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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600465
한자 諸川里
영어음역 Jecheon-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전라북도 남원시 주생면 제천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서정섭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법정리|행정리
면적 제천리 2,654㏊|서만리 2,654㏊
총인구(남, 여) 제천리 197명(남자 98명, 여자 99명)[2014년 12월 31일 기준]|서만리 87명(남자 41명, 여자 46명)[2014년 12월 31일 기준]
가구수 제천리 114세대[2014년 12월 31일 기준]|서만리 43세대[2014년 12월 31일 기준]

[정의]

전라북도 남원시 주생면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명칭유래]

제천리는 옛날부터 여러 갈래 냇물이 마을 앞으로 흘러 요천으로 모두 합류하는 곳이어서 모든 냇물이란 뜻으로 제천이라 불렀다. 냇물이 모이는 곳이란 의미와는 달리 마을 뒷동산이 거북이 모양과 흡사하여 모든 물이 거북 바위에 모인다는 의미로 제구천이라고 칭하기도 하고, 제구내라고도 했다는 설도 있다. 그러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지명을 한자화하면서 거북 구자를 빼고 제천리로 바꾸었다.

서만리는 요천 냇물의 지류가 여러 갈래로 마을 중심을 흘러 섬과 같이 생겼다 하여 섬안, 섬말이라 불러오다가 도내리(島內里)로 바뀌었다. 그 후 마을 서편에 조그만 언덕이 반달같이 생겨, 달처럼 점점 커져 보름이 되면 만월처럼 둥글게 될 것이라는 상상을 하여, 달이 서쪽으로 기울면서 만월이 된다는 의미로 1900년경 마을 이름을 서만으로 고쳤다고 전한다.

[형성 및 변천]

조선 선조 때 참판으로 홍문관 교리를 역임했던 박춘성의 아들 박효련이 한양에서 남원으로 이주하여 그 자손이 번성한 데 비해 세 성씨 중 이씨와 나씨는 점차 타지로 옮겨가 밀양박씨의 집성촌이 되었다.

제천리는 원래 남원군 주포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제천리, 도내리, 상내리 일부와 기지면 고룡리 일부가 병합되어 제천리에 편입되었다. 취락 조성 내력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밀양박씨, 나주나씨, 전주이씨 등이 이곳에 정착하여 마을을 형성하였다고 한다.

서만리는 큰 냇물이 흘러 물이 맑고 사람이 살기 좋다 하여 서기 1600년(선조 33)경에 남양방씨가 처음 자리를 잡아 마을을 이루며 살았다. 그 후 방씨는 점차 줄고 파평윤씨, 문화유씨, 김해김씨, 밀양박씨 등 여러 성씨들이 이곳으로 옮겨 살게 되어 현재와 같은 마을을 형성하였다.

서만리는 원래 남원군 주포면 도내리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제천리, 도내리, 상내리 일부와 기지면 고룡리 일부가 병합되어 제천리에 편입되었다. 남원시로부터 서남쪽으로 8㎞ 떨어진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자연환경]

평야 지대로 토질이 비옥하고 미곡 위주의 농업을 주로 하는 조용한 농촌 마을이다. 제천리 앞에는 요천이 흐르고, 마을 입구에는 옛날에 월파정, 도림정 등 정자가 있었다고 한다.

[현황]

제천리는 2014년 12월 31일 현재 총 114세대 197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으며, 남자가 98명, 여자가 99명이다. 경지 면적은 91.6㏊로 밭이 41.4㏊, 논이 50.2㏊이고 임야는 서만리를 포함하여 19.2㏊이다.

1960년대 이전에는 농경지에 홍수 피해가 잦아 영세민이 많았고 또 하천 부지를 개간하여 토질이 척박하였으나, 1964년부터 1966년 사이 요천호안 공사로 홍수를 피할 수 있게 되었고, 수리안전답으로 수해가 예방되어 점차 토지가 비옥해지면서 부촌으로 성장하였다. 1993년도에 86.8㏊의 농토가 경지 정리를 완료하여 기계화 영농이 가능하게 되었다.

지금은 현대식 마을회관 신축과 주택 개량 등으로 획기적인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마을 뒤에는 남원~곡성 간 국도 17호선전라선 철도가 통과하고 있어 교통이 매우 편리하다. 마을 뒷산에는 삼충사가 있는데, 일명 구천사라고도 한다. 구천사는 문화재자료 제58호로 관리하고 있다.

서만리는 2014년 12월 31일 현재 총 43세대 87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으며, 남자가 41명, 여자가 46명이다. 경지 면적은 97.8㏊로 밭이 32㏊, 논이 65.8㏊이고 임야는 19.2㏊이다.

예전에는 큰 냇물이 주변에 흘러 대어를 낚았으며 마을 남쪽에 큰 연못이 있었는데 용이 등천했다 해서 용쏘라 했다. 그러다 1900년부터 물이 적어 연못은 전답으로 변하였다. 마을의 남양방씨는 조선시대에 진사 3대가 배출되었다고 하나 지금은 방씨 자손은 하나도 살지 않고 인근에 여러 개의 묘만 남아 있다.

공공기관으로 주생면 사무소, 남원경찰서 주생지구대, 남원시 농촌지도소 주생농민상담소, 면대본부, 주생우체국, 주생역 등이 있다. 금융 기관으로는 주생농업협동조합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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