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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700532
한자 申季誠
영어공식명칭 Shin Gye-seong
이칭/별칭 자함(子諴),석계(石溪),송계(松溪),송계선생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경상남도 밀양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김영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499년 11월 27일연표보기 - 신계성 출생
몰년 시기/일시 1562년 5월 21일연표보기 - 신계성 사망
특기 사항 시기/일시 1815년 - 신계성 『송계선생실기』 간행
출생지 후사포리 -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후사포리 지도보기
묘소|단소 장선리 - 경상남도 밀양시 동촌 장선리
사당|배향지 신산서원 - 경상남도 김해시 대동면 대동로269번안길 115[주동리 737]
사당|배향지 예림서원 -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예림서원로 128[후사포리 179]지도보기
성격 유학자
성별 남성
본관 평산(平山)

[정의]

조선 전기 경상남도 밀양 출신의 유학자.

[가계]

신계성(申季誠)[1499~1562]의 본관은 평산(平山)이며, 자는 자함(子諴), 호는 석계(石溪), 송계(松溪)이고, 후세에 학자들이 송계선생이라 하였다. 1499년 11월 27일 지금의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후사포리에서 태어났다. 증조할아버지는 신윤원(申允元)이고, 할아버지는 신승준(申承濬)이며, 아버지는 신탁(申倬)이다. 외할아버지는 손순무(孫筍茂)이고, 장인은 이철수(李鐵壽)이다.

[활동 사항]

신계성은 어려서부터 성현의 학문에 뜻을 두고 과거 공부는 하지 않았으며, 육경(六經)의 글에 침잠하고 『소학(小學)』의 내용을 실천하기에 힘썼다. 경(敬)을 마음을 가다듬는 요체로 삼았으며, 성(誠)을 경을 지키는 근본으로 여겼다. 송당(松堂) 박영(朴英)을 좇아 함께 지냈으며, 청도의 김대유(金大有), 김해의 조식과 사귀었다. 신계성이 항상 잊지 않았다는 고확(顧確)과 경의(敬義) 공부는 남명의 경의 사상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

조정에서 여러 번 불렀으나 신계성은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처사로 살았다. 1562년(명종 17) 5월 21일 64세로 세상을 떠났다.

신계성의 개인 저술은 없으며 1815년 유문과 행적을 모아 『송계선생실기(松溪先生實記)』 상하 단책(單冊)으로 간행하였다.

[묘소]

신계성의 묘소는 경상남도 밀양시 장선리(長善里)에 있다. 당시 밀양부사 약봉(藥峰) 김극일(金克一)이 비문을 지어 여표비(閭表碑)를 세웠다.

[상훈과 추모]

신계성은 경상남도 김해시 대동면 주동리에 있는 신산서원에 배향되었고, 밀양 예림서원김종직의 배향위(配享位)에 입향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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