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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600873
한자 蘇灝
영어음역 So Ho
이칭/별칭 호원,이촌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전라북도 남원시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송만오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무신
출신지 전라북도 남원시
성별
생년 1566년연표보기
본관 진주
대표관직 절충장군|용양위부호군

[정의]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무신.

[가계]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호원(浩遠), 호는 이촌(李村). 고려의 금오위 상호군 소희철의 후손이며, 7도병사를 지낸 소후(蘇後)의 7세손이다. 병마절도사 소기동의 고손자이며, 군자감정 소인세(蘇仁世)의 아들이다. 또한 임진왜란 때에 순절한 주부 소제(蘇濟)의 동생이기도 하다.

[활동사항]

소호는 지극한 효성심을 가지고 부모를 섬겼다. 부모의 상을 당하여서는 3년을 하루같이 정성을 다하여 시묘살이를 하였다. 1584년(선조 17)에 무과에 급제하여 절충장군·용양위부사과 등을 역임하였고, 봉사로 있을 때에 임진왜란을 당하여 형 소제와 함께 죽지 못한 것을 통한으로 여겼다.

1636년(인조 14)에 병자호란이 일어나 오랑캐가 침입하여 임금이 남한산성으로 피난하였다. 그런데 남한산성이 포위당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싸움터로 달려가려 했으나, 나이가 많아 집안사람들이 말렸다.

그러나 그는 황정직·김화·방원진과 전라북도 남원시의 여러 선비들과 함께 여산의 의병 집합소로 가서 힘을 합하여 격문을 돌렸다. 또 여러 고을 의사와 합세하여 청주로 달려가 많은 적을 물리쳤다. 다시 과천으로 달려갔을 때 화의가 맺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통곡하고 돌아와서 초야에 묻혀 일생을 마쳤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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