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700630
한자 金明奎
영어공식명칭 Kim Myunggyu
이칭/별칭 야은(野隱)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남도 밀양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고나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93년 6월 3일연표보기 - 김명규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4월 17일 - 김명규 동래고등보통학교에서 일어난 독립 만세 운동 주도
활동 시기/일시 1925년 - 김명규 밀양수재민 구제를 위한 동정금 모집대에서 상동면 임원으로 활동
활동 시기/일시 1929년 - 김명규 동아일보 밀양지국 기자로 취임
활동 시기/일시 1930년 - 김명규 밀양기자단 조직, 이사로 취임
활동 시기/일시 1931년 5월 23일~1931년 5월 24일 - 김명규 경남기자대회 밀양 참가위원으로 참가
몰년 시기/일시 1977년 2월 10일연표보기 - 김명규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77년연표보기 - 김명규 건국포장 추서
추모 시기/일시 1990년연표보기 - 김명규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출생지 삼문동 - 경상남도 밀양시 진장1길 23-5[삼문동 389-1]지도보기
학교|수학지 동래고등보통학교 - 부산광역시 동래구 충렬대로285번길 22[칠산동 360]
활동지 밀양 - 경상남도 밀양시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동정금 모집대 상동면 임원|동아일보 밀양지국 기자|밀양기자단 이사

[정의]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밀양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김명규(金明奎)[1893~1977]의 호는 야은(野隱)이다. 1893년 6월 3일 경상남도 밀양군 밀양면 삼문동 389번지[현 밀양시 삼문동 389-1]에서 김영옥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활동 사항]

1919년 4월 17일 3·1운동의 일환으로 동래고등보통학교에서 일어난 독립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다가 체포되어 부산지방법원에서 징역 6월, 집행유예 3년을 언도받았다. 1920년 12월에는 황상규의 밀명을 받고 길림무관학교 설립 기금 조달을 위하여 창녕의 부호 하경석의 집에 잠입하여 군자금 150원을 모금, 전달하던 중에 붙잡혀 부산지방법원에서 7년형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김명규는 1925년 밀양수재민 구제를 위한 동정금 모집대에서 상동면(上東面) 임원으로 활동하였다. 1927년 경상남도 창녕군 유림지서 감비 부장 살해 사건에 연루되어 도피 생활을 하였다. 1929년에는 동아일보 밀양지국 기자로 취임하였고, 1930년 밀양기자단을 조직, 이사로 활약하였다. 1931년 5월 23~24일 개최된 경남기자대회에도 밀양 참가위원으로 이름을 올렸다. 1932년에는 밀양노동야학원 축사가 문제가 되어 밀양경찰서 고등계에 호출당하기도 하였다. 김명규는 1977년 2월 10일 세상을 떠났다.

[상훈과 추모]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77년에는 건국포장, 1990년에는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2019년 2월 25일 경상남도 밀양시와 경남동부보훈지청에서는 김명규의 자녀 자택에 독립유공자 명패를 달았다. 밀양독립운동기념관에는 김명규의 추모 흉상이 설치되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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