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사적으로 재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비록 일제에 의해 황산대첩비가 폭파되어 훼손을 입었지만, 일제의 문화 말살의 정책적 만행을 볼 수 있는 역사적인 교훈으로서 가치가 높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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