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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600361
한자 海門驛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권기중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폐지 시기/일시 1896년 1월연표보기 - 해문역 폐지
관할 지역 해문역 -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 지도보기

[정의]

경기도 화성 지역에 있던 조선 시대 역.

[개설]

해문역은 조선 시대에 남양도호부 관내에 있는 양재도의 속역이었다. 해문역이 자리한 양재도는 한양과 수원부, 남양부를 연결하는 역로였기 때문에 정조가 화성 또는 현륭원에 행차할 때 주요하게 기능하였다.

[제정 경위 및 목적]

해문역은 경기도와 충청도를 곧바로 연결하는 주요한 교통망에 자리하였다. 이러한 지리적 중요성으로 인해 세종 대와 세조 대에 역로망과 역참을 재편하는 과정에서 동화도와 양재도의 속역으로 편제하였으며, 역을 담당하는 역승(驛丞)이 직접 파견되었다.

[관련 기록]

해문역은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동화도의 속역으로 나타나 있고, 『경국대전(經國大典)』에는 양재도의 속역으로 명시되어 있다. 양재도가 영화도로 개편된 후에 편찬된 『만기요람(萬機要覽)』에는 영화도의 속역으로 나타나고 있다.

[내용]

해문역은 18세기 중엽에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에 따르면, 대마(大馬) 1필, 기마(騎馬) 1필, 복마(卜馬) 3필 등 총 5필의 역마를 보유하고 있었다. 노비는 노 11구, 비 2구 등 총 13구가 소속되어 있었다. 해문역에는 역승이 파견되어 역의 관리를 통괄하였다. 해문역의 위치에 관해서는 기록마다 차이가 있으나, 일제 강점기에 작성된 「조선총독부 중추원 역원 조사표」에는 경기도 수원군 음덕면 남양리에 있던 것으로 나타난다. 오늘날의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 일대에 해당한다.

[변천]

해문역이 언제 처음 설치되었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세종 대에 전국의 역로망을 44역도-537속역 체제로 정비하는 과정에서 동화도의 속역으로 존재하고 있던 것은 확실하다. 이후 세조 때 역제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동화도가 양재도로 변경됨에 따라 해문역 역시 양재도의 속역으로 편제되었다. 조선 후기 정조 때에는 양재도가 영화도로 재편되어 영화도의 속역이 되었다. 1896년 대한제국 칙령 「각 역 찰방 및 역속 폐지에 관한 건」에 따라 폐지되었다.

[의의와 평가]

해문역은 한양과 충청도를 잇는 역로인 양재도의 속역 중에서 주요한 기능을 한 곳이었다. 특히 남쪽으로 충청도의 성환도와 곧바로 연결되는 곳이었기 때문에 교통상 요지로 기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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