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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희문 쇄미록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500609
한자 吳希文瑣尾録
영어공식명칭 Swaemirok
이칭/별칭 문헌,전적,일기,오희문,쇄미록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문헌/전적
지역 전라북도 무주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박정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술 시기/일시 1591년연표보기~1601년연표보기 - 오희문 쇄미록 저술 시작·완료
문화재 지정 일시 1991년 9월 30일연표보기 - 오희문 쇄미록 보물 제1096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오희문 쇄미록 보물 재지정
소장처 한국학 중앙 연구원 장서각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하오개로 323[운중동 490-8]
소장처 국립 진주 박물관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626-35[남성동 169-17]
성격 일기
저자 오희문
권책 7책
문화재 지정 번호 보물

[정의]

조선 후기 오희문임진왜란을 겪으면서 무주 일대 상황을 적은 일기.

[저자]

오희문(吳希文)[1539~1613]의 본관은 해주(海州)이며, 호는 비연(斐然)이다. 장성 현감을 지낸 오경민(吳景閔)과 남인(南寅)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인 연안 이씨(延安李氏)와의 사이에 인조 때 영의정을 역임한 오윤겸(吳允謙)이 있다. 오희문 쇄미록에 의하면 아버지 오경민이 처가살이를 하면서 어린 시절을 충청도 영동에서 보낸 것으로 보인다.

[편찬/간행 경위]

오희문(吳希文) 쇄미록(瑣尾錄)오희문이 장수 현감으로 부임한 처남 이빈(李贇)과 영암(靈巖)으로 출가한 누이를 방문하고, 장흥(長興)과 성주(星州)에 있는 노비들에게 신공(身貢)을 징수하기 위하여 서울을 출발한 1591년 11월 27일부터 임진왜란 시기 홍주, 임천, 아산, 평안도 평강 등지로 다니며 피난 생활을 하면서 적은 일기이다.

[형태/서지]

오희문 쇄미록은 7책으로, 필사본 형태로 남아 있다. 오희문 쇄미록은 1991년 9월 30일 보물 제1096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보물로 재지정되었다. 한국학 중앙 연구원 장서각, 국립 진주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시간순으로 제1책은 「임진 남행 일록(壬辰南行日錄)」[1591년 11월 27일~1593년 6월], 제2책은 「계사 일기(癸巳日記)」[1593], 제3책은 「갑오 일록(甲午日錄)」[1594], 제4책은 「을미 일록(乙未日錄)」[1595], 「병신 일록(丙申日錄)」[1596], 「정유 일록(丁酉日錄)」[1597년 1월], 제5책은 「정유 일록」[1597년 2~8월], 제6책은 「정유 일록」[1597년 9~12월], 「무술 일록(戊戌日錄)」[1598], 제7책은 「기해 일록(己亥日錄)」[1599], 「경자 일록(庚子日錄)」[1600], 「신축 일록(申丑日錄)」[1601년 1월~2월 27일]으로 구성되어 있다.

오희문은 일본군이 부산진성을 공격했다는 소식을 접한 1592년 4월 16일부터 이후 전쟁 상황을 보고 들은 대로 상세하게 정리하였다. 당시 전라도 장수에 머물고 있었던 오희문은 주변 고을의 전투 상황을 상세하게 기록하였는데, 일본군은 1592년 6월 초 충청도를 경유하여 전라도로 진격하였다. 동년 7월 1일 용담을 거쳐 무주를 침범하고, 이곳을 근거로 하여 인근 장수와 용담 및 금산을 공격하는 등 일본군의 약탈과 방화 등을 담고 있다. 각 책의 말미에는 국왕, 왕세자의 교서(敎書)와 의병의 격문(檄文), 명(明) 장수의 성명문(聲明文), 과거 시험 합격자의 방목(榜目), 각종 공문서 등을 수록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임진왜란 시기 각지의 전투 진행 상황, 의병의 활약, 명군과 일본군의 각종 만행 등 전반적인 전쟁 상황 및 전쟁과 관련된 각종 세금 징수와 군대 징발, 질병의 유행과 굶주림 등을 겪는 일반 백성들의 생활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무주 지역의 전투, 피해 상황에 대해 역사적 자료를 제공함으로써 당시의 지역사를 이해하는 기초 자료로서 가치를 가지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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