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701001
한자 敬慕齋
영어공식명칭 Gyeongmo-jae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남도 밀양시 하남읍 양동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신재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축|증축 시기/일시 1923년 - 경모재 중건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24년 - 「경모재 중수기」 저술
현 소재지 경모재 - 경상남도 밀양시 하남읍 양동리 지도보기
원소재지 경모재 - 경상남도 밀양시 하남읍 양동리
성격 건물
양식 팔작지붕
정면 칸수 5칸
소유자 밀양박씨 문중
관리자 밀양박씨 문중

[정의]

경상남도 밀양시 하남읍 양동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재사.

[개설]

경모재(景慕齋)는 입촌조 박윤문(朴允文)의 추모를 위하여 박윤문의 후손이 창건한 재사(齋舍)이다. 박윤문은 본관이 밀양(密陽)으로, 중시조인 충헌공(忠憲公) 박척(朴陟)의 증손이다. 박윤문은 고려 충렬왕(忠烈王) 때의 문신으로, 보문각대제학(寶文閣大提學)을 역임하였다. 재능과 학문이 넉넉하고 명망과 실상을 갖추었으며, 문형(文衡)을 관장하고 사림(士林)의 종장이 되었다고 한다. 박윤문의 저술이 서거정(徐居正)의 『동문선(東文選)』에 수록되어 있다. 박윤문은 본래 경기도 개성(開城) 건천리(乾川里)에 거주하다가 1361년(공민왕 10)에 홍건적(紅巾賊)의 난을 피하기 위해 군부인(郡夫人) 김씨(金氏)와 함께 경상남도 밀양으로 이주하게 되었다고 한다.

[위치]

경모재경상남도 밀양시 하남읍 양동리에 있다.

[변천]

경모재는 창건 후 세월이 오래되어 퇴폐되었다. 그러다 1923년 박윤문의 후손인 박성호(朴聖鎬) 등에 의하여 중건되었다. 중건 과정 중에 밀양박씨 문중과 논의하고 지원을 받았으며, 그 전말은 1924년 박윤문의 후손인 박용대(朴容大)가 지은 「경모재 중수기(葛谷齋重修記)」에 자세히 적혀 있다.

[형태]

경모재는 정면 5칸의 팔작지붕 구조이며, 전부 방으로 되어 있다. 정면 상부에 ‘경모재(景慕齋)’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현황]

경모재는 현재 밀양박씨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경모재경상남도 밀양시 하남읍 양동리 밀양박씨 집성촌의 집회, 제례 등의 장소로 활용되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를 가진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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