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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600230
한자 科笠里
영어음역 Gwarip-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전라북도 남원시 이백면 과립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소강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법정리
면적 과리 3.12㎢|입촌 2.64㎢
총인구(남, 여) 271명(남자 131명, 여자 140명)[2014년 12월 31일 기준]
가구수 122세대[2014년 12월 31일 기준]

[정의]

전라북도 남원시 이백면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과립리이백면의 중심부에 있으며, 면사무소를 비롯한 공공기관이 모여 있다. 과리마을과 입촌마을로 구성되어 있고 산줄기가 마을을 감싸며, 백암천의 근원천이 흐르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자연마을로는 과리, 갓바래, 암내, 까막재 등이 있고 메복지, 성떼미, 제비당, 갓바래재, 당굴고개, 여시고개가 있다.

[명칭유래]

과리(科里)와 입촌(笠村)의 이름을 따서 과립리라 하였다. 과리마을은 유기동이란 사람이 과거에 급제하여 진사벼슬을 하며 살았기에 붙여졌다는 설과 벼슬한 사람들이 모여 살았기에 붙여졌다는 설이 있다.

입촌마을은 속칭 갓바래라고도 불린다. 이는 중이 삿갓을 쓰고 배낭을 지고 가는 모습의 산혈이 있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갓을 만드는 사람이 살았기 때문이라고도 하는데, 지명을 한자로 바꾸면서 입촌으로 불린다. 마을의 동쪽은 운봉읍을 접경으로 높은 산이 있는데 이 재 또한 갓바래재로 불린다.

일설에는 홍거리와 두무실이 있었는데, 이 가운데 아홉 구비 혈 중에서 바래혈이 있다 하여 갓바래라 불리기도 했다고 한다. 이곳 동쪽의 험준한 산중에는 절토골이란 절터가 있는데, 신라시대와 고려시대 불교문화가 전성기를 이룰 당시의 암자였다고 전한다.

[형성 및 변천]

과리마을은 조선 정종 때 절을 건립하였다고 하나 임진왜란 당시 소실되어 아무런 흔적도 없으며, 지금부터 300여 년 전에 경주김씨가 처음 정착하였다. 본래 남원군 백암면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과리, 입촌리와 백파면의 파과리 일부를 병합한 후 과리와 입촌의 이름을 따서 과립리라 명명하고 과립리에 편입하였다. 면사무소가 설치되어 면소재지가 되었다.

입촌마을은 조선 중엽 이천서씨 서성초(徐成稍)의 7대조가 오치령(烏峙嶺)[까막재] 밑에 살았으며, 그 후 청주한씨가 들어와 마을을 형성하였다. 본래 남원군 백암면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갓바래 또는 입촌이라 불렸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과리, 입촌리와 백파면의 파과리 일부를 병합한 후 과리와 입촌의 이름을 따서 과립리라 명명하고 과립리에 편입하였다.

[자연환경]

과립리이백면의 중심부에 있으며 백암천이 마을 가운데로 흐르고 있다. 남쪽으로는 주천면, 동쪽으로는 운봉읍과 접하며, 장백산과 말봉이 마을을 감싸고 있다. 반면에 입촌리는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로 해발 250m이며, 대부분 농업에 종사하고 마을 뒷산에서 송이를 채취한다. 군도 15호선이 소재지를 통과한다.

[현황]

2014년 12월 31일 현재 과립리에는 총 122세대, 271명(남자 131명, 여자 140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과리마을은 전체 면적이 3.12㎢이며, 경지면적은 0.39㎢로 전 0.07㎢, 답 0.32㎢이고 임야는 1.96㎢, 기타 0.29㎢이다. 2014년 12월 31일 현재 총 73세대에 159명(남자 74명, 여자 85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입촌마을은 전체 면적이 2.64㎢이며, 경지 면적은 0.39㎢로 전 0.07㎢, 답 0.32㎢이고 임야는 1.96㎢, 기타 0.29㎢이다. 2014년 12월 31일 현재 총 49세대에 112명(남자 57명, 여자 55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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