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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600595
한자 伽倻系土器
영어음역 Gayagye togi
영어의미역 Gaya earthenware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전라북도 남원시
시대 고대/삼국 시대
집필자 한수영

[정의]

전라북도 남원지역 일대에 분포하고 있는 가야 지역에서 제작되거나 가야 양식으로 제작된 토기.

[개설]

가야계 토기는 일반적으로 4세기 이후에 새로운 제도술(製陶術)에 의해 1,000℃ 이상의 온도에서 구워낸 단단한 질의 도질토기(陶質土器)를 말한다. 주로 낙동강 서쪽인 옛 가야 지역과 남원을 중심으로 하는 호남 동부 지역에서 출토된다.

가야 토기는 3세기 중엽 이전에 출현하여, 1~3세기의 전기 단계와 4~6세기의 후기 단계로 나누어 변천하고 있다. 전기는 웅천(熊川) 조개무지의 토기를 중심으로 적갈색 연질 토기가 주로 제작된 것이 특색이다. 4세기대에 이르러 종래의 연질 또는 와질계 토기가 쇠퇴하여 회갈색의 경질 토기로 대체되며, 고배와 각종 항아리류 등 여러 기종의 토기가 만들어진다.

가야 토기는 지역에 따라 기종과 무늬 등 세부적인 면에서 차이를 보인다. 4세기 초에 성립된 금관가야 양식 토기는 노형 기대·외절구연 고배·격자타날화가 특징적이다. 아라가야 양식 토기도 금관가야 양식과 같은 시기에 성립된다. 공자형 고배·노형 기대·양이부승석문타날호가 특징적이며, 5세기에는 화염형 투창 고배와 통형·고배형 기대가 등장한다. 소가야 양식 토기는 5세기 초에 성립되며, 삼각투창 고배, 수형 구연호, 통형·고배형 기대가 특징적이다. 대가야 양식 토기도 5세기초에 성립하며, 유개식 장경호와 세로띠 장식의 대형 통형 기대가 특징적이다.

가야 토기의 다양한 양식은 시기별로 분포 양상을 달리한다. 4세기의 금관가야 양식 토기는 옛 김해만을 중심으로 주변의 부산·진영·진해 일대에 국한된다. 반면, 아라가야 양식 토기는 남강 하류 양안과 진동만 일대를 중심으로 남강과 황강 수계, 낙동강 중·상류역, 남해안에 걸쳐 넓게 분포한다. 이 시기에 이 두 지역 양식이 명확한 분포권을 형성하고 있어 금관가야와 아라가야가 가야 전기의 중심국임을 알 수 있다.

한편, 5세기 초 이후에는 금관가야 양식 토기가 소멸하고, 아라가야 양식 토기의 분포가 축소된다. 이는 고구려 남정 이후 특히 금관가야의 쇠퇴를 반영하는 것이다. 5세기 초에는 소가야 양식 토기가 출현하여 이전의 토기를 교체하는 양상으로 분포권을 형성한다. 이는 이 시기에 아라가야를 대신하는 중심 세력이 남강 수계와 남해안 일대에 등장하였음을 시사한다.

5세기 중엽에는 대가야 양식 토기가 주변 지역으로 확산된다. 묘제가 금동제 위세품을 동반하면서 대가야가 가야 후기의 새로운 중심국으로 성장하게 된다. 562년 대가야가 신라에게 멸망당한 후에는 토기가 신라 양식으로 변화하게 된다.

이러한 가야 토기는 원삼국시대에 보이는 회색 경질 토기의 전통을 잇고 있다. 또한 일본에도 전해져 일본 고분시대의 대표적 토기인 스에키[須惠器]의 발생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분포와 대표 유적]

남원 지역에서 가야계 토기는 주로 돌덧널 무덤을 중심으로 출토된다. 남원 지역의 돌덧널 무덤은 동부 지역에 아영면·인월면·운봉면을 중심으로 분포되어 있다. 가야계 토기가 출토된 대표적인 돌덧널 무덤의 대표적인 예를 월산리 고분군·두락리 고분군·건지리 고분군을 통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월산리 고분군: 1983년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에 의해 발굴 조사되어 모두 10여 기의 가야계 돌덧널 무덤이 확인되었다. 고분은 돌덧널의 규모와 축조 방법에 따라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된다. 제1유형은 돌덧널의 길이가 200㎝ 이하인 소형으로 모두 4기가 있다. 제2유형은 돌덧널의 길이가 370~470㎝ 정도로 4기가 확인되었다. 제3유형은 돌덧널의 길이가 800㎝ 이상인 대형으로 2기가 확인되었다.

유물은 고분의 유형에 따라 조합 양상이 다르게 나타난다. 제1유형에서는 유개장경호가 주종을 이루고, 단경호와 개배 등의 토기류와 철도자와 철낫이 출토되었다. 제2유형에서는 무개장경호가 주종을 이루고 광구장경호·대부장경호·기대류가 출토되었다. 제3유형에서는 제1·2유형보다 다양한 기종과 많은 수량이 출토되었다.

이 유적에서 출토된 토기류는 남원의 재지계 토기가 주종을 이루면서 고령 양식과 사천·고성 양식 토기가 일부 섞여 있다. 또한 철기류는 고령 대가야계와 밀접한 관계를 보인다.

2) 두락리 고분군: 1989년 전북대학교 박물관에 의하여 모두 34기의 대형 고총 고분 중 4기의 돌덧널 무덤이 발굴 조사되었다. 비교적 원형이 잘 남아 있는 1호분을 통해 그 구조를 파악할 수 있다. 봉토의 규모는 직경 20.5m이며, 봉토의 중앙에는 풍화 암반층을 파내어 묘광을 마련한 후, 그 내부에 동서 길이 860㎝, 남북 폭 130㎝, 높이 180㎝의 돌덧널 1기가 배치되어 있다. 돌덧널은 크기가 일정하지 않은 천석과 할석으로 축조되었으며, 벽석 사이는 예새가 섞인 진흙으로 메웠다. 바닥은 전면에 잔자갈을 깔았다.

유물은 토기류와 철기류가 주종을 이루며 출토되었다. 토기류가 고령 양식이 일색을 이루면서 다양한 기종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 특징적이다. 그 기종으로는 굽다리 접시·뚜껑 접시·항아리·목항아리·그릇받침 등이 있다. 이 가운데서 그릇받침은 원통형·바리형·접시형·고리형 들 대가야 양식에 속하는 모든 형태가 출토되었다.

3) 건지리 고분군: 전북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1987년과 2004년에 지표 조사가 실시되었고, 1987년에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다. 모두 40여 기가 분포되어 있는 고분 중 15기 정도의 가야계 돌덧널 무덤이 발굴 조사되었다.

이 고분군은 위치에 따라 배치 형태를 달리하여, 돌덧널 무덤이 하나의 봉토 내에 한 기 또는 여러 기가 배치되기도 한다. 두 가지 경우 모두 돌덧널의 축조 방법·장축 방향·바닥 시설·유물의 조합상 등의 속성에서는 별다른 차이가 없다.

고분은 생토면을 파내어 묘광을 마련하고, 세장방형의 돌덧널을 축조한 후, 그 위에 여러 매의 천정석을 올리고 봉분을 조성하였다. 벽체는 바닥에 대형 판상석을 서로 잇대어 수직으로 세우고, 그 위에 천석과 할석을 사용하여 가로 쌓기와 세로 쌓기 방식을 혼용하여 축조하였다. 바닥은 맨 바닥을 그대로 이용하였다.

유물은 토기류와 철기류가 주종을 이루며, 장신구류가 일부 출토되었다. 토기류는 고령 양식 토기 일색으로 구성되어 있다. 목항아리는 유개식만 출토되었고, 뚜껑 접시의 손잡이는 유두형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의의와 평가]

남원의 동부 지역에는 가야계의 돌덧널 무덤이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다. 월산리 고분군·두락리 고분군·건지리 고분군으로 대표되는 돌덧널 무덤에서는 가야계의 토기가 출토되고 있다. 이 지역에서 출토되는 가야계 토기는 돌덧널 무덤의 구조와 함께 호남 동부 지역 남강 수계권에 위치한 가야계 정치 집단의 위상과 발전 과정을 보여 준다. 이는 이 지역을 둘러싼 가야·신라·백제간의 관계 이해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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