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700395
한자 先史
영어공식명칭 Pre-historic Period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경상남도 밀양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현라

[정의]

석기, 청동기, 철기 등 초기 국가 시대 이전 경상남도 밀양시의 역사.

[개설]

경상남도 밀양시는 밀양시 중심을 관류(貫流)하는 밀양강 유역 밀양읍과 상남면(上南面)·부북면(府北面)·상동면(上東面)·산외면(山外面)을 묶은 평야 지역을 하나의 축으로 하고, 시의 남쪽 경계를 이루고 있는 낙동강 본류의 북안(北岸)인 삼랑진(三浪津)·하남읍(下南邑)초동면(初同面)에 걸친 범람원 지역, 밀양강의 지류인 동천과 북천을 중심으로 한 단장(丹場)·산내면(山內面)의 산간 지역, 내진천(來進川)을 중심으로 한 무안(武安)·청도면(淸道面)의 구릉 지역 등으로 대별할 수 있다.

이러한 구분은 각기 산재해 있는 유적과 유물의 분포상으로 보아도 차이와 특징이 있다. 즉 초기 밀양 지역에 들어온 사람들은 낙동강 유역을 따라 이주하는 과정에서 본류의 북안 범람원 지역, 그 지류인 밀양강 양안(兩岸)의 평야·구릉·산간지대를 각각 생활의 터전으로 삼아 단계적으로 정착하였다.

[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

경상남도 밀양시에서 구석기시대의 흔적은 단장면 고례리밀양 고례리 사화동 유적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밀양 고례리 사화동 유적은 해발 400~700m의 산세에 둘러싸인 약 20m 높이의 구릉 위에 있고, 앞에는 낙동강 중류 밀양강의 한 지류인 단장천이 흐르고 있다. 또한 밀양 고례리 사화동 유적지는 2만 년 전후의 후기 구석기시대 대규모 살림터 유적이다. 유물은 구석기시대의 대표적인 것으로 중형·소형의 돌날몸돌과 돌날, 여러 형태의 찌르개와 슴베석기가, 그리고 대형의 돌날몸돌과 돌날, 방형격지, 대형 홈날석기, 갈돌류가 특징적 유물로 거론된다. 그 외 뚜르개·새기개·홈날·긁개 등도 있다.

신석기 유적은 대표적으로 밀양 금천리 유적밀양 살내 유적이 있다. 두 유적은 신석기에서 시작되어 청동기의 흔적도 계속 발견할 수 있는 지역이다.

밀양 금천리 지역은 밀양시의 동쪽에 자리하고 있으며, 밀양강과 동천(東川)[또는 단장천(丹場川)]이 합류하는 곳에 형성된 범람원에 자리 잡고 있다. 신석기 후기·만기에 해당하는 방형과 원형의 주거지 2기, 야외노지 2기, 적석유구 2기가 발견되었다. 특히 원형의 주거지는 청동기 초기 주거지와 중복 관계를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신석기 유물은 빗살무늬토기, 민무늬토기, 겹아가리토기, 돌도끼, 돌창, 보습, 갈돌, 지석, 부리형석기, 발화석 등이 출토되었다. 토기류는 사격자문(斜格子紋), 능형집선문(菱形集線文) 등의 침선문계(沈線文系)와 단사선문(短斜線文), 점열문(點列文), 사선문(斜線文), 지두문(指頭文) 등의 압날(押捺)·자돌문(刺突文) 및 압인계(押引系)의 문양으로 구분된다.

밀양 살내 유적밀양강의 중하류부 좌안(左岸)의 범람원에 자리하고 있다. 조사된 유구로는 신석기시대 수혈 14기, 집석유구 9기, 유물산포지가 있다. 신석기시대 유물로는 다량의 토기편과 석기, 석재 등이 확인된다. 토기는 심발, 호, 완 등이 출토되었다. 토기의 문양은 단사집선문(短斜集線文)이 압도적으로 많다. 자돌문, 압인문(押印文), 침선문(沈線文)은 소량 확인된다. 석기는 대부분 타제품(打製品)이며, 마제품(磨製品)은 소량 출토되었다. 굴지구, 돌도끼, 찍개, 자귀날도끼[편인석부(片刃石斧)], 횡장석도, 소형석도, 완형석도, 지르개, 갈판, 갈돌, 지석, 새기개, 뚜르개, 돌낫, 돌창, 박편석기(剝片石器), 미완성석기, 몸돌 등이 출토되었다.

[청동기 시대]

경상남도 밀양시의 대표적인 유적지는 밀양 금천리 유적밀양 살내 유적이다. 두 유적은 신석기시대부터 지속되어 왔고, 대부분 청동기시대에 집중되어 있다.

밀양 금천리 유적은 주거지 8기, 고상가옥 7동, 대벽건물(大壁建物)과 지상식 건물, 수전(水田), 밭, 습지(濕地)와 수리시설 등 다양한 유구가 확인되었다. 특히 농경 유구의 발견으로 한반도 남부에서의 농경의 역사를 알 수 있어 매우 의미 있는 유적지이다. 청동기시대의 토기류는 호형토기, 바리모양토기[발형토기(鉢形土器)], 소형토기, 붉은간토기[적색마연토기(赤色磨硏土器)], 점토대토기 등이 출토되었다. 석기류는 석촉, 돌창, 돌도끼, 돌칼, 부리형석기, 보습, 공이, 따비, 갈판, 지석 등으로 다양하다. 이외에 가락바퀴[방추차(紡錘車)], 어망추, 토주, 원판형토제품 등의 유물도 출토되었다.

밀양 살내 유적은 주거지 24동, 수혈 7기, 구 3기, 집석유구 1기, 돌널무덤[석관묘] 2기, 적석제단유구 2기, 고인돌 뚜껑돌[지석묘 상석] 11기, 밭터 2개층이다. 청동기시대 전기 유물은 유물은 겹아가리토기[이중구연토기(二重口緣土器)], 간돌화살촉[마제석촉(磨製石鏃)], 붉은간토기, 장주형석도(長舟形石刀), 조갯날돌도끼[합인석부(蛤刃石斧)], 갈판, 그물추, 대롱옥[관옥(管玉)] 등이 출토되었다. 청동기시대 후기 유물은 방형주거지에서는 민무늬토기, 붉은간토기, 돌창, 어형석도(魚形石刀) 등이 출토되었다. 원형주거지에서는 민무늬토기, 반달돌칼[반월형석도], 어망추, 돌끌[석착(石鑿)], 돌보습 등이 출토되었다. 돌널무덤에서는 붉은간토기 1점을 부장하였다. 또한 청동기시대 후기에서 삼국시대에 해당하는 밭과 적석제단이 있는데, 밭에서는 원형점토대토기가, 적석제단에서는 간돌칼[마제석검]과 기하학문양이 음각된 바위그림 2매가 출토되었다.

[의의와 평가]

선사시대 발굴 지역을 중심으로 볼 때, 밀양은 구석기부터 청동기까지 다량의 유구와 유물이 조사되고 있다. 특히 밀양 금천리 유적밀양 살내 유적의 경우 신석기부터 청동기시대에 이르기까지 유구나 유물이 집중되어 있어 주거지와 여러 석기의 변천상을 잘 보여 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또한 밀양 금천리 유적은 농경유구의 발견으로 한반도 남부의 농경의 역사를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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