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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600452
한자 長橋里
영어음역 Janggyo-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 장교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서정섭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행정리|법정리
면적 395.8㏊
총인구(남, 여) 304명(남자 142명, 여자 162명)[2014년 12월 31일 기준]
가구수 149세대[2014년 12월 31일 기준]

[정의]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명칭유래]

장교리는 본래 운봉의 서면 지역으로 지형이 긴 다리와 같다고 하여 장다리 또는 장교리라 하였다. 무학대사가 지형을 살펴보니 고남산(古南山) 줄기가 마을까지 뻗어 내린 모양이 마치 긴 교량을 가설한 듯 하므로 마을 이름을 장다리라 하였고, 이 마을은 장차 이씨와 김씨의 터가 될 것이라는 예언했다고 한다.

장동리는 예로부터 노루가 한가로이 낮잠을 즐기는 형국이라 하여 노루골이라 했는데 지명을 한자로 바꾸면서 장동이 되었다. 연동리는 연꽃 형국의 길지라 해서 연골, 연동 또는 삼막, 산막이라 하였다.

[형성 및 변천]

장교리는 삼국시대부터 천씨 세 가구가 움막을 치고 부족 사회와 같은 원시생활을 시작하였다고 한다. 고려 말 왜구가 자주 침략하여 급기야 운봉과 인월에 근거를 두고 약탈과 온갖 만행을 저지르자 조정에서 이성계(李成桂) 장군으로 하여금 토벌케 하였다.

당시 이성계 장군은 고승 무학대사를 대동하고 천하 명궁 퉁두란(이두란), 변안렬 등 무장들과 1,000여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이곳을 통과할 때 고남산에서 3일 기도를 드리게 되었다.

또 일설에는 이성계고남산에서 3일 기도를 드린 후 왜구를 물리치고 제왕이 되었기에 고남산을 제왕봉이라 불렀으며 제왕봉의 정기를 받아 마을이 부촌을 이루고 도적이나 재앙이 없이 대대로 태평하였다고 한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여원리, 장치리, 연동리 일부가 병합되어 장교리에 편입되었다.

장동리의 경우 최초의 입향조는 신씨로 알려져 있고 그 뒤 고씨가 터를 잡았으며 지금은 여러 성씨가 모여 살고 있다. 본래 운봉의 서면 지역으로 노루골 또는 장치리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여원리와 장치리를 합하여 장동리라 하고, 연동리 일부가 병합되어 장교리에 편입되었다가 1972년 행정 분리에 따라 단위 행정마을로 독립된 곳이다.

조선시대 여원이 있던 연재는 30여 년 전만 하여도 남원시장을 보러 다니는 사람들의 휴식처인 주막이 있었던 마을로 하루 종일 성황을 이루었다고 하나 지금은 집 터만 남아 있다.

연동리는 1400년경 홍정승이 전국을 유람하다 여원재 아흔 아홉 고개를 구비구비 돌아 고갯마루 여원에 이르러 말을 풀밭에 놀게 하고 잠시 휴식을 하였다. 다시 행차를 수습하는데 풀을 뜯던 말이 온데간데없으므로 수행원들이 말의 발자국을 따라 갔더니 지금의 연동리 106번지 지점의 따뜻한 양지 바른 곳에 누워 있는 것이었다.

이를 기이하게 여긴 수행원들이 홍정승에게 아뢰자 홍정승은 이 곳이 길지임을 깨닫고 남양홍씨 자손을 연동리로 이주시켰다. 이후 홍씨 가문이 번성하여 큰 마을이 형성되었다.

이후 홍씨들은 타지로 이동해 가고 1730년경 전주이씨와 김해김씨가 장교리에서 분가해 와 다시 마을을 형성하였다. 홍씨들이 3대에 걸쳐 막을 치고 살았다 하여 ‘삼막’이라 하였으며 ‘산막’이라고도 하였다.

그 후 마을 뒤 노루봉과 마을 앞 연못의 연꽃이 유달리 아름다워 속칭 연골이라 부르기 시작한 것이 어느덧 마을 이름으로 되었다. 지명을 한자로 바꾸면서 연동이 되었다. 본래 운봉의 서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여원리, 장치리, 연동리 일부가 병합되어 장교리에 편입되었다.

연동리는 젖소 사육으로 성공한 대표적인 마을로 전라북도 시범마을로 지정되어 보건소와 마을회관, 놀이터 등의 의료 시설과 문화 시설을 갖추는 등 전국적으로 새마을 연수가 한창일 때 연수생들의 견학 코스로 소개되었던 마을이기도 하다.

[자연환경]

장교리 마을 남쪽 할머니 당산이 있는 안산이 거북이혈이고 중고개 동쪽 산이 용혈이며, 연재마을 동북쪽 야산에 봉당혈이 있다고 전해진다. 이 세 야산 사이에 있는 들을 구렁터 또는 구룡봉터라고 부른다. 해발은 470m이다.

장동리는 마을 입구 논 한가운데 작은 흙 봉분이 있는데, 마을 사람들은 똥뫼라 부르지만 그 모양이 상서롭지 않다 하여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마을 내 장자터는 본래 운봉박씨 묘가 있던 곳인데 지금은 이장을 하였다. 장자터에 큰 바위가 하나 있는데 묘를 조성할 때 마을 뒤 고개 너머에 있던 기묘한 형상의 쌍바위 중 하나를 옮겨온 것이다. 과거 기우제와 당산제를 지내던 앞, 뒤 당산이 있다. 해발은 475m이다.

연동리는 마을 주위가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마을 앞 논에는 흙 봉분이 있는데 마을의 재난을 막고 행운을 기원한다는 뜻으로 만든 비보(裨補) 시설이다. 해발은 465m이다.

[현황]

2007년 기준 면적은 395.8㏊이며, 2014년 12월 31일 현재 총 149세대에 304명(남자 142명, 여자 162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주요 소득원은 벼농사, 고랭지 마늘, 채소이며 연동리는 젖소를 사육하는 축산업이 성하다. 장교리운봉읍 소재지에서 국도 24호선이 통과하는 서쪽 방면 4.5㎞ 지점에 위치하며 행정리로 장교리·장동리·연동리를 관할하고 있다.

주요 시설 및 유적으로 장교리에는 예수교장로회 장교교회, 밀양박씨 효자비, 박강임 효자비, 장교 합민성과 고남산성(古南山城)이 있다. 장동리에는 주지암과 주지사 포교당, 전주이씨 영해군파 제각인 감모재, 밀양박씨 묘각인 첨모재가 있다. 연동리에는 연동보건진료소와 연동 고분군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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