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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600892
한자 梁大撲
영어음역 Yang Daebak
이칭/별칭 사진,청계,송암,죽암,하곡,충장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전라북도 남원시 주생면 상동리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최윤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의병
출신지 전라북도 남원시 주생면 상동리
성별
생년 1544년연표보기
몰년 1592년연표보기
본관 남원
대표관직 제술관|종부시주부

[정의]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가계]

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사진(士眞), 호는 청계(靑溪)·송암(松巖)·죽암(竹巖)·하곡(荷谷). 아버지는 목사 양의(梁艤)이다.

[활동사항]

양대박은 우계(牛溪) 성혼(成渾)의 문하에서 배웠다. 1572년(선조 5)에는 학관(學官)에서 제술관(製述官)으로 기용되고 이어 종부시주부(宗簿寺主簿)에 올랐다.

1592년(선조 25) 4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아 담양으로 가서 고경명(高敬命)을 만나 맹주로 추대하고, 북상하여 5월에는 전주에서 의병 2천 명을 모았다. 고경명과 함께 금산으로 갔는데 고경명은 금산에서 왜적을 맞아 싸웠고 양대박은 아들 양경우와 함께 진산을 지키게 되었다. 그러나 의병을 모을 때의 피로로 진중(陣中)에서 병을 얻어 진산에서 죽고 말았다. 당시 양대박의 나이는 49세였다.

[학문과 사상]

글씨와 문장에 뛰어났다. 특히 그가 지은 임란왜란의 창의격문(倡義檄文)은 문장의 유려함과 기개의 고결함으로 이름이 높았다.

[저술 및 작품]

정조 때에 왕명으로 양대박의 문집인 『청계집(靑溪集)』과 『창의록(倡義錄)』을 간행케 하고 조정에서 보관하게 하였다.

[상훈과 추모]

조정에서 병조판서를 추증하고 충장(忠壯)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남원에서는 양대박을 제향하는 사우(祠宇)를 짓고 봄·가을로 제사를 지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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