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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600926
한자 李大胤
영어음역 Yi Daeyun
이칭/별칭 경술,금헌,만휴당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전라북도 남원시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최윤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의병
출신지 전라북도 임실군
성별
생년 미상
몰년 미상
본관 전주
대표관직 의병소도유사겸모량장

[정의]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에서 활약한 의병.

[가계]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경술(景述), 호는 금헌(禁軒), 또는 만휴당(晩休堂). 효령대군 이보(李補)의 후예이며, 아버지는 승지 이혼(李渾)이다. 지금의 임실군 둔남면 둔덕에서 태어났다.

[활동사항]

1558년(명종 13)에 사마시에 합격하고 1585년(선조 18)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정랑으로 있었으나 명리를 탐탁하게 여기지 않아 관직에서 물러나와 향리에서 도를 즐기며 후진을 가르치는 데 힘을 기울려 널리 명망을 얻었다.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그날로 창의의 격문을 발하여, 품관과 교생들로 오장(伍長)을 삼고 팔결연호(八結烟戶)로써 군졸로, 생원과 진사를 수문장으로 삼아 남원성의 수비에 대비하였다.

고경명이 대장으로 추대되었던 담양 회합에서 의병소도유사겸모량장으로 추대되었는데, 늙고 병이 많아서 궁마를 맡을 수 없었기에 앉아서 군무를 관장하며 지휘하였다.

대장간 10여 개소를 만들어 밤낮으로 병기를 만들게 하였으며, 이곳저곳에서 군마를 마련하기도 하였다. 또 여러 고을에 격문을 전하여 군량을 모았고, 가동 15명 이상을 행오로 편성하여 밤낮으로 이를 살피며 침식을 잊으니 의병들이 그를 신임하고 의지했다.

고경명이 금산으로 떠나면서 그를 믿고 출전한다고 하자, 즉시 양희적 등과 함께 진중에 나아가 사방의 동지들에게 격려의 글을 돌리고 널리 군졸과 군량을 모아서 아들 이엽을 시켜서 군량을 조달하였다.

그뒤 금산 전투에서 패배했다는 소식에 통곡을 금하지 못하였으나, 모아 놓은 의곡(義穀)을 선산의 명병소와 진주의병소로 나누어 끊이지 않도록 보급하여 주었다. 그후 진주성이 무너지자 애통해하다가 다시 안사 김성일의 군소와 원수 권율의 진중에 공급하여 주었다.

김성일이 삼남의 조운 중 호남이 제일이라고 말하고 조정에 포상하여 줄 것을 아뢰면서 이대윤을 의홍위상호군에 특채하였다. 그러나 그가 의병을 모았다고 상을 받는 것은 조상의 누가 된다고 상소를 올려 사양하므로 선조가 그 뜻을 가상하게 여기고, 특히 그의 자손에 벼슬을 내리라는 교지를 내렸다. 선산의 진중에서 병을 얻어 집으로 돌아온 뒤 곧 죽었다.

[상훈과 추모]

임진왜란이 끝난 후 조정에서 공을 기리어 예조참판의 증직을 내렸으며, 고을에서는 사우를 세워 제향하였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9.07.24 한자 재수정 이보(李𥙷) -> 이보(李補)
2017.02.07 한자 수정 이보(李補)->이보(李𥙷)
2014.01.22 [가계] 수정 <변경 전> 본관은 진주(晉州). <변경 후> 본관은 전주(全州),
이용자 의견
정** [가계]
{효령대군 이보(李補)의 후예이며,} 에서 효령대군의 휘자 補를 𥙷로 수정하여 주십시오. 대군의 휘자는 衣변이 아니고 示변입니다. 네이버 지식백과사전에도 함께 수정 하여 주십시오
  • 답변
  • 디지털남원문화대전을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해당 한자를 수정하였습니다.
2017.02.07
전*** 본관이 전주인데요 ! 진주가 아니라 (정의)부분에요!!
전주이씨 효령대군 이보의 후손입니다
전주로 고쳐주세요
  • 답변
  • 디지털남원문화대전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해당 부분 확인 후 수정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2014.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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