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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종식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500529
한자 閔宗植
영어음역 Min Jongsik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전라남도 진도군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김정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의병장|문신
아버지 민영상(閔泳商)
성별
생년 1861년연표보기
몰년 1917년연표보기
본관 여흥
윤조(允朝)
퇴초자(退樵子)
상훈 건국훈장 대통령장
대표관직 참판
주요활동/연도 1907년 진도에 유배됨연표보기

[정의]

한말의 의병장으로 진도에 유배된 문신.

[개설]

1895년 을미사변 후 벼슬을 버리고 충청남도 정산으로 우거, 운둔하였다가 1905년 을사늑약이 강제 체결되자 의병을 일으켰다. 홍주성 점령 후 일군에 패하여 재기를 도모하던 중에 붙잡혀 진도로 유배되었다.

[가계]

본관은 여흥. 아버지는 판서를 지낸 민영상(閔泳商)이다.

[활동사항]

1882년(고종 19) 별시문과 병과로 급제하여 벼슬이 이조참판에 이르렀다. 1895년 을미사변 후 벼슬을 버리고 충청남도 정산(定山)으로 우거, 은둔하였다. 은거하고 있던 중 1905년 을사늑약으로 통감정치가 시작되어 외교권이 일본에 넘겨지고 군대마저 해산당하자 1906년 홍천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500여 명을 이끌고 일본군에 저항했으나 격파당하였다.

공주의 전 참판 이남규를 집에 숨겨 두었다가 같이 체포되었다. 1907년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법무대신 이하영의 주청으로 감형되어 1907년 6월 3일 양한규 등 의병 17명과 함께 진도로 유배되었다. 5개월 25일 만인 11월 28일 95명이 사면될 때 진도에서 풀려났다.

[상훈과 추모]

1962년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을 받았다.

[의의와 평가]

충청남도 서부 일대를 점령한 후, 서부의 중심지인 홍주(洪州)를 공략하여 점거하였다. 이러한 가운데 왜병과 싸워 크게 이김으로써 을사 의병 중에 경상북도의 신돌석(申乭石) 진영과 정용기(鄭鏞基)·정환직(鄭煥直) 진영과 함께 3대 전투의병으로 손꼽힌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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