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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700448
한자 密陽 南山 烽燧臺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경상남도 밀양시 상남면 남산리 산181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김영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97년 10월 30일~1998년 1월 28일 - 밀양 남산 봉수대 동아대학교 석당박물관에서 기초 조사
개축|증축 시기/일시 2004년연표보기 - 밀양 남산 봉수대 복원
문화재 지정 일시 2000년 8월 31일연표보기 - 밀양 남산 봉수대 경상남도 기념물 제227호 지정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21년 6월 29일 - 밀양 남산 봉수대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개정에 따라 경상남도 기념물 지정 번호 삭제
현 소재지 밀양 남산 봉수대 - 경상남도 밀양시 상남면 남산리 산181 지도보기
성격 봉수대
크기(높이,길이,둘레) 13.4m[연대 장축]|8.2m[연대 단축]|1.3m[폭]
문화재 지정 번호 경상남도 기념물 제227호

[정의]

경상남도 밀양시 상남면 남산리 종남산 정상 부근에 있는 조선 시대의 내지 봉수.

[개설]

밀양 남산 봉수대(密陽南山烽燧臺)는 부산 천성보(天城堡) 봉수대부터 시작되어 김해 연변 봉수를 거쳐 경상남도 밀양시 하남읍 백산리에 있는 백산(栢山) 봉수대로 이어진 신호를 받아서 추화산(推火山) 봉수대로 전달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던 내지(內地) 봉수(烽燧)이다. 조선시대의 봉수는 전국에 주요 노선 5로가 있어 직봉이라고 하였고, 모두 한성부의 목멱산(木覓山)에 도달하였다. 밀양 남산 봉수대가 포함된 노선은 제2거 간봉 노선으로 백산 봉수대에 이르면 내지화가 시작되고, 영천 성황당에서 제2거 직봉으로 연결되었다. 밀양 남산 봉수대는 1894년(고종 31) 봉수 제도가 폐지될 때까지 사용되었다.

[건립 경위]

밀양 남산 봉수대는 1997년 시행된 동아대학교 석당박물관의 기초 조사 결과 고려시대에 유행하였던 토기나 기와 조각들이 발견되어 축조 시기를 고려까지 올려 보기도 한다. 다만 밀양 남산 봉수대가 문헌에서 처음으로 보이는 것은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이다. 『세종실록지리지』의 기록에 따르면 밀양도호부에는 봉화가 3곳이었는데, 밀양 남산 봉수대는 남쪽으로는 김해 자암(子岩)에 응하고, 북쪽으로는 추화산성(推火山城)에 응한다고 되어 있다.

[위치]

밀양 남산 봉수대경상남도 밀양시 상남면 남산리 산181 일원에 있다. 밀양 남산 봉수대가 있는 종남산 정상부를 기점으로 북쪽은 밀양시 부북면 후사포리, 동쪽은 밀양시 상남면 기산리, 남쪽은 상남면 남산리, 서쪽은 밀양시 초동면 봉황리덕산리가 둘러싸고 있다.

[형태]

연대(煙臺)는 장축 13.4m, 단축 8.2m의 장방형이며, 폭은 1.3m이다. 연대의 중앙에는 석축으로 된 연통이 있으며, 하단부에는 사방으로 화구부가 설치되어 있다.

[현황]

밀양 남산 봉수대는 군용 헬기장의 조성으로 지표면에 석재와 기와 조각, 토기 조각들이 노출되어 있었으나 형태는 남아 있지 않았다. 1997년 기초 조사 이후 문화재청의 지원으로 2004년에 화강암으로 석축을 쌓아 연대와 연통이 복원되었다. 2000년 8월 31일 경상남도 기념물 제227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6월 2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개정에 따라 경상남도 기념물 지정 번호가 삭제되었다.

[의의와 평가]

밀양 남산 봉수대는 조선시대에 부산 천성보에서 시작된 제2거 간봉 노선의 내지 봉수로 기능하였다. 1997년 진행된 기초 조사에서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토기와 자기, 기와 조각들이 발견되었다. 특히 통일신라 때 것으로 보이는 회청색 경질토기(硬質土器)나 마형토우(馬形土偶)가 출토되어, 봉수대의 축조와 관련 없이 일찍부터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천제단으로 사용된 것으로 추측하기도 하는 등 통일 신라부터 조선시대까지 이어지는 역사 유적으로 가치가 높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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