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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701268
한자 慕先齋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남도 밀양시 청도면 소태2길 38-11[소태리 567]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하강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954년연표보기 - 모선재 건립
현 소재지 모선재 - 경상남도 밀양시 청도면 소태2길 38-11[소태리 567]지도보기
원소재지 모선재 - 경상남도 밀양시 청도면 소태2길 38-11[소태리 567]
성격 재실
양식 팔작지붕
정면 칸수 4칸
측면 칸수 2칸
소유자 김해김씨 소태문중
관리자 김해김씨 소태문중

[정의]

경상남도 밀양시 청도면 소태리에 있는 김해김씨 선조를 위한 재실.

[개설]

모선재(慕先齋)경상남도 밀양시 청도면 소태리에 세거한 김해김씨 집의공파 후손이 건립한 재실이다. 삼현파 파조 김관(金管)[1250~1348]은 김수로왕의 48세손이다. 김관의 고손자 김극일(金克一)[1382~1456]은 하늘이 낸 효행으로 ‘절효(節孝)’ 사시(私諡)를 받았다. 여섯 아들이 각각 다시 파조가 되었는데, 둘째 아들 남계 김맹(金孟)[1410~1483]은 집의공파 파조이다. 삼족당 김대유(金大有)[1479~1551]는 파조 김맹의 손자인데, 고손자 일옹 김기련(金基璉)이 선조 때 청도군 토평동에서 청도면 소태리 웃마[모선재마을]로 옮겼다. 1635년(인조 13) 헌릉참봉에 제수되었고, 1636년 병자호란 때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피난할 때 호종하였다. 또한 척화(斥和)의 세 가지 계책을 지어 올려 충성을 다하고 의리를 지켰다.

모선재 내벽에는 송재성(宋在晟)[1902~1972]의 「모선재기」[1955]와 방후손 김주곤(金洲坤)이 1955년 글을 짓고 문학박사 서수생(徐首生)이 1982년 글씨를 쓴 「모선재 상량문」이 걸려 있다.

[위치]

모선재경상남도 밀양시 청도면 소태리 567번지에 있다. 소태리복지회관 뒤 북쪽으로 약 100m 올라가면 산기슭에 재실이 있다.

[변천]

김해김씨 집의공파 후손들은 1954년 가을 입향조 자취를 기리기 위하여 재숙소 겸 후진 강학소로 재실을 창건할 때 ‘모선재’ 편액을 내걸었다. 모선재는 건물 자체는 큰 변화 없이 유지되고 있고, 2004년 재실 서쪽 곁에 모선재 중수기적비를 세웠다.

[형태]

모선재는 외삼문을 열고 들어서면 정면에 팔작지붕의 목조 건물인 재실이 있고, 왼쪽에 중수기적비와 공적비가 앞뒤로 세워져 있다.

[현황]

모선재는 재실과 관련 비석들이 큰 훼손 없이 잘 남아 있다.

[의의와 평가]

모선재를 통하여 김해김씨경상남도 밀양 청도 입촌 내력과 밀양 지역 내 분포지를 파악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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