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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600790
한자 金開南
영어음역 Kim Gaenam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전라북도 남원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송만오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동학접주
성별
생년 미상
몰년 1894년연표보기

[정의]

조선 말기 전라북도 남원에서 활약한 동학접주.

[활동사항]

김개남은 동학의 태인(전북 정읍) 대접주로서 전봉준 다음 가는 남접의 실력자였다. 동학농민운동 초기인 1894년(고종 31), 태인의 두령인 김낙삼(金洛三)과 김문행(金文行) 등 1,300여 명을 거느리고 남원을 점거하여 전라좌도를 통할하며 전봉준을 능가하는 위세를 떨쳤다.

이때 초토사 홍계훈(洪啓薰)과 타협하여 동학도를 박해하지 않을 것을 확약받은 후 전주성을 관군에게 내주고 동학농민군을 해산하였다. 그러나 청나라와 일본군대가 개입하자 다시 일어나 5~6만의 병력으로 남원에서 전주로 진격하여 남원부사 이용헌(李龍憲)을 붙잡아 처단하고, 동학군정을 실시하였다.

이해 10월 하순 전주 수비군 5천여 명을 거느리고 공주회전(公州會戰)에 참가하였으나 우금치전투에서 일본군과 합세한 관군에게 패배하였다. 그후 직속부대를 거느리고 청주로 진격하였으나 또 패배하였다. 다시 남하하여 금구(金溝)에서 또 일본군의 습격을 받고 패주하였는데, 12월 3일 태인에서 생포되어 효수형을 당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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