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701470
한자 文學
영어공식명칭 Literature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경상남도 밀양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근대/근대,현대/현대
집필자 이순욱

[정의]

경상남도 밀양 지역을 터삼아 만들어진 인간의 생각과 감정을 언어와 문자로 표현한 예술.

[개설]

예로부터 경상남도 밀양 지역은 경상남도의 여러 소지역 가운데서 유달리 교통이 발달하고 농산물과 자연 자원이 풍부하여 이러한 조건을 바탕으로 농업과 섬유공업, 양조업, 상공업이 발달하였다. 수려한 자연경관과 인문지리적 환경 덕분에 농경문화에 바탕을 둔 밀양백중놀이 같은 다양한 민속 예능이 발달할 수 있었으며, 인접 지역과의 문화 교류도 활발하였다. 무엇보다도 농업생산력에 바탕을 둔 충분한 문화 생산 여건에다 전통을 자랑하는 역사문화경관, 변계량(卞季良)[1369~1430]과 김종직(金宗直)[1431~1492]을 숭앙하는 유학적 전통, 사명당(四溟堂)[1544~1610]과 아랑(阿娘)으로 이어지는 충절과 의열의 전통은 밀양 지역민의 문화적 자긍심을 드높이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이러한 문화적 전통과 역사의식, 정신사를 기반으로 밀양은 드높은 문학적 성취와 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다.

[출판으로 본 근대 이후의 밀양 문학]

근대 이전 밀양의 출판 양상을 살펴보면, 19세기 방각본, 개항기 『성재선생문집속집(省齋先生文集續集)』[1903~1904] 6책, 일제강점기 『성호선생문집(星湖先生文集)』[1916~1917] 27책과 『성호선생전집(星湖先生全集)』[1922] 36책 등의 발간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변계량, 김종직, 박한주(朴漢柱)[1459~1504]로 이어져 오던 영남 사림(士林)의 문화적 전통과 역량을 드러낸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한문 우화소설 『태극옹전(太極翁傳)』을 발간할 정도로 출판 활동이 매우 활발하였다.

전통적 문화유산이 든든한 기반을 형성하고 있는 밀양의 문화적 토양에 근대문학이 뿌리내린 것은 광복 이후로 볼 수 있다. 광복 이전에는 밀양 지역에 문학 매체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기성 문단에서 활동한 문인도 거의 없었다. 1911년 박석정, 1914년 표문태의 활동이 있었으나 박석정이나 표문태의 주된 활동은 출신지인 밀양이 아닌 서울이나 일본에서 이루어졌다. 광복기에 이르러서도 밀양의 근대문학적 전통은 곧바로 온전히 싹튼 것은 아니었다. 1946년 4월 창간호를 낸 밀양 최초의 잡지인 좌익 계열 잡지 『등불』과 1947년 6월 창간호를 낸 화악동인회의 동인지 『화악(華岳)』이 광복기의 성과라 할 수 있지만, 『등불』은 창간호로 종간되었을뿐더러, 실물조차 확인할 길이 없다. 밀양 향토문화의 창달과 향상을 표방하였던 『화악』의 경우에도 제2호 발간을 끝으로 종간되었다. 그러나 이렇게 광복기에 이루어진 문학 매체의 발간은 한국전쟁기 제7육군정양병원 정훈과에서 발간한 군기관지 『철심(鐵心)』, 1953년 발행된 『문림(文林)』과 『향토문화(鄕土文化)』를 거쳐 ‘밀양서점’을 경영하던 류종관의 주도로 1954년 발행된 아랑동호인회의 동인지 『아랑(阿娘)』, 밀양 지역 고등학생들의 주도로 1954년 발간된 학생 문예 동인지 『개화』, 1957년 밀양군 대학생회에서 발행한 『향』 등의 매체가 탄생하는 데에 주요한 기반으로 작용하였다.

밀양 지역사회의 본격적인 문학 동인지로는 1959년 발행된 『석화(石花)』를 들 수 있다. 그러나 『석화』 역시 1964년 4호의 발간을 끝으로 종간되었다. 1960년대에 이르면 밀양 문학 사회는 1950년대와 같은 높은 활동력을 상실하였다. 오랜 문학적 공백기를 타개한 계기는 1980년 5월에 이루어졌던 밀양청년문학회의 발족과 『백원(白苑)』의 간행으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문학 조직을 통하여 본 밀양 문학]

밀양 지역문학의 성장은 한국전쟁이 한창 전개되던 시기인 1950년 9월에 결성된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문총] 밀양지부와 밀양문화원, 밀양문화구락부의 활동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 밀양지부의 산하 조직이었던 밀양문화구락부는 1965년 5월 밀양읍에 있던 학교들의 예능 담당 교사들이 주도하여 결성된 교육·예술 활동 단체이다.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 밀양지부가 1950년 결성된 이후 침체 상태에 빠지자, 밀양문화구락부는 밀양 문화를 실질적으로 주도하여 나가는 역할을 맡게 된다. 1957년 11월 제1회 ‘밀양문화제’ 역시 밀양문화구락부밀양문화원의 주도로 그 막을 올릴 수 있었다. 밀양문화제가 개최되고 이듬해인 1958년, 밀양문화구락부가 발전적으로 해체됨에 따라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 밀양지부는 확대와 개편의 수순을 밟게 된다. 5·16군사정변 이후인 1961년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가 해체되고, 1962년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가 출범함으로써 전국의 모든 예술 분야가 국가 문화예술정책의 테두리 내로 귀속되었다. 이에 지역의 자생적 문화운동의 동력을 약화시키는 결과가 초래되었다. 더욱이 밀양 문화예술계의 역량이 모두 밀양문화제로 집중됨에 따라, 1960년대 밀양 문학계는 퇴보의 길을 걷게 되었다.

한편, 밀양의 문학인들을 조직적으로 규합하여 문학적 역량을 고취하고자 하는 시도가 일었는데, 1962년 7월 발족한 한국문인협회 밀양지부가 바로 그것이다. 한국문인협회 밀양지부는 초대 회장에 류종관, 부지부장에 박재호, 사무국장에 이운성을 각각 선출하였으며, 출범 직후부터 1987년까지 밀양문화제 한글백일장의 조직과 운영을 주도하였다. 그러나 박재호의 때 이른 사망과 류종관의 전출 등을 이유로 단체 운영에 어려움을 겪게 되었으며, 이에 따라 2001년 새롭게 인준 절차를 밟기까지 휴면 상태에 머물게 된다. 1987년 밀양문인협회의 쇠퇴로 생겨난 문학계의 공백 상태를 극복하고자 결성된 단체가 밀양문학회이다. 밀양문학회는 1988년 5월 이재금 시인과 밀양의 젊은 교사들이 규합하여 조직한 단체이며, 1988년 11월 기관지 『밀양문학』을 발행하기 시작하며 밀양 문학의 명맥을 지켜 나갔다. 휴면 상태에 있던 밀양문인협회는 2001년 오랜 침묵을 깨고 류종관을 중심으로 새롭게 출범하게 되었으며, 2002년 기관지 『밀양문협지』를 창간하였다.

근대 이후 밀양 문학 사회에서 기억할 이름으로는 프롤레타리아문학운동에 투신하였던 박석정, 사회운동가로서 오랜 기간 활약하였던 표문태를 비롯하여 『송짓골우화』를 간행한 김사림, 1976년 『창작과비평』에 소설 『쌈짓골』을 발표하였던 김춘복, 『하남시편』을 통하여 밀양 하남의 풍광을 서정적으로 노래한 이유경, 『아랑』, 『석화』 등의 동인지는 물론이고 밀양문인협회를 이끌었던 류종관, 『석화』 동인으로 활동하였던 예종숙, 이운성, 박재호 등이 있다. 이 밖에도 ‘환상적 리얼리즘’의 초현실적 세계를 추구한 소설가 이제하, 아동문학가 박돈목, ‘날 이미지의 시’를 주창한 오규원, 시인이자 문학 연구자로 활약한 엄국현 등이 밀양의 문화예술계를 풍요롭게 살찌운 이름들이라 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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