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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풍 김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600558
한자 海豊 金氏
이칭/별칭 덕수 김씨,정주 김씨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경기도 화성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한상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입향조 생년 시기/일시 1460년대 - 김수종 출생
입향 시기/일시 1500년 전후 - 김수종 화성 지역 입향
본관 해풍 - 경기도 개풍군
입향지 해풍 김씨 입향지 - 경기도 화성시 우정읍 호곡리 지도보기|화산리지도보기
세거|집성지 해풍 김씨 세거지 - 경기도 화성시 우정읍 호곡리 지도보기|우정읍 화산리지도보기|장안면 장안리지도보기|장안면 사곡리지도보기|송산면 신천리지도보기
성씨 시조 김숭선
입향 시조 김수종

[정의]

김숭선을 시조로 하고 김수종을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화성시의 세거 성씨.

[개설]

해풍 김씨는 신라 김알지의 후예로 알려져 있다. 본관인 해풍(海豊)은 경기도 개풍군(開豊郡)의 옛 지명이다. 1865년 간행된 을축보에는 7개 해풍 김씨 지파가 등장하는데, 화성 지역 해풍 김씨는 7개 지파 중 남양쌍부파[쌍부는 지금의 경기도 화성시 우정읍·장안면 일대]에 속한다.

화성 지역에 입향한 해풍 김씨들은 무반 가문으로 성장하였다. 입향조인 김수종(金壽宗)은 조선 중종 대에 무과에 급제하여 길주목사 겸 길주병마첨절제사를 지냈다. 김수종의 5촌 조카인 김질 역시 무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황해병마절도사를 지냈다고 알려졌다. 또 김수종의 증손 김경은 병마동첨절제사를 지냈으며, 현손 김우추는 병마우후, 5대손 김형은 병마절제사를 지냈다.

김형 이후에는 8대에 걸쳐 장수가 배출되어 지역 내에서 8대 장신 집안으로 불리기도 한다. 김형에게는 아들이 셋 있었는데, 맏아들 김대건은 무과에 급제하여 금주영병장, 회령부사 등 무신의 주요 관직에 올랐다. 김대건은 이괄의 난 평정에 공을 세워 진무원종공신 1등에 봉하여졌으며,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전후하여서는 후금과의 외교에서 중요한 임무를 맡았다. 김형의 막내아들 김체건 역시 무과에 급제하여 북병사, 평안병사 등의 관직에 올랐다. 반면 둘째 김시건은 형제들과 달리 생원시에 급제하여 문신의 길을 걸었는데, 인조 대 심기원 사건에서 의금부 도사로 공을 세워 영국원종공신 1등에 녹훈되었다.

정조가 화성을 건축할 당시 경기 중군, 별감동, 독성 중군 등을 맡아 성역을 주도한 김후도 해풍 김씨 출신이다.

[연원]

해풍 김씨 시조 김숭선(金崇善)은 고려 시대에 예부 상서를 지내고 해풍부원군(海豐府院君)에 봉하여졌다고 한다. 이후 해풍이 후손들의 본관이 되었다. 후손 가운데 덕수(德水)나 정주(貞州)를 본관으로 삼은 자들도 있었으나, 1983년 발행된 계해보에서 해풍으로 통일하였다.

[입향 경위]

해풍 김씨 화성 지역 입향조는 김수종인데, 김수종은 남양쌍부파의 파조이자 대사헌을 지낸 김장(金樟)의 맏아들이다. 이후 김수종의 종손인 김대건의 후손이 지금의 경기도 화성시 우정읍 화산리 일원동에, 김대건의 동생인 김시건의 후손이 우정읍 호곡리주곡리에, 다른 동생인 김체건의 후손이 우정읍 화산리 장포에 세거하게 되었다.

[현황]

해풍 김씨의 화성 지역 주요 거주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1930년대에는 장안면 장안리가 60세대의 해풍 김씨가 거주하는 동성 마을로 소개되었고, 송산면 신천리도 27세대가 거주하는 주요 동성 마을이었다. 1950년 조사에서는 우정읍 화산리에 79세대의 해풍 김씨가 보고되었다. 송산면 신천리는 1930년대 조사에 이어 1950년대 조사에서도 29세대가 조사되었다. 1950년대에는 그 외에도 장안면 사곡리[56세대]가 새롭게 해풍 김씨 동성 마을로 확인되었다. 이상 언급한 마을 외에도 마도면 두곡리, 태안읍 기안리, 향남읍 상신리에서도 해풍 김씨가 거주하는 사실이 마을 조사를 통해 보고되었다.

한편, 1985년 인구주택총조사에서는 화성 지역에 201세대 790명의 해풍 김씨가 거주하는 것이 확인되었고, 2015년에는 771명이 확인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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