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700541
한자 安璹
영어공식명칭 Ahn Sook
이칭/별칭 대이,낙원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남도 밀양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강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572년 9월연표보기 - 안숙 출생
활동 시기/일시 1597년 - 안숙 인진왜란 중 창녕 화왕산성 전투 참여
활동 시기/일시 1605년 - 안숙 증광 사마시 합격
활동 시기/일시 1609년 - 안숙 증광시 문과 합격
몰년 시기/일시 1624년 7월연표보기 - 안숙 사망
출생지 안숙 출생지 - 경상남도 밀양시
묘소|단소 안숙 묘소 - 경상남도 창녕군
성격 문신|의병
성별
본관 광주
대표 관직 사헌부감찰|형조정랑|경상도사|초계군수|영천군수

[정의]

조선 후기 밀양 출신 문신이자 의병.

[가계]

안숙(安璹)[1572~1624]의 본관은 광주(廣州)이며, 자는 대이(待而), 호는 낙원(樂園)이다. 1572년 9월 지금의 경상남도 밀양 지역에서 출생하였으며, 광릉군(廣陵君) 안방걸(安邦傑)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참판(參判)으로 추증된 안광소(安光紹)이고, 어머니는 고성이씨(固城李氏)이지만, 안숙은 성균관 생원(生員) 안여경(安餘慶)의 양자로 입적되었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한 안신(安𤣲)[1569~1648]이 안숙의 형이며, 동생은 안전(安琠)이다. 안숙의 부인 현풍곽씨(玄風郭氏)는 망우당(忘憂堂) 곽재우(郭再祐)의 조카인데, 아버지 곽재지(郭再祉)가 곽재우의 이복동생이다. 안숙은 부인과의 사이에 6남 2녀를 두었는데, 둘째 아들 안상한(安翔漢)[1604~1661]은 병자호란 때 의병을 일으켰지만, 남한산성의 함락 소식을 듣고는 슬퍼하며 의병을 해산한 후 은거하였다고 한다.

[활동 사항]

안숙은 일찍부터 한강(寒岡) 정구(鄭逑)의 문하에서 수학하면서 우복(愚伏) 정경세(鄭經世), 동계(桐溪) 정온(鄭蘊) 등과 교유하였다. 정유재란 때에는 곽재우를 도와서 창녕 화왕산성(火旺山城) 방어에 참여하였다. 이때 문서를 담당하였던 7명의 유생이 있었는데, 안숙도 그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1605년 증광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여 진사(進士)가 되었으며, 1609년(광해군 원년)의 증광시 문과에 응시하여 급제하였다. 저작(著作), 박사(博士), 사헌부감찰(歷司憲監察)을 거쳐 경상도사(慶尙都事)가 되었으며, 이후에는 형조정랑(刑曹正郞), 초계군수, 영천군수 등을 지냈다. 광해군 때는 벼슬을 버리고 은거하던 시기가 있었다. 이에 인조반정(仁祖反正) 이후 정경세가 절개 있는 인물로 천거하였지만, 실제 논의가 이루어지는 시점에는 사망하여 관직에 나갈 수 없었다. 1624년(인조 2) 7월에 사망하였다.

[학문과 저술]

안숙은 망우당 곽재우의 제문과 죽유(竹牖) 오운(吳澐)의 만사(輓詞) 등을 비롯하여 여러 글을 남겼는데, 후손들이 글을 모아 『낙원집(樂園集)』을 간행하였다. 이때 『낙원집』의 서문은 채제공(蔡濟恭)이 지었다. 안숙의 『낙원집』과 안숙의 아들 안상한의 『동만집(東巒集)』은 간행되지 않고, 초고 형태로 오랜 기간 보관되다가 부분적으로 실전(失傳)되기도 하였다. 후손 중에 안종덕(安鍾悳)과 친척 동생 안언순(安彦淳)이 선조들의 글을 수습하여 『옥천선생문집(玉川先生文集)』을 간행하는 것에 자극을 받아, 안숙의 『낙원집』 2권과 안상한의 『동만집』 2권을 합쳐서 『낙원동만합고(樂園東巒合稿)』를 간행하기도 하였다. 문집에 수록된 글에는 안숙이 밀양의 명승과 유적에 대하여 남긴 글도 포함되어 있는데, 「영남루차전운(嶺南樓次前韻)」, 「과작원(過鵲院)」, 「제박연정수어대(題博淵亭數魚臺)」 등의 7언절구(七言絕句)가 전한다.

[묘소]

안숙의 묘소는 지금의 경상남도 창녕군에 마련되었으며, 뒤에 부인 곽씨도 합장하였다. 안숙의 묘갈명은 성호(星湖) 이익(李瀷)이 지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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