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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600513
한자 花水里
영어음역 Hwasu-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 화수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서정섭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법정리
면적 701.5㏊
총인구(남, 여) 357명(남자 166명, 여자 191명)[2014년 12월 31일 기준]
가구수 173세대[2014년 12월 31일 기준]

[정의]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유래]

소석리는 마을에 처음 터를 잡을 때 주위가 큰 소나무 숲에 둘러싸인 작은 마을이었으므로 소나무에 싸인 작은 마을이라 하여 소송리(小松里)라 하였다가, 후에 마을 뒷산에 잔돌이 많아 소석리(小石里)로 개칭하였다.

전촌리는 황산대첩비(荒山大捷碑)가 세워져 있는 앞 마을이라 하여 앞마을 또는 앞몰이라 하였다가 한자로 전촌리(前村里)가 되었다. 비전리는 마을이 황산대첩비 앞에 있다 하여 마을 이름을 비전(碑前)으로 부르게 되었다.

북한 김신조 부대의 대남 침투 사건 이후 독가촌(獨家村)을 한데 모아 화수리에 편입하였으며, 화신리는 화수리에 새로 생긴 마을이란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형성 및 변천]

본래 운봉군 서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전촌리, 옥계리, 비전리, 소석리 일부를 병합하여 화수리라 하고 남원군 운봉면에 편입되었다. 1995년 3월 운봉면이 읍으로 승격됨에 따라 운봉읍 화수리가 되었다.

화수리의 자연 마을로 전촌, 소석리, 육거리, 지와막, 비전, 하마정, 옥계동이 있었으나 현재 육거리, 지와막, 하마정, 옥계동은 폐촌이 되었으며, 1961년 이후 군화동과 화신동이 새로 형성되었다.

1. 소석리

1674~1720년 숙종 연대에 평산신씨, 이씨, 범씨가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오랜 동안 영세한 빈촌이었으나 1972년 이후 주민들이 근면해지고 의욕적으로 노력한 결과 점차 잘사는 마을을 이루게 되었다. 농로 확장, 지붕 개량, 진입로 확장 등을 완료하였으며 마을의 숙원인 양수장을 설치하여 전천후 농업을 경영하게 되었다.

마을 뒷산에 매방골이 있는데 이 골짜기는 예로부터 원님이 1년에 몇 차례씩 나와 매사냥을 했던 곳으로 전해진다. 과거 매방골에서 흘러내린 골짜기 물을 물넘기틀로 넘겼는데, 이곳을 물고개라 하며 물고개로 넘어 온 그 물로 소석리에서는 농사를 지었다.

물고개의 낙차 거리가 약 70m에 달하였는데, 이것이 아침 햇볕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것을 건넛마을 신기리매요리 사람들이 바라보게 되면 소석리 사람들 중 미친 사람이 생겼으므로 이로 인해 상대 마을과의 싸움이 그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끝내는 말썽 많은 물넘기를 중지해 버렸다. 1976년경 9.9㎡ 규모의 사각 정자를 건립하였으며 1990년 99㎡ 규모의 마을회관을 건립하였다.

2. 전촌리

1674~1720년 숙종 연대에 운봉읍 밀양박씨가 황산대첩비 옆 북천 변에서 낚시를 하다가 황산대첩비 입구에 있던 수려한 풍치의 소나무 숲에 이끌려 이곳으로 옮겨와 살면서 마을을 세웠다. 그 후 김씨, 이씨, 강씨가 차례로 들어와 마을을 형성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운봉에서 번성하였던 밀양박씨들은 혼잡을 피하기 위하여 동천리 박씨인 동박과 서천리 박씨인 서박으로 분리하여 거주지를 옮기게 되었는데, 이때 전촌리에 들어온 박씨가 동박에 속했다.

전촌리 뒤에 위치한 신당에서는 당산제를 지내 왔으나 1960년대 중단되었다. 1970년대까지 전촌리 앞에 지와막이라는 도요지가 존속하였다. 1970년대 새마을 사업 기간 중 황산대첩비(荒山大捷碑)까지 직통으로 마을 진입로를 확장하였으며 마을회관과 창고를 건립하였다.

1978년에는 구판장을 설치하였다. 1980년 비전리와 전촌리를 연결한 길이 65m, 폭 6m의 다리인 대첩교를 가설하였다. 1988년 예수교 장로회 소속의 황산교회가 설립되었다. 1993년 9.9㎡ 규모의 사각 정자와 66㎡ 규모의 마을회관을 건립하였다.

3. 비전리

처음 경주김씨가 터를 잡은 후 박씨, 이씨 등이 옮겨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서편에 하마정이 있어 말을 탄 관리가 황산대첩비를 지날 때면 하마비(下馬碑)가 서 있는 이 곳에서 말을 내려 걸어와 황산대첩비 앞에서 절을 하였다.

구한말까지 존속되었던 2층 규모의 하마정 주변에는 주막과 기녀, 소리꾼, 가마꾼이 상주하여 비전리를 역촌이라 부르기도 하였으니 하마정은 비전리가 동편제의 발상지가 된 연유와 무관하지 않은 곳이다.

본래 비전리에는 이씨 문중의 묘가 있었으나 황산대첩비지(荒山大捷碑址)에 밀려 황산 서편 기슭으로 이장되었다. 이장한 묘 자리 역시 국가에서 지정한 국풍(國風)이 잡은 명당이라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성묘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1961년 대홍수 때 군인들이 소멸된 화수리 이재민들의 가옥 13채를 건립하였는데, 이주 후 군인들이 지은 화수리란 뜻으로 마을 이름을 군화동(軍花洞)이라 부르게 되었다. 황산 밑에는 1980년 옛 황산교를 중건한 30m 길이의 화수교가 있다. 1990년 66㎡ 규모의 마을회관을 건립하였다.

4. 화신리

1968년 북한 김신조 부대의 대남 침투 사건 이후 독가촌(獨家村)을 한데 모아 화수리에 편입하였는데, 행정적으로 독가촌 여러 세대가 일시에 이주하여 새로운 마을인 화신리가 형성되었다. 1994년 99㎡ 규모의 마을회관을 건립하였다.

[자연환경]

소석리는 바래봉[1,165m] 지맥이 슬며시 북쪽으로 방향을 돌려 덕두봉(德頭峯)[1,150m]을 동쪽으로 끼고 폭 1㎞, 길이 약 4㎞의 옥계동의 깊은 골짜기를 만들었다. 옥계동 서쪽 산등성이를 넘어서면 오랜 침식과 풍화로 형성된 완만한 서편 기슭이 길게 타고 내려와 24번 국도 못미쳐 잔등평전이란 평지를 이룬다. 소석리는 바로 이곳에 자리한 마을이다.

남쪽으로는 넓은 종축장이 펼쳐지고 북쪽으로는 화신동 너머 황산이 위치하고 있다. 마을 앞 서쪽 너른 광평들녘 멀리 고남산(古南山)이 우뚝 서 기개를 보이고 있다. 보기에도 육중한 바래봉 기슭에서 발원한 하천이 옥계동과 용산천 쪽으로 흘러내려오나 수량은 풍부하지 못하다. 물이 마른 잔등평전의 지형적인 이유 때문인지 잔돌이 많은 편이다.

화수산 남쪽에 위치한 전촌리는 광천의 넓은 들이 이어지는 곳으로, 황산(荒山)의 좁은 목을 통해 동면으로 이어지는 길목에 위치한다.

비전리운봉읍 내를 출발하여 함양으로 가다보면 전촌리가 나온다. 전촌 입구에서 북쪽으로 약 500m 거리에 반월형의 화수산 고송이 우거진 곳에 황산대첩비가 세워져 있고, 그 동편에 비전리가 위치하고 있다.

화신리는 동쪽으로 덕두봉이 있으며 북동쪽으로는 황산과 옥계동이 위치하고 있으며, 북쪽으로는 가산산성을 마주하고 있다. 그 사이에 황산대첩비지를 끌어안은 반월산이 위치한다.

[현황]

운봉읍에서 인월면 방면으로 3㎞ 지점 국도 24호선 좌우측에 분포한 마을로 소석리·전촌리·비전리·화신리 등 4개 행정리를 통합한 법정리이다. 2007년 기준 면적은 701.5㏊이며, 2014년 12월 31일 현재 총 173세대에 357명(남자 166명, 여자 191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소석리에는 총 57세대에 128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경지 면적은 총 58.7㏊으로, 그중 밭이 8.1㏊, 논이 50.6㏊이다. 주민들은 대부분 농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주요 소득원은 쌀이다. 몇몇 농가에서는 양계장을 운영한다. 옛 절터는 시무당고(회기실)에 위치한다. 매년 마을 입구의 당할머니와 위쪽의 당할아버지를 모시는 당산제를 지내고 있다.

전촌리에는 총 29세대에 60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경지 면적은 총 36.2㏊으로, 그중 밭이 8.3㏊, 논이 27.9㏊이다. 주민들은 대부분 농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주요 소득원은 쌀이다. 몇몇 농가에서는 양계장을 운영한다.

마을 입구에는 경치가 수려한 수백 년 수령의 소나무 숲이 위치하며 인근 관광지로는 황산대첩비각이 있다. 24번 국도가 마을 앞을 지나고 있어 비교적 교통은 편리하다.

비전리에는 총 44세대에 92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경지 면적은 총 54.3㏊으로, 그중 밭이 5.6㏊, 논이 48.7㏊를 차지한다. 주민들은 대부분 농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주요 소득원은 쌀이다.

비전리는 동편제의 가왕(歌王)이라 일컫는 송흥록(宋興祿)송만갑(宋萬甲)의 출생지로, 마을 입구에는 송흥록의 생가 터를 기념하기 위한 비석이 건립되어 있다. 또한 판소리 명창인 인간문화재 박초월(朴初月)이 성장한 곳이기도 하다.

동편제 판소리의 발상지이며 「춘향가」·「흥부가」의 배경지인 비전리에는 국악의 성지가 조성되어 있으며 인근 관광지로 황산대첩비와 어휘각이 있다.

화신리에는 총 43세대에 77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경지 면적은 총 16.3㏊으로, 그중 밭이 10.8㏊, 논이 5.5㏊이다. 바래봉의 완만한 서쪽 기슭에 위치한 탓인지 물이 많지 않고 논농사에 적합한 평지가 없어 주민들은 대부분 고랭지 채소나 가축업에 종사한다.

종교 단체로는 1963년 옛 절터에 건립하였던 운선암을 개명하여 1996년 건립한 태고종 사찰인 천공사가 있다. 유적으로는 거문고의 대가 옥보고(玉寶高)가 은거했던 옥계동이 있으며 마을 입구에는 소리무덤이 남아 있다. 화신리는 운봉과 동면의 경계에 가까운 지역으로 24번 국도에 인접해 있어 교통은 편리한 편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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