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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600240
한자 權布里
영어음역 Gwonpo-ri
이칭/별칭 권포,굄피기,가동,덧멀,덧골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 권포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복효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법정리|행정리
면적 409.3㏊
총인구(남, 여) 239명(남자 110명, 여자 129명)[2014년 12월 31일 기준]
가구수 111세대[2014년 12월 31일 기준]

[정의]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에 속한 법정리이자 행정리.

[개설]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소재지로부터 국도 24호선에서 군도 8호선 2㎞ 지점 고남산 기슭에 위치하고, 산동면 부절리와 인접한 마을이다.

[명칭유래]

법정리로서의 권포리는 행정리인 권포리와 가동리로 나뉘어 있다. 가동리라 하여 ‘더할 가(加)’ 자를 쓰게 된 것은 권포리장교리(연동) 두 마을 사이에 새로 생긴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했다. 즉, 연동에서 더 가면 나오는 마을이란 뜻으로, 속칭 ‘덧골’이라 부르던 것이 한자로 표기하면서 가동이 된 것이다.

고려 말인 1380년(우왕 6년) 인월면에 근거지를 둔 왜구를 물리치기 위해 이성계 장군이 이 곳 고남산에서 전승 기도를 올릴 때, 주둔했던 병마의 식수로 쓰던 샘 주변에 터를 잡아 마을을 이루었다.

고남산이성계 장군이 왕업을 이룬 것과 연관이 있다 하여, 일명 태조봉·제왕봉이라 하였다. 제왕봉은 모든 산의 제왕이 되므로 인근 지형 역시 권력을 편다는 의미로 붙인 마을 이름이다. 정도전이 권포리(權佈里)라 지었다 한다.

[형성 및 변천]

먼저 가동마을은 약 1710년경 함양군 뇌산마을의 삼언최씨가 지금의 마을 서쪽 ‘막골’에 막을 치고 살기 시작한 뒤, 이인좌의 난을 피해 김해김씨가 들어오면서 함께 마을을 일구었다고 한다.

또 1728년(영조 4) 이인좌의 난 때 운봉 좌영군이 함양의 반란군 최존서(崔存緖)를 공격하여 물리치자, 그 친족들이 난을 피해 ‘막골’로 들어와 막을 치고 처음 살게 되었다고도 한다. 그 뒤 이곳을 ‘막골(마골)’로 부르게 되었다.

덧몰, 덤멀(몰)로 불리던 가동은 본래 운봉면 서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연동의 일부가 되었으나, 행정구역상 가동리로 명칭하여 권포리에 속하게 되었다.

권포리는 성씨는 알 수 없으나, 고려 말기 약 10여 호의 취락이 지금 마을의 서편 200m 지점 고남산 아래에서 시작하였다. 그 후 고남산에 큰 산사태가 일어 매몰되고 지금 위치에 400년 전쯤부터 권씨들이 터를 잡아 살아오고 있다.

본래 운봉군 서면 지역으로서 굄피기 또는 권포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가동과 연동, 임리의 일부를 병합하여 권포리라 하고 남원군 운봉면에 편입되었다. 권포리 618-1번지[권포2길 26-13]에 서면사무소가 설치되었다. 지금은 그 청사 터가 남아 있다. 1995년 3월 면이 읍으로 승격하면서 운봉읍 권포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마을 뒤에 고남산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제단을 쌓은 고남산 정상이 마치 감투를 쓴 것처럼 보인다. 서쪽으로 관음치와 고남산성 동쪽으로 통하는 통안재가 있다.

[현황]

권포리에는 2014년 12월 31일 현재 총 111세대에 239명(남자 110명, 여자 129명)이 거주하고 있다.

가동리의 총 가구 수는 2007년 4월 기준으로 30가구로, 농가가 17가구이고 비농가가 13가구이다. 마을회관이 있고, 김해김씨 제각으로 영모재가, 전주최씨 제각으로 막모재, 강씨 제각으로 원모재가 있다.

권포리는 2007년 4월 기준으로 총 가구 수 79가구 중 농가가 50가구, 비농가가 29가구로 농가가 주를 이루고 있다. 마을에는 향원정이라는 정자가 있고 초봉골·탑골·뒷골 제각 등 정씨 제각이 있다. 옛 고남초등학교는 폐교되었고, 그 자리에 2001년 국립민속국악원 예술감독인 김무길이 ‘운상원 소리터’라는 국악 전수관을 운영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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