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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담임흘관련고전적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700558
한자 龍潭任屹關聯古典籍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문헌/문서
지역 경상남도 밀양시 밀양대공원로 100[교동 485-4]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영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2002년 6월 7일연표보기 - 용담임흘관련고전적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313호 지정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21년 6월 29일 - 용담임흘관련고전적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개정에 따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지정 번호 삭제
소장처 밀양시립박물관 - 경상남도 밀양시 밀양대공원로 100[교동 485-4]지도보기
성격 고전적
관련 인물 임흘
발급자 임흘
문화재 지정 번호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313호

[정의]

경상남도 밀양시 교동 밀양시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 전기 임흘 관련 고전적.

[개설]

임흘(任屹)은 본관(本官)이 풍천(豐川)이며, 자(字)는 탁이(卓爾), 호(號)는 용담(龍潭)이다. 1582년에 실시한 사마시(司馬試)에 2등으로 올랐으나 곧 경상북도 봉화군으로 낙향하여 용담계곡에 집을 짓고 경서(經書)와 사기(史記)로 낙을 삼았다. 임흘은 일찍이 이황의 제자인 소고(嘯皐) 박승임(朴承任), 월천(月川) 조목(趙穆), 한강(寒岡) 정구(鄭逑)의 문하(門下)에서 학문을 수학하여 예학(禮學)에 밝아 당세의 큰 그릇이라고 평가받았다. 특히 정구는 임흘을 가리켜 “그대는 도학(道學)에 침잠하기를 날로 깊은 맛이 있으므로 내가 몹시 부러워하는 바다. 나는 그대와 같은 호례지인(好禮之人)과 늘 더불어 깊게 헤아리지 못함이 애석하도다.”라고 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류종개(柳宗介) 등과 함께 의병을 창의하여 경상북도 문경시 일원에서 왜적과 싸워 많은 전과를 거두었다. 임흘은 전옥서참봉, 동몽교관(童蒙敎官)에 각각 임명되었으나, 이이첨(李爾瞻) 등의 횡포로 정계가 혼탁하자 권귀(權貴)를 책망하는 상소를 올린 후 귀향하여 모든 세상 출입을 끊고 독서로 여생을 보냈다.

[형태]

용담임흘관련고전적은 『용담취규정잡영』과 『용담유고』는 임흘의 시문집이며, 『임오사마방목』은 1582년 실시된 사마시의 합격자 명부이다. 『가례부해』는 1600년대에 간행된 것으로 중국 송나라 주희가 집대성한 『주자대전』 중에서 가례와 관련된 주요 부분을 용담 임흘이 직접 발췌하여 해석한 것이다.

[구성/내용]

용담임흘관련고전적은 『용담유고』 1권, 『용담취규정잡영』 1권, 『용담취규정잡영』 1권, 『임오사마방목』 1권, 『가례부해』 4권 등 총 5종 8권이다.

[의의와 평가]

용담임흘관련고전적은 시문집과 사마방목, 가례에 대한 내용 등 조선 후기 유학자의 의식 세계와 당시의 예를 알 수 있는 자료이다.

[참고문헌]
  • 국가문화유산포털(https://www.heritage.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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